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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7일 11시 41분 등록

2014 6 17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회고한 종종의 수업 정경

 

, 멀미가 났다. 부산에 이사 온 후 이따금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여행이 그토록 기쁘고 두근댔었는데. 심지어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피로회복까지 된다는 생각을 했었건만, 2년의 시간이 지나 부산이 내 집으로 익숙해져 가는 지금, 기차멀미가 점점 심해진다.

 

전에는 내내 뭔가 쓰거나 읽어야 느낄 수 있었던 기차 멀미가 이제는 그냥 기차 안  좌석을 찾아 앉는 순간 시작된다. 콜라를 한 병 들고 탈 껄. 변경연의 오프수업은 기대하는 만큼 버겁다. 버거우니까 긴장된다. 긴장되니까 힘이 든다. 힘이 드니까, 피로해진다. , 아침부터 이러면 내내 컨디션 난조인데. 1 2일을 이렇게 시작하면 안 된다. 콜라 갖고는 안 되겠다. 활명수라도 한 병, 상비약을 챙겨두어야지, 아이고.

 

오프수업이 힘든 이유는 숨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책 뒤에, 이런 저런 에피소드와 인용 뒤에 숨을 수 있는 북리뷰나 칼럼과 달리, 오프수업의 주제는 피할 수 없는 . 괴로운데 왜 자꾸 들여다 보라 하는 건가. 고해성사인가. 관심병인가. 뭘 자꾸 파헤치라고. 나올 게 뭐 있다고. 그러다 진짜 나오면 어쩌자고. 이렇게 신경 써서 목을 가린 러플 블라우스와 카프리팬츠로 애써 활기와 당당함을 연출하고 간신히 겁 많은 나를 가려놨는데 왜 자꾸 벗으라는 건가. 뭐 벗고 싶을 때가 되면 벗겠지요. 왜들 이러세요, .

 

그때까지만 해도 슬쩍슬쩍 위험도를 보아가며, 변죽만 울릴 생각이었는데. 망했다.

 

창선배는 불쑥 찌르고, 오선배는 은근히 부추기고, 유선배는 슬슬 길을 닦아둔다. 조용히 물꼬를 따라 흘러나가도록, 세 명의 선생들이 작업 중이다. 내 인생의 세 가지 사건을 술술, 즐거운 마음으로 풀어놓을 수 있도록 성공사례만 줄줄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성공의 경험은 그저 기존의 나를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쉽다. 사실 나를 변하게 하는 경험은 뼈아픈 상실의 끝에 오지 않나.

 

우리는 이제 서로의 사연을 조금 안다. 데카상스 카페에서 미스토리 공개가 줄줄이 이어졌다. 나는 싫었다. 심지어 올려둔 동기들의 사연도 웬만하면 안 읽었다. 당연히 나의 미스토리를 끝까지 공유 안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 소용없는 짓. 오프수업은 미스토리로도 드러내지 못한 나를 들통나게 한다.  

 

피울이 물꼬를 텄다. 그런 거 진짜 안 할 양반으로 보였는데. 결국은 나도 오랜 시간  혼자 할짝대며 아물지도 못하게 하던 짓무른 상처를 드러내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내 안에 밀봉되어 있던, 진공상태로 보존되어온, 그토록 특별했던 나의 소중한 상처는 대기를 쐬자 삐적 삐적 물기가 말랐다. 그러더니 데면 데면한 얼굴로 뭐 별 것도 아니었잖아라며 나를 비웃는다. 그렇지, 뭐 별 것도 아니지. 이젠 무슨 핑계를 댈래? 하며 잔인하게 웃는 녀석. 이제 나는 도망갈 데가 없구나.

 

제대로 숙제도 못했으면서 엉뚱한 이야기로 시간을 잡아먹다 쿠욱 찔리고 나서,  처음으로 왜 오프수업을 하는 지를 조금 알 것 같았다. 회사 이야기 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한 박자 늦게 아, 하고 무릎을 쳤다.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다. 내 인생에 이런 시간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이 특별한 영혼들이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또 올 것인가?

 

희동과 구달과 어니언과 녕이, 왕참치와 앨리스, 에움길, 찰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다들 이야기했는데, 아 생각이 하나도 안 난다. 지난 신화 수업은 하나 하나 그 사연을 듣고 의미를 되새기는 즐거움이 너무 좋았는데, 이번 수업은 어찌 된 것인지 모든 것이 뭉뚱그려진 채 그냥 하나다. 그런데도 나는 이번 모임에서야, 우리가 진짜 뭔가 이야기라는 것을 나눈 듯 했다. 역시 혼이 좀 나야 배우고, 아파야 익히는 건가.     

 

후기는 사건의 충실한 기록이어야 할 텐데. 이번 수업의 회고는 정말이지 의식의 흐름을 어지럽게 따라가게 된다. 내가 쓰는 게 아니고, 독수리 타법으로 지나치게 발달한 내 중지들이 쓴다.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고, 아직도 쑤시는 척추의 통증이 나를 그 때의 감정으로 데려간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던 1 2, 온갖 감정과 생각이 소용돌이치던 하루 낮과 밤이 지나고, 이순신 장군의 묘역으로 다시 생각이 이어진다. 그 곳에서 남은 우리는 인간 이순신 장군의 고독을 이야기했고, 구본형 사부와의 첫 수업을 기억해냈고, 어니언과 콩두는 잔디언덕을 굴렀고, 나는 그들을 보며 4.19탑 사당 앞의 잔디언덕을 주구장창 구르던 어릴 적 생각이 나 웃었고, 눈 덮인 잔디언덕의 부드러움이 떠올라 그리워졌고, 사진 찍는 피울과 선배들의 도란 도란한 이야기를 들으며 통나무벤치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바람이 불었다. 내 몸 속까지 통과하는 바람. 며칠 전 씨름했던 오션** 크렌베리 주스의 광고 카피가 생각났다. ‘내 몸 속까지 시원하게, 크렌베리하세요!’ 광고주는 나름 새끈하게 빠졌던 십여 개의 카피들을 다 내던지고는 이 솔직하게 촌스런 카피 하나를 살려줬다. 그 결과 선택의 여지가 없는 비주얼과 전혀 매치도 되지 않는 카피가 어우러진, 이게 찌라시인지 광고인지 구분이 안 가는 어색한 작품이 하나 탄생하였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만든 광고가 맞나, 어이없어 하며 한참을 들여다 보았더랬다.


예상치 못한 수업의 흐름, 계획하지 않은 나의 행동으로 전혀 의도치 않은 장면을 만들고 돌아온 수업, 이 뼛속까지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핸들링할 것 인가. 욕망의 변경영 여신, 오*경 선배는 그랬다. 너 말고 아무도 신경 안 써. 그래서 덜고 시원해지는 거야. 그래, 내 맘 속까지 시원하게, 그래서 내가 이 짓을 하는 거구나.

 

내 맘속 까지 시원하게, 오프수업하세요~”        

 

  

IP *.104.21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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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1:55:57 *.104.9.210

이제 우리는 서로 사연을 조금 압니다.

근데 이걸로 뭘 어쩔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친해진 것 같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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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3:07:48 *.104.212.108

그니까요, 이번 수업 저 충격이 안 가신 듯. 좀 멍해요. 그리고 이제 좀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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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2:51:59 *.94.41.89

내 맘속 까지 시원하게, 오프수업하세요~”  

 

데카상스 오프수업 카피인가요? 앞으로 걸오놓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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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3:08:33 *.104.212.108

ㅋㅋㅋㅋ... 오프수업 카피 생각도 안 했건만, 웨버가 글케 얘기하니까 왠지 그럴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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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3:39:32 *.50.21.20

아옹 재밌다. 

큰 기대 가득 품고 1시간 기다려 들어간 맛집에서 따끈한 온반 한 뚝배기 천천히 떠먹는 후기였어요.

좋다니까요, 참말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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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7:34:27 *.104.212.108

흐흐흐... 뚝배기 한 그릇 같은 후기. 국물 같이 넉넉한 오프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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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4:24:48 *.219.222.34

오늘 후기 참 좋네...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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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7:52:08 *.104.212.108

목욜 회동에서 뜨겁게 함 조우합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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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7:32:41 *.113.77.122

자신을 내려놓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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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20:37:40 *.104.212.108

언제가 되든 우리는 워킹맘의 심리저변에 대해 아주 강도높게 인터뷰를 해얄듯요.... 인터뷰 신청 받아주실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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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8:59:06 *.7.45.3
내면으로 파고드니 예전에 알던 종종님 아니네....좀 낯설긴 해도 좋아요^^
내면여행 쉽진 않았을텐데...그래도 시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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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20:40:04 *.104.212.108

시원 섭섭 민망 허탈했지만.... 구달님과 눈감고 댄스는 넘 편안하여 스르륵 잠이 올 것 같았어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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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9 15:14:13 *.65.152.36

종종언니!!

저도 본의아니게 털어놓고나서는 몸이 아플정도로 힘들더라구요~~^^

이젠 괜찮겠지 했으나, 괜찮지 않은....

하지만 사랑하는 데카상스와 은밀한 무언가를 공유하게 된 것은 기쁜 일임이 확실한 거 같아요~~

언니랑 이전보다 가까워진 거 같아서 저는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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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14:25:52 *.62.178.124

공유의 기쁨. 나도 은밀히 느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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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01:52:54 *.124.78.132

오프수업 이후로 내내 머릿 속이 복잡했는데 종종언니의 글을 읽고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네요 ^^!

점점 저도 종종체의 열혈독자가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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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14:29:22 *.62.178.124

녕이도 복잡했지? 그날의 여파가 여러모로 크지만 뭔가 좋은 예감이 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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