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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1일 17시 51분 등록

제가 아내를 만난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각자 살아온 세월보다 서로를 알면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서로를 다 모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오늘은 아내에 대한 지금의 제 마음을 밝혀놓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제 아내에 대한 약간의 정보도 밝혀져야 하므로 부득이 가명으로 써야 하겠습니다. 제 아내는 아직 이곳을 방문한 적이 없는지라 그것이 아내에 대한 예의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렴풋이 제가 누구라는 걸 짐작할 만 분들이 몇 분 계시지만 그냥 모른 척 넘겨 주십시오. 이 글은 아내에게 편지로 전해질 것이고 직접 얘기하기 보다는 이런 형식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 2학년 봄 철입니다. 동향인지라 서로 안면 정도는 있었지만 인연으로 발전한 것이 그때부터입니다. 아내에 대한 첫 기억은 화사한 봄 나비입니다. 지금도 그 때의 첫 만남을 떠올려 보면 가슴 가득 부드러움이 차 오릅니다.

 

많은 젊은 연인들처럼 연애기간은 다툼과 헤어짐의 반복이었습니다. 하는 제 성격에 아내가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텐데도 우리는 용케 결혼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참 지지리도 못났고 나쁜 남자였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질 때가 많습니다.

 

아내도 이런 저런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한참 배울 나이에는 남동생들에 밀려 대학 문턱을 넘지 못했고, 처가가 제법 번듯하게 행세할 즈음에는 이미 결혼한 뒤였지요. 결혼 이후로는 연년생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 없이 바빴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딱히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직장 때문에 늘 집을 비우기 일쑤였고, 집에 있을 때는 간섭 많은 가장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걸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싶네요.

 

하여간 아내는 그 와중에도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이런 저런 배움의 끈을 놓지 않더군요. 그리고 그 미용기술로 지금껏 1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큰 아이 표현을 빌자면 봉사가 일상인 사람이 된 거지요. 아이들을 위해서 제과 제빵 기술도 배우고 하여간 헌신적인 아내 그리고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제가 심경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4년쯤 되었나 봅니다. 제 잘못이 가장 컸겠지만, 당시 가족간의 신뢰가 다 무너져 내린 상황에 처하여 몇 달을 고민과 번민 속에 지냈습니다. 그 시기가 지나면서 제 자신을 조금은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으로서의 나,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나 그리고 직장에서의 내 위치 등등. 많이 부족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조금씩 고쳐 나가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사람이 갑자기 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지금도 그 노력의 와중에 있습니다.

 

아내도 변했습니다. 결단을 내리기를 주저하는 저와 달리 아내는 일단 생각이 정해지면 실행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아내의 첫 번째 시도는 다소 뜻밖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다시 가겠다는 겁니다. (저나 아내는 둘 다 40대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해 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10년 넘게 해 온 미용, 그 전반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아내는 직업적성이 예술형이므로 그 적성과도 일치하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고등학교부터 시작하겠다는 결심이 보통은 아닙니다. 특성화 학교이긴 해도 고등학교임에는 틀림없어서 일반 교과목도 다시 배워야 했고, 생전 구경도 안 한 일본어가 그 학교의 제2외국어였습니다. 어쨌든 아내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리고 애초의 계획대로 올해 대학에 입학해서 계속 그 분야의 공부를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2년 동안 고딩과 동거했군요 ^^;

 

고등학교 2(성인 대상이라서 단축) 동안 저는 아내의 노력하는 모습에 많이, 아주 많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밤 늦도록 책을 끼고 공부하는 그 열정도 좋았고, 학교 생활 동안 자신의 장점을 살려 Study Group을 결성하고 교사들을 설득해서 추가로 강의를 듣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미용에 관한 한 Total Manager가 되어야겠다고 각종 자격증이란 자격증은 다 취득하더군요.

 

저는 아내의 외향형의 성격과 친화력을 믿습니다. 비록 늦게 출발했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자신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사실 또한 믿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무서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아내를 존경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이 사실을 잘 모르거나 혹은 믿지 않는 눈치입니다. 얕보거나 무시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제 핸드폰에는 아내의 전화번호를 Professor Sunny로 등록해 놓았습니다. 아내의 꿈은 최종적으로 여러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웃기는 발상이라고 남들이 비웃을지라도 저는 아내의 열정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내를 보며 제 자신을 많이 다그칩니다. 작년이나 올해나 별 변화가 없는 그저 그런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개인가정사로 글이 너무 길어졌나요? 사실 이틀 연속 술에 절어서 집에 들어간 터라 주말 동안 집에서 생각이 많았습니다. 언제까지 술을 핑계로 나태하게 살 것인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이 기회에 올 한 해 술과도 약간의 거리를 두겠다는 다짐을 애써 해보고자 합니다.

 

올 한해도 건강하시고, 제 아내의 꿈을 위해 여러분의 힘을 불어 넣어 주십시오.

IP *.246.14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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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9.01.11 21:13:21 *.36.210.237
***** 언젠가 만나게 될 Professor Sunny 님 축하드려요! *****

깜짝 놀라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제목도 글쓴이의 명명도 비장함(?)이 묻어나기에...
반전을 예상했지만 불혹의 중년 나이에 쉽지 않은 결단으로 아름다운 도전을 했고 일단락을 지었으니 새롭게 일취월장 쭉쭉 뻗어 나아갈 일만 남았네요.

술 마신 김에 취한 척 하고 아직도 설레임 가득함을 감추어 아내에게 수줍은 고백을 하기로 작정이라도 했는지요? 벌써 꼬박 두 해 동안의 뒷바라지를 잘 마무리하고 대학까지 진학시키는군요. 물론 그것도 본인의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하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더라도 만약에 지금의 님과 같은 든든한 지원군이 없다면 감히 꿈조차 꾸기 쉽지 않았으리란 걸 새삼 느끼겠지요. 그 마음을 알기에 불철주야 더욱 열심히 했을 테구요. 꿈도 크고 튼실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마음 속에서 늘 언제고 적당한 때가 되면 아이들의 장래와 고단한 남편의 어깨에 힘 도울 자기 적성과 계발에 어울리는 일을 찾아 해야 한다고 다짐했을 테지요. 무엇보다 그 동안 가정을 위해 애써온 남편을 대신해서 세상을 향해 무사처럼 늠름히 나아갈 태세를 굽히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아이들에게는 같이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보다 더 큰 가르침은 없었을 테고 결코 두 해 동안 쉽지는 않았을 테지만 남편에게도 절대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던 애를 쓰는 자체가 곧 가족 모두를 위한 길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간구하면서 말예요. 생활이 곧 기도가 되는 일상을 살았네요. 그대처럼 말은 하지 않았어도 언제고 남편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 힘겨워하지 않도록 손발로 뛰어 도우려고 모질게 작정을 했기에 개가를 올릴 수 있었을 거에요.

그 가족 모두에게 축하드려요. 그리고 시작할 발판을 만들어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남편'인 그대에게 진심으로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변.경.연 남자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요^^) 애써 시작하고서 중도에 그칠까봐 물가에 어린 아이 내어놓은 아빠처럼 잔소리도 했을 테지요? 대단해요. 그 가족 모두를 들여다보면 어쩌면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네요. 머지않아 그 가족 공동의 멋진 브랜드가 여기 서울까지 메아리칠 날 있을 것 같으네요. 미리 좋은 그룹 이름을 지어놓아야 할까요? GREAT SUNNY GROUP 어때요? 님들께서 지어가는 福(꿈)이 오래 아름답고 귀하게 번창하기를 빕니다. 멎져요~ Wow!

저는 서울의 써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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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09.01.11 21:35:59 *.129.207.121
훌륭한 부인이시구, 좋은 남편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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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1.12 07:46:54 *.220.176.90
진짜 나쁜 남편은 스스로를 나쁜 남편이라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고
진짜 좋은 남편은 스스로를 좋은 남편이라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아내를 뒤에서 응원할 수 있는 남편을 두신 아내분은 분명 행복하실 겁니다.
이런 아내를 둔 님은 이미 행복하시지요?


스스로를 "좋은" 남편감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좋은"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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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sabo anhänger
2010.10.11 16:47:01 *.218.126.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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