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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8일 19시 20분 등록

택시안. 연세 지긋해 보이는 기사님이 운전대를 잡고 계신다.

“추운 날씨일수록 손님이 더 많으시겠어요.”

“그런 편이죠. 춥거나 덥거나 할 땐.”

아침잠이 덜 깨인 상태에서 의문이 들었다.

“운전 자체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업종인데 거기다 택시 영업을 하다보면 짜증나고 화날 일이 많지 않으세요?”

“아무래도 그렇죠. 하지만 그것도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되요. 워낙 난폭 운전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거기에 일일이 반응을 보이다보면……. 젊고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은 성질을 많이 내죠.”

“그런 면에서 운전과 인생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운전과 인생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1) 변화

① 청년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나 폭주씨. 신이 났다. 차에 타자마자 엑셀레터를 냅다 밟기 시작한다. 무서운 게 없다. 신호등 무시. 깜빡이 무시. 여친이 올라타는 날에는 더욱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아우토반이 고스란히 재현된다. 그때가 그렇듯 폼 나게 과시하고 으스대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의 이목을 받고 싶은 그 시절.

② 중년

구력도 생기고 이제는 나보다 가족이 우선이다. 급브레이크와 급발진 NO. 속도보다는 안전운전을 선택한다. 젊은 시절 급하게 빨리 가려고 서둘렀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나이를 먹다보니 순리대로 굴러 가는 게 제일이다. 급하게 끼어드는 놈이 있으면 부아가 치밀다가도 어떤 사정이 있겠지 라며 미소로서 넘어가는 여유도 생긴다. 물론 처음부터 내 성격이 이렇지는 않았다. 세파에 시달리다보니 그렇고 그런 사람들끼리 둥글게 살아가는 것이 장땡이라는 나름의 개똥철학이 생겨났으니. 지구가 둥그니까 사람도 둥글어야 되지 않겠는가.

 

(2) 예측불허의 세상

인생이라는 길을 걷다보면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닌 다른 길로의 탐색과 전이가 되는 순간들이 생기곤 한다. 의도치 않았던 예비부부의 임신과 출산, 결혼 후 달라지는 부부의 행태, 아이의 진로로 인한 이사, 대출 문제, 시댁 식구와의 갈등, 잘못선 빚보증, 친정어머님의 치매 등등. 운전도 그러하다. 아스팔트길을 달리고 있다가도 어느덧 험한 자갈밭 길이 펼쳐지고,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돌아가기도 하고, 눈과 비바람의 악천후 운행 및 윈도브러시가 고장이나 난처한 일이 발생되기도 한다. 돌이켜보노라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의도치 않은 일들이 일상으로 일어나는 세상.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3) 방어 시스템

앞에서 달리던 트럭에서 돌멩이가 틔어 앞 유리 창을 강타하자 일순간 아무 생각 없이 옆차선으로 급하게 핸들을 돌리는 아찔한 상황. 고속도로 중간에서 앞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밞고 정차하는 황당한 순간이 일어나고, 내갈길 열심히 가고 있는 터에 3중 추돌 사고가 발생 옆 차가 옆구리를 와서 들이받고, 강원도 미시령 눈 길속 평소의 실력을 믿고 저속운전을 하지 않다가 미끄러져 세바퀴나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순간 과거의 잊혔던 필름이 고스란히 재생되기도 한다.

자신의 주행속도 체크, 안전거리 확보, 타이어 확인, 진단, 급박한 상황 발생 시 운전이든 삶이든 사전 방어 시스템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뜻하지 않은 일들이 발생이 된다. 그럴 때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

‘뭐야,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내가 얼마나 바른생활 사나이로 살았었는데.’

 

나에게는 이승의 마지막 끈을 부여잡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한분은 70대 후반으로 인생에서 쌓인 한으로 끝내 움켜진 주먹을 아직도 펴지 않고 계시다. 일평생 팔자타령을 논하셨다. 지아비 없는 팔자, 자식 복 없는 팔자 등. 끝내는 지금도 당신에게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함에 눈을 닫고 입을 닫고 마음의 문고리를 부여잡고 계신다.

“환자가 낫기 위해서는 본인의 살겠다는 의지가 중요한데 그런 것이 보이질 않아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다른 한분은 오십대 초반의 한창 나이. 그는 젊은 시절 과속운전을 하듯이 내달렸다. 남보다는 자신을, 영원한 시간인 듯 그 순간을 마시고 춤추고 즐기었다. 건강에 남다른 자신이 있었기에 본인에게 그럴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중, 응급실로 실려 가고 사형선고를 받던 중 결국은 끈을 놓았다. 그가 남긴 것은 몇 달치 밀린 임대아파트 관리비와 아직은 세상에 내어놓기가 그런 어린 딸.

 

기사 분은 당연한 돈벌이를 한 것이지만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거래처 사업자와의 미팅. 갑과 을로써 철저한 이해관계의 득실에 따라 표정과 대접이 바뀌는 상황이지만,

“사장님이 저희와의 파트너로써 계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업무에서 승진에서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본부장.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보니 그도 빼곡히 뱃살이 비집고 나온 평범한 동네 중년 아저씨다.

“본부장님. 회사앞 기가 막힌 생태집이 생겼는데 제가 오늘 대접 하겠습니다.”

신혼시절 그렇게 이뻐 보이던 아내가 이제는 육중한 몸매의 아줌마라는 제3의 성으로 들이닥친다. 그래 어차피 자식새끼 떠나면 마누라와 나 둘뿐인데.

“여보, 당신이 갖고 싶다는 것이 뭐였지.”

 

네모도 세모도 삐죽한 것도 아닌 둥근 세상이다. 모난 것도 부족한 것도 상처투성이도 순화 되어 살아지는 것이 우리네 세상이다. 시인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섬이 있다고 하였던가. 우리는 그 세상이라는 섬에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이방인이면서 때론 정착인 이다. 그 순간으로 이루어진 찰나의 점들을 오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 후 다시 택시를 탔다. 00까지 가주세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내말을 알아들은 건가. 지방색의 특색이려니 생각하고 그분의 운전대에 몸을 맡긴다. 잠시의 시간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뜻과 의지를 사람들 혹은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맡겨야 하는 경우가 있다.

‘저 사람이 잘할 수 있을까.’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미심쩍어도 의구심이 들어도 때론 그 상대편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감 놔라 배 놔라 식의 확인과 간섭이 일어날시 그 근간은 흔들린다. 목적지에 도착 경비정산시 그제야 젊은 기사가 다물었던 말을 떼었다.

“손님예~ 죄송하지만 다음에 이용하실 때는 번거롭더라도 역 건너편 지나다니는 택시 이용해 주이소. 제가 1시간동안 줄서서 승객을 기다렸는데 요금 4,300원은 너무 한 것 같아요.”

“…….”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① 무슨 소리예요. 기본요금까지 인상된 마당에 승객이 가자고 하면 어디든 가야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니에요. 내 돈 내고 내가 타는데 나 참.

② 그랬었군요. 몰랐습니다. 다음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고 영업이 오죽 안 되면 저런 이야기를 할까. 그래서 내가 행선지를 이야기 했을 때 아무 말을 하질 않았었구나.

“미안합니다. 제가 초행길이라서 다음에는 기사님 말씀대로 할게요.”

 

세상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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