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게 만나는 덴마크 영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작품성이나 문화적 다양성 모두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영화.

인도에서 고아원을 경영하는 덴마크인 야콥은 사회사업에는 헌신적이지만 사업수완은 없어 그가 경영하는 고아원은 경영난에 부딪힌다. 그러던 어느 날, 덴마크 굴지의 회사로부터 이상한 초대장이 날라온다. 덴마크로 직접 와서 사장을 만나 인도에서의 프로젝트를 설명하라는. 인도를 떠나야한다는 사실이 그닥 내키지는 않았지만, 달리 자금조달이 어려웠던 야콥은 제안을 받아들여 덴마크로 날아간다.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일을 만나게 되는데..

그를 초대한 이는 요르겐. 파산 직전의 회사를 세계 초유의 회사로 길러낸 탁월한 경영자이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 야콥의 인도 프로젝트에는 그닥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딸 안나의 결혼식에 야콥을 초대한다. 요르겐이 제안하는 기부금 액수가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한만큼 거절하기 어려워 마지못해 찾아간 결혼식. 거기서 그는 20여년전에 헤어진 옛 애인을 만나게 되고, 결혼식의 주인공 안나가 다름아닌 자신의 딸임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 날, 충격 속에 빠진 야콥에게 요르겐은 더 충격스런 제안을 한다. 야콥과 안나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테니 맡아달라는 제안이 그것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야콥이 덴마크에 살아야 한다는 것.

도대체 왜..?
다름아니라 이제 그의 나이 겨우 48세인 요르겐은 가족에게 숨기고 있었지만 몇 달의 시한부 삶을 남겨놓고 있었다. 의사에게 가족에게는 "애프터 웨딩"에 말하겠다고 하고, 비밀로 해달라고 한 것..

"아빠가 그런 줄 알았으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거에요." 아버지의 상태를 알게 된 안나의 절규이다.

"이 정도 나이가 되니, 다른 사람들에게 10분의 시간도 내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전 딱 10분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여러분, 가슴 속 그 사람들과 함께 하십시오. 인생은 진정 그게 전부입니다.." 죽기 전 마지막 생일 파티에서 요르겐이 남긴 말이다..

요르겐은 죽기 전, 안나에게 친부인 야콥을 찾아주고 그리고 이번엔 반대로 야콥에게 자신의 어린 두 아들을 부탁한다. 아직 눈을 감기에는 젋은 나이에, 그토록 어린 아들들을 누군가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고픈 아버지의 심정이 마음을 아프게 파도드는 영화..

북유럽 영화지만, 지난 번 헝가리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이해하지 못할, 공감되지 않는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다양한 문화의 신화 속에서 인간의 원형은 공통성을 지니고 있음을 일생 연구해온 신화의 아버지 캠벨의 말처럼, 역시 여지껏 경험해본 헐리우드 영화들과는 어딘가 다르지만 인간의 깊은 그 무언가는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북유럽 영화를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때로 책 한 권이, 영화 한 편이 한 사람의 삶에 잔잔한 울림을 전하며 변화의 계기가 된다.
때로 책 한 권이, 영화 한 편이 많은 사람들의 삶에 공명을 일으키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커다란 파도처럼 몰려오는 헐리우드 대작들 사이에 잔잔한 호숫가 물결같은 다른 문화권 영화들을 접할 때마다 반가움이 인다. 우리 또한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와 정신 세계, 그래서 결국 우리만의 혼을 아주 오랜 기간 이어오는 민족아닌가. 그렇게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우리 문화가 더욱 깊고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다시금 일었다면, 영화 한 편에 너무 큰 감동을 받은 것일까..

끝으로 야콥은 이제 제대로 된 학교를 세우고 있는 인도에 잠시 돌아가 어릴 때부터 자신이 키웠던 인도 고아 소년 프라모드에게 자신과 함께 덴마크로 가지 않겠냐고 한다. 하지만 8살짜리 어린 프라모드는 자신은 친구들과 함께 인도에 있겠다고 한다. 인도, 나아가 아시아의 자존심을 지켜준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장면이었다..

잔잔한 호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듯이, 이 세상에도 다양한 문화가 영원히 공존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만드는 아주, 아주 좋은 북유럽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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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영웅여정의 패턴을 알려주는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북리뷰: http://blog.daum.net/alysa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