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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9일 11시 50분 등록

  매사 자신만만했던 난 스스로 엄마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결혼 전 계획했던 대로 적당한 신혼기간을 보낸 후 첫아이를 가졌고, 입덧으로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없었으면 서운했다 여길 정도였다. 이런 자신만만한 착각이 무너진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임신 8개월 즈음 구정 연휴 바로 전날, 미심쩍은 통증으로 퇴근길 혼자 병원에 갔다가 바로 입원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이었다. 입원실에 혼자 누워 울면서 신랑을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신랑과 단둘이 병원에서 맞이한 새해아침, 우리의 기도는 오로지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 달라는 것일 수밖에 없었고 그 후로는 하루라도 늦게 아이를 낳기 위한 힘겨운 노력의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진통 끝에 2.8kg의 첫 애를 만난 순간은 감격일 수밖에 없었다.


  결혼 전 그다지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와 신랑은 그래도 한 명은 낳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좀 뒤에 나이가 좀 들어서 입양을 해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로 인해서 우리의 삶이 너무 많이 바뀌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금은 이기적인 바람이 나와 그 안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아이를 품안에 안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기쁨을 맛보며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던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울어대는 이 아이를 내 목숨보다 사랑하게 될 거란 사실을 나는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아이로 인한 고생은 상상 이상이었고, 동시에 아이로 인한 기쁨도 상상이상이었다. 아기를 낳고 나니 세상이 바뀌었다. 더 정확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변해버렸다.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자아가 확장된다는 거, 책에서 읽었지만 실감을 못했었죠. 그런데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게 되었어요. 생명 자체를 온전히 나에게 의존하는 이 작은 꼬물대는 아기를 바라보면서 생명에 대해, 사랑에 대해, 우주의 신비에 대해 온 몸으로 느끼게 되었죠. 그리고 이 작았던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스스로를 주장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을 함께 누리면서 삶에 대해 알게 되죠. 한 생명을 온전히 길러낸다는 것, 이건 온 우주를 품는 거예요.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거예요. 그는 처음부터 나와 동등한 인격체였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죠. 처음 내 분신이었던 아이가 독립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자기 성장, 자아의 확장은 바로 출산과 육아랍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관계가 최악으로 바뀌는 부부가 67%라고 한다. 황금빛이던 신혼에 ‘육아’라는 핵폭탄급 과제가 떨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3분의 2의 부부가 육아문제로 인해 결혼을 후회할 만큼 힘들어 하는 반면, 3분의 1의 부부는 육아로 인해 더 깊은 사랑을 느끼고 관계가 단단해 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부부관계에 있어서 육아는 버거운 도전과제이자 꼭 함께 넘어야할 고지이다.

  함께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는 ‘그’라는 사람에 대해 진짜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맨얼굴과 마음 밑바닥까지 그에게 드러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밤잠이 없었던 큰 아이를 재우기 위해 번갈아 아이를 안고 졸던 밤에는 잠들어 있는 그의 등짝을 발로 차고도 싶었고 간신히 잠든 나를 젖먹이라고 깨우는 신랑이 미워 죽겠던 때도 있었다. 집에만 들어가면 울면서 잠이 깨던 아이를 안고 골목길에서 서성이던 무더웠던 한밤중에는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던 우리의 가난도 참 싫었다. 


  

IP *.230.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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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11.04.19 15:03:36 *.198.133.105
아이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충분이 동감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맞지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이가 우리를 키우는 것 같아요.

우리는 나와 그가 만나서  나와 너가 되었어요.
그래서 나와 너가 더욱더 우리답게 되기위해 아이가 필요했나봐요.
우리는 아이와 함께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
우리라는 개념이 더욱더 폭넓고 진지하게 도입되는 화목하고 안정된 가정이 되어가지요.
아이 덕에 세상은 구원받게되어있습니다.
아이는 작은 하느님이지요

선이님!
훌륭한 아이 잘 키우셔서 세상 구원하는 큰 인물 만드소서_()_
좋은아이가 좋은 어린이가 되고,
 좋은 어린이가 좋은 어른이 되어,
좋은 세상 만들기를 기원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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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1.04.19 18:06:04 *.42.252.67
아기를 낳으면 누구나 경험하는 육아전쟁과 무더운 여름 밤의 거리를
다시 기억나게 해 주는 글이구나. 나도 잠이 없는 두 아이를 위해
길에서 살았었어. 낮이건 밤이건 나는 길 위 돗자리에서 여름을 보냈던
생각이 나면서 웃음이나네. 집에만 들어가면 자지러지는 아이때문에
자장면을 돗자리 위에서 시켜먹으며 보냈던 날들이 글이되고 추억이되고.....
그런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자라 학교에 다니는 지금 또 다른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도 그 아이들이 자라면 지금처럼 담담하게 써 내려가겠지.
글이 너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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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4.19 18:34:41 *.30.254.21
어제와 다른
성장하는
동기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참으로 기쁘다.

그동안 니 글이 약간 심심한 느낌이었는데
이젠 간이 차~악 맞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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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9 18:52:40 *.10.44.47
언니보다 언니 글이 더 반가워요!!
저도 우성오빠의견에 완전 동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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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4.20 05:21:34 *.35.19.58
저도 맞벌이 하면서 어렵게 애들 키웠지만 지금은 그 시절이 아쉬워요.
정말 소중한 시기를 돈 번다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서요.
아, 옛날 생각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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