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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8일 01시 14분 등록

장미 21. 엔나 (ENNA)를 지나며.....

 

  가까운 시간에 다시 시칠리아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섬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엔나라는 도시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 일정 때문에 서둘러 아그리젠토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엔나를 지나며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바로 이 엔나라는 곳에서 페르세포네가 친구들과 꽃을 따며 놀고 있다가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갔다는 것이다. 먼발치로 지나가며 돌아보는 엔나는 매력적이었다. 혼자 갔으면 분명 그곳에서 발을 멈추었을텐데... 우린 서른 명이 함께 가고 있었다. 그런데 더 묘한 것은 그 엔나를 지나 아그리젠토까지 가는 동안 차창으로 보이는 그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동안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느릿느릿 평화롭게 펼쳐진 들판이 부드럽게 보였다. 그리고 아주 작은 마을이 보였고 아기자기 작은 집들이 모여 있었는데...그곳은 바로 네크로폴리스 곧, 죽은 자들의 도시였던 것이다. 사람이 한세상 자기 몫의 생을 다 살고난 후엔 그렇게 아담한 곳에서 친한 친구들과 또 다른 삶을 산다면 참 좋겠다고 잠시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붉은 꽃 노란꽃 철따라 피고, 한때 푸르렀다 여우색깔로 변하는 밀밭이 펼쳐지고, 나는 오랜 친구와 함께 천천히 차를 몰고 이 길을 다시 지나가는 꿈을 하나 예약해둔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길은 흥미진진할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옛날에는 만물이 계절의 구분이 없는 세계에서 살았다고 한다. 하루는 성장의 여신이며 곡물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풀밭에서 꽃을 꺽고 있다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의 눈에 들게 되었다. 신들이 으례 도덕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처럼, 하데스도 바로 땅 밑에서 솟아올라 그녀를 신부로 삼아 어둠의 왕국으로 갔다.

 

땅 위에서는 데메테르가 딸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여신은 슬퍼하면서 곡물이 자라는 것을 돌보지 않았고, 초록색 들판은 누렇게 변하다가 결국 말라붙어 버렸다. 공기는 차가워졌고 낮은 짧아졌다. 이상한 변화에 놀란 사람들은 겨울이 다가오자 최대한 곡물을 모으려고 뛰어다녔다.

 

 

마침내 데메테르는 딸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게 되었고 곧 땅을 관장하는 신 제우스에게 가서 하데스에게 딸을 풀어주라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청했다. 올림푸스 산꼭대기에 살고 있는 제우스는 그녀의 아버지이자 모든 신들의 왕이었다. 그렇지만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고 서로 힘을 나누어 가진 신들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데스는 제우스의 형제였고 그와 비슷한 힘을 갖고 있었다. 또 하데스는 자신만의 길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우스가 중재에 나섰고 마침내 하데스는 왕비를 풀어주기로 했다.

 

 

모든 것이 해결되자 다시 영원한 여름을 기대했다. 하지만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어둡고 작은 지하세계의 정원사가 페르세포네가 지하에서 석류씨를 몇 개 먹었다고 증언했고 그녀가 땅으로 돌아올 계획은 모두 무산 되었다. 죽음의 세계에서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절대로 삶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페르세포네는 더 이상 불사의 몸이 아니었고 씨앗이 피어날 때를 기다리듯이 그녀의 몸 속에는 죽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바뀐 상황은 우여곡절 끝에 중재가 이루어져서 페르세포네는 1년 중 아홉 달은 지상의 어머니 곁에서 보내고 나머지 세달 간은 지하세계에서 보내는데 동의하였다. 그녀가 하데스와 함께 보내기 위해 지하로 내려간 동안 지상은 어둡고 추워진다. 곡물은 성장을 멈추었고 사람들은 이 이상하고 새로운 계절인 겨울을 지내기 위해 곡물을 모아 저장했다. 이 어둠의 계절의 끝이 오면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올라왔고 곡물은 다시 싹을 틔워 성장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묵상을 해 볼 수 있다. 모든 전환은 우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인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윌리엄 브리지스는 말한다. 그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건들의 연속인 변화는 상황적인 것이고, 반면 변화에 의해 동반되는 낯선 상황을 내면화하고 적응하는 것은 심리적인 것으로서 전환(Transition)이라고 정의했다. 이 트랜지션, 곧 전환은 세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제일 먼저 과거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즉 과거에 형성된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새삼스럽게 여행일지를 쓰며 페르세포네를 나의 여신으로 삼았던 지난날의 정체성을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다시 엔나로 찾아가서 그녀를 찾아 가  속깊은 얘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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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8 16:41:31 *.151.207.149
작년 루까가 저한텐 그랬어요. 좌쌤의 엔나.. 공감합니다.. 계속 쿵쿵쿵.. 거리시는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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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0 01:09:55 *.38.222.35

우산님.. 완전 공감. 저도 작년에 루까가 그랬어요. 언젠가. 빠른 시일이 되면 좋겠고. 루까에 가서 단 한달이라도 살아보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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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0 18:15:49 *.70.64.222

미나야, 게릴라 트래블에 이름 달아둬라. 신세대 꿈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 진단다. 어제 꾼꿈이 오늘은 현실로.....어어ㅋ~  이말 듣기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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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9 00:20:37 *.70.64.222

우산, 드디어 시내 나갔다 돌아오는 오는 길에 꾸벅꾸벅 졸다가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어요.

정신없이 졸아보는 것이 얼마만인지....비는 좀 맞았지만 ㅎㅎ, 즐거웠어요.

올핸, 우산과 비슷한 세사람의 뉴 페이스가 동행 했답니다. 사진 올라오면 소개시켜 줄게요.

힘내요~ 자올, .곧, 루까도 가고 엔나도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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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9 03:11:24 *.128.229.70

믿음은 어느 날  문득  한 줄기 샘처럼 솟아 나는 것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하나로  있으나

썩으면  수 백개의 낱알이 되리라  

찌질한 낱알 이라도 죽으면 풍성해 지리라

삶이 무엇인가 했더니 한 알의 통통한 밀알로 자라나는 것

죽음이 무엇인가 했더니 그 밀알이 땅에 묻히는 것

사람이 무엇인가 했더니  여러 번 수십번 혹은 수백번이라도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  

변화가 무엇인가 했더니 그렇게 죽었다 살고  살았다 죽는 것

너는  어제의 네가 아니리니

책과 삶에서 기쁨을  얻은 사람은  사흘이 지난 다음에는 그 옛날의 사람이 아니리니

좌샘은  이제 죽음의 책에 한걸음씩 접근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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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0 05:06:53 *.70.64.222

선생님,

잠이 오지 않아서 시오노 나나미의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끝냈어요.

15권짜리 로마인 이야기는 죽음 끝내고 읽으려고 하는데...대체물로 읽은 이 한권도 흥미진진 하군요.

기억에 남는 구절. 306쪽.

.

"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의 다섯가지이다.

지적 능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자기 제어 능력, 지속하려는 의지.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에궁, 날은 저물고.... 갈길은 멀고....

이렇게 항상 지지해주시는 선생님 아니시면....오늘까지 오지도 못했을거예요.

감사드려요.  이제부터는 죽음의 책에  두걸음씩  성큼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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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9 10:28:21 *.104.207.203

Enna .. 여인의 이름같기도 한  들판을 지나며 샘은 어떤 죽음과 만나고, 다시 가슴 뜨거워지는 전환을 시작하고 계셨을까요..

페르세포네 , 신의 총명을 마비시킨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 안에

석 달의 겨울이 잉태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오늘 내 안에서 죽을수 있는 용기가  내일, 다시 오는 '오늘'의 아름다움을  '당연한 희망'으로 기다리는 우리에게 주는 신의 위로일까요..

 

 커피 한 잔과 함께 맞은 아침의 생각거리 감사합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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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0 05:19:59 *.70.64.222

또 날밤을 샜다우.

그까이껏, 잠 안오면 안자면 되지.

카이사르가 생전에 적어놓은 글:

"누구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 박에는 보지 못한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카이사르의 관용은 너무나도 철저했다.

그는 종신 독재관으로 취임하자 자신의 호위대를 해산시켜 버리고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차림으로 로마 시내를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녔다. "신변의 안전을 걱정하면서 사는 것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변함없이 항상 지지해주는 그대에게도 무한 감사.

앞으로도 내가 고집부리느라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잘 살펴주기를....부탁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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