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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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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6일 12시 53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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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느닷없이 와서는 달구를 데려 가겠다고 한다. 달구는 딸의 고양이고, 딸이 회사 근처에서 생활한 지난 1년간, 애완동물로서 이뻐한 적이 없으므로 그다지 이상할 것은 없는 상황이나.... 기분이 묘했다. 5년이나 같이 살면서 거의 공기처럼 익숙해졌던 것이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한 시간 반 정도 좁은 이동장 안에 갇혀 있을 생각을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안그래도 겁 많은 놈이 바짝 놀라서는 구성지게 울어댄다. 그 공포를 조금이라도 달래주려고 조수석 발밑에 두었던 이동장을 무릎에 올려놓고 손을 넣어 쓰담쓰담 해 준다. 불시에 튀어나올까봐 손이 들어갈 만큼만 열었는지라 손목이 결리고 발도 저려오는데도, “, 우리 애기. 조금만 참아소리가 절로 나온다. 평소에 잔정이 없는 내가 우리 애기를 찾으니 딸이 킥킥 웃는다.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반 내내 목이 쉴 정도로 울어 제끼던 놈은, 정작 딸의 아파트에서는 순식간에 적응을 끝냈다. 여기저기 영역탐사를 하며 다음날 새벽 오줌똥까지 정상적으로 배설한 것을 보니, 이사다니던 때보다도  빨리 적응한 게 분명하다. 그러다 굳이 내 머리맡에 와서 살포시 베개를 나눠 베고 누운 놈을 보니 가슴이 아려 온다. 안그래도 딸에게 달구를 데려가라고 말해 온 터였다. 나는 사료 주는 사람이지 키우는 것도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데면데면하여,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 놀아달라고 온 놈을 성의없이 발로 얼러주어도 좋아 할 때면 미안할 정도였는데.... 

 

실은 녀석에게 넘어갈 뻔한 적도 많았다. 컴퓨터 옆의 좁은 틈에 뚱뚱한 몸을 밀어 넣고 있는 놈을 보고는, “아아, 달구야. 사람이 그렇게 좋은 거냐?”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사람 훈김이 그렇게도 좋은 것이라는 것을 그래 내가 너에게서 배워야 하겠니? 하면서.... 엊그제는 엉덩이를 쑥 뺀 채로 얼굴만 내 발 위에 얹어 놓아 그 웃기는 포즈에 피식 웃으면서도 가슴이 뭉클했다. 무조건 믿고 따라주는 순정을 받은 기분. 이 맛에 애완동물 키우는 거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녀석의 털로부터 침대만은 지켜야 했기에 버릇될까봐 한 번도 안아주지 않았다. 놀아달라고 울어도 사료를 주었고, 그래도 울면 발로 걷어찬 적도 있었다.


이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녀석이 사라졌다. 아니 이 밤이 지나면 나는 가네가 되어 버렸다. 장식장 위에 앉아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시선이 웃겨서 달구야!” 부르니 꼬리를 들썩 한다. 그렇게 세 번을 달구야!” 불러 보았다.  때마다 녀석은 꼬리를 들썩여 대답해 주었다. 헤어지게 되어서야 나는 달구가 가족인 것을 알았다. 공기처럼 물처럼 당연하게 존재할 때는 그 애틋함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가슴에 사무쳤다. 동그랗고 선한 눈망울로 무언가를 애원하는 너를 내가 그토록 모른 척 했구나. 계절이 바뀌는 것도, 다 큰 자녀가 독립하는 것도, 이승의 불빛이 꺼지는 것도 어쩌면 이번 이별처럼 느닷없이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직은 아니지. 아직은 완전한 이별은 아니지. 내가 너를 좀 더 아껴줄 시간이 있을 거야.


잔뜩 센치해져서 딸의 집을 나오는데 다행히 날씨가 화창하여 쨍한 하늘 아래 노랗고 빨간 단풍이 선명하다. 나뭇잎들이 삭을대로 삭았는지 별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자꾸만 떨어진다. 말년의 박완서 선생님께서 쓰신 수필 한 대목이 생각난다. 떨어지는 것이 저토록 아름다운 것을 보니 돌아가는 일도 나쁜 일만은 아닐 꺼라는... 그런 내용. 투명한 햇살 아래 선명한 색깔을 자랑하는 단풍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진다. 떨어지기 전이 제일 아름답다면 나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언제고 세상과 불시에 헤어지게 되더라도 너무 가슴 아프지 않도록 촌음을 아껴 써야겠다. 단지 때를 모를 뿐 대지로 돌아가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면, 한 달을 두 달처럼 사는 수밖에 우리가 무슨 방법을 갖고 있단 말인가!





**  네이버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에서

조촐하지만 진솔하고 파워풀한 글쓰기/책쓰기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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