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루미
  • 조회 수 2219
  • 댓글 수 10
  • 추천 수 0
2011년 6월 27일 00시 40분 등록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 사람이다. 잠잘 시간이 아까워서 꿈꿀 시간이 없다고 우스갯 소리를 하기도 한다. 우리 엄마는 꿈만 꿨다하면 백발백중인데 나는 꿈조차 꾸지 않는다. 나도 예지몽을 꾸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나는 그저 눈만 감았다 하면 아침이니 이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최근 몇 개월 간 꿈이 얼마나 많아지고 버라이어티 해지는지 점차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평생 안 꾸던 꿈을 그냥 몰아서 꾸고 있는 거야? 좀 나눠서 꿔야 꿈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라도 가져보지. 밤에도 꾸고 깜빡 졸아도 꾸고 그러면 나는 언제 그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신화를 발견하냔 말이야. 그래서 난 융 할아버지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할아버지, 내가 꿈을 꿨는데요. 내가 원래 꿈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요즘 꿈을 많이 꾸더라구요. 그래서 할아버지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이제 꿈 이야기를 해드릴 께요.

뭔가의 공연장 같은 곳이었어요. 여러 팀이 나와서 공연을 하는 조금은 커다란 무대였는데 어렸을 적 보았던 국악대회의 무대장 같기도 해요. 나는 거기서 어느 밴드의 피아노를 담당하기로 했어요. 꿈속에서도 조금 어이가 없더라구요. 나는 피아노 잘 못치거든요. 암튼 하기로 했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되지 하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공연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나는 그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공연장 앞에서 꼬맹이들 물건을 파는 거예요. 거기서 나는 우리 꼬맹이를 사줄만한 것이 없나 기웃거렸지요. 그런데 별로 이쁘지도 않은 물건을 가지고 턱없는 가격을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꼬맹이 데리고 다시 오겠다며 말을 하고는 투덜거리며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왔지요. 근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좀 찾았던가봐요. 뭐 연습을 하려고 그랬는지 말이예요. 옆에서 엄마랑 친구가 어디갔었냐며 찾았다며 말을 하는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쟤가 아이엄마라는 둥, 아이 엄마가 저렇다는 둥. 순간 나는 너무나 짜증이 났어요. 그래서 우리 팀에 가서 안하겠다며 버럭하고 소리를 질렀죠. 그때 나는 피아노를 잘 못쳐서 어차피 할 수도 없을 거라며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 리더가 그 말을 듣고도 모른 척 하고 가는 거예요. 그래도 내가 할거라면서. 너무 신경질이 나서 안한다고 안한다고 소리를 버럭버럭 하니까 리더가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데 그 옆에서 나를 돌아보는 사람이 우리 작은 외삼촌이 아니겠어요. 아무 말도 없이 빙긋 웃고 있었어요. 나는 순간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우리 외삼촌은 꽤 젋은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하은이 낳기 전에 한번 등장해서 빙긋 웃어주고는 처음으로 보는 거였어요.

“그것과 관련하여 자네는 무슨 생각이 떠오르나?”

연구원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 꿈은 꾼 때가 연구원 합격한지 얼마 안되어서였거든요. 솔직히 한푼이라도 더 벌어도 아쉬울 판에 이렇게 돈 쓴다고 주변분들이 뭐라하는 말도 좀 들었는데 그러던 차에 삼촌이 이렇게 나타나서 빙긋 웃어주니까 이 길 괜찮은가보다. 가는길에 조금 힘들다고 내가 투정부리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가볼만한 길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네는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기고 있지?”

우리 외삼촌이 내가 23살에 돌아가셨거든요. 엄마가 그때 52살 때니까 우리 외삼촌은 아마 36세였던가 봐요. 정말 슬픈 소식이었지요. 믿을 수도 없는. 참 착한 분이셨어요.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었거든요. 나이차이도 얼마 안나서 잘 지내는 편이었구요.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요. 어렸을때부터 집에 오면 잘 놀아주고 학교 입학한다고 이것저것 사주고 그랬어요.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좋은 분이셨어요. 그 분이 하은이 낳기 전에 한번 꿈에 등장해서 뒤를 돌아보며 빙긋 웃어주었어요. 다른 내용은 기억도 잘 안나요. 그 장면 밖에. 하은이 가지고 배가 불러서 한번 삼촌 계신 곳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꿈에 나타나니까 우리 하은이 삼촌이 지켜주고 있나보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그런데 이렇게 이번 꿈에 나타나는 걸 보니 어쩌면 나를 지키고 있는건가봐요.

“자네는 그것이 어디서부터 온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나는 솔직히 삼촌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안쓰러웠나봐요. 잘 하고 있다고 나에게 나타나준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나 근데 맞게 대답하고 있는 거 맞아요? 나 좀 동문서답하는 기분도 들고 내가 하고픈 말 마구잡이로 하는 기분도 드는데요.

“자네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게 뭐... 받아들이기 나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고 내가 너무 나 좋은 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금 있어요. 꿈은 어떻게 보면 믿거나말거나 잖아요. 근데 난 조금 믿는 편이거든요. 예전에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내가 좋아하던 애 꿈을 꾸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애랑 꿈속에서 악수를 했는데 잡았던 손의 느낌이 깨어서도 생생했거든요. 근데 그날 그애는 전학을 갔어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죠. 나는 그애가 나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생각했어요. 그애도 내가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꿈도 그러한 맥락으로 생각해요. 삼촌이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한다고. 그리고 그 사실은 나에게 매우 따뜻하고 좋아요. 나를 이끌어주는 리더도 많은 말은 하지 않고 그저 내가 따라올 것이라는 것은 확실히 믿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나는 짜증이 났는데 그것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리더의 생각대로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나는 짜증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꼬맹이의 물건을 사지 않았잖아요. 별로 예쁘지도 않은게 비싸기만해서 투덜거리며 돌아왔더니 사람들이 맹비난을 퍼붓고 있었거든요. 아마 이 길은 나 혼자만의 길인가봐요. 맞나? 그냥 그 부분을 생각했을 때 우리 사부님의 이야기가 떠올랐거든요. 나는 나와 아이를 동일시 하고 있다고. 잘 해석은 안 되지만 왠지 그 말씀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요.

할아버지 있잖아요. 나 이거 말고도 엄청 많이 꿨어요. 언젠가는 정말 화가나서 눈 앞에 있는 것을 확 잡아챘는데 실재로 우리 꼬맹이를 꼬집을 뻔 했어요. 깜작 놀라서 깼다니까요. 근데 예전에 꿈을 꿨을 때 내가 화를 내면 뭔가 콱콱 막히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조금은 답답한 듯한. 근데 요즘에는 그게 조금 덜해졌어요. 예전에는 주먹을 휘둘러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조금 시원해요. 아직 멀었지만요. 상당히 엉뚱한 꿈도 꿔요. 선후 인과관계 아무 것도 없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으려 하는 그런 것도 있어요. 암튼 요즘에는 눈만 감으면 꿈을 꾸는 느낌이예요. 30년치 한꺼번에 꾸나봐요. 근데 나 진짜 말 많죠? 내가 원래 좀 이래요.

나는 무의식과 무의식의 직접적인 표현인 꿈을 자연의 과정으로 여기네. 꿈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지. 자네는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떼어 놓은 것과 같아. 이럴 때 그런 꿈이 나타나게 되어서 자네는 그것을 은혜의 작용으로 여기게 된 것이지.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 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네.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은 것들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지.

나는 해석에 대해서 할 말이 없네. 이미 자네의 대답과 연상에서 자연히 도출되어 있어. 나는 그저 꿈의 이미지를 스스로 이해하도록 도와 줄 뿐이네. 자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그것이 꿈이 의도하는 바일 것이야.

할아버지 이야기는 뭔가 아리송해요. 들을 수록 모르겠는데요. 뭐야. 나만 떠든것 같잖아요. 그래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다는 이야기 인거죠? 그리 해석해도 되는거죠?

그건 자네의 꿈이 말해줄 걸세.
꿈을 꾸는 사람도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도 역시 자네라네.


 나는 그와 대화를 하면서 뭔가 바라는 것이 있었다. 이 길이 옳다. 네가 가는 그 길이 너의 길이다. 뭐 이런 식의 말을 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인생은 언제나 불확실하다. 확실함이란 없다. 완벽하게 안전한 길도 없다. 그런 불확실한 인생에서 뭔가 확실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어쩌면 실수일 수도 있다. 불확실한 인생이라면 차라리 그까짓(?) 불확실함을 즐기며 더불어 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만의 개똥철학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IP *.23.188.173

프로필 이미지
루미
2011.06.27 10:45:04 *.23.188.173
조금 수정했는데 시간 내에 마쳤으니 괜찮은 거겠지요????
프로필 이미지
2011.06.27 12:26:23 *.111.51.110
진짜 꿈과의 대화를 담았구나.
루미다운 맛깔스러운 글이 탄생했네~
융 할아버지의 대사는 정말 대단하다.
상담 공부를 좀 한거 아녀? 
나도 꿈을 잘 기억해서 스스로 해석하고 싶은데,
왜이리 기억이 안나는지...
프로필 이미지
루미
2011.06.28 12:30:13 *.23.188.173
자꾸자꾸 기억해 내려 했더니 기억이 나더라구요
기억력이 좋아지는 걸까요????
알고보면 기억력 증진 프로그램인거야????
프로필 이미지
강훈
2011.06.27 14:25:35 *.219.84.74
너의 통큰 개똥철학이 부럽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그런 것이다.
나에게 없는 것을 루미는 가지고 있구나. 부러움!!!!!!!!!!!!!!!!!

그런데 융의 책을 읽을 때도 들었던 고민인데.
모든 꿈은 무의식의 표현인것이냐?
아니면 무의식이 표현되도록 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것이냐?
루미야 그런 꿈 잘꾸는 학원한번 차려서 선생님 해 보는 것은?

프로필 이미지
루미
2011.06.28 12:32:29 *.23.188.173
의식적으로 하는 활동에 자극을 받아서 무의식이 발현되는거 아닌가요?
난 그리 생각했는데... 무의식도 의식의 활동을 알고 있기에 무언가 뱉어내는 거라고
그것들 중에서 자신이 인지하고 의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뭐... 그런식?
결국 사람이란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마련이 아닌가 싶어서...
니 또 내맘대로 해석하고 있는 건가요????
프로필 이미지
유재경
2011.06.27 15:21:51 *.35.19.58
나도 그런 생각을 했지.
사실 꿈분석은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차피 확실한 것은 없어.
그렇다면 그냥, 가는거지 뭐~~~
루미 화이팅!!

참, 하은이가 일요일에 나한테 전화했던데 아무 말 안하더구나. ㅋ
프로필 이미지
루미
2011.06.28 12:34:05 *.23.188.173
아이들의 적응력이란 정말 무섭더라구요
작은 손으로 저의 폰을 휙휙 넘기며......
토킹 톰과 아기고릴라 둥둥 동영상을 찾아내는 그녀를 보면
거의 경의로워지곤 합니다.
물론 실수도 있지요... 저번주 일요일과 같은ㅋㅋㅋㅋㅋ
프로필 이미지
미나
2011.06.27 16:50:41 *.142.255.23
ㅋㅋㅋ.. 융 할아버지와의 대화 왠지 정겹다...

나도 요즘 꿈을 좀 꿨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꿈이라도 꾸면 뭔가 좀 보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지금은 그냥 암흑 속을 마냥 걸어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빛이 나올때까지 묵묵히. 앞으로앞으로.

언니의 개똥철학에 박수를 보냅니다!!!!ㅋ
프로필 이미지
루미
2011.06.28 12:37:56 *.23.188.173
나도 따지고 본다면 암흑속이라는 느낌이네
무엇을 해야할지 나는 제대로 생각도 나지 않고
첫 책이라고 말은 하지만 형식도 주제도 내용도 아무것도 잡히질 않아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 할배를 찾아가서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근데.... 이 분도 역시 별 말씀은 안해 주실듯? 싸부가토.......
그래서 둘이 통했던게야..... 암... 암..........
그래도 웃자 미나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어도 울어도 하루다~ 오늘도 내일도 걸을 거라면 기양 웃고보자
프로필 이미지
2011.06.28 16:13:02 *.124.233.1
내가 생각하는 무의식은
의식 빼고 나머지 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편협하고 좁은
인식의 틀로는 감히 감당하기 힘든 거겠지?
그래서 그 세계는 '꿈'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지.

루미 글을 읽으면서
나랑 비슷한 '과' 라는 생각이 든다.
음.. 이게 뭔 뜻이냐면
융이 이야기 한 것처럼
무의식과 의식을 가르는 칸막이가 투명하다는 이야기.
투명보다는 아주 흐릿한 반투명이 더 맞겠다.

그 세계는 선과 악이 없는 태고의 자연스러운 원형들이 가득한 곳일 꺼야.
마치 별이 빛나는 우주의 밤이 열려 있는 것처럼.
'원령공주'에 나오는 '시시가미 숲' 처럼 말이야.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12 [Sasha] 컬럼13. 인류의 만다라 (Neti-Neti Circle) file [20] [2] 사샤 2011.06.27 3336
2511 13. 내 안의 쉴 곳을 찾아 [15] 미선 2011.06.27 2071
» 나의 꿈 [10] 루미 2011.06.27 2219
2509 [늑대13] 그리움 하나 file [20] 강훈 2011.06.27 1958
2508 [양갱] 나의 중학생 시절 _ 무의식과의 대화 file [10] 양경수 2011.06.26 3612
2507 나비No.13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 이순신 [8] 유재경 2011.06.26 3471
2506 13. 진짜 페르소나를 찾아서. [5] 미나 2011.06.26 2228
2505 라뽀(rapport) 57 - 오롯이 한길을 걷는다는 것 [1] 書元 2011.06.26 1905
2504 단상(斷想) 70 - 섬과 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file 書元 2011.06.26 2213
2503 [평범한 영웅 013] 눈송이의 무게 [16] 김경인 2011.06.26 3992
2502 머슬 메모리 (Muscle Memory) 1-2 홍스 2011.06.24 3268
2501 푸루잔 스토리_7 홍스 2011.06.24 2037
2500 [이미지 사냥] 하루살이의 죽음 file [1] 한정화 2011.06.24 2555
2499 [Sasha] 컬럼12. 카오스를 품은 춤추는 별 file [16] 사샤 2011.06.20 3087
2498 [늑대12] 제 멋대로 사는 인생 [19] 강훈 2011.06.20 1996
2497 오빠와 나 [6] 루미 2011.06.20 2085
2496 12. 때론 웃음에도 몰입이 필요하다. [10] 미선 2011.06.20 1835
2495 12. 그림그리기에 대한 욕망 [12] 미나 2011.06.20 1993
2494 [양갱] 젊은 배기태의 열정 file [12] 양경수 2011.06.19 2977
2493 나비No.12 - 아버지의 소망 [10] 유재경 2011.06.19 3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