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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7일 08시 48분 등록

기억, 꿈, 행복

 

나를 사로잡았던 이야기, 나를 절망하게 했던 경험, 나로 하여금 달뜨게 만든 사건, 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비롯되어 나를 규정해버린 '나', 나로부터 시작되어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만드는 생각,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

이 글은 나에게 말하는 독백이다. 독백의 형식을 빌려오지 않으면 내면과 외면을 오가며 말하여질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민낯으로 대하기 힘들어 진다. 그러나 중간 중간 묘사를 위해 독백을 버리는 것이 좋을 때는 버렸다. 객관화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싶을 때는 그리 했다. 이 쉽지 않은 글을, 쉬 쓰여져서는 안될 글을, 온전한 손가락으로 써내려 갔다면 나아가지 않는 진도에 화병이 날 수도 있는 것을 다행히도 부러진 왼손 중지가 도왔다.

 

외적 사건

 

1. 추락

2005년 1월, 신불산 금강폭 빙벽, 히말라야 원정훈련.

떨어지던 때가 기억나진 않아. 전날 꿈에서 보았던 장소에 내가 있었고 꿈에서 떨어지던 것과 꼭 같이 데자부처럼 쓰러져 있었어. 빙벽을 찍은 피켈이 힘없이 뒤로 제껴져 버린 것은 오르지 마라는 산의 암시였는데 눈치채지 못하고 기어이 오르다 떨어졌어. 후에 지켜본 사람들이 7m를 자유낙하 했다더군. 히말라야를 밟아보려던 꿈은 떨어질 때 바스라진 왼쪽 발목과 함께 무너졌지. 나는 절망했고 다시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무책임한 말 속에 내 영혼까지 기어들어 갔어. 걸어 다니는 모든 사람을 증오했고 목발이 주는 부자유가 내 모습의 전부인 것처럼 미워했어. 오늘같이 흐린 날, 지끈하고 기분 나쁜 뻐근함을 주는 왼쪽 발목은 아직도 내 기분과 느낌을 지배하곤 하는 거야. 참 거지같아. 아직도 그때 그 순간의 일이 나를 사로잡고 있으니.

 

2. 결혼

2006년 11월, 부산.

너를 만나고 10년에 접어드는 해, 우리는 같은 집에서 같이 살기로 약속했어. 너를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야. 내 인생에 빛나던 순간 중에 하나였지. 경이로운 두 아이까지 얻었으니 45억년 전, 생의 연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결혼은 커다란 우주의 운행에 참여한 거야. 그리고 나 같은 범부에게도 신이 준 선물이 하나 있다면 너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 그 둘도 없는 기회를 움켜 잡을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 아직도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라는 동물을 인간이게 한 그 공은 평생 감사하며 살더라도 갚지 못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나와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너도 그런 인간 개조의 복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것을 상기하고 우리, 퉁치자.

 

3. 용마루

2010년 3월~5월, 네팔 에베레스트, 원정대 4명.

지구의 용마루에 오른 일은 그 과정보다는 결과가 주는 파급력이 컸어. 사람들은 직장인 주제에 내가 그곳을 올랐다는 사실 하나로 세간의 뉴스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내심 그런 이목의 집중이 싫진 않았어. 더구나 부러진 발목에도 불구하고 오른 것이었으니 '도전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었지. 그러나 외적 성취만큼이나 밥과 꿈이라는 내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일이었어. 내적인 문제는 나중에 한번 더 얘기해야겠지. 어쨌든 용마루를 오른 이후 나를 규정하는 8할이 졸지에 '산재이'가 되어버렸어. 내 아이덴티티 중 하나가 되어버린 거야. 좋아. 나쁘지 않아. 이 외적 이야기로 내적 갈등과 내면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

 

4. 부재

2003년 8월, 서울.

그 해 여름은 잔인했다. 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 어머니와 같이 병원에 갔더랬다. 나를 진찰하던 의사는 나보다 어머니께서 더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는데 그 날 이후 11일만에 어머니는 급하게 세상을 떠났다. 25살 어린 나이는 그 벼락을 맞고 옳게 살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급성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병원에 계시는 동안, 형님의 와이셔츠를 걱정에 기어이 다림질을 하시러 가셨고, 간호사님에게 '선생님'자를 붙이지 않았다고 나에게 혼줄을 내셨다. 병원에 누워 전기세 내고 오라며 고지서를 주시는데 이렇게 온갖 걱정을 안고 사시는 게 어머니가 아팠던 이유라고 생각하고는 화를 많이 냈었다. 육교에서 구걸하던 사람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대신 자장면을 시켜 주시며 옆에서 같이 쪼그리고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5. canada

2003. 3월~6월 canada.

낯선 그러나 풍요로운 환경이 주는 특혜를 나는 마음껏 누렸다. 어릴 적 어머니가 불러도 도망치며 뛰어 노는데 몰입했던 그때와 같았다.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며 뻥치고 나는 캐나다를 접수했다. 없는 살림에 공부한답시고 가서 나는 살아있는 영어를 배워야 한다며 처음부터 배낭을 짊어지고 서부 캐나다를 돌아다닌다.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 그러나, 나는 다른 나라의 친구들을 사귀는 즐거움에 하루하루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기뻤다.  캐나다의 고산준봉을 마음껏 휘돌아 다닐 때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처음 접하는 '기분이 좋아지는 담배'는 내 안에 에피쿠로스가 있음을 알게 했고 기쁨으로 인도했다. 지금도 내가 ‘자유’라는 단어를 상상하면 돈 없이 돌아다니던 그때가 가끔 떠올리곤 한다.

처음 접하는 서양의 문화와 그네들의 사고방식은 어린 나에게 신선했다. 친절했고 여유가 있었고 배려할 줄 알았고 즐거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같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어쨌든 나는 거기서 원 없이 놀았고 원 없이 부딪혔다.

 

내적 사건

 

1. 나의 오지

낙동정맥은 강원도 태백에서 시작하고 부산 몰운대까지 이어지는 끊어지지 않는 산줄기지. 그때 내가 왜 낙동정맥을 떠올렸는지는 아직도 잘 몰라. 갑자기 떠올랐고 일순간 나를 사로잡았어. 그 능선 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이유 없이 나를 지배했지. 이후 내 모든 생활은 그 곳을 달리기 위한 체제로 일시에 전환되었어. 7명의 종주대를 이끄는 리더가 나의 모두 말해주던 때였어.

 

그러, 치기 어린 리더가 이끄는 큰 싸움은 항상 승리를 담보하지 않았어. 무거운 배낭과 힘든 능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초행길로부터 아직은 어린 대학생의 무리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지. 실제로 쉬어야 할 때, 자야 할 때, 먹어야 할 때를 결정해야 했으며 기분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컨디션이 좋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알아차려야 했어. 잘 안다 생각했던 각자의 사고방식과 생각은 지루하고 힘든 종주길에서는 돌부리처럼 부딪쳤어. 35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안에서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대원 서로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했지. 이 모든 것들이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변화했어. 그 변화의 지점을 관리한다는 것, 그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어. 그때 나는 경북북부의 오지가 아니라 관계의 오지를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 같아.

 

무엇보다 모든 결정을 결국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은 어깨를 짓누르는 40kg 배낭에 곱절을 더한 부담의 무게로 되돌아 왔어. 그리고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과 이웃하고 있음을 알기 시작했어. 이 사건은 훗날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순간마다 불쑥 불쑥 나타났어. 답을 주진 않았지만 작은 네비게이션은 되어 주었던 것 같아. 관계를 이해하는 것, 죽을 만큼 힘들었던 23살 여름, 낙동이 준 선물이야. 그때 난 참 행복했던 것 같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 그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위험하고 두렵지만 낙동 이후 그 들어섬을 깊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큰 소득이었어. 그치?

  

2. 첫 두려움

3, 사춘기의 한 가운데.

여느 때와 같이 선생님과 친구들은 나의 발랄한 모습을 보고 싶어 했고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을 기대 하며 교단으로 불러내었다. 나도 다른 때와 다름 없이 당당히 앞에 나가 섰으나 왠지 이건 다른 때와는 내 마음이 달랐다. 겁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보내는 시선에 주눅드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은 여전히 그네들을 휘어잡고 떠들며 춤추고 있지만 몸과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얼굴은 굳어 갔고 아이들의 표정도 굳어갔다. 이후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워졌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 동안 이 콤플렉스는 나를 지배했다. 나는 대중에 대한 겁 보다는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진 내 두려움의 크기를 인정할 수 없었다. 어린 마음이 감당하기 힘든 인지 부조화였다.

 

나의 내적 사건을 절대적기준으로 나눈다면 이 일은 수위에 오를 수 없을 성 싶다. 하지만, 조금 비틀어 그 나이에 맞는 상대적기준을 적용한다면 이 사건은 내 사춘기 내내 깊은 곳을 건드려가며 처음과 끝을 같이 하게 된다. 사춘기를 넘기는 시기를 나는 이 사건과 함께 했다.

 

3. 밥과 꿈

직장인이 자신의 꿈을 위해서 두 달여 간의 휴직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번의 설득을 거치고도 묵묵부답과 부정적 시그널이 돌아왔을 때 나는 직장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생각했다. 내 꿈에 대한 타인의 차가운 외면과 무관심은 내가 싸워야 할 적이었으나 출근하기 전 깊이 잠든 아내와 아이의 모습은 그 전의를 무장해제 시키는 마력이었다. 꿈을 위해 싸워야 했으나 그 싸움이 가족에 대한 소홀이 되는 일을 겪어야 했다. 산을 오르기 위해 회사의 허락을 얻는 일과 훈련을 하기 위해 가족에 대한 내 부재를 감당해 내는 일은 내 안의 또 다른 용마루를 오르는 일이었다. 직장을 다니고 꿈을 포기해야 하는가. 꿈을 이루고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이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하루에 열 두 번도 더 하며 내 입술은 지고 부르텄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 내가 꿈을 포기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사는 것이 근사하게 사는 것인가. 단순히 산으로 오르려 했던 일이 내 삶 전체를 조망하게 만들었다. 

 

더하여 히말라야에서 무수히 쓰러지는 생들을 목도하며 나에게 두려움이 엄습한다. 10년 전 죽은 이가 그 세월 동안 빙하와 같이 흘러 하필이면 내 앞에 떠올랐고 어제 같이 얘기하던 동료를 오늘 주검으로 보았다. 수천 년 전 빙하의 녹은 물이 내 앞을 흐르고 어제 잘 갔던 루트가 하루 만에 무너져 길이 바뀌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귀청을 때리는 눈사태는 나를 잡아먹으려는 퀴클롭스다. 이 무슨 겁나는 공포의 각본인가. 옳지 너 이제 왔구나. 혼 좀 나봐라. 하고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꼴이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조차 검고 흰 산들의 경외 속에 묻혔고 ‘나와 같은 미물들이 죽고 사는 것은 스스로에게 달린 것이 아니구나’를 처음 알았다. 난데 없이, 인생을 제대로 한번 놀아봐야겠다는 사유가 스친 건 그때다.

 

4. 내 그릇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내가 이보다 더 작아질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다녀왔으니 감사해야 하는 일인가.

그는 나에게 그릇이 작다고 했다. 그 말이 심장에 콕 박혀 빼버릴 수가 없다.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5. 부재

내 어릴 적에 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야겠지. 누군가 말했는데 내가 우유부단하고 어디서나 ‘예’ ‘예’하는 버릇은 너네 아버지로부터 사회성을 배우지 못해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고 흘렸지만 내 아이가 내 등을 보고 자란다고 자각한 그 순간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던 거야. 아이가 이야기하고 행동하고 버릇을 가지고 질문할 때 내 어릴 적 아버지와 나눈 이와 같은 순간들을 기억해보면 그런 기억이 없는 거야.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없는 거였어. 기준의 부재, 가치관의 부재, 양식의 부재, 곧 사람들을 대할 때나 행동을 할 때 내가 보고 배운 이렇다 할 준거가 없는 거야. 그래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거절하지도 못하고 승낙하지도 못하고 얼버무리고 그러는 것 같아.  

 

해석

외적 사건과 내적 사건은 대체로 일치하지 않는다. 내면과 외면이 따로 노는 것인가. 사건 위주의 흐름이 안과 밖을 갈라놓은 건 아닐까. 내면에서 나의 무엇이 터져 나올 때를 정확히 캐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나라는 인간과 어색한 사이를 이어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바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 자신을 스스로 알아내리라는 전의도 함께 가진다. 쉬지 않고 질문할 것이다.

 

그렇다. 쉬지 않는 꾸준함 나선과 같이 애둘러 가지만 결국에 첨단에 이르는 그 길을 그 가치를 나는 사랑한다. 세시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30일을 걸려 가는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 느려터지고 아둔하지만 그 안에서 얻어지는 무엇이 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을 전환하지 못하는 비겁함으로 보여질 수 있다. 맞다 그 점 또한 나를 말해 주는 가치가 되겠다.

 

행복과 불행

나는 숲의 냄새를 맡으며 숲에 퍼질러 있거나 그 숲을 오를 때 행복하다. 새로운 길을 갈 때 행복하다. 그 길은 물리적인 길일 수도 있고 생의 길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나인 때 행복하다. 내가 다른 이의 모습을 하거나 내 입으로 다른 사람의 말과 사유를 내뱉을 때가 아니라 나의 말로 나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행동할 때, 그때가 느껴진다. 그때 나는 행복하다. 산정에서 노을을 볼 때 나는 황홀하다. 내 아이와 내 아내가 나로 인해 웃을 때 행복하다. 그네들과 떠나거나 혼자 가거나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거나 그곳이 어디든 여행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좋은 글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조그만 감흥이라도 줄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치즈를 곁들인 포도주를 마실 때 행복하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맥주를 들고 마실 때 행복하다.

 

극단적이고 맹목적인 사람과 말을 섞을 때 나는 불행해 진다. 놀지 않는 아이들, 애어른 같은 말을 하고 철든 아이들 앞에서는 내 마음은 불행해진다. 회사의 일로 인해 책을 읽지 못할 때 화가 난다. 몰입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할 때 불행하다. 나의 밥벌이가 누군가에 의해 좌지우지 되거나 그 상황에서 내가 마지못해 일할 때 불행하다. 가슴 뛰지 못하는 날이 수일 동안 반복되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치거나 감기가 걸리거나 열이 나서 내 마음대로 내 육체를 움직이지 못하게 될 때 나는 불행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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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2 13:41:02 *.134.232.179

그 누구도 두 번 갈 수 없고, 다시 갈 수 없는  그 땅.

영원한 오지!  

그대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오른 땅들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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