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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7일 10시 26분 등록

미래의 아이에게

 

 

오늘 진찰을 받으러 마리아병원에 갔단다. 4시 예약에 맞춰 가느라 동동거렸어. 처음 해보는 교사다면평가 자료 입력이 늦어서 나땜에 업무가 진행이 안된다는 윗분의 지청구를 듣고 풀이 죽어서 조퇴를 늦게 달았어. 1등부터 꼴등까지 교사의 줄을 세우는 작업이었어. 같은 일을 하는데 어떻게 업무의 질을 평가할 수 있을까? 화요일은 4교시 수업인데 방과후활동이 2시간 있거든. 혼자서 다른 데로 뛰어가 버리는 아이를 스쿨버스에 태워주고 어느 대학교수가 보낸 교원양성과정에 대한 설문지를 과자를 단 트리를 세운 젊은 샘네 교실에서 가방을 맨 채 서서 쓱쓱 해주고 달려서 버스정류장에 갔단다. 마침 8번 버스와 용산행 직통이 딱딱 맞춰와서 진료 예약 시간에 맞게 댈 수 있었어. 전철에서 곤히 졸았는데 아주 달았어.  

 

신설동 마리아병원 대기실에서 너의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여긴 사람 키만한 관엽식물들이 많고 소파와 벽, 가구가 편안한 색깔들로 되어 있어. 아라우카리아와 자마이카, 관음죽, 떡갈고무나무, 크로톤에게 눈을 주었어. 생명을 가지고 살아있는 존재들은 나에게 생기를 준다. 옮기기 전에 다닌 여성병원에도 식물들이 많았지. 난임을 해결하려는 이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테니 그것에 대한 배려인듯 해. 오늘은 어떻게 딱 맞게 왔냐며 그가 눈에 띄게 반가워했어. 약속마다 내가 늦었거든. 어제 야근을 하고 9시에 퇴근해서 잠깐 집에서 눈을 붙이고서 이렇게 와 주었다. 얼굴이 다른 날보다 붉어서 나는 그의 손을 일부러 만져보았어. 피곤한 날은 너무 가동해서 열이 난 기계처럼 그의 손이 허열로 더 뜨겁거든. 잠깐 쉬고 나왔다니 한 2~3시간 잤나봐.

 

일요일 밤에 나는 그의 앞에서 울었어. 지난 주에 두 번 이 병원에 왔었고, 그 일이 소화가 안되어 그러는 거였어. 그가 내게 선물한 커플룩 파카가 무겁고 크다고 투덜거리는 것에서 티격태격이 출발했어. 새우처럼 등을 보이며 꼬부린 채 누워서 뱃속에서 꺽꺽 거리는 나를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뒤에 앉아 있었지. 여자가 울 때 남자들이 매우 당황하는 것 같아. 부모님 밑에서 자랄 때도 혼자서 이불을 덮어쓰고 앓고 있으면 내 아버지는 약봉지와 간식봉지를 문 안으로 넣어주고 약 먹어라, 쉬어라하시곤 문을 닫으셨어. 엄마는 안 계시고. 그래서 나는 아플 때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빵모자를 찾아서 덮어쓰고 꼬부리고 누워 혼자서 견디지. 누군가에게 안기거나 손을 잡아달라고 요구를 못하더구나. 한 방에서 같이 사는 부부가 된 후로 이런 모습까지 공개가 되네. 한참 뒤에 그가 잠든 나를 깨웠어. 일요일이라 당직약국을 찾아서 감기약을 지어오느라 다른 구까지 전철을 타고 갔다왔댔어. ‘외롭게 하지 않을께요.’라고 했던 자신의 말을 그는 지키고 있는 거였어. 난임 병원 진료를 받는 아내의 옆에 함께 있어주기 위해서 온 그 마음이 느껴져 고맙고 푸근했어.

 

병원을 내 직장 근처 여성전문병원에서 여기 병원으로 옮기고 이번이 네 번째 진료야. 마리아병원으로 옮기라고 조언해준 건 가까이는 너의 외삼촌이지. 첫 아기를 이 병원 의사선생님의 도움으로 만날 수 있었거든. 외숙모는 분당 차병원을 다녔고 시험관도 한 번 했는데 유산을 두 번 하는 아픔을 겪은 이후라 그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대단했어. 또 엄마가 글쓰기 공부를 하는 모임에서 만난 여러 분들이 이 병원 이름을 거론했어. 만혼이었거나 난임 관련 노력을 해 본적이 있는 분들이지. 마음 비우고 있으면 저절로 아이가 찾아온다고 했어. 나는 그가 오늘처럼 내가 진료받을 때 대기실에 앉아 있거나, 시간이 없다면 진료를 끝낸 나와 밥을 같이 먹어주거나 산책을 같이 해주면 좋을 것 같았어. 이게 가장 큰 이유야. 나는 그가 옆에 있으면 무서운 일, 어려운 일도 용기내어 해 낼 수 있을 것 같아. 그가 내가 종알거리는 걸 들어주면 나는 많이 위로가 되고 풀리곤 했어. 그리고 태가 나이가 들어서 자연임신이 어려워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시술을 받게 되더라도 남자 쪽에서 져야 할 부담은 여자 쪽에서 감내해야 할 부분에 비하면 적다는 게 내 생각이야. 제일 부담스러운 게 정자를 인공적으로 채취하는 것 정도잖아? 난자를 인공적으로 채취하고, 여러 개의 난자를 키워서 뽑아내기 위해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다시 자궁에 넣는 건 훨씬 번거롭고 힘이 드는 일이야. 내가 난임병원을 다닌다는 걸 커밍아웃하자 여기저기서 경험과 조언들이 오고 있어. 시험관아기를 하는 과정에서 배와 엉덩이에 딱지가 앉았다는 말을 나는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거든. 그는 나의 좌절과 나의 수치와 나의 곤란함 옆에 함께 있어줄 거거든. ‘내가 늙은 여자여서 이런 일을 초래했다든가 좌절과 실패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도 그는 그 산성비를 함께 맞아줄 거거든. 나는 그에게 앞으로 겪을 지도 모를 유산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놓았어.

 

내진을 해서 초음파를 보았어. 담당 의사선생님은 남자야. 책상 위에 아직 유치원생인 듯한 딸램이의 사진을 놓고 있는 분이야. 삼십대 중반쯤 나이는 되었을까? 남자산부인과 의사에 대해서 나는 별다른 거부감이 없어. 그건 전문영역이니까.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보다 정말 전문기술을 가진 전문가이길 기대해. 그래서 산부인과 진료를 할 때 남자의사도 괜찮냐는 질문에 괜찮다고 말해. 그럼 대기시간이 줄어드는 부대효과가 있지. 겨울이라 어그부츠를 신고 내복을 입었더니 산부인과 진료용 분홍치마를 갈아입기에 번거로왔지. 오늘 초음파를 보는 목적은 배란 정도를 살피고 날짜를 받기 위해서야. 지난번에 왔을 때 배란유도제를 처방받았거든. 생리 3일째였어. 그날 예정된 호르몬 검사는 취소되었어. 난소기능검사에서 현저한 기능저하가 있다는 소견이 있었거든. 나팔관조영술을 했지. 나판관이 잘 뚫려 있는 지를 검사하는 거야. 액을 주입한 후 그게 흘러나오는 과정을 엑스선으로 촬영을 하는 거야. 지하 촬영실 대기실에서 분홍색 치마를 입고 있던 여덟명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어두웠어. 내가 두번째로 나이가 많은 여자였어. 나는 아파서가 아니라 이번이 두번째인 나팔관검사가 싫고 슬퍼서 눈물이 났지. 나는 어쩌다 자연스러운 임신과정에 과학의 힘을 빌려야만 하는 지경에 나를 빠뜨렸던가 싶었어. 5일치 먹는 약과 14일 내내 먹는 약을 처방받았어. 14일치 먹는 건 하루에 한 개씩 먹는 거야. 그 날 빈혈을 해결하라고 했어. 철분제를 먹고 엽산을 먹고, 붉은 살코기를 거의 매일 먹으라고 했어. 그래서 나는 진료를 마치고 순대국을 한 그릇 먹었지. 비타민들을 챙겨먹는 건 귀찮은 일이야. 철분제는 소화가 잘 안되고, 변비가 생기게 해. 나는 변비가 원래 있던 편이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있었어. 초음파 상으로 보면 왼쪽 난소에서는 반응이 없고 오른쪽 난소에서 난자가 3개가 자라 배란될거라고 했어. 난소기능저하로 반응이 적은 편이라 했어. 정상적으로는 양쪽 난소에서 번갈아가며 한 달에 1개씩 배란된다는 게 생물 시간에 배운 상식이야. 3개가 배란 예정이면 일타삼피인데 괜찮구만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어. 배란 예정일 전후로 이틀간 시도를 해보자는 거야. 세자빈이나 중전마마도 아닌데 합방날짜를 받는 기분은 묘했어. 그리고 2주 기다려서 임신반응 테스트를 해서 임신이 아니면 생리 3일째에 다시 오라고 했어. 다음달부터는 배란유도제 약에다가 주사를 더해서 과배란유도를 하고 인공수정을 시작하자고 했어. 보건소에 가서 확인을 받아 진료비를 지원받으라며 진단서를 발급해주었지. 인공수정은 한 번 시술에 시술비가 60~70만원쯤 드나봐. 만약 임신테스트기에서 반응이 있으면 게임오버지. 그럼 임산부 대열에 끼는 거지.

 

너의 아빠는 자연임신을 더 시도해보고 싶어했어. 하지만 여자 쪽에 난소기능저하가 있어서 스케줄이 그렇게 짜인 거였어. 난소 기능저하가 없다면 생물학적인 나이가 어떻든 좀더 여유를 가지고 접근할 텐데 내 난소가 비어가는 중이라 어쩔 수 없다는구나. 열 세살에 시작한 초경이후 매달 배출되고 아직 남아 있는 늙고 낡은 나의 난포 안에 너는 아직 남아 있을까? 아니면 너는 과배란 유도약으로 재촉을 받아서 이번 달에 후다닥 배란될 예정인 3개의 알에 들어 있을까? 우리는 너를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 생명으로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늦게 만났기 때문에 만약 이 가정이 예정된 거고, 너와 우리의 약속도 이미 셋업 된 거라면 너도 참 많이 기다린 게 될테지.  

 

나는 이 병원에 진료보러 오는 날마다 데이트를 하기로 했어. 함께 있다면 둘이 하는 데이트, 근무거나 다른 일정이 있어서 혼자 와야 하면 혼자하는 아티스트 데이트. 그 데이트가 너를 태 안에 넣고서 얼마나 자랐나 보러 오는 검사로 이어지길 기대해. 벚꽃 피는 꽃길을 걷고, 여름장마 내리는 길을 한 우산을 받치고 걷게 되길 바랬어. 아이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그와 나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이 되길 기도했어. 데이트의 이유는 그냥 집으로 가버리기에는 너무 외롭고 마음이 뒤죽박죽이기 때문이야.

 

난임 전문 산부인과 진료 침대에 눕는 건 왠만해서는 내성이 안생기는구나. 내 마음은 산부인과 문을 나설 때 마구 휘저어져 헝클어진 상태에 있어. 평상시 나의 항아리는 고요해서 불순물들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어 떠먹을 물도 있는 편인데, 여기 오면 그게 막 휘저어져서 흙탕물이 되어 있거든. 그것들을 가라앉힐 기분전환 꺼리가 필요해. 첫번째 왔을 때는 이전 병원 진료기록을 모두 가지고 그와 함께 와서 첫 상담을 하고 함께 안동칼국시를 먹었어. 안동칼국시는 내 고향음식이야. 엄마는 콩가루를 넣어서 홍두깨로 국수를 밀어주셨어. 멸치 다시국물이 아닌 맹물에다 그 콩가루 섞인 국수를 넣고 삼동추든 뭐든 푸른 이파리를 넣어 끓인 후 갖은 양념을 넣은 장물을 넣어서 간을 맞춰 후후 불면서 먹었지. 나로서는 이건 고향의 맛, 연어의 물맛인 우리 엄마의 음식이야. 난임병원에는 남편과 오는 여자들만큼 친정어머니하고 같이 오는 여자들이 있어. 여자로서 겪는 이런 일들이 친정 엄마를 더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 (나는 아직 친정 엄마라는 단어가 익숙하지가 않구나) 야근 출근을 해야하는 사람을 붙잡고 나랑 밥 먹고 가라고 내가 잡았어. 그날 그는 10분 지각했어. 꼼꼼한 그가 가족관계증명서를 알아서 떼어 왔고 혈액검사로 난소검사를 했어. 그다음에는 혼자 와서 난소수치가 괄목할만한 수준으로 떨어졌고 일정을 좀 급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 쓸쓸해서 지난 번에 그와 같이 갔던 안동칼국시집에 혼자 갔어. 그가 전화를 해 주었어. 나팔관조영술검사를 했던 날도 조퇴를 하고 혼자 왔는데 다행히 검사결과가 좋았어. 그 날 나는 혼자서 산책을 오래 했어. 풍물시장 지나,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만든 관우를 제사지내는 사당인 동묘를 둘러보고, 황학동의 고물상에서 오래된 물건들을 보고, 도깨비시장인지 다른 이름의 시장인지에서 중고 냉장고와 카세트라디오를 수리해 파는 가게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었어. 그 다음이 오늘이야.

 

오늘 우리의 데이트는 간단했어. 이쁘게 차려입고 영화 보고 스파게티에 케익을 먹는 데이트는 아니었어. 동묘앞까지 걸어가서 내과에 들어가 내 감기약을 처방받았어. 그가 병원을 검색하고 나와 손을 잡고 같이 걸었어. 우리는 이런저런 생활 이야기를 나누었어. 이야기들은 사실 별 의미가 없어. 그냥 나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주길 기대했어. 특히 그가 옆에 있어주길 기대해. 전철역 앞에서 나눠주는 홍보전단에 딸려온 사탕을 하나씩 까먹었지. 감기가 열흘 이상 낫지를 않더니 인제 가슴에서 컹컹 소리가 나. 주사를 한 대 맞았어. 약국에서 약을 사면서 제가 배란유도제를 먹고 있는데요 괜찮은가요?’ 물었어. 나보다 그가 더 찜찜해했어. 내과의사가 그런 건 산부인과에 가서 물어보라고 하니까 버럭 했어. 그도 나처럼 처음 겪어보는 이런 일들에 곤두서 있는 줄 알겠어. 내과의사에게 섭섭하던 마음이 기다리는 동안 마시라고 쌍화탕을 하나 까주고 임산부도 먹어도 되는 안전한 약이니 배란유도제하고 같이 드셔도 괜찮아요.”라는 친절한 약사 말을 듣고서야 안심이 되었어. 나는 네 아버지가 참으로 든든하고 고맙다. 여자 혼자서 하는 미션에 도전할 때 혼자서 삼겹살 먹기보다 좀 더 급수 높은게 혼자서 곱창 먹기이고 그보다 더 높은 단계가 바로 혼자서 난임센터 가는 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그 말에 공감해. 혼자 검사하고 기다리는 게 얼마나 쓸쓸한 지 모른단다. 거기엔 아이를 가진 여자들에 대한 질투가 섞였겠지. 나는 아직 좌절을 겪지는 않았지만 좌절스런 결과를 매달 반복하는 지루하고 힘든 일정이 뒤에 있을 수 있어.

 

이 병원을 소개해준 이들을 포함하여 내 주변 사람들과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진정으로 아이를 갖길 원하면 마음을 비우라고 말한다. 잊어버리고 즐겁게 지내다 보면 만날 인연이면 만나고 아닐 인연이면 아니라고들 해. 나도 그 말에 공감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직 잉태되지 않은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건 나의 집착일까? 나의 집착을 버리는 의례일까? 나는 이야기와 함께 글쓰기의 힘을 믿는 것 같다. 찬찬히 써가다 보면 이 글쓰기가 나를 구원할 거라는 생각이 있단다.     

 

오늘 처음으로 네게 편지를 쓴다. 앞으로는 종종 쓸거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 아직 오지 않은 아이에게 편지를 쓰라는 이야기는 원하는 아이를 낳는 법이라는 사행심 가득한 제목으로 번역된 태교책을 보고서 얻은 아이디어야. 그 책의 원제는 태어나기 전에 당신의 아이의 영혼과 교류하는 법 이 정도의 제목이었던 걸로 기억해. 서양의 책이지만 기도와 영성, 그리고 태교에 관심을 가진 책이었어. 지금 내 나이가 42세고, 35세 전후에 태교책을 집중적으로 읽어대던 시기가 있었어. 그 때 읽은 책이야. 미혼의 여자가 태교책을 읽는게 너에겐 생뚱맞겠지만 그리스여신 식으로 말한다면 내 안에는 모성과 곡물의 여신인 데메테르 여신이 관장하는 부분이 있어. 그건 타고 난 나의 정체성이야.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것에 관심을 갖게 되지. 내가 다음생에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로 다산녀나 산부인과 의사나 가정의학과 의사 또는 조산사나 소아과 의사를 꼽았다면 너는 이해를 할까? 태교책들을 찾아서 즐겁게 읽은 건 데메테르의 관심분야가 표현된 일일거야.

 

태교의 중요성에 대해 거론한 이야기를 나는 많이 들었어. 한국의 오래된 책 태교신기에도 아이를 갖기 전에 삼밭에 삼을 심기 전 몇 년에 걸쳐 퇴비를 넣어 지력을 돋우는 시기가 필요하고 했어. 하루 아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도 거기서 읽었나봐. 나의 멘토이신 법륜스님의 주례법문에도 결혼하기 전에 수행을 해서 남자와 여자가 외부 경계에 자신의 마음 상태가 덜 휩쓰리도록 하고, 또 엄마가 될 여자가 임신 전에 수행을 하고 아이가 태중에 들었을 때도 수행하라고 했어. 임신을 한 엄마가 수행을 하면 오장육부가 편안해져서 장기처럼 뱃속에 든 태아도 편안하다고 했어. 주변 사람들도 그 여자의 마음이 편안하도록 배려를 하라고 했었지. 가장 최근에 나에게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도록 동기유발을 한 건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책이야. 나는 이 할머니를 한 번 직접 만난 적이 있었어. 산책을 하다가 평안 수채화의 집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갔거든. 거기가 바로 박정희할머니가 사별한 의사 남편의 병원 자리에 간판을 걸어 수채화를 가르치는 곳이었어. 그녀는 한글점자인 훈맹정음의 창시자인 박두성선생의 따님이기도 했어. 전쟁 직후 어려운 시점인데 대가족을 꾸리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게 되는 글자배우는 시점까지 다섯 아이 모두에게 육아일기를 써서 선물을 한 어머니야. 그림을 그리는 어머니답게 이런저런 생활 속의 것들이 그림으로 남아 있어. 아이가 태어나던 시점의 아버지, 어머니, 친가 조부모, 외가 식구들의 사진이 붙어 있어. 그리고 살던 집, 입었던 옷, 잘 먹던 음식까지 여러가지를 대신 지켜보고 기억한 이가 남겨놓았어. 나도 그런 걸 해보고 싶어졌어. 3년 육아휴직기 이전에 태교일기를 써보고 싶은 소망이 내게 있단다. 왜 나의 스승님은 아이가 만 3년이 될때까지 엄마가 키우라고 했을까? 도대체 그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이런 궁금증이 내게 있어. 나는 육아연수라고 생각하고 있지. 나는 일기작가, 편지작가가 꿈인데 태교일기, 교단일기, 3년 육아일기 이런 시리즈를 써보고 싶은 소망이 있어. 마흔 넘은 여자들이 건강하게 아이를 가져서 출산하는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한다. 10% 미만의 가능성이야. 그러니 나는 정성을 들이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단다.

 

그런데 나는 지금 너를 과연 만날 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르겠구나. 이 글이 네게 전해지고, 또 만약 네가 태 안으로 깃들어 태어나게 되는 1년간을 기록한 게 책이든 블로그 글이든, 박정희 할머니처럼 오로지 너만을 독자로 한 선물로 묶여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면 그건 네가 찾아와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증거겠지. 너를 향한 편지지만 네가 이 글을 읽는 건 아마도 내 나이쯤이나 되어서겠지. 아니면 너도 결혼을 해서 아이를 기다리는 시점이거나. 네가 여자이든 남자이든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부모가 되는 일은 네 일로 다가올테지.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는 너를 성인으로 상정하고 있단다. 우리가 부모 자식의 인연으로 만나지만 너는 언제까지나 아이가 아닐테고, 나와 같은 어른이 될 거고, 네 세상을 살아가게 되겠지. 그래도 우리의 관계는 여전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일테지.

 

첫 편지에 불쑥 부탁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너한테 부탁을 하려고 편지를 쓸 마음을 내었어. 네가 우리 자식으로 태어나기로 예정되어 있고, 너도 그러기로 이미 선택했다면, 네가 괜찮다면 이번 12월에서 2월 사이에 우리를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구나. 이런 이유 때문이란다. 나는 마흔 둘이고 설 쇠면 한국 나이로 마흔 셋이 된다. 한의학에서는 7년 단위로 여자 몸의 주기를 생각하는데 14살에 초경을 시작하고 42세 정도에는 마감을 한다고 하지. 생식력은 이 나이를 기점으로 폭포에서 급강하한 물결이 잔잔해지듯 급격히 떨어진다. 시험관아기 시술을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도 산모의 나이가 만 44 미만이어야 하거든. 그러니 나는 네가 나의 만 41세 이전에 찾아와 주었으면 바래. 그게 어찌 보면 우리가 너를 만나는 데드라인인 것 같아. 그 시기를 놓치면 어쩌면 이 생에도 가능했을 우리의 조우는 다음 생에나 기약해야할 사안이 되고 말테지.

 

특별히 이번 겨울로 부탁을 하는 이유가 있어. 만약 네가 12월에 찾아온다면 우리는 네가 엄마와 아빠에게 와서 착상되고 안정이 필요한 초기 12주 동안을 겨울방학의 휴식기간 동안 너를 품은 채 안온하고 편안히 보낼 수 있단다. 나의 직업은 특수학교 선생님이란다. 3월은 교사들의 대목이다. 일이 너무너무 많다. 학년 말은 아무래도 안온하다. 중요한 일은 10월 말정도에 마무리가 되고 12월에는 성적처리만 남은 시점이 된단다. 이번 겨울방학은 12 27일 예정이야. 그리고 오늘은 12월 초지. 이번 달에 네가 찾아와 주면 착상되고 유산위험이 가장 높은 초기 12주 동안이 겨울방학부터 봄방학에 이르는 기간이 옴팡지게 포함될 수 있단다. 하루 왕복 3시간의 장거리 출퇴근을 안해도 되고, 힘든 일도 안하고, 그리고 스트레스도 안 받으면서 잠이 오면 자고, 쉬고 싶으면 쉬면서 보낼 수가 있단다. 2013 7월부터 법이 바뀌어 임신 초기 12주 까지는 모성보호를 위해 여성공무원은 1시간 일찍 퇴근할 수가 있게 되었지만 사실 현장에서는 그 시간을 찾아쓸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단다. 맡은 일을 해낼 수가 없거든. 이런 현실적인 예측도 하고 있어. 만약 내가 계속 아이 갖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네가 2월까지 찾아오지 못한다면 나는 내년 3월 전에 휴직을 결정해야만 할 지도 모르겠어. 우리는 자연임신 시도 1, 인공수정 시도 1~2달을 거쳐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시도하자는 의사선생님 권고를 듣고 있어. 그러니까 12월에서 2월 사이에 어쩌면 시험관 아기 시술을 1번 받을 수도 있단다. 힘듬은 각오하고 있어. 만약 너를 이번 겨울방학 동안 품게 되지 못하면 내년에는 휴직을 해야겠지. 출근을 하면서 한 주에 몇 번씩 조퇴를 하는 것도 미안하지만 몸이 배겨나지를 못할 테지. 과배란 유도 주사를 맞고 난자를 채취하고 시술을 받자면 일주일에 3번씩 병원에 가야하는 일정이 진행될거라는구나. 어떤 사업주도 일주일에 3번씩 조퇴를 하는 직원을 반가와하지는 않을 것 같아. 만약 네가 찾아와주면 휴직을 하지 않고도 12,1,2월 쉬고 3월에 안정된 모습으로 출근해서 3,4,5,6,7월 보내도 아직 막달이 아니라 8개월이거든. 인간의 임신기간을 38주로 잡는다면 32주까지 일을 하는 거란다. 막달에 배가 가장 많이 불러온다지. 7월 말에 방학을 해서 8월까지 한 달을 쉴 수 있단다. 그럼 또 너에게 집중을 하면서 나는 덜 힘들단다. 그럼 너의 생일 예정일은 8월이 되는 거고, 나는 바로 산가 3개월을 써서 바로 3년 휴직을 들어갈거란다. 그럼 학교도 산휴 강사를 구하는 일이 수월해. 무엇보다도 엄마가 맡은 학생들도 편안할 것 같아. 지금 현재 임신중인 여교사가 2명 있기 때문에 전담 자리 2자리는 그 교사로 채워질 것 같아. 그럼 나는 담임을 해야하는데 우리 학생들은 장애가 있어서 변화에 적응하는데 1달 이상이 걸리거든. 학생들을 1학기까지 잘 봐준 후에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덜 미안할 것 같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과 부모님들도 편안했으면 좋겠어. 강사를 구해야 하는 관리자도 편안했으면 싶고. 나는 네가 만 세살이 될 때까지는 무조건 휴직을 할 생각이란다. 이 휴직이 가능하도록 이 학교 관리자들이 또 사람을 구하려고 애를 쓰시는 거거든. 기간제 샘을 계속 구해야 하니 나로서는 법적인 권리를 누린다기 보담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 한편 40세 이후 여성의 유산 확률이 50% 가까이 된다니 과연 내가 임신기간을 일을 하면서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긴 해.   

 

그래서 네게 부탁하는 편지를 한 통 쓰기로 했어. 아빠는 지금 한약을 먹고, 108배를 하고, 모든 약속을 미룬 채 너를 만나기 위해 공을 들이고 계시단다. 그는 북한산을 참 좋아한단다. 우리가 집을 구할 때 그는 산으로 가는 길이 나있는 동네를 원했고, 나는 근처에 도서관과 산책로가 있는 길을 원했어. 북한산은 너무 머니까 남산 밑에다 집을 얻었어. 그는 너를 만나길 기도하면서 산에 다니고 108배를 했어.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함께 갔던 마애불상이 있는 절이야. 검색해보더니 승가사라는구나.

 

우리는 너를 만나고 싶단다. 아직 잉태되지 않은 너를 초대하고 싶단다. 부부로 만난 이 인연에 감사드리며 이제 원래 만나기로 예정된 우리 가족이 모이게 되길 기도드린다. 이 편지를 써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특히 내가 엄마됨을 훈련받을 수 있다면 좋겠구나. 이 편지는 너에게 보내는 편지지만 나는 내가 생명을 만들 수 없음을 알고 있어.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고, 성관계를 가진다고 그 아이를 그 남녀가 만든 건 아니겠지.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될 때마다 기도로 편지를 마칠 수 밖에 없어. 네가 자라나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 무종교인이 되기로 선택하든 그건 너의 자유가 될테고. 하지만 나는 부디스트이므로 불교식으로 기도한단다.

 

 

Ps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그리고 기도를 들으시는 여러 고운님들께 기도드립니다. 오늘 처음으로아이에게 부모로서 보내는 편지를 시작합니다. 아직 잉태되지 않은 아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저의 설레발을 용서하십시오. 저는 오래 전부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를 가질 수 있기를, 우리가 좋은 인연, 선연으로 만나지게 되길 기도해왔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아 많은 짐을 지고 살아가는 아이들, 부모님들과 지내는 직업을 가졌으면서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으니 우리 학생들과 부모님들께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저는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주워들었습니다. 부모와 아이는 서로를 선택해서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잉태되기 전부터 옆에 함께 있어주고 아이가 세상을 마치고 돌아갈 때도 함께 하는 수호성인 또는 수호천사, 수호무사 이름이 무엇이든 그런 존재가 함께 한다고요. 저나 제가 남편으로 만난 저 사람 역시 그런 수호를 받고 있다고요. 저는 이 이야기를 믿습니다.

 

오늘 구본형 사부님이 쓰신 책 <세월이 젊음에게>를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글쟁이이니 첫출근하는 딸에게 책을 써서 선물을 주었습니다. 저도 아직은 아니지만 앞으로 글쟁이가 되어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저는 편지와 일기를 쓰면서 삶을 가꾸며 살고 싶습니다. 이제 아이에게 편지를 시작합니다. 만약 제가 부모가 된다면 이렇게 시작된 편지가 제 생명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아니 이 생에서의 존재가 사라진 후까지도 아이를 향해 내내 이어지겠지요.

 

글을 쓰면서 기도드립니다. 내 배가 물에 뜨면 나와 같이 강을 건널 인연이 온다 하셨지요. 아이의 몸과 마음에 유전과 환경의 태생적 책임을 지는 부모가 우리는 되길 소망합니다. 저희를 지키고 보호해주시길 기원드립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지키고 보호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아름답게 만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진인사대천명.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켜보아 주십시오. 그래서 어디로든 제 물길을 잘 흘러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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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7 15:17:48 *.91.142.58

윤정씨,

 

그냥 편하게 호칭합니다 ~임의대로!

 

긴 편지 많이 공감하며 또 많이 가슴 아리며 두 번에 나누어 곱씹으며 읽느라

이제서야 댓글을 올려요.

 

동갑내기라서 많이 공감가고 또 절절히 와닿는 글입니다.

또한 나도 하루 속히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밀려드는 그런 내용이기도 하구요.

 

윤정씨의 바람

꼭 이루어지리라 믿어요.

그것도 멀지 않은 시일.  그것도 내년 2월 이전에

건강한 아가가 윤정씨 부부에게 찾아갈 것을 믿으며

저도 항상 기도할게요.

 

아무래도 우리의 아구찜 회동은 윤정씨 임신 축하자리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땐 만나서 편하게~"윤정아"하고 부르며 말 놓겠습니다.

만혼 선배로 또 노령임신 선배로써 성공담 공유해주길 기대하며~~!

 

추운 겨울 감기조심하시고...

하루 하루 새로운 생명과의 만남이 가까이 있음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나날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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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4 15:25:36 *.43.131.14

우리 동갑내기였지요? 그래서 어쩌면 제가 하는 고민들을 같이 하실 수도 있겠어요.

만혼 패키지에 대해서요 제가 즐겁게 답사할께요.

고마워요.&^^

댓글은 진작에 읽었는데 답이 늦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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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9 16:10:34 *.131.5.196

부디 올 겨울이 가기전에 아니, 올해가 가기전에 좋은 소식이 있기를! 삼신할머니와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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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4 15:25:51 *.43.131.14

흑! 감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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