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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1일 10시 27분 등록

                                                          어린 수경 收耕


                                                                                                                                                           박노해



     어린 수경이 출가해 절에 들어갔을 때
     급하게 쌀을 씻어 밥을 짓고 있는데
     큰스님이 지나가다 수챗구멍에 떨어진
     쌀 몇 톨과 콩나물 대가리를 다 주워오게 하였다



     그리곤 수경이 보는 앞에서 그걸 다 잡수셨다
     어린 수경의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휘청거려 무릎을 꿇었다
     그 후 사흘 동안 스님은 말씀 한마디 없다가
     이 녀석 당장 내쫓아라!
     이 쌀 한 톨이 부처의 현신이라고 하는 것,
     이것을 인식 못 하고 온 놈이라면
     저런 마음가짐은 싹수가 없다
     그 다음부턴 수경에게 일도 안 시키고 
     그냥 나가라는 거였다



     일주일 뒤 수경은 큰스님 방 앞에 가 
     무릎을 꿇고 몇 시간을 앉아 있었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그림자가 묻힐 즈음
     큰스님께서 문을 열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쌀 한 알은 햇빛과 물과 바람과 흙과
     농부와 모든 우주 기운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은 무수한 생명을 죽여가면서
     피와 땀으로 여기까지 살아온 것인데
     너의 그 행동은 내용을 잘못 파악한 것 아니냐
     삶의 내용에 대한 파악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죄를 짓는 일이다
     그 마음으로 중노릇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수챗구멍에 버린 쌀 한 알이 바로 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버리는 자를
     누가 귀하게 대할 것이냐
     이제 가서 걸음마다 정진하거라


     알겠는가, 왜 수경이 삼십 년 선방을 돌다 나와 
     오체투지로 죽어가는 새만금과 4대강을 품고
     자벌레처럼 아스팔트를 기어가고 있는지
     왜 수경이 가난한 자를 하늘처럼 섬기면서 
     불의한 권력에 괴로운 저항을 계속하는지
     왜 그가 대접받는 중이 되지 않겠다고 
     자신의 승적마저 벗어 놓고 표표히 떠나가는지
     그리하여 다시 자벌레처럼 나직이 돌아올 것인지


     참담한 자신의 모습 앞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무릎을 꿇어보지 않은 자는 
     무릎 꿇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 전진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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