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서연
  • 조회 수 2103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3년 3월 11일 10시 53분 등록

 

 

 

"은퇴란 삼겹살의 소주라고 생각합니다."

 

'은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단 수업시간이었다. 강사는 한 사람씩 자신소개도 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은퇴에 대한 정의를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그 시간에 내가 한 말이다. 부연설명은 이렇다. 삼겹살에 소주한잔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돈과 함께 나눌 친구가 있는 것 내가 생각하는 은퇴의 프레임이다. 물론 나의 기준이다.  두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소주와 삼겹살은 몇 만원이면 족하다. 이 정도의 돈은 고민하지 않고 흔쾌히 자신이 계산할 수 있는 수준의 마음력과 경제력을 의미한다. 사람들과 밥을 나누는 행위는 친근함의 표시이다. 편하지 않은 사람과는 밥을 먹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불편한 자리는 피하게 된다. 괜히 잘 못 먹고 속 불편할 일을 만들기 싫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다. 백 번 맞는 말이란 생각이다.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은 세상살이에 어느 정도 이력이 났다는 말이고 젊은 이들을 보면 하고 싶은 말도 많아진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그렇게 살면 나중에 후회한다뭐 이런 종류의 말을 해주고 싶은 거겠지. 타인의 충고도 듣고 싶은 마음이 열려있을 때 내 안으로 들어온다. 듣는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는 허공에 대고 지르는 메아리만도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같은 말도 누군가에게 약이 되기도 하고 공해가 되기도 한다.   특히 어릴 때는 어른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듣지 못한다. 살면서 문득 그때 그 어른의 말을  들을 껄...그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한번쯤은 찾아온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살거나 너무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다. 공중파에 자주 등장하는 어느 어르신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은 절대로 물어오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본인이 답답하여 물어올 때 말을 해 줘야 귀 기울인다. 묻지도 않는데 붙잡아 놓고 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듣지 않는 다는 말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한 사람이 스승을 찾게 된다. 아무런 고민이 없는 사람은 곁에 스승이 있어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스승이 없어서가 아니라 찾지 않기 때문이리라.

 

스승을 구하는 일, 친구를 구하는 일.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아주는 것.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한 단면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친구를 만드는 일. 이것이야말로 돈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노후준비이다. 딱히 노후준비라고 명명할 일도 아니지만. 친구는 종신토록 필요한 존재이니 말이다.

 

은퇴 이후의 삶을 말할 때 돈이 전부인양 떠들어댄다. 특히 금융기관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은퇴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금융상품을 팔기 위함이다. 마치 은퇴라는 것이 금융상품을 구비하면, 그러니까 돈을 구비해놓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돈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 은퇴를 하지 않은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주변에서 은퇴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경우를 보면서 간접으로 알게 되는 일이다. 백인백색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은퇴 이후라고 해서 무엇이 그리 달라지겠는가. 그럼에도 특히 돈을 연금을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사회가 노후의 삶을 책임져줄 만큼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한 상태에서 고령화의 속도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빨리 진행되는 현실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일 게다.

 

그녀는 73세이다. 혼자 산다. 자녀가 없는 것은 아니다. 4남매이다. 딸 셋에 아들 하나이다. 모두 출가했다. 남편과 사별한지는 14년이 되었다. 그녀의 학력은 국민학교 졸이다. 8년 전까지는 그랬다. 자녀 넷을 모두 출가시키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정규과정에서 공부시기를 놓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이다. 중학교 2년 고등학교 2년 전문대2년 다시 편입 올해 여름이면 대학을 졸업한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알뜰하게 모아서 24평 집도 있다. 거동이 불편할 때 병원에서 간병인비용 한다며 현금도 모아두었다. 몇 해 전까지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했다. 지금은 아이들한테 생활비를 받아가며 살아간다. 그것도 몇 년 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잘 보이지 않는 눈에 컴퓨터로 들어야 하는 사이버강의까지 열성으로 공부를 한다. 누가 보아도 잘 살아가고 있는 노년이다. 특별하게 잘 키웠다고도 잘 못 키웠다고도 할 수 없을 만큼 아이들은 제 자리를 찾아서 살아가고 있다. 본인도 늦은 공부재미에 심심할 겨를은 없다. 몇 년 전에는 남자친구도 생겼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노년이라고 할 만하다. 몇 달 전부터 그녀에게 고민이 생겼다. 여름학기가 끝나면 졸업이다. 그 동안 배운 것을 활용할 만한 일자리를 얻고 싶기도 하고 공부를 더 하고 싶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무료한 시간을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아서이다. 둘 다 여의치는 않다. 전자는 고령의 나이라 일자리 구하기가 만만하지 않고 후자는 경제적인 부담이 크다. 대학원과정은 학비가 많이 비싸다. 아이들한테 생활비에 학비를 더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곁에 살던 아들의 해외 행이다. 회사에서 3년 예정으로 가족모두 떠났다. 함께 사는 아들이 아니었지만 주말이면 손주녀석들이 할머니와 동침을 해 주었었다. 그녀의 며느리는 무남독녀 외동이다. 며느리의 부모 그러니까 사돈 중에 안사돈이 없다. 돌아가신지 오래다. 아버지가 딸 하나를 기른 것이다. 그런 딸을 배필로 삼겠다고 아들이 데리고 왔다. 남편이 없는 그녀와 어머니가 없는 며느리 감. 아들의 결혼상대로 복잡할 수 밖에 없는 심정이다. 아들의 결혼이 탐탁치 않았지만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선택을 하라고 하는 것도 그녀로서는 용납되기 어려웠다. 스스로 자신을 추스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끝에 결혼을 시키고 아들은 처가살이를 시켰다. 곁에서 살고 있는 아들부부는 그녀에게 잘 하는 편이었다. 자신들의 선택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서 일 게다. 그렇게 살던 가족이었는데 그 아들이 가족과 장인을 모시고 해외로 나간 것이다. 아들가족의 부재와 그와 함께 떠난 바깥사돈에 대한 미움 그것은 며느리에 대한 미움으로 까지 번져가고 있었다. 스스로도 통제하기 힘든 상태가 지속되었다. 아들이 떠나고 난 후 그녀는 아들이 사는 곳으로 잠시 나가보았다. 한달 남짓한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그 미움은 날로 커져가고 있었다. 급기야는 스스로 통제하기 힘든 상태까지 갔었나 보다. 이성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미움은 몸에도 병을 만든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매일매일 무던히그렇게 기도를 하고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추스렸다고 했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좋아졌다고 한다. 완전히 괜챦지는 않으리라. 스스로를 치유하지 않으면 제일 힘든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녀는 현명하다. 나의 제안이다. 일을 구하는 것도 좋고 공부를 더 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하는 것은 어떠냐고 말이다. 미스토리를 쓰기를 권했다. 시도를 하다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해서 쓰다 말다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시 한번 시도를 하길 바란다. 자신의 치유를 위한 수행이라고 말해주었다.

 

살아생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다고 했다.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시간이 넉넉치 않다고도 했다. 곁에서 보는 사람은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거리가 좀 있는 관계에서는 그렇다. 내가 보기에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홀로 살아가는 삶에는 어려움이 많다. 남자친구가 곁에 있지만 그 분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매월 생활비를 자녀들로부터 받고 있지만 그것도 부담이 된다. 언제까지 받을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호기심이 많아서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체력도 이제는 만만하지 않다. 자녀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잘 살고 있느라고 부모에 대한 관심이 멀어진다. 그래서 외롭다. 아들이 잘 한다고 하지만 아들보다 며느리에 대한 미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무엇이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만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녀는 나의 엄마이다. 나는 은퇴란 삼겹살에 소주라고 쿨하게 말한다. 이제 내 나이는 50이다. 이 나이에 은퇴를 실감하지 못한다. 죽음을 체감하지 못한다. 나는 아직 남편이 있고 커가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내가 엄마의 삶을 이해한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녀의 신을 신고 내가 걸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나는 무어라고 말 할 수 없다. 곁에서 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인생이었다. 잘 헤쳐 나왔다고 박수를 보내는 일 말고 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말벗도 하고 밥벗도 하고 자주 찾아 뵈야 하지만 나도 바쁘다는 핑개로 소원하다. 인생은 어차피 외로운 것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고 말을 하지. 외로움은 곁에 사람이 있다고 해소되지 않는 근원적인 것이 아닐까?

살갑지 않는 딸의 변명이다. 노후의 삶에 대한 성찰은 분명 본인 몫이다.

 

 

 

IP *.217.210.84

프로필 이미지
2013.03.13 00:16:58 *.229.239.39

글을 읽다 보니, 혹시 어머니 이야기 겠지 라고 생각 했는데, 역쉬!!! 맞았군~

50대에 들어 섰는데, 아직도 은퇴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실감하지 못하고 지내는 원인이 뭘까?

서연이가 내린 결론에 대해서 왠지 공감이 간다. 노후의 삶에 대한 성찰은 분명 본인 몫이다.

이제 부터는 성찰을 통한 노후의 삶을 준비하는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프로필 이미지
2013.03.14 17:47:07 *.43.131.14

돈 전문가가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친구'를 말하니 더 잘 들어옵니다.

어머님은 참 잘 살고 계신듯합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를 끝장을 볼 때가 가까워왔으니 참 멋지십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자식들에게 돈을 받을건지'라니요?

73세인 어머니한테 자식들이 노후가 아니던가요? 

4자식에게 계속 받으시면 어떨까 저는 그리 생각했어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