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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7일 14시 16분 등록

MeStory(11) :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_1


1) 아버지, 어머니

친척들이나 고향 어른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 가면 나는 꼭 '지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라는 말을 듣는다. 거울 보면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제법 많이 닮은 듯 한데, 어르신들은 내 얼굴에서 아버지를 읽어내신다. 생김새와 피부색, 식성, 그리고 말하는 방식까지 나는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 외모를 제외하더라도 아버지가 어릴적에 내 롤모델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아버지가 딸에게는 슈퍼맨인 때가 있었듯이 내게도 그랬다.

나는 아버지와 생각하는 방식까지 닮았다. 아버지는 사극을 무척 즐겨 보셨는데, 나는 그 옆에서 사극을 같이 봤다. 그리곤 연속극 이야기와 함께 사람 사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의 사극들이 왕가의 권력다툼, 왕가의 여인들의 투기, 권력다툼, 권력자들의 권력다툼, 성공 등을 다루었고 그런 것들은 자연스런 이야기꺼리가 되었다. 권력의 다툼을 보면서, '왜 저사람을 살려둘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그러면서 '나라면 훗날에 화근이 안되게 죽여놓고 시작할껀데.'라는.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실지 그건 모르겠다. 


가끔 친구들과 분쟁이 있거나 동생들과 그런 일을 겪거나, 직장에서 누구와 어울리다가 뭔가 틀어지거나 하면 나는 곧장 제일 먼저 상대를 부수는 것을 생각한다. 그 다음에 그러면 안돼지라는 생각과 함께 앞뒤를 다시 생각하고 어떤 것이 일을 처리하는 것인지, 서로가 잘 되는 것인지를 생각한다. 잠깐 쉬어 생각하는 여유가 없다면, 난 늘 가장 쉬운 방법과 폭력적인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아니면 서로 안보고 살 것을 생각하든가 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정반대 성격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상보다는 주변을 챙기는 생각을 하신다. 아버지께서는 뭔가를 하고싶다 하실 때, 어머니께서 흔쾌히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부터 하셔서 시작하기 전부터 김을 뺀다고 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어머니께서는 '그래라. 너 알아서해라.'라는 말보다는 늘 차선을 내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이런 까닭에 내 성격에 어머니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줄 알았는데, 백산 오라버니가 아버지는 긍정으로 강화하고 어머니는 부정으로 지금의 성격을 강화시켰다고 일러주셨다. 한쪽은 부추기고 한쪽은 막아섬으로써 그 반발력을 강화시켰다고 말이다. 백산 오빠의 말을 들은 후에 내게 영향을 준 사람으로 두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몫도 무지 큰 것 같다. 


2) 초등학교 선생님

중학생때. 반 아이들이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많은 과목에 과목별로 선생님이 제각각이어서 많은 선생님이 계셨지만 난 선생님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 선생님을 좋아하지? 아이들을 따라서 나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어했지만 그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어서 되지 않았다. 초등학생때 나쁜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서 그 이후로 무턱대고 선생님이라고 좋아할 수는 없었다.

그당시의 선생님들 한 명 한 명을 나쁜 선생님들의 모습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나는 누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할 때 '왜?'라는 질문을 했던 것 같다. 1년 동안 나의 담임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그녀)와 나 사이에 개인적인 뭔가가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건 아닐까. 


국어선생님께서 가끔 웃기는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전혀 웃음이 안나왔다. 국어선생님은 어떤 여자가 얼굴은 희게 바르고, 입술은 빨갛게 하고는 치마를 입고 뾰족한 구두를 신고 이렇게 이렇게 걸어간다라며 손짓과 몸짓으로 말씀하셨다. 어느날 교무실에 갔다가 담임선생님 옆자리에 앉아계신 국어선생님께 수업 시간에 안 웃는 놈이 하나 있는데 그게 나라는 말을 들었다. 난 전혀 웃음이 안나오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나. 선생님의 그 이야기에서 나는 여성 비하가 느껴져서 기분이 나빴다. 


왜? 그 이야기가 우습지? 난 왜 기분나쁜 감정이 일었지?

왜?


왜? 나는 그 중학생 시절에 같은 반에 친구들처럼 어른 누군가(이때는 선생님)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아니 좋아하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사춘기가 되기 전에 겪은 어른과 나의 관계는 가까운 사람이라고 무턱대고 좋아하는 것을 막아준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내가 어려서 본 어른은 부모님과 선생님인데 그들은 그리 내게 자상한 것은 아니었고, 별로 합리적이지도 않았고, 공평하지도 않았다. 방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야단치고, 형제간에 싸운다고 야단치고,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매를 들고 때리고, 준비물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고 매를 들고 때리고, 뭔가의 실수에 욕을 하고는 했던 분들이었다. 당시의 어른들은 대부분이 그러했지만, 난 그걸 잘 못받아들였던 것 같다. 내가 어려서 맞는거지, 잘못했기 때문에 맞는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잘못했다고 해도 날 때릴 권리따위는 어른에게 없다고 생각했다. 같은 논리로 어른도 잘못하면 그러면 맞냐고 물어봤었다. 어른들은 잘못했다고 매를 맞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그 이후에 질문과 답은 계속 길어진다. 그것에 천천히 답하는 것이 귀찬아져서 대부분의 어른은 '시끄러, 어린 것이 뭘 안다고!'라고 나무란다. 그건 나무랄 일도 뭣도 아니고 잘 설명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순간 창피하다고 상대에게 소릴 지를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겪었던 어른들이 자신이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혹은 자신이 겪고 있는 그 일에  매번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맞선으로 만나게 된 남자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고, 육상.. 체육지도교사여서 어느날 통화하다가 아이들 잡들이한다길래 나중에 물어본 적이 있다. 안 때리면 안되냐고. 대답은 어떤 아이들은 말로 타이르면 낫고, 어떤 아이들은 매를 드는 편이 낫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가려서 매를 들면, 맞은 애들이 안 맞은 애들과는 달리 차별을 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냥 모두 매를 든다고 말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 가르치기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선생님인 자기가 차별하지 않았지만 차별했다고 좀 오해받고, 그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하면 안되나, 그걸 귀찮아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 사람은 5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우리반 아이들을 군대식으로 가르쳤던 것처럼 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왜?라고 질문하는 것은 사춘기 때부터 심해졌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아졌으니까.


3) 미순이와 승희

중2 때부터 사랑이 시작되었다. 나 외에 누군가를 더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난 그때 첫사랑을 했을 거다. 누군가가 보고 싶고 잠이 오지 않는 밤에 그 아이를 보러가고 싶어서 길을 나서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난 그때 첫사랑을 했던 것일 거다. 

미순이와 승희와 어울리려고 열심히 따라 다녔다. 우리는 용돈이 거의 없어서 만나면 서점에 갔다. 서점은 시원하고 다양한 책도 많아서다. 서점에 가면 각자 알아서 헤어져서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골라 읽었다. 읽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미순이와 승희는 문고판으로 나온 장편소설 한권을 읽어낼 정도로 빨랐다. 나는 한국현대문학 단편선을 읽었다. 2~3개를 읽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만날 때마다 본 것이 교과서에서(좀더 솔직히 말하면, '시험에서') 언급하는 단편소설을 대부분 다 읽게 된 것 같다. 무슨 의미인지를 몰랐지만 사람들 사는 모습, 감정들을 많이 엿 본 것 같다. 사소한 기쁨이라든지, 깊은 슬픔이라든지, 아이러니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승희와 미순이의 공이 크다. 잠언집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글을 좋아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 인 듯 하다. 혹시 책 읽는 버릇도 이때 들인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소설책이든 만화책이든, 로맨스 전집이든,  책을 많이 읽는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은 내게 큰 행운인 듯 하다. 친구따라 강남갔다. 친구따라 중2때부터 전주에 있는 제일 큰 서점에 다녔다. 서점이 놀이터가 되었고, 누군가 해주지 않은 이야기를 직접 찾아서 보게 된 것도 그때 책을 많이 보는 친구들의 영향인 듯 하다. 


4) 교회 대학부 선배들

어려서부터 다닌 교회여서 별 생각없이 계속 다녔다.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듯이, 교회의 주일학교 중등부 학생이, 고등부 학생이 되고, 그리고는 대학부의 청년이 되었다. 그리고 의례 그런듯이 선배들이 몇년동안 틀을 잡아놓은 대로 예배를 드리고 공부를 했다. 선배들이 어울리는 범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선배들이 잡아놓은 규정대로 행하고, 선배들이 짜 놓은 교육프로그램대로  학습이란 것을 했다. 당시에는 <철학에세이>라는 책이 학습 책 1순위였던 듯 하다. 무조건 첫책은 철학이었으니까. 그리고 신학책도 보았다. 그때 유행한 신학은 해방신학, 노동신학, 낮은 자들의 신학,.... 그런 것들이었다. 책 한두챕터를 같이 읽고, 한두명이 발제를 하고, 토론을 했다. 무슨 말들인지 모를 말들이어서 의문이 많았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는 그 책에 나오는 말들은 거의 들어본 적도 없고, 누군가로부터 직접적으로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도 없다. 교회 대학부 청년들이 하는 말을 교회의 당회실의 목사님과 장로님, 권사님들은 못마땅해 하셨다. 


당시엔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좀 불편하다, 이상하다고 느꼈었다. 요즘 읽고 있는 홍세화씨의 말대로라면 그때 생각이란 것을 좀 한 것 같다. 외부에서 주입하는 생각과 내 스스로 판단하는 것 사이에 괴리감 같은 것 말이다. 당시에는 경험이나 책을 읽은 것이 부족하여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내게 뭐라고 하는 사람의 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미묘하게 느끼는 그런 순간을 접한 것이다. 


초기에 1학년의 학습을 맡았던 선배는 88학번 선배였는데, 노동과 분배의 문제를 공부하다가 내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셨다. '네가 경영자라면 어떻게 할래?'라고. '내가 너무 많이 갖나요? 그럼 내가 좀 덜 갖고 임금을 올려주면 되나요? 이정도면 되나?' 그 질문과 답이 적절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책으로 보는 내용이,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교회 대학부 청년부 선배들 중에 멋진 선배들도 많았지만,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때도 많았다. 젊은 집단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 그 시대의 기독교 사회집단이 갖는 특징들을 갖고 있어서 '왜?'라는 질문이 많았다.

'왜, 여자는 회장이 되면 안돼요? 꼭 남자만 회장 해야 하나요?'

'이번에 농활에 제가 꼭 장구쳐야 해요? 여자는 꼭 장구 배워야해요? 남자가 하면 되잖아요? 난 배워도 늘지도 않는데......'

'왜, 여자는 남자를 따라가야 하는 거죠? 왜 남편이 죽은 여자는 죄인인가요?'

'왜, 선배는 담배 피면서 후배는 여기서 담배 피면 안돼요?'

'왜, 선배 말고 오빠라고 부르라고 해요?'

'선배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내가 꼭 선배 말 들어야 하나요? 나이 말구요, 다른 이유요?'

'왜, 동아리 활동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왜, 금희언니는 학교에서 하는 노래패 빠지라고 하나요?'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 기적을 그대로 믿어야 해요, 아니면 다른 해석을 해야 하나요?'

'왜, 일요일에 일하는 사람은 죄인인가요?'

'기독교인은 술마시면 안된다고들 하는데, 목사님은 우리 청년들이 술마시는 거 싫어하고 뭐라고 하시는데, 엄마도 먹지 말라고 했는데, 선배는 왜 내게 술을 권해요?' 


이런 내 질문에 모두 적절한 대답을 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대답하려고 애를 썼고, 그러면서도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내게 다시 질문을 해준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의문에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이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를 질문하고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는 아무나 누리는 행운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이런 행운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었던듯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축복이지만, 그 이후 내 인생 사회생활(직장생활)에 너무나 높은 이상향을 제시한 것이 되어버렸다. 대학생활 한때 청년시절에는 허용되었던 것들이 사회에서는 그 반대로 작동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때 했던 수많은 질문을 직접 다른 현장에서 하면서 눈총을 받는 것이 얼마나 허다한가. 


그렇지만 돌이켜보면서 그때의 인연을 감사드린다. 혈기왕성하고, 이상에 충실하고, 풋풋하고 어리숙한 인연들이 괜찮은 이정표가 되어주어서 지금, 이렇게 방황하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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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9 11:07:29 *.244.220.253

 

중2에 첫사랑이라...

생각보다 정화가 빨랐구나!

 

Me-Story, 재미있게 잘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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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9 14:30:02 *.39.145.123

다들 그때쯤에 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  

나는 다만 TV 속 연예인이 아닌 실체가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행운을 얻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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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01:50:16 *.124.78.132

선배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도 이것저것 옛 추억이 생각이 났습니다 ^^

왜 이다지도 잊어버리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들조차 이제는 아련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감사하게 생각되기도 하네요.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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