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어니언
  • 조회 수 1563
  • 댓글 수 12
  • 추천 수 0
2014년 6월 17일 06시 42분 등록

서울역에 너무 빨리 도착했다. 천안까지 한시간은 걸리는 줄 알았다. 삼십분이면 가는 곳이었다. 웬만한 서울 구석보다 가까운 듯 하다. 과제 마무리를 하며 카페에 앉아있다가 기차를 탔다. 과제를 마무리 하느라 밖을 많이 구경하지는 못했다. 옆자리에 앉은 분홍셔츠를 입은 아저씨는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전화했다. 가지 못한 결혼식 축의금을 부탁한다든지, 아랫사람에게 미처 못 끝낸 일을 주문했다. 약간 민폐처럼 주변 사람들을 시킨 뒤 본인은 좌석을 뒤로 젖히고 눈을 감는다. 내 주말을 주말답게. 은근히 좀 부러웠다. 천안 아산 역은 금방 갔다.

 

천안 아산 역에 도착하자 벌써 몇몇이 나와있었다. 반갑게 맞았다. 나보고 살이 찐 것 같다고 했다. 알고는 있었는데 조금 충격 받았다. 적당히 먹어야지.. 다짐했다. 선배들과 차로 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노진 선배의 마실로 이동했다. 색색의 고운 음식들을 먹으며 오래간만에 만난 회포를 풀었다. 식사 후에는 음식 연구소와 근처의 예쁜 카페도 갔다. 천안, 좋은 동네다.

 

펜션에 도착해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순서를 정해 하나씩 과제를 발표했다. 또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면서, 다른 동기들을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란 참 묘하다. 마치 인생이라는 다이아몬드를 여러 각도에서 비춰보듯이 여러 경험을 통해 지금의 당신이 있다. 그건 그 누구와도 같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연구원 수업을 할 때마다 그런 감정을 느낀다.

 

내 차례에서 많이 울었다.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 세 가지를 고르라고 했는데, 그 중에 아빠의 장례식 이야기가 있었다. 막상 적을 때는 약간 속 시원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소리내서 읽다보니 눈물이 장마비처럼 흘러내렸다. 쉽게 감동하는 만큼 쉽게 울기도 하는데, 사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어쩔줄 몰라해서 가급적이면 잘 울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간신히 과제를 다 읽었다. 코멘트에서는 주로 나의 회사 이야기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일을 잘 해낼수록 더 바빠질거라는 것. 밸런스를 잘 가져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 등. 그런 부분이 많이 보이셨나 보다. 부침 많은 부서에서 3년 있다가, 이제야 좀 힘있는 부서로 와서 그나마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생각보다 그렇게 회사가 힘들지는 않다. 아니, 힘들다. 아니, 힘든 날도 있고 힘들지 않은 날도 있다. 그날 그날 다르다.

 

여섯 사람 발표하고 저녁을 먹었다. 보이차를 넣고 끓인 라면과 불고기, 희동님의 쌈야채, 사온 김치, 고들밥이었다. 정신없이 먹었다. 배도 고팠고, 너무 맛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 연극 치료를 했다. 눈 감고 다른 사람이 이끄는 대로 춤추기, 서로의 거울이 되어 상대방 따라하기, 술래잡기를 했다. 엄청 재밌었다. 갑자기 졸렸던 정신이 반짝 깨었다. 그 상태로 새벽 3시정도까지는 갔던 것 같다.

 

우리는 전체적으로 조금 비몽사몽인 상태로 남은 네 사람의 발표를 마저 했다. 인상적이었던 점을 몇 가지 짚어보자면, 사람마다 스스로 자가치유 능력이란 게 있는 것 같다. , 웬만해서는 극단까지 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너무 힘들면 가장 우선순위 낮은 일을 알아서 그만 둔다. 아니다 싶으면 회사를 나온다. 지금 아니면 안되겠다 싶으면 휴직을 한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능동적이다. 그 정도 판단은 알아서 할 수 있다. 그 이상, 그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오래 걸리고,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생활을 바꾸려면, 사상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종교의 형태이든, 자기경영이든, 전까지의 자신을 완전히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예전처럼 살고 싶은 몸의 관성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실천이 어렵다.

 

새벽이 넘어가자 과제 발표가 끝났다. 우리는 노트북을 모조리 치워버리고 술과 안주를 꺼냈다. 속에 있던 이야기 많이 꺼냈던 것 같은데 일어나서 돌이켜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시 꿈은 깨어있을 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밤에 꾸는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잠깐 마루에서 눈을 붙이고 일어났더니 해가 떴다. 사람들 몇 명이 꾸역꾸역 남아서 마지막 술자리를 갖고 있다. 잠깐 옆에 앉아있었더니 먼저 잤다고 혼나기만 하고 비슷하게 취해있지 않아 이야기의 스콥이 맞지 않는다. 남아있던 사람들과 동네 마실을 나갔다. 된장 공장에 늘어선 커다란 장독대들이 소박하고 다소곳했다. 우리를 보고 마구 짖어대던 삽살개가 귀여운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경계한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지 않아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10시쯤 노진 선배가 다시 와서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으러 이동했다. 쌍둥이네 매운탕집이었는데, 민물 새우 매운탕과 메기 매운탕이 나왔다. 개인적 취향은 메기 쪽이었다. 가게가 정갈하고 음식이 괜찮았다. 열 가지쯤 되는 나물을 주었는데, 울릉도에서 가져온 재료도 맛있었고, 따뜻하게 볶아서 내오는 호박 무침이 정말 맛있었다. 그릇을 싹싹 비웠다.

 

밥도 먹고, 남은 사람들끼리 충무공 이순신을 모시놓은 묘소를 찾아갔다. 조용하고, 넓고, 평온했다. 고금도가 죽음의 슬픔에 젖어있는 곳이라면 이 곳은 죽음의 평온함 같은 느낌이었다. 막걸리를 올리고 나눠마셨다. 술을 뿌리면 멧돼지가 내려온데서 우리가 다 마셔버렸다. 옆에 있던 소나무 숲에서 우리는 한참 동안 신나게 놀았다. 살랑 거리는 바람과 고요함이 우리의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 묘소 앞에 있는 비탈길에서 굴러 내려와 보면 재밌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좀 망설이다가 콩두언니랑 가보았다.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는데 한 번 해보니 진짜 재미있었다. 혼자서도 내려와보고 둘이 껴안고 내려와도 보았다. 나중에 보니 온몸이 마른풀 투성이다. 게다가 풀에 찔려 온몸에 빨갛게 작은 반점 같은 것들이 생겼다.

 

 그랬지만 막상 그렇게 뒹굴고 나니 이순신 장군님이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아는 사람 같은. 어제 연극 치료를 했던 때와 비슷하다. 누군가와 같이 몸 사리지 않고 놀아야 비로소 그가 누구였는지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아직 우리 기수들이 발목만 담그고 물가에서 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 모임을 돌이켜보면 조금씩 나아질거라 생각한다.

 

뒹굴어 사는 인생. 재미를 실천하며 사는 삶. 나는 이번 천안 아산 역에서 그런 삶의 자세를 찾아본다. 그런 것이야말로 삶을 살아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꿈을 낮에 꾸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낮에 살아야 그 삶이 내 것이 된다. 후회 대신 살아있음의 삶을 살자. 그게 우리가 모인 공통된 이유이기도 하다.

 

IP *.128.229.3

프로필 이미지
2014.06.17 11:37:52 *.104.9.210

잠깐 자고 일어났는데 아침은....여기서 잠깐은 빼고...^^


충무공께 재롱 떤 추억은 길이길이 보존하세.....

프로필 이미지
2014.06.17 13:28:20 *.50.21.20

음? 저 오래 잤어요? 한 두시간 잔 것 같던데? 

프로필 이미지
2014.06.17 12:32:39 *.94.41.89

혹시 배우쪽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촬영하면서 잠깐 했더란 것.

그 눈물 떨어지는 것을 잘 녹화해놓았다는 것.

곧 Ndrive로 공유할 것이라는 것.

 

연기 인생도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 감정이입 췍오.

프로필 이미지
2014.06.17 13:30:23 *.50.21.20

ㅎㅎ 사실 재작년 겨울에 연극을 하나 올려보았었지요. 좋은 경험이었으나 글쓰는게 더 재미있었음! 

하지만 기회가 온다면 피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ㅎㅎ 

프로필 이미지
2014.06.17 15:01:45 *.219.222.34

그게 말이야, 혼자 읽고 쓸때는 담담하던 것도 여러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

다 되었다 싶은데도 사람들 앞에 나서면 눈물이 흐를때가 많잖아.

가끔은 그런 모습에 당혹스럽기도 하지.


하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면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있지 뭐.

프로필 이미지
2014.06.17 15:10:16 *.50.21.20

응, 그렇게 하라고 해야죠..뭐 ㅎㅎ

그리고 막 그래도 나에게는 미안하진 않아요. 

나한테는 무지 관대해요. ㅎㅎㅎㅎ

같이 있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

프로필 이미지
2014.06.17 17:06:55 *.113.77.122

뒹구는 모습이 너무 멋졌셔

역시 인생은 같이 뒹구는것이 최고 인것 같아~~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교장샘 말하는 중에 그냥 잠드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


프로필 이미지
2014.06.18 09:08:43 *.50.21.20

ㅎㅎㅎ 붕어싸만코 또 먹고 싶어서 회사 근처 편의점 다 뒤졌는데 안나옴 ㅠㅠㅠ 

뒹굴고 나눠먹고 그래야 아나봐요 ㅋㅋ 


프로필 이미지
2014.06.17 18:09:09 *.196.54.42

울 때, 한숨 돌리라고 와인을 권해 민망했죠?

물을 권해야 하는 건데...죄송^^


"사람이란 참 묘하다마치 인생이라는 다이아몬드를 여러 각도에서 비춰보듯이 여러 경험을 통해 지금의 당신이 있다." 

=> 참 좋아요^^

프로필 이미지
2014.06.18 09:09:43 *.50.21.20

ㅋㅋㅋ 아뇽 평소같으면 낼름 받아먹었을 텐데ㅋㅋㅋ 

낮술을 이미 한 상태라 잠시 내려놓았어요 ㅋㅋ 괜춘! 


프로필 이미지
2014.06.19 15:28:36 *.65.152.36

해언의 눈물이 아직도 여운이 남네....

그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큰 눈물 방울에 맺힌 형광등 불빛....

눈에서 유리구슬이 뚝뚝 떨어지는 줄 알았어....

맑고 포근한 해언~~ 요즘 신나보여서 좋아~~^^

프로필 이미지
2014.06.23 02:15:27 *.124.78.132

뒹굴뒹굴 너무 좋았겠다 ^^* 상상만해도 신나는걸!

요즘 해언의 글을 보면 이 과정을 진정으로 즐기는 것이 느껴져서 좋고 또 부러워~

집시카드가 말한 것처럼 ㅠㅠ 나는 요즘 너무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심란한 상태이지만 곧 나아지겠지? ㅋㅋ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32 MeStory(11) :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_1 [3] 타오 한정화 2014.06.17 1658
4131 3-10. 10기 수업 참관록 [27] 콩두 2014.06.17 1924
4130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회고한 종종의 오프수업 [16] 종종 2014.06.17 1647
4129 6월 오프 수업 후기 - 이동희 [13] 희동이 2014.06.17 1618
4128 #10_0 두 번째 오프모임 후기_정수일 [9] 정수일 2014.06.17 1469
4127 오프수업 후기 [8] 녕이~ 2014.06.17 1384
4126 경험 or 사건 [17] 에움길~ 2014.06.17 1405
4125 ‘천공의 성 라퓨타를 찾아 떠난 여행’ 6월오프 수업 후기_찰나#10 [16] 찰나 2014.06.17 1800
4124 6월 오프수업후기 _ 구달칼럼#10 file [10] 구름에달가듯이 2014.06.17 1802
» 6월 오프수업 후기_뒹굴어야 그 참맛을 안다 [12] 어니언 2014.06.17 1563
4122 6월 오프 수업 후기 [12] 앨리스 2014.06.17 1506
4121 #10_3 두 번째 오프수업_뒷풀이 file [1] 정수일 2014.06.16 1526
4120 #10_2 두 번째 오프수업_본게임 file [7] 정수일 2014.06.16 1664
4119 #10_1 두 번째 오프수업_앞풀이 file [1] 정수일 2014.06.16 1695
4118 6월 오프수업 후기 [9] 왕참치 2014.06.16 1586
4117 지리산에 다녀왔습니다 [6] 유형선 2014.06.11 1636
4116 J에게 : 온몸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file [4] 타오 한정화 2014.06.10 3835
4115 출근길 단상 [3] 정산...^^ 2014.06.10 1516
4114 3-9. 1차 시험관 피검 기다리기 [4] 콩두 2014.06.10 17327
4113 지갑 [2] 용용^^ 2014.06.10 1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