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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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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4일 12시 18분 등록



5월을 시작하는 월요일. 햇살만큼이나 유쾌한 영화 한편이다.

뉴욕에 살고 있는 멜로디는 주치의로부터 후두암 판정을 받는다.
남은 기간은 한 달 혹은 길어야 두 달.
한눈에도 뉴요커라고는 믿기지 않을 자태의 멜로디. 다급한 마음에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지만 역시나 그가 필요한건 그녀와 떨어져 지내면서 자신을 찾아봐야겠다는 답이다.

때맞춰? 4년간 일한 회사에서 한달간 봉급을 안겨주며 해고한다.
반지하 방으로 돌아온 그녀. 햇살들지 않는 반지하만큼이나 궁상스러운 인생을 살아온 것 같은 느낌에 욕조에서 칼을 그으려는 순간 뉴욕 최고층 아파트 임대광고가 눈에 띈다.

모든게 잘 맞아떨어진다. 임대 아파트는 장기로는 빌려줄 수 없고 오직 단기 임대만 가능하단다. 그들은 그녀가 시한부 인생인걸 어찌 알았는지 말이다.

첫날밤. 훵하디 훵하게 넓은 최고급 아파트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그녀. 참 인생은 적막하다..
그러나 기왕 고급 아파트까지 들어갔겠다, 어차피 죽을 목숨에 돈은 좀 있겠다. 둘째날부터 침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녀보지 못했던 모든 고급품들을 주문해들이기 시작한다. 단, 절대 쇼핑을 가지는 않는다. 아파트에서 한걸음도 꼼짝 않고 지내며 모든 걸 다 전화주문으로 해결한다.

둘째날이었나.. 입고 있던 남루한 옷을 벗어 창 밖으로 던지는 장면에 웬지 뭉클한다.
아마 그건 단순히 옷이 아닌 지금까지의 억압된 삶을 내던지는 의미였기에 그랬을 것 같다..

그렇게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체, 얇은 커튼으로 급조한 옷아닌 옷을 입고 흑인 택배기사를 맞이하게 된다. 평상시같으면 절대 건네지 않을 인사말에 유부남 흑인 기사 묘한 기분에 휩싸이고, 결국에는 며칠 뒤 꽃다발을 들고 재방문하기까지하며 관계가 시작된다.  

그러면서 간간히 꿈결에, 그녀 기억에 빨간 기타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무척이나 가난한 어린 시절. 그녀의 소망은 쇼윈도에 걸려있는 빨간 기타를 가져보는 일이었다.
당연히 사줄 수 없는 형편에 어린 마음에 어느 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빨간 기타를 들고 도망치다 걸려서 엄청나게 혼나고..

아파트 안에 꼼짝않고 지내며 불현듯 빨간 기타에 생각이 뻗쳐 드디어 전화로 빨간 기타까지 주문하게 된다. 그녀의 새로운 삶이 열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한편 입었던 옷을 다 던져버린 그녀여서일까. 작가 혹은 감독은 미국 영화에서도 극단적이라 할 수 있는 백인 여성과 흑인 유부남 남성의 불륜 그리고 피자 배달하는 여자 배달원과의 동성애를 한꺼번에 등장시킨다. 아마도 죽음 앞에 가장 극단적으로 갈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일반인이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무언가 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건, 어느 날 번갈아 방문하던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된다. 여주인공 멜로디. 흑인 유부남 그리고 여자 피자배달원. 결코 한 자리에 모일 필요가 없어 보이던 이 세사람이 마주쳐 한꺼번에 "논다".

그렇다. 흔히들 생각하는 외설적 장면이 아니라 세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게 낄낄거리며 "노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렇게 펼쳐지는 장면 앞에 어쩐지 마음이 안심되는건 나는 여전히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일까..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극단적인 관계 깊숙이 들어가보면, 결국 그 안에는 아직 순수함을 유지한 내면아이가 존재한다. 우린 꼭 성인이 된다고해서 어린아이들의 순순함을 저버린체, 사회적 금긋기를 해야만 하는걸까? 결국 그러한 덫에 걸려 불행한 것은 우리 스스로일텐데 말이다..

유럽의 자아성장 영화들과 비교할 때, 헐리우드식의 무겁지 않음 혹은 경쾌함이 스며든 장면이지만 그 나름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울려나오는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후 이야기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피자 배달 연인이 며칠 뒤 결혼해야 한다고 통보하고, 택배 기사는 아내가 임신했다고 알려오고. 급기야는 카드 주문이 막혀버린다. 드디어 돈이 바닥이 나고 부동산 업체는 집을 비우라 난리를 친다. 한 달이 지난게다.

그런데, 멜로디는 여전히 살.아.있.다!
어쩐 일일까? 그뿐 아니다. 후두암으로 인해 갈라지던 목소리도 오히려 정상인듯 들린다.
뉴욕 팬트하우스에 처박힌 이래 처음으로 집밖으로 나와 병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기절할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후두암이 사라졌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묻는 멜로디에게, 의사들이 되려 "무슨 일을 한거냐고?" 되묻는다.

그에 대한 멜로디의 대답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어요"이다..

당연히 닥치는데로 소비의 욕망에 휩싸이는것이 해결책이 아님은 너무 자명하다.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억누름"이었을게다.

늘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 일생 하고 싶던 기타를 죽음 앞에서 처음 가져본 멜로디.
그녀는 두 달동안 죽음을 맞이할 집에 박혀서 왼종일 기타 연습만 한다.
혼자 배우고, 혼자 연습하는데 재능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게다.
아니, 어쩌면 재능을 넘어선 그녀의 열정이 재능화하였다고나 할까.

그래도 아직 살아있음이 기쁨보다는 황당함으로 다가온다.
기뻐만 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을 써버린 것.
한 달간의 환상적 꿈에서 깨어나 모든 걸 중고품에 헐값에 팔아치우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빨간 기타 하나를 메고 공원에서 연주를 하는데..

역시나 리얼리즘하고는 조금 거리가 먼 엔딩이지만 그래서 유쾌하다.
공원을 지나가던 작은 밴드에 스카웃되어 그녀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 클럽의 기타리스트가 되니 말이다.

그러나 꼭 리얼리즘과 거리가 멀다고 단정지을 필요도 없을 듯 하다.
한달이었는지 두달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나름의 짧은 기간동안 연습하여 클럽의 기타리스트가 된것이 조금 오버라는 생각은 나의 한계일 뿐이고, 현실에선 그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할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억누름이란 암세포와 꿈과 열정이라는 빨간 기타.
내게 암같은 존재는 무엇이고, 나의 빨간 기타는 무엇일지 유쾌함 속에 다시금 돌아보았다.

바야흐로 햇살가득한 오월이다.
이번 달은 저 햇살만큼이나 반짝이는 꿈을 쫓아 한걸음 더 다가가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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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존재를 찾기위해 삶 전체를 던진 쿠바시인 아레나스 레이날드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비포 나잇폴스" 영화리뷰:
http://blog.daum.net/alysapark

 



IP *.9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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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5.11 22:27:19 *.34.224.87
우주 허당!
넌 도대체 어디서
이런 영화를 구하는 거니?
재밌겠다..같이 좀 보자....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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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3 08:04:51 *.98.16.15
우와~ 엑스라쥐! 넘 좋아!! ㅎㅎㅎ
엉. 나 커피 무쟈게 좋아해. 남들 술마실때도 난 커피마시자녀~ ㅋㅋㅋ

근데, 사실은 그닥 대단한 방법도 엄썽^^::::
그냥 첨에는 "유럽영화"라는 키워드로 시작을 했었어.
헐리우드식 액션 영화말고 먼가 쫌 색다른 영화를 보고 싶다.. 머 이런 생각이 들었거덩.
원래가 내 꿈이 시나리오 작가여서 옛날부터 영화는 무쟈게 좋아했는데 그동안은 한번도 영화에 지대로 빠져본 적이 없었거덩. 그렇게 시작하다보니 영화 역시 책처럼 꼬리를 물고 이 영화, 저 영화... 머 그렇게 되던데.. 진짜 영화광들은 유럽 감독들 계보부터 시작해서 장난아닌데, 난 거기까진 여력이 안되고, 지금은 주제에 따라 그때그때 끌리는거 그냥 봐. 보는거야 워낙 여러 경로들이 있고..

언제 시간되면 넌 무슨 영화 좋아하는지 야그해줘..^^ 주말 잘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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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7:46:22 *.30.254.21
커피, 무쟈게 좋아하네...
증말..ㅎㅎ
청량리 근처에 올 일 있으면 전화해
엑스라쥐로 사줄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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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09:56:05 *.98.16.15
지구허당아~ 고거이 내 영업비밀인디..
에이~! 너니까 인심썼당! 까페라떼 한잔 사주면 알켜줄껭~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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