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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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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6일 20시 41분 등록
바야흐로 소유 중심의 산업자본주의에서 접속 중심의 문화자본주의로 이동하면서 놀이와 여가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주5일 근무제의 도입과 생산공정의 자동화로 인해 노동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그 공백은 자연스럽게 놀이와 여가시간이 메우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사유하는 인간)란 말보다 호이징가가 말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란 본능적인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그리 반갑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아직도 노는 게 좋지만 무작정 놀 수도 없고, 노는 것을 무능력자, 부적격자로 보는 현실 때문이다. 한편 ‘논다’는 것이 곧 행복과 연결되지 않는 사회이기도 하다. 막상 시간이 나도 무얼 하고 놀아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는 그 동안 일에 치중하느라 놀이의 영역을 충분히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노는 법’이 투박하고 미숙하다. 놀기 위해서는 녹록하지 않는 비용이 수반되는, 놀이의 상품화도 부담스럽다. 그러다 보니 TV 시청 등 수동적 여가에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한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논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늘 하게 되는 우리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놀이처럼 재미있을 수는 없을까?

우리는 노동이 인간 생활의 가장 근본적인 활동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원시시대부터 산업시대 이전까지는 노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인간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중세시대 그리스도교 달력을 보면 1년의 절반이 공휴일, 축일, 안식일 명목으로 노는 날이었다고 한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일이 놀이를 포섭하게 되고, 놀이는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일상생활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산업혁명의 핵심은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이다. 이전까지 생산은 ‘얼마나 많이 만들었느냐’는 개념이었으나, 산업혁명 이후에는 ‘주어진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만들었느냐’는 개념으로 바뀌면서 노동력의 착취와 일의 소외는 가속화된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민주주의의 확대와 근자의 디지털 혁명은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일과 놀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다시 원점에서 일과 놀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놀이란 무엇인가? 네덜란드의 역사가 호이징가는 ‘놀이는 일상생활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는 자유롭고 쾌활한 활동이며, 동시에 놀이를 즐기는 사람의 마음과 그 주위를 전적으로 사로잡는 활동이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모든 문화는 놀이에서 비롯되며, 사회생활은 한없는 게임이라고 말한다.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즉 놀이는 인간행동의 근본적인 범주에 속하며, 놀이를 통해서만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

놀이를 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놀이의 핵심은 ‘재미’다. 놀이는 ‘자발적’이다. 놀기 싫은데 억지로 놀라고 할 수 없다. 반면에 일은 즐거운 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은 의무감으로 덧씌워져 있는 따분함이다. 일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놀이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놀이는 사랑과 비슷하다. 놀이를 하는 동안에는 일상의 시간이 유보되고 초월한다.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성취’이지만, 놀이는 ‘행복’이다. 놀이는 행복의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실러는 ‘사람은 가장 인간다울 때 놀고, 사람은 놀 때 가장 인간답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우리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 속에서 놀이처럼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해법은 간단하다. 일이 재미있으면 된다.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일이건 놀이건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은 오래 가지도 못하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해서 가슴 뛰고 피가 끓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재미는 저절로 오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일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회의나 발표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면 정기적으로 메일을 보내고 변화관리를 주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일하는 파트너를 믿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기업은 새로운 전략, 방식을 만들어내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는 우선순위를 가지고 일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이를 알고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급하고 바쁜 일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파레토의 80대 20법칙처럼 실제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20이다. 20에 집중한다면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몰입은 즐거움을 동반한다.

넷째는 일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이나 ‘총각네 야채가게’의 사례를 보면 똑 같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생각을 바꾸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고방식과 실험으로 즐겁고 활력이 넘치는 직장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재미를 느끼고, 그 재미를 공유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다섯째는 일을 놀이와 대립적으로 보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놀이든, 일이든, 그 행위 속에 인간다움의 자랑스러운 특징인 자유로운 정신과 기쁨의 느낌이 어우러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놀이일 수 있다. 마크 포스터는 ‘일은 놀이의 개념으로 행해질 때 가장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고, 놀이는 일처럼 진지하게 할 때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같은 활동도 ‘고된 일’일 수도 있고 ‘즐거운 놀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은 행복과는 동떨어진 생존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놀이의 실마리는 노동환경에서 찾아야 한다. 행복의 단초는 노동 조건을 절대적으로 완화하고, 제대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가능하다. 기본적인 생존조건이 보장되어야 하며 문화의 상품화를 저지해야 한다. 사람들의 태도나 의식보다 삶의 조건이 선행되어야 할 과제다. 진정한 놀이가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나서 제대로 놀 것인가 놀지 못할 것인가는 개인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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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기원
2005.06.27 11:03:17 *.190.172.39
일같은 놀이 놀이같은 일 최고의 일입니다. 오병곤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감의 한마음을 보테어봅니다. 진정한 놀이가 발현될 수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부분에 동감의 박수를...()... 누구나 신명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때 그순간 그사람은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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