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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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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8일 08시 30분 등록



가정의 달, 5월. 책상에 세워진 달력만 봐도 눈이 돌아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석가탄신일, 부부의 날, 결혼식에 돌잔치, 팔순잔치까지 대박이다. 날마다 봉투봉투 열렸다. 아이들은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었지만 그래도 빨간 날이라 기대만발, 게다가 학교는 재량휴업일이라고 내리 쉰다. 휴교도 휴교지만 급식이 쉬는 날이니 밥 챙기는 일이 는다. 그 틈새시장을 놓칠 리가 없다. 새로 생긴 치킨집, 피자집은 왜 그리 많은지, 현관 문 앞에 붙은 전단지가 장난이 아니다. 중국집도 돼지 잡은 날이라고 문자를 보낸다.


아이들이 해 달라는, 아니 사 달라는 종류가 하도 많다보니 오히려 남편과 나는 한편이 되어서 아이들을 설득하기 바쁘다. 이건 꼭 필요하진 안잖아, 저건 비슷한 거 있잖아, 그건 아직 안 해도 돼, 요건 요래서 안 돼, 고건 고래서 안 돼, 조건 조래서 안 돼…. 설득 당하는 아이들도 눈치가 빤하다. 그러니 부모도 눈치껏 골라가며 들어줘야 한다. 내가 사는 이유를 들먹이며 부모라는 책임감에 갈등하는 시간들이다. 진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다가도 우리 부모님은 여섯을 어찌 키웠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친정 엄마가 비행기 타고 여행을 떠나셨다. 어버이날 즈음이니 자식들이 선물한 효도 여행이면 좋으련만 동네 계모임에서 함께 가셨다.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부터 자주 다니던 분들이라 혼자된 뒤로도 부담이 없으신 모양이다. 물론 나만의 이기적인 생각이다. 아이들 챙기기 버겁다는 핑계로 친정과 시가에 소홀한 지가 결혼 연차 만큼이다. 아이들 어릴 땐 어리다고, 커서는 컸다고 못 챙겼더니 그것도 버릇이 되었나보다. 늘 엄마는 뒷전인 나쁜 딸, 그러고도 큰소리 뻥뻥 친 시간들이 이제야 부끄럽고 창피하다. 아이들이 뭘 보고 배웠을까.


충남 홍성에서 나고 자란 해방둥이 울 엄마.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고서 서울로 올라와 딸 다섯을 내리 낳고, 마흔이 되어서야 그토록 원하던 아들을 얻었다. 맏이인 나와 막내인 남동생의 나이차는 열네 살이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만삭인 엄마를 대신한 아빠가 학교에서 선생님과 고등학교 진학 상담을 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해 겨울에 태어난 남동생은 내가 결혼할 때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 전, 엄마가 오매불망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을 만나기 전, 엄마는 다섯째 딸을 낳고 그만 돌아누웠다고 한다. 그 여동생은 나와 10살터울이다.


근데 그 예쁜 녀석이 아프다. 본인은 아픈 줄도 모르고 아프다. 그때, 아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만난 작은 생명 앞에서 그만 돌아누운 엄마를 못내 그리워해서일까? 언젠가부터 엄마 곁에서 꼼짝 않고 붙어 지낸다. 전교회장을 내리 지내면서 요란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왜 그랬을까? 갑작스런 사고일까? 아니, 누구도 뭐라 단정할 수 없지만 정신적인 상처가 너무도 컸던 게 아닐까? 10년도 더 지났는데 여전히 나이를 먹지 않은 듯 그냥 그때에 머물고 있다. 이미 때 지난 엄마의 사랑을 찾아서 말이다. 물론 이 모든 건 나만의 생각이다.


제멋대로인 나만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나는 엄마를 오래도록 미워하고 원망했다.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힘들게 낳고 키워주신 사랑과 헌신을 당연한 듯이 여기고 말도 안 되는 투정을 하며 불평과 불만만 늘어놓았다. 내가 엄마가 된 이후 줄곧 그랬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어버이날을 맞으니 혼자되신 엄마에게 새삼스레 죄송한 마음만 가득하다. 그 녀석이 그리 된 게 마냥 엄마 탓이라 여겼던 철없음과 미련함을 깊이 반성한다.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을 담아서 오늘은 바다 건너 멀리 계실 엄마에게 마음의 인사를 전한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엄마, 사랑해요.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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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10.111.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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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5.09 01:09:29 *.186.58.4
기다려지는 칼럼이 있다.
어? 올라올 때가 됐는데... 요즘 바쁜가? 하긴.. 이번 주가 성수기지...
왜지? 무슨 매력이 있어서... 땡기게 하는 거지?  염탐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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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0.05.13 12:09:20 *.210.111.178
이 칼럼.. 나도 기다려요!
그리고 성수기..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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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5.10 23:44:32 *.166.98.75
나의 근원-엄마, 이라는 말이 왠지 찡합니다. 
왠지 어디선가 아빠도 손짓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늘 토양위에서 자양분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의 그림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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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0.05.13 12:10:57 *.210.111.178
그죠? 이 그림 좋쵸?
선생님의 선물이라 더 좋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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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1 00:33:28 *.49.213.129
누나 글은 참 잘 읽혀요.
누나, 이 주제로 흐름을 탄 거 같아요.
축하축하! ^_^

누나 글 읽으니, 마음이 우네요.
나이 서른다섯 먹고서야 부모님을 생각하게 된 저는 참 못난 아들이에요.
아버지는 내년이면 칠순이고, 어머니도 몇 년 후면 칠순인데...
제가 뭐 하나 드린게 없네요.
20대를 후회한 적 별로 없었는데 부모님을 생각하니 후회가 커져요.
지금부터라도 잘하자. 잘하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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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0.05.13 12:13:31 *.210.111.178
뭔 축하를 이리도 빨리?
그나저나 그대의 책이 대박 나길..
갑자기 노트북 생각이 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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