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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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지치고 어렵지만 예상외로 재미있는 순간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는 집안의 잡동사니들이 새로운 용도를 찾을 때입니다. 마치 한 조각이 비어있던 퍼즐이 있는데, 뜻밖에 옷장 속에 있던 안 쓰던 물건이 마지막 퍼즐이었던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전에는 거의 쓰이지 않던 물건들이, 이제는 아기와의 생활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신혼 때 경주 박물관에서 샀던 부채는 몇 년 동안 벽에 걸린 장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여름, 이 부채가 없었더라면 아기를 조용하고 시원하게 재울 수단이 없었을 것입니다. 집에 있던 밥주걱도 저희 집 밥솥이 3인용이라 전혀 쓸 일이 없었습니다. (숟가락으로 적당히 2인분의 밥을 덜고 나면 주걱까지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8개월을 넘어가면서 집에 있는 생활용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딱 좋은 장난감이 되었습니다. 1년에 몇 번 쓸까 말까 했던 핸드 블랜더, 가장 큰 냄비, 전기 포트, 선물 받았던 수세미, 수납용 바구니, 무드등, 장식용 오르골 등등 그저 장식품, 잡동사니였던 것이 이제는 일과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유용한 물건으로 변모했습니다.
잡동사니들은 그저 쓸모없는 물건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마다 꼭 맞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존재로 변신했습니다. 쌓아두기만 했던 물건들이 이제는 나와 아기에게 필수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그 속에서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발견들은 육아 과정에서 느끼는 작지만 놀라운 행복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주는 기쁨을 더욱 크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조금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게요. 아이를 낳고 난 후, 이전에 사회생활에서 사용했던 강점과는 다른 종류의 강점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업무 능력, 조직력, 리더십 같은 사회적 강점들이 주로 필요했지만, 육아를 하면서는 다정함, 섬세함, 긍정성 같은 새로운 강점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보내는 미세한 신호를 알아차리거나, 아이와 잘 놀아주고 소통하는 능력은 이전에는 쓸 일이 없던 강점이었죠.
특히, 아이가 울 때 어떤 이유로 우는지 알아차리거나, 조그마한 웃음 속에서 큰 행복을 느끼는 과정에서, 저는 아이와의 소통을 통해 점점 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과 아이의 감정에 반응하는 능력을 키워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줬고, 그동안 간과했던 제 안의 부드러움과 내면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육아는 단순히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관계 속에서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제 자신을 보며, 새로운 강점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보통 육아의 고된 부분에 대한 토로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육아는 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이전에 사용했던 사회적 강점들과는 다른 종류의 강점들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잡동사니들이 새로운 용도를 찾아가듯, 사회생활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던 다정함과 섬세함, 사랑을 표현하는 능력 같은 강점들도 발휘하게 되었죠. 이러한 변화는 육아의 기쁨과 함께, 제 자신을 전부 사용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아이와 함께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힘들기만 했던 육아 경험도 나의 또 다른 부분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니 이것이 육아의 쓸모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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