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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4일 12시 21분 등록

첫 걸음, 첫 마음

 

 

오늘은 특수학교 출근 첫날, 걱정하셨나요? 길치가 헤매지 않을까, 지각은 안하나 하구요. 잘 출근했어요. 엄마가 손으로 짜주신 분홍 목도리를 두르고 정장을 입었죠. 맞아요. 행사용 정장. 오늘 걸린 시간은 1시간 20분. 인천과 경기도 접경에 위치한 전철역에 내리니 대학교 통학버스들이 막 떠났더군요. 여긴 인천 택시와 경기도 택시가 따로 움직이네요. 부천택시를 타면 섭섭해 하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천원 할증요금이 붙고요. 접경을 넘어간대나요. 택시 잡기가 힘들어 동동댔어요. 이 근처 주민인 택시 아저씨는 뭣하러 5,6천원을 주고 택시를 타냐고, 버스 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아침에 서둔 이유는 1층 현관에 나가서 아이들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6대의 대형버스가 올 때 자기반 아이를 손잡아서 교실로 데리고 갑니다. 혼자서 교실로 찾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내리는 스쿨버스 호수를 손바닥에 적어서 들여다 보았어요. 6호, 3호, 2호.  커다란 관광버스가 왔어요. 보조선생님은 아이들 1학년 때 본 적이 있어 얼굴을 알고 계셨어요. 안심이 되었어요.그 중 한 아이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고개를 숙인채 몸을 말아 의자에 붙어 있으려 해서 올라가서 보조선생님이 데리고 내렸어요. 처음해보는 일이라 허둥거렸어요.  새벽에 스쿨버스에서 아이 받는 꿈을 꾸면서 일어났어요. 신경이 단단히 쓰였나 봅니다. 꿈 속의 나는 사랑스럽게 생긴, 귤색과 비취색 손마이크가 가득 든 사각의 초록색 상자에서 한 개 챙겨들고 막 출발하려 들썩이고 있었어요. 

 

어머님들과는 며칠 전에 통화를 다 했어요. 한 아이의 부모님은 엄마, 아빠 두 분이 모두 오늘 직접 오셔서 아이를 넣어 주고 보고 가셨어요. 당신 아이가 낯설 걸 염려해서 동행하신 거겠지요. 보고 나서 안심하셨기를 바래봅니다. 

 

어떤 아이들일까 궁금했어요. 걱정도 되었구요. 한 아이는 오늘 병원정기검진날이어서 못왔습니다. 여자아이 하나, 남자아이 넷입니다. 인수인계를 하는 이들이 여자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어요. 누굴까 궁금했어요. 만나고 나서부터 오전내내 그 아이 손을 놓치지 않고 쥐고 다녔습니다.보조선생님은 중학생들을 보다가 초등부에 내려오니 애기들이라고 했습니다. 특수학급에서 만나는 아이들보다는 확실히 중증입니다. 말로 대화가 되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어요. 모두 이야기를 듣기만 하거나 한두마디 소리로 의사소통을 했어요. 사랑스러운 아이들만 모았다고 몇 사람이 이야기를 합니다.  체간을 지지하는 특수휠체어를 타는 중도중복장애 학생이 한 명 있어서 다른 반 보다 인원수가 1명 적고 다른 아이들은 손이 덜 가는 아이들로 구성되었나 봐요.

 

10시에 입학식을 했어요. 전교생이 모두 행사를 가서 봤어요. 전교생은 유치부부터 고등부, 그리고 우리로 치면 전문대학 과정인 전공과까지 입니다. 전입교사 인사를 두 번이나 앞에서 나가서 했어요. 어찌나 떨리던지요. 앞을 쳐다보지 못했어요. 행사중 수시로 아이들이 손뼉을 치면서 풀쩍 뛰어오르고, 무대로 튀어나온 학생들을 데리러 교사가 따라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지루해했습니다. 마이크는 자주 삑사리가 났고, 웅웅거리는 소리는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식전에 음악 틀어줄 때는 표정이 밝았다가 몸을 비틀었어요. 이 긴 행사가 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긴 시간이 아이들의 온갖 문제행동을 유발하는 듯 했습니다. 나는 우리반 아이중에 누가 산만한 지, 누가  느린 지를 알게됩니다.    

 

급식실에서 처음으로 밥을 먹었어요. 초등부가 먹고 중등부 그 다음에 고등부가 먹습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 옆에서 3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울었습니다. 아이 어머니 한 분이 터울 많이 지는 동생을 업은 채 떠나질 못하고 있었어요. 큰 아이가 장애아이일 때 둘째를 거의 10살 터울로 가지는 이들을 많이 보았어요. 울부짖는 소리 같았어요. 저 아이는 여기가 무서운가보다. 왜 그럴까? 아니면 먹는 것, 음식 자체가 싫은 지도 모릅니다.  우리반은 학생 4명, 어른 2명이 식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었어요. 내가 그 아이를 보고 웃으면 저를 보고 웃는 줄 알아채고, 수줍게 웃습니다. 한 아이만 왼손, 모두 오른손잡이였어요. 삼치구이는 모두 좋아했고, 김치도 잘 먹었는데 딸기 안 먹는 아이가 둘이었어요. 누굴 선생님 앞에 앉히고, 누굴 어떻게 하고 이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지난 주에 여기에 거의 매일 나왔어요. 청소만 했습니다. 바닥에 몇 년 묵은 시트지가 있었어요. 드라이기를 쪼여서 떼어냈어요. 지난주는 이전 학교까지 왔다갔다 해야 해서 야근을 했어요.  여긴 교실 안에 세면기와 화장실이 있어요. 씻고, 양치하고, 화장실을 잘 사용하는게 우리 학생들한테는 공부니까, 필수시설이겠지요. 보조선생님은 냄새 나니까 여기를 쓰지 말자고 하는데 나는 쓸 생각입니다. 남자아이가 특수학교에는 많은데 서서 누는 소변기는 없고 양변기만 있으니 관리가 어려운 것 같네요. 교실 안의 것을 두고 청소 번거로와서 멀리로 애들을 보내고, 따라가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아이들이 교실에 있을 때 내가 써 봤는데요, 영 민망하더군요. 문이 접이식이거든요. 어른은 바깥에 가야할까봅니다.

 

교실에서 제일 재미난 건 좋아하는 식물을 잔뜩 사온거에요. 지난 학교 친목회에서 준 전별금으로 다 식물을 샀어요. 공간이 초록과 꽃으로 생기있어 집니다. 나는 식물에서 제일 큰 위로를 받습니다. 알로카시아는 아이들이 놀 때 머리 위에 널쩍한 잎을 드리워줄거고, 앨리시아는 개나리과라는데 사철 노랑 잔꽃을 피워내며 '나무?' '아파트' 라는 단단어로 컴퓨터 앞에 앉아 내게 뭔가 말을 하러 오는 아이들을 맞이할 거고, 동백, 페페, 꽃기린, 허브로즈는 2층 난간으로 직사해 들어오는 햇빛을 걸러줄겁니다. 알로카시아는 거의 내 키만합니다. 우리반의 올해 주제는 '날마다 웃는 교실' 입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웃는 일이 있길, 아니면 같은 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마음과 시선을 만들길 기대합니다. 첫 걸음 떼었어요.  '가지 않은 길'이 왠지 설레어,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피천득씨가 옮긴 버전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가지 않은  



노란 숲 속에 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을 택했습니다.
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을 걸으므로, 그 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은 남겨 두었습니다.
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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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8 11:42:46 *.11.178.163

콩두님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미사여구가 없어도 은은한 향이 풍기는 글입니다.

팍팍한 세상이야, 세상사 다 그렇지, 뭐, 하는 가라앉음을 지워주는 향입니다.

 이처럼 강한 글의 힘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글을 읽다보면 콩두님이란 사람이 궁금해집니다.

언젠가 콩두님과도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있겠지요 ^^

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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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0 10:18:43 *.129.0.63

마담님^^ 이제 서울시민되었으니 살롱9가 가까워졌습니다.

즐거이 읽어주시고, 이리 따뜻한 응원 남겨두심 감사드려요.

날이 많이 풀렸어요. 봄이 진짜로 오려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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