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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31일 14시 22분 등록
그리움이 봄이라면_8




그리움이 봄이라면


흔적을 남겨두었지.
꼬마들이 온통 어지럽히고 달아난 것처럼.
그 흔적을 그리 좋아하진 않아.
물론 꼬마들의 왁자지껄도 싫어.
그런데 이상하기도 해.
나는 남해의 작은 어촌에 들렀는데,
너 댓 명의 꼬마들이 시끄럽게 뛰노는 거야.

푸른 바다 위로,
듬성듬성 바위섬이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지.
주변머리만 파르라니 싹이 난 채로 말이야.
부두에는 작은 쾌속정 하나가 정박해 있고,
선장은 녀석을 가리키며 호객행위를 해.
“섬을 한 바퀴 돌아보겠소?”
“아니요. 아니요. 그냥 둘러 보려는 거에요.”

애써 시선을 피하며, 문득 등뒤를 보았어.
청명한 하늘 아래, 오름직한 동산이 하나 둘 셋.
와!!!!
깜짝이야.
꼬마들이 갑자기 지나쳐 갔어.
꼬마들이 동산으로, 술래잡기를 하려 달아나는 거야.
소용없었어.
녀석들의 흔적만이 남아있었지.
이 기분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봄이……
떠나려나봐.

대략은 이렇지.
일상, 매너리즘, 분주함, 쫓김.
날카로운 단어들을 신고 바람을 가르지.
― 지금 무엇하고 있니?
― 김빠지게 무슨 소리야? 인생은 레이스야. 혹독한 경주. 스피드가 제일. 멈추어선 안돼.
― 봄이 떠나려는데?
― ………… ?
당신도 그렇지? 어깨를 으쓱하며 모른 채 할거잖아.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라면, 더욱 슬픈 거라구.

이것 봐. 날씨가 뚱뚱하잖아.
머리는 달리고 있지만,
가슴은 비만에 걸렸잖아.
양반걸음으로 허세를 부려보렴.
왼 발 늘이고 오른 발 늘이듯, 좀 더 느리게.

이것 봐. 날씨가 푹신하잖아.
껴안고 싶지 않아?
안기지 말고,
힘껏 껴안아보렴
피동체가 주는 비만에, 행여 차갑게 안기는 것은 죄악.

그리움인가봐. 봄의 흔적은
모두 ‘그 사람’을 향한 그리움인가봐.
힘껏 안아 주어야 해.
허풍 섞인 싱거운 포옹이나, 멋쩍게 안기는 것은 죄악.
그렇게는……
그 사람 가슴 속에 자격이 없는 거야.

민영이와 선영이가 그리워.
그 사이에 오갔던 장미꽃도.
결국 시를 쓰나 봐. 봄과 그리움과 삶의 은유는

애들아.
종말로 그리움이 봄이라면,
그곳엔 항상 너희들이 있단다.

- 2008. 5. 30 -






#1
연인 사이로 보이는 청춘 남녀가 지하철역 개찰구를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눕니다.
“안녕.”
“그래, 들어가.”
“응. 갈게.”
계단으로 뛰어내려가는 여자아이를 보고 남자아이가 부릅니다.
“선영아!”
선영이는 작별인사를 해 놓고 왜 다시 부르느냐고 갸우뚱해합니다. 그리고 예의, 그 발랄한 웃음을 지으며 민영이에게 다가옵니다.
“자. 이거……”
민영이가 숨겨두었던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넵니다. 선영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하며 장미꽃을 받아 듭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계단으로 향합니다. 수줍어하는 선영이를 보며 민영이는 더욱 수줍어합니다. 더욱 행복해 하기도 합니다.
- 정호승 시인의 산문, <우리는 왜 시를 사랑하는가>에서 각색해 옴.

시는 은유입니다. 민영이에게 장미꽃은, “선영아. 나는 너를 사랑해” 라는 빨간 은유입니다. 선영이가 보여준 행복한 웃음도, “민영아. 나도 사랑해” 라는 수줍은 은유이겠지요.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삶은, 다 은유이자 시인 것 같습니다.

장미꽃 건네다.
선영이 웃음에, 민영이 웃음에.
신사동 지하철역 2번 개찰구,
덩달아 수줍은 듯 소곳이 웃으매.



#2
조그마한 부두가 보였습니다. 열 댓 가구가 모여 있고, 입구에는 낚시꾼들을 위한 가게 하나와 슈퍼마켓 하나, 그리고 부두 끝에는 작은 쾌속정 하나가 정박되어 있었습니다. 예뻐 보였습니다. 무작정 떠난 여행과도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물스물,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부둣가 한쪽에 차를 대고 바다를 보려 나왔습니다. 바다는 짙푸른 색이었습니다. 먼지 하나 없을 듯한 시원한 바닷바람이 따사로운 태양의 공격개시와 맞붙었습니다. 오후의 망토를 걸친 찬바람이 조금 우세였습니다. 그곳에는 백사장을 빼곤 다 있었습니다. 작은 절벽, 산, 동산, 바위섬, 바다, 수평선, 나룻배. 남해였거든요.

여기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의 아이들이 한 몫 합니다. 마을 꼬마들입니다. 깔깔대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합니다. 배 나온 아이, 까만 아이, 마른 아이, 유난히 작은 아이. 세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녀석도 있고, 고무신을 신은 녀석도 있습니다. 왁자지껄합니다.

이렇게 적어둡니다. “봄이 한창이다.”



#3
어제, 오늘, 너무 좋은 날에 가슴이 더 답답해집니다. 머리는 책에 몰입하면서도, 가슴은 창 밖을 보고 있습니다. 머리는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가슴은 양반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내 가슴은 뚱뚱하게 비만 걸린 오늘처럼, 아예 기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슴이 답답해진 날에는, 어떤 사람에게 내가 큰 의미가 되는, 바로 그 사람이 보고 싶어집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사람이, 내가 살고 있는 가슴 속에는 몇 명이나 있을까요?



봄의 끝자락.
그리움을 남기고 가려나 봅니다.
사랑과 안타까움과 추억과 사연과 마음과 모습에 대해서.
IP *.235.3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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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31 20:41:55 *.36.210.11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사람이 보고 싶어 집니다."

나두^^ 그래서 답답했나보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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