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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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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9일 02시 31분 등록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또 한번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주먹을 꽉 쥐었을 때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은 꽉 쥔 손가락 사이에 있는 비좁은 공간 뿐, 꽉 쥔 손을 펼쳤을 때 비로소 내 손위에 모든 공간이 들어왔다. 움켜쥘수록 나의 공간은 작아져 갔고, 놓을수록 나의 공간은 커져갔다.

 

 14~15세기 동안 스페인은 서유럽의 비기독교도들이 거주하면서 번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었다. 스페인의 상대적인 관용은 영토팽창과 제국의 성장이라는 수확을 가져왔다. 그러나 1478년 교황의 교서에 따라 스페인에 이단 심문소가 설치되면서 상대적인 관용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단심문소는 나라를 정화한다는 목적아래 비기독교도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처형했다. 1492년 페르난도와 이사벨은 유대교도 들에게 가톨릭교로 개종하거나 4개월안에 스페인을 떠나라는 칙령을 발표했다. 이러한 스페인의 불관용은 비기독교도들의 대거 탈출을 일으켰고, 그 결과 스페인의 국고는 텅 비어버렸다. ‘순수한 혈통’, ’정화활동이라는 스페인의 나의 것에 대한 움켜쥠은 세계 제패의 기회를 삼켜버리고 결국 스페인의 쇠퇴를 촉구했다.

 반면 작은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은 누구나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종교를 이유로 심문을 받거나 박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라고 창립 헌장에 명시하며 종교적 관용 정책을 펼쳤다. 네덜란드의 이러한 관용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달아난 유대교도들과 개신교도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고 결국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을 세계적인 무역, 산업, 금융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관용의 효과는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듯하다. 예전 회사의 교육 프로그램 중에 만났던 창조공학연구소의 길영로 소장은 SK그룹 경영기획실의 회장 전경련 활동보좌 및 정보담당과장을 지냈고 또한 SK그룹 경영기획실 인력개발/관리를 담당했다. 그와 SK그룹과의 인연은 조금 특별했다. 대학교 재학 당시 학생운동권 출신이었던 그는 소위 블랙리스트에 등록되어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특히 대기업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손을 내민 SK그룹의 고위급 임원(누구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의 관용으로 인해 그는 SK그룹 경영기획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SK그룹은 뛰어난 기획력과 리더십을 가진 인재와 함께 그의 절대 신뢰와 충성심까지 얻을 수 있게 되었다. SK그룹과 회장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건강이 너무 악화되어 더 이상 일을 하는 것이 어렵다 판단되었을 때 그는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SK를 떠났고 연구소와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SK그룹의 좋은 관계는 계속 되어 그의 연구소의 주요 업무는 SK그룹의 사원 교육이 되었다.

 기업이 직원채용과 관리에 있어서 관용을 베풀 때 그것은 직원의 충성심과 함께 창의력을 불러일으켜 진정한 Win-Win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듯 하다.

 

 관용은 국가를 확장시키고, 기업의 발전에도 기여를 했다. 그렇다면 개인의 관용은 무엇이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관용은 남의 잘못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거나 용서한다는 뜻이다. 개인에게 있어 관용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자기 스스로를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것에서 풀어주는 것이 개인의 관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것은 이것이 아니면 안돼!’ 하고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에 의해 정한 기준과 집착일 것이다.

 그렇구나개인의 관용은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바로 내려놓음이었다. 조심해야 할 것은 목표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좋은 예화가 어떠한 것이 있을까 찾다가 나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 ‘내려놓음의 좋은 예화로 쓰일만한 것이 있을까요? 혹시 생각나는 것 있으세요?”

 혹시 어머니 인생에서 내려놓으신 것이 있으세요?”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어머니께서 말문을 여셨다.

 내려놓았지.”

 어떤 것을 내려놓으셨어요?”

 남편도 내려놓고, 내 젊음도 내려놨지.”

 어머니,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아버님은 41세 때에 남미 칠레로 선교를 떠나셨는데 그때 상황과 여건상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떨어져 지내게 된 것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동안 어머니는 한국에서 아버님의 선교 후원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셨고 두 아들을 키우셨다. 20년 동안 아버지는 한국에 5번 정도 어렵게 방문하실 수 있으셨고, 어머니는 몇 해 전에 칠레에 들어가 6개월 정도를 머문 것이 전부였었다.

 

 어머니는 20년 전을 회상하시며 담담하게 말문을 여셨다.

 나도남편의 사랑을 받을 줄 알고, 아내로서 애교도 아는 사람이라. 그런데 떨어져 지내야 했잖아. 내 나이 35, 한창 젊을 때에 떨어져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는 거니, 내 젊음을 내려놓은 거지. 처음엔 쉽지가 않았어. 서운하고 속상하고 힘들었는기라. 하나님 앞에 울기도 많이 울었지. 그땐 전화통화하면서 싸우기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내가 다투고 힘들어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 내가 그냥 내려놓기로 했지.”

그럼 어머니가 내려놓음으로 해서 얻게 되신 게 있나요?”

내가 포기하고 내려놓았더니 그때부터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하는 기라.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하니까 둘의 관계도 더 좋아졌지. 내가 내려놓지 않았을 땐 불신과 다툼이 있었지만, 내가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사랑과 신뢰가 쌓이는기라. 그리고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두 아들들도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고, 어머니를 위할 줄 알면서 그렇게 잘 커줬지. 남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 집은 정말 화목했는기라.”

어머니, 근데 부부는 같은 이불을 써야 한다고, 같이 살며 살을 부딪치며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는 건데, 어머니과 아버님의 사랑은 어떤 건가요?”

정신적 사랑이지! 그것은 육체적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라. 육체적인 사랑은 쉽게 변할 수 있고 좋았다 나빴다 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사랑은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변하지 않고 요동치지도 않는 것이라. 그리고 우리는 함께 있지는 못했지만 전화로 대화를 많이 했지. 대화도 사담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 선교사역 이야기가 거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고 깊이 이해하는 기라.”

!... 내려놓음으로 사랑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거네요. 인간의 에로스적 사랑보다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에 더 가까워 진거네요.”

그렇지! 진짜 사랑은 비울 때 있고, 진짜 행복도 비울 때 있는기라.”

 

마지막 말은 어머니의 삶에서 우러나온 살아있는 명언이었다.

진짜 사랑은 비울 때 있고, 진짜 행복도 비울 때 있다.” ? 장금수

 

2년 전 큰 아들이 결혼식을 올릴 때 아버님은 7년 만에 어렵게 고국 땅을 다시 밟으셨다. 그리고 6개월 동안 한국에 머무시면서 둘째 아들까지 결혼식을 치루고 다시 자신의 사명의 땅으로 돌아가셨다. 며느리인 내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시댁 식구는 부부간에, 형제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부족함 없이 사랑했다. 어머니와 아버님의 내려놓음은 자신들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크게 키운 것 같았다.

 

개인의 관용은 그 사람을 큰 사람으로 만들고 또 그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까지 선한 영향을 준다. 요즘 사회의 개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힘들어하고 세상이 만들어놓은 기준, 소위 좋은 학교, 좋은 직업,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배우자 등을 갖기 위해 집착하고 불안해한다. 그러한 집착은 상대방을 경쟁자로만 느끼게 하고 그것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을 볼 수 없게 만들어 시야가 좁은 사람으로 만들기 쉽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자신이 집착한 바를 얻게 되면 또 다른 것을 얻기 위해 새로운 집착을 시작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끝나지 않는 집착을 강하게 움켜쥐려 할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좁아지고, 마음이 좁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쉽게 불안해 한다.

큰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것을 먼저 할 일이다.

나의 집착을 버리는 순간 그 집착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했던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개인의 관용은 한 사람을 큰 사람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제 올해 가을이면 어머니는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가 계신 칠레로 떠나시게 된다. 이제 남은 세월 두 분은 남미를 함께 다니시며 말씀을 전하고 그 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둘만의 여행을 쭈욱 하실 것이다.

IP *.14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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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07:14:12 *.8.27.5

'내려놓음'... 평생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스프링처럼 돌아와 자신 옆에 붙어 있는 집착을 발견하게 되나까요.

시어머님의 얘기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드네요. 그 내려놓음이야 말로 '뼛속 깊이 느껴지는 추위를 견뎌낸 매화의 향기'가 아닐런지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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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17:24:06 *.149.106.27
매번 댓글을 달아주시는 성실함이 존경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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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10:31:05 *.255.182.40
세상에...어떻게 그 긴 세월을... 정말 뭐라 말이 안나오네요...
정말 이 곳의 이야기들은 너무도 다양하고 깊어서 자꾸만 빠져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더 깊고, 아름다운 시간들 이어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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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17:24:53 *.149.106.27
수고하셨습니다 ^^ 네. 저도 앞으로 더 큰 배움과 성장이 있기를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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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영
2009.03.09 15:38:31 *.124.157.231
미성님의 글을 보며 어머님의 내려놓음심을 대할 때
뭔가 가슴이 찡함이 느껴집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관용의 모습이 또 있을까!
정말 선한 받아들임은 아름다운 감동을 주고 삶에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함께 해서 기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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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17:25:51 *.149.106.27
네 저도 가볍게 시작된 대화가 이렇게 깊은 인터뷰가 될 줄은  몰랐답니다.
저희 어머니와 아버님의 모습이 참 아름답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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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22:46:03 *.145.58.201
어머님의 내려놓음..
제게 찌릿한 감동을 주시네요
글이 좋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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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0 09:46:32 *.149.106.27
감사합니다. 세희님의 칭찬이 저에게 힘을 주네요.
배움은 세희님의 마음속에 있는거죠 ^^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래요.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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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희
2009.03.12 14:56:22 *.89.181.122
펄펄뛰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아울러 두 분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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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6 11:37:32 *.43.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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