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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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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6일 07시 05분 등록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문장을 다시 읽는다. 프루스트의 그 거대한 오페라 전체를 열어젖히는 활시위가 되는 그 문장. 삶을 본떠 만들어졌지만 삶이 나아가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구성된 그 작품의 열쇠가 되는 문장. 보통이라면 문을 닫기 위해 돌리는, 즉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문이 열리는 열쇠처럼...... <오랜 기간 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문장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나는 계속 읽어나간다. 자기는 눕자마자 잠들곤 했었다고 프루스트는 쓴다. 잠자면서 그는 잠들기 전 그가 읽던 것에 따라 자기 자신이, 그 작품이 그때 말하던 것, 예를 들어 어떤 성당 혹은 하나의 사중주가 된다고 상상한다.

잠은 시간을 정지시킨다.

그것이 연속적인 지속이든 계속되는 변모이든 우리가 경험하는 바로서의 잠은, 반수면 상태나 잠들기 직전의 깨어 있는 상태로써 우리가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저 딜레마를 결코 우리가 이겨낼 수 있게끔 허락하지는 않는다. 건널 수 없는 강 레테는 저기 여전히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잠과 깨어 있음 둘 중 어는 것이 더 우위에 놓이느지 결정하기란 여전히 불가능하다.
이제 꿈꾸는 자가 아니라 깨어 있는 자 쪽으로....

[의연한 잠]

몽테뉴가 수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위대한 인물들이 매우 중요한 일을 앞둔 날 밤, 잠을 자면서 보여준 침착함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그들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온전한 평정을 유지하는 것>을 칭송해 마지않는다. 알렉산더 대체는 다리우스와의 운명의 일전을 앞두고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아침에 그를 깨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음날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게르만의 오톤 대제와 카토 같은 사람들의 경우 밤새도록 코 고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잘 잤다. 폼페이우스와의 해전을 앞둔 아우구스투스와 실라와의 전투를 앞둔 마리우스 역사 너무나 깊게 잠들어서 잠을 깨고 나서야 전자는 자신의 승리를 후자는 자신의 패배를 전해 들었다.
고대 역사에서 근대의 소설로 넘어오면,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알베르 드 모르세르가 이 같은 대담성을 보여준다. 로마의 한 강도 두목에게 붙잡혀, 다음날 아침 여섯시까지 몸값으로 4천 피아스터가 지불되지 않으면 처형당할 위기에 놓인 그는 자신의 운명이 그토록 불확실한데도 불구하고 깊이 잠든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한밤중에 그의 석방을 알리려고 깨우자 벌컥 화를 내면서 두목에게 말한다. <앞으로는 나폴레옹 대제의 유명한 말을 명심하시오. '나쁜 소식이 아니면 나를 깨우지 말라.'>두목은 어이가 없어 할말을 잃었으며 돈을 가져온 친구는 알베르가 그처럼 훌륭하게 고국의 명예를 지켜낸 것에 매우 기뻐한다.

[일상적인 삶]중에서 - 장 그르니에.

한 때 나는 잠보다 산책이 더 쉼을 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온갖 가능성으로 꽉 찬 새로운 세계을 열어젖히는
시위를 당기기 위해 나는 정지와 정체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지칠 때면 졸리곤 하는 나를 본다.

다행이다. 아직은 잠이 시간을 멈추는 것 같아서. 시간을 나몰래 먹어버리는 무심한 괴물이라 여길정도로 잠이 많았던 적도 있다. 스멀스멀 졸음이 떠도는 이마에 내일의 기운찬 빛이 걸리게 하는 잠. 새벽 바람에 일어나 앉아 있다가도 이내 물밀듯이 차오르는 느슨함. 쿵쾅이던 심장소리 자는 동안에는 듣지 못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IP *.229.2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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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5.06.16 13:30:16 *.248.117.5
오랜만에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선이님의 글을 만나서 무척 반갑습니다. ㅋㅋ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 엄두가 안나서리..
성경 잠언서에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잘 자는 거 그거 축복입니다. 살아있음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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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일
2005.06.16 16:04:38 *.127.9.191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 읽은 사람 보면 존경스러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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