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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1일 11시 59분 등록
 4-3. 그에게 중요한 것, 나에게 중요한 것 (1) - 위대한 탄생


  두 남녀가 결혼을 한 순간 새로운 세상 하나가 탄생한다. 태어날 때부터 속해있던 각자의 세상을 벗어나 모든 것이 신선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결혼이란 형식으로 울타리를 치고 하나하나 안을 채워나가는, 그야말로 ‘위대한 탄생’이다. 사랑으로 시작된 관계는 처음에는 매우 순조롭다. 결혼에 이르기까지 장애물에 부딪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둘 사이의 사랑만 확고하다면 장애물은 오히려 두 사람의 사랑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기름이 되곤 한다. 진짜 어려움은 결혼 이후에 시작된다. 사랑만이 목적이던 낭만적 연애 시절이 끝남과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가족공동체를 건설해야 하는 지극히 실제적인 생활이 시작된다. 결혼식은 넓은 광야에, 때로는 거친 황무지에, 말뚝 몇 개를 박아 내 땅을 표시해 놓는, 첫 걸음일 뿐이다. 그 후 본격적인 집짓기가 시작된다. 말뚝을 꼼꼼히 이어 울타리를 굳건히 하고, 집지을 토대를 쌓기 위해 바닥을 깊게 파고, 땅을 다지고, 하나하나 돌을 쌓고 기둥을 세워  집을 짓는다. 늑대가 쳐들어와도 끄떡없는 막내돼지의 집처럼 기초공사를 튼튼히 해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생소한 이 모든 과정이 오로지 신랑과 아내, 둘만의 몫이다. 주변의 어떤 도움과 참견도 벽돌 한 장 옮겨줄 수 없는 훈수이자 안타까움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웃고 땀을 닦아주며 격려하던 신혼기간이 지나면 이제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 돈도 벌어야 하고 온갖 이웃의 행사에서도 각종 역할을 부여받는다. 때로는 힘들어 도망가고 싶고 종종 옛날의 편안한 집에서 그냥 살지 내가 왜 새 집을 진다고 나섰을까 후회될 만큼 버거운 과정들이다. 더구나 이 사람이 옛날의 그 사람이 맞을까 싶을 만큼 낯선 면이 속속 들어나기 시작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과정이 창조의 기쁨뿐만 아니라 고통과 고난을 포함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결혼생활 또한 그렇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로 합의했지만 우리의 의식, 무의식은 이미 몇 십 년 동안 학습된 자신만의 ‘정답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전지식들은 때로는 심각한 의사소통의 장애와 갈등으로 연결된다. 아무리 불타는 사랑으로 만난 부부라 할지라도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기에 더 쉽게 상처받고 서운해 한다. 작고 소소한 일들, 그래서 미처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작은 사건들이 둘 사이를 차츰차츰 무너뜨린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작은 원칙과 기준들이 사사건건 상대와 부딪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순간 그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불꽃을 튀기기도 한다.


  상식(常識,common sense)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 등으로 설명된다. 결혼이란 이런 상식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다. 내가 믿고 살아온 나의 상식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요, 나만의 특수한 상황에서 학습된 결과라는 사실을 조금씩 인정해 가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상식’이란 틀로 가름하기엔 너무도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소소한 일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가족만의 새로운 룰이 필요하다. 어떤 것은 쉽게 합의되고, 가끔은 한 사람이 양보하며 기준을 만들어 나간다.


  가장 쉽게 합의되는 것은 덜 중요한 것들이다. 내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그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은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 자신의 넓은 마음이 즐거울 경우도 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동시에 그에게도 중요할 때, 그러나 그 기준이 서로 다를 때가 가장 힘들다. 가끔은 의견에 대한 반대가 사람에 대한 반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내 생각, 내 의견에 모두 찬성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런 과정은 수시로 되풀이된다. 때론 실망하고 포기하며 가끔은 싸우며 어찌됐든 힘든 합의에 도달해 나간다. 바로 울타리를 만들고 집을 짓는 과정이다.      


  앤 패디먼의 에세이 <서재 결혼 시키기>에서 묘사된 각자의 애장 서적들을 합치는 과정을 읽어보면 이것이 바로 결혼의 과정이다. 결혼 전부터 소장해온 책들은 그 세월과 역사 때문에 개인에게는 보물과 같다. 서로 다른 책들이야 모두 보관하면 되니까 전혀 문제가 없지만 서로 겹치는 목록을 어떻게 할 것이냐, 누구의 책을 두고 누구의 책을 버릴 것인가, 이들에겐 심각한 문제였다. 이들은 결혼 5년만에야-넘쳐나는 책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드디어 책을 정리하기로 합의하고 둘 다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을 세웠다. 더 오래된 책, 메모와 흔적이 남아있는 책, 하드커버 책 등이 우선이라는 그들만의 원칙들. 그 원칙에 따라 책을 정리하고 통합한 후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 붙어 살아야만 할 것이다. 스스로 퇴로를 차단해 버린 셈이니까.’


  개인의 출생과 가족과 성장사가 다르듯, 서로 안에 내재되어 있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인생의 방향을 규정짓는 ‘큰 가치’는 결혼 전에 확인하고 탐색되어 맞추어지지만, 일상을 움직이는 ‘작은 가치’들은 결혼 후에야 힘을 발휘한다. 삶은 큰 것과 작은 것의 혼합이기에, 큰 가치의 중대성만큼 작은 가치들도 우리 행복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혼은 큰 가치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작은 가치를 통합해 가는 과정이며, 이 과정을 통해서 점점 더 깊은 친밀함에 이르는 행복한 여정이 된다.  

IP *.230.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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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5.31 14:39:06 *.237.209.28
열흘만에 봤더니
무뚝뚝한 남편의 목소리마저 감미롭게 느껴지는 이 타이밍에 온 언니의 글.

구구절절 옳은 말씀에
연신 음..그렇지 그렇구 말구를 연발하고 말았습니다.
점점 더 견고해지는 느낌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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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6.01 16:52:37 *.236.3.241
'결혼은 큰 가치를 확인하고 작은 가치를 통합해 가는 과정이다.'
결혼에 대해 매우 훌륭한 정의인 듯 ㅎㅎ  결혼생활에서 이런
결론을 얻어냈다면 힘들었을지라도 잘 산거야.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괜찮았어~"라고 웃어 줄 만 하겠는데.^^

망원경이 있으면 좋겠다. 허허벌판에서 머리카락을 팔랑거리며
마주했던 컷을 맘먹은 대로 당겼다 밀었다 필요한 장면에 삽입할 수 있다면.
늦지 않게....
 
사랑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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