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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일 09시 29분 등록

사도씨는 요며칠 가슴이 설렌다. 며칠뒤면 그가 좋아하는 김기덕 감독의 신작이 개봉되기 때문이다. '뫼비우스'라는 제목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 비극적인 가족의 연결을 암시하고 있다. 이번 영화도 감독 특유의 거침없음이 개봉 전부터 논란이 되었다. 불편하고도 노골적인 성묘사와 근친상간을 연상시키는 장면 등으로 제한상영가를 받았고, 몇 번의 편집과 재심사 끝에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은 영화다. 아마 영화를 개봉관수도 적을 뿐더러 그 또한 다른 상영영화들과의 교차상영으로 영화시간 맞추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사도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장에서 볼 계획이다.

 

사도씨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는 비교적 활발한 편이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가서도 주변 사람들과 원만히 지냈고 그 때부터 생겨난 갑작스런(또는 의도된) 리더십으로 사람들 속에 뭍히기 보다는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기도 했다.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미소짓는 편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회사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한 김과장으로 통한다. 그런 그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 본성을 잘 다루는 감독이기에 내용들과 묘사방법도 심히 불편하다. 사랑하는 여자가 몸을 파는 장면을 고통스럽게 훔쳐보는 삐뚫어진 남자를 그린다거나,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시체들에게서 귀중품이나 지갑 등을 얻어내 살아가는 밑바닥인생 등을 그리는 그이다. 사도씨의 정서와는 사뭇 달라 맞지 않는다.

 

사도씨는 그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즐기는 이유로 김감독이 남들이 쉽게 다루지 않는 주제의 영화를 거침없이, 그리고 노골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저예산독립영화 감독이기 때문에, 팬들의 지지와 응원 그리고 관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전 칼 융의 자서전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과연,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그의 영화를 찾는 것까?! 내 안의 그림자 또는 제2의 인격이 노골적이고 금시기되는 성묘사와 인간 밑바닥의 본성을 은연 중에 즐기는 것은 아닐까?' 그는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한 꼬마아이가 극장에 들어섰다. 표를 받는 아저씨는 꼬마가 보여주는 표를 보더니 약 5초간 꼬마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고는 아이를 영화관으로 들여보낸다. 아이는 앞에서 세번째 자리 정중앙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벌써 시작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 속 한 남자가 이사짐을 나르고 있다.. 2층에서 1층으로 짐을 옮기던 중 벽에 뾰쪽 튀어나온 못에 손등이 끌리며 깊은 상처를 낸다. 손등 피부가 심하게 쓸리고 찢어지며 바닥으로 피가 흐른다. 꽤 많은 피를 흘렸고, 그 피는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그 피는 어두운 한 곳으로 모이더니 지하실에 있던 저주받은 악마를 부활시킨다.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선 핏덩이 형체가 솓아오르고 조금씩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하지만, 해부를 해놓은 듯 핏빛 남자는 더이상 변화하지 못한다. 완벽하지 않다.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위해서는 더 많은 피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피는 인간으로부터 수혈되어야한다......
아이는 이 잔인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열살에 불과한 나이였다. 영화 사이사이 우주에서 눈 1개에 다른 8개 달린 괴물과 같이 고무로 만들어져 특수촬영된 괴물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잔인하고 에로틱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였다. 우주괴물이 지구를 파괴하는 정도의 내용을 기대하고 보았던 영화는 아이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주었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도 영화 속 장면들이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로 영화는 꼬마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선사했다. 꼬마는 중학교 시절부터 '나이트 메어'나 '13일의 금요일'과 같은 귀신(?!)나오는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다. 영화들은 스릴넘치고 나름의 재미를 주었지만, 영화 속 잔인한 설정은 여과없이 전달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미스터리 스릴러와 공포 호러를 꾸준히 즐겼다.

시간을 흘러 아이는 어느 덧 건강한 청년으로 자랐다.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갔다왔을 즈음. 청년된 아이는 몇 번의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청년이 골목길을 지나가는에 저 앞에 어떤 남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청년은 별 생각없이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앉아 있던 남자가 갑자기 청년의 발목을 잡았다. 청년이 그 남자를 보며 발버둥일 치고 빠져나가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청년은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뭉개지고 이빨이 부러져 있어 괴물처럼 생긴 남자는 청년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발버둥 치다가 잠에서 깼다. 그리고 악몽은 배경과 설정과 등장인물이 바뀌며 한동안 계속되었다. 어느 날은 눈 앞에서 누군가의 사지가 절단되는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기도 했다. 또 어느 때는 귀신에게 쫓기다가 절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청년은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청년은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호러물이 원인이라 생각하고 그런 류의 영화를 안보기로 결심했다.

 


사도씨는 이제 더이상 호러영화를 보지 않는다. 아니 되도록 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여전히 김기덕이나 박찬욱, 코엘형제의 영화 등 시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다소 잔혹한 영화들을 즐겨보는편이다. 사도씨는 그 이유에 대해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 다만, 그가 선과 악의 본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성향이 그의 감추어진 인격, 즉 그림자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자기 자신이 움직이는 정신병동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과 내면을 끊임없이 파고들어 자기 탐구를 했던 사람이었다. 사도씨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란 사람은 누구인지, 나의 내면에는 또 어떤 다른 모습이 있는지, 나의 그림자와 페르소나는 무엇인지......' 사도씨는 지금 당장 답할 수 없음을 안다. 그리도 그는 현재의 그의 페르소나를 벗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대신 사도씨는 꾸준한 기록과 회고를 통해 자기에 대해 탐구하고 싶어졌다. 그는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을 알고 싶어졌다.

 

이제 사도씨는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돌아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를 통해 자신의 그림자를, 제2의 인격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그저 그의 행보를 지켜볼 뿐이다.

 

 

p.s. 문득 떠올랐다. 사도씨의 그림자와 무의식 뿐 아니라, 김기덕의 무의식과 그림자도 같이 추적해봄이 어떨런지 말이다......

IP *.46.17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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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3 07:08:13 *.153.23.18

뫼비우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1인 추가요!

그리스인이야기에서 오이디푸스왕을 읽고 있는데 심의 2번 삭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ps의 예고편이 암시하는 김기덕 칼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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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4 09:36:27 *.46.178.46

^^ 

언젠가는 쓸 수 있겠지요. 김기덕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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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3 10:00:42 *.108.69.102

그런 관심과 천착이 나아가 '평전'이 되고,  우리네 인간에 대한 자료가 되겠지요.

작가가 강박관념 하나 없을 순 없다는 말도 있듯이

사도씨의 그림자에서 피어날 꽃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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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4 09:37:33 *.46.178.46

선배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불편함까지도 아우르며.... 

그렇게 물 흐르듯 흐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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