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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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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6일 17시 51분 등록
저는 나면서 부터 중학교1학년 까지는 단칸방살이를 했습니다. 그다음 고등학교까지 방이 두개있는 집에서
살았습니다.그런데 그 두개의 방이 그렇게 크지도 않고 붙어있는 것이고 중간에 문이 있어서
거의 한방처럼사용해서 마찬가지로 계속 단칸방 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 대구에서 서울로 가서 혼자 살게되었습니다.
대구에서 살때는 부모님이 계셨고 저를 포함하여 3남3녀로 8식구가 같이 살았으니까 참 옹색하게 살았지요.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과 배고품으로 얼룩진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꽤 괸찮은 고등
학교를 다녀서 인지 단칸방 살이를 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 이를 보고는 부모님을 몸씨 원망을 하면서
성장을 했습니다.

단칸방살이를 하면서 나쁘다거나 불편한 점이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만 지나놓고 보니
좋은 점도 꽤있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살아도 세상에 꼭 나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것입니다.
그 좋은 점을 자식 입장에서 챙겨볼가 합니다.그러기 전에 우리 부모님이 단칸방에 살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부부관계를 제대로 못하고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사셨으며 그런 와중에 8남매(중간에 2형제는
일찍 저세상에 갔음)를 만드셨는지 수수께끼입니다.
그 긴 세월동안 딱한번 저한테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 것을 어렀을 때 어느 새벽에 한번 
어렴픗이 그냥 자면서 느낀것이 있을 뿐입니다.저의 부모님은 사이에 자식들을 여자는 어머니와 가까이 
남자는 아버지와 가까이 누워서 잤고 남여의 사이는 한강줄기 처럼 큰 폭이 가로 놓여 있었지요. 

단칸방살이는 형제들간에 말이 없게 만듭니다.서로 눈만 뜨면 부닥치면서 사니 말을 안해도 
의사소통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원수같이 느껴져서 그런지 다크고 모두 출가해서
떨어져 살면서 어쩌다가 만날 때도 우리 형제들은 말이 없습니다.왠만한 것은 서로 알아서 하는 것이
몸에 배었고 서로 신경을 안쓰게 하는 것이 어릴적부터 훈련이 잘 된 것입니다.
안그러면 쥐어 박히니까요.커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어렸을 때 5살차이가 나는 형님한테
무척 두들겨 맞고 켰습니다.그러고 나니 내 밑에 동생들은 손을 댈 필요가 없었습니다.
원래 착해서 그랬나 하고 생각도 해보긴 합니다.
하여튼 남의 눈치를 봐가면서 사는 것이 몸에 밴것입니다.

그당시에 제가 참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집에서 공부를 잘 못합니다만
시험을 볼때는 헐 수 없이 하는데 그때는 이웃집에 개도 짓지 못해게 했습니다.
그러니 동생들이 울게 내버려 두질 않았지요.
지금도 어쩌다 만나서 옛날 얘기를 하면 동생들은 둘째 오빠때문에 제대로 울지 못하고 큰것이  억울하답니다.
저는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그칠 때 까지 죽어라고 패버렸지요.
나중에 일은 그다음이고 부모님한테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은 나중일이었습니다.

둘째로는 서로 경쟁의식을 느끼면서 사는 것입니다.특히나 먹는 것은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앗차하면 먹을 것을 제대로 챙길 수가 없었지요.특히 저녁에 어머니가 밥을 다하고 누룽지를 만들어서
가까이 있는 아이들 한테 나누어 주는데 한참 배고플 때 그것의 맛은 세상에 꿀맛도 그런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부모의 강요에 의한 경쟁의식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어머니가 저녁밥을 하는 동정을 살피다가는 누룽지가 만들 즈음에 누룽지 굵는 소리에
귀를 송곳처럼 새워놓았다가 제일 먼저 나타나면 어머니는 경쟁을 시키려는 듯이
조금은 많이 주는 것입니다.
그 고소한 맛때문에 지금도 누룽지를 즐기는데 그놈의 누룽지 맛때문에 출세를 못했다며
마누라는 타박을 줍니다.저는 마누라 앞에서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출세를 못해도 잘 누른 누룽지를
실컨 먹어 보았으면 합니다.
밥상에 놓여있는 반찬중에 중요한 것은 꼭 개인 몫이 있게마련입니다.
문제는 공동 반찬이지요.금방 없어지는 이 반찬을 얻어먹을 려면 재빨라야 했거든요.그러는 중에
느끼는 경쟁의식은 치열할 수 밖에요.

그다음에는 일정한 틀에 잡힌 생활리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때맞추어 자고 일어나지 않으면
단칸 방 살이가 성립이 안되니까요.이것은 타율에 의한 질서 적응능력까지 확대하여 발달하게
되는 것입니다.단칸방살이에서 혼자 일찍 자리에 눕는다거나 일찍 일어나는 것은 큰 사건에 해당합니다.
특히나 저녁에 식구들보다 먼저 자리에 눕는다는 것은 크게 아플 때가 아니면 용납이 안되었으니까요..
특별히 할일이 있다면야 일찍 일어나는 것이야 맘대로지요.
이것이 저의 잠을 얼마나깊이 들게 만드는 지 모릅니다.오랫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그것도 한창 성장할 때 그런 습관이 몸에 배면 나중에  잠을 잘 때는 그야말로 질머지고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이 들게 되더라구요.저의 여동생 하나는 지금이 50대인데도 줄곳 신문배달이다
우유배달이다 하면서 조금도 부담스러워하질 않고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저력이 바로 이런 단칸방생활의 덕이라고 봅니다.

넷째로는 외출형이라고 할가요. 밥만 먹고 나면 방에 빈둥대기가 싫으니까 그냥 나돌아 다니고
또 그런 일거리를 찾게 됩니다.집에서는 밥먹고 잠이나 자는 곳이지요.
또 가끔은 심심풀이로 형제들 끼리 싸우는 곳이지요.
그래서도 저는 한참 동안은 집에서 공부를 해본적이 없습니다.
학교에 일찍가서 아니면 학교에 남아서 다른 때는 집에 가까운 곳에 있는 도서관이나 나중에 생긴
독서실을 찾아 나선것입니다.저의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하는 공부가 맛이 좋더라구요.
집에서는 소설이나 보고 잘 안되는 공부는 도서관이나 학교에 남아서 하니까 저한테는 훨씬 더 잘됩디다.
그러다 보니 우리집 형제들은 집식구보다 각각 친구들이 훨씬 친근감을 느끼고 자주 어울리는
습성이 붙게 되었습니다.부모님은 이것이 맘에 안들어 하셨지만 막무가네였거든요.
아무래도 단칸방에 살은 것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볼수밖에요.

그다음은 잘 아풀수가 없다는 것입니다.혹 감기라도 걸리어서 대낮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다고 해봐야
천덕구러기 밖에 안되니까요.한쪽 귀퉁이에서 씩씩거리면서 앓아 누워있어봤자 연신 들락날락하는 식구들이 
크게 아프지도 않으면서 꾀병이라고 놀려대니 계속 아플수가 있습니까
차라리 않는니 말지요.그래서도 저의 남동생하나는 7살때인가 여름에 뇌염을 앓았는데
며칠만 아프다가 그냥 저세샹에 가버리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않느니 그냥 죽지 하는 말이 정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아프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마는 사람의 일이 희한한 것이 그런줄 알고 살면
그렇게 되더라구요. 저는 평생을 병원에서 조용히(?)앓아 누워 있는 것이 함부로 밝히지 못하는 소원이
되어있습니다.그것도 그럴 것이 저는 국민학교 3학년 소운동회때 왼쪽 허벅지 다리뼈를 뿌려뜨려서 단칸방에서 3달을 누워서 치료를 받고 1달은 지팡이 신세를 지고 그다음에는 그마저 던져 버리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형제들 보다 저의 이 소망은 절실할 수밖에요.
그 때 병원에서 편하게 입원을 하면서 보내었다면 이런 소원이 생길리가 없지요.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짚어보겠습니다.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형제들은 주위사람들이
구찮아 할 정도로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단칸방 생활은 늦잠을 잘래야 잘 수도 없고 크게 아프지도 않으면 그냥 누워 빈둥
빈둥댈 수가 없는 겁니다.
사실 이것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우리 마누라 왈 좀 불쌍하다나요.
세상에 뭘 그리 부산을 떨면서 사느냐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다 가고 가고나면 그만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그러면 뭐하려고 세상에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싫도록 자려고 이세상에 왔느냐하고 댓구를 하면 머슥해 합니다.
누가 맞는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결과로 저는 저 밑으로 3명의 여동생을 두고 있는데 모두 남자들이 감당못하는 생활역군입니다.
한 여동생은 두아들이 거의 다커서 대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데도 아들을 남자한테
다주어 버리고 이혼을 해버리다라구요.그리고는  한국에서 간호원 생활을 하다가 미국간호원 자격을 따더니
40대 후반인데도 미국에 혼자 살겠다고 가버리었습니다.
한녀석은 아예 미장원을 차려서 시원찮게 벌어오는 남자를 부끄럽게 하면서 살더라구요.

또 다른 여동생하나는 아까 잠간 언급한 우유배달 신문 배달을 하면서 무료한 인생을 달래면서 삽니다.
이동생의 억척스런 면중에 하나는 언젠가는 할 일이 없어 그냥 집에 있다가 좀이 쑤셨던 모양입니다.
동네에서 때맞춰서 찾아온 생선행상을 만납답니다.좀 바빠 보이는 이 장사꾼한테 여동생은
그냥 옆에서 도와주었답니다.도와주워도 성심 성의껏했는지 나중에 두둑한 사례를 하더라나요.

저는 이런 심성이 모두 단칸발 살이의 순기능이라고 봅니다.죽어라고 고생시킨 것이
이렇게 긍정적인 효과를 내었으니 세상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도 없지만 불리한 것도
없더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허기사 우리 부모님이 일부러 우리를 단칸방에서 살게 하거나 배고푸게 했을리야 만무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고 얼마나 부모님을 원망을 하면서 켰는지 모릅니다.저는 좀 화가 치밀때는
아버지 한테 자식새끼를 이렇게 많이 낳아놓고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 것이 어디있느냐고 하면서
속을 뒤집은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그래서 저는 아버지 산소에 가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늦게나마 우리 부모님이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라도 정상적으로 키워 주신것을
고맙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누군가 죽을 때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고해서
조금은 위안을 합니다.그렇게 하면서 시간이 지나가 버리니 저의 원망이 듣기 싫으셨는지
아버지는 일찌거니 돌아가버리셨고 어머니는 아직 계십니다만 몸이 아주 불편해 하시면서 힘들게
사시고 계십니다.그러면서 저는 불효막심한 자식이 되어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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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햇빛처럼
2009.01.07 07:30:47 *.220.176.217
이수형님..

1. 외출형이라고 하니 내향성인 제가 왜 그렇게 밖으로 돌아다녔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성격검사를 해 보면 외향성이 조금 많이 나오지요. 저는 그래서 성격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바뀔 수 있으면 그러한 환경이 만들어준 성격 또한 나의 일부분임을 알겠습니다.

2. 부지런까지는 아닐지라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 또한 단칸방 생활의 혜택이었군요.

이수님의 글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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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sabo anhä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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