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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9일 11시 59분 등록

제목: 워킹맘이여, 죄책감을 다시 디자인해라

부제: 죄책감 있는것일까? 없는것일까?



서문 -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지금 응급실로 가고 있다. 할머니가 숨을 잘 못 쉰다.” 시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남편을 깨워 부리나케 응급실로 향했다. 가는 동안 형제들에게 연락을 하고, 마음속으로 별일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시어머니는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제까지도 친구 분 병문안 다녀오시고 잠을 주무신 것인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수가 있지? 시어머니의 소원대로 주무시다가 그냥 돌아가셨다. 딱히 편찮으신 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돌아가셨다.

분가한지 딱 6개월만의 일이었다. 그 때는 분가하고 정신이 없었던 차였다. 분가의 기쁨을 누릴 사이도 없이 그 동안 부모로서 하지 못한 공백이 뻥뻥 뚫려 있었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해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스스로 하려고 하기보다는 누군가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이모가 봐주기 시작하면서 집안일이며, 아이들에 대해서도 일일이 알려주어야 했고 남이 보게 되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회사는 하던 사업이 정리가 되어서 근무지가 서울에서 수원으로 바뀌고, 같이 일하던 부서원들과도 뿔뿔이 흩어져 새로운 부서에서 새롭게 시작을 해야 했다. 같은 회사 내에 사업부를 옮기는 것이었는데 마치 다른 회사로 입사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승진에서도 누락되고 고참으로 부서를 옮기다 보니 부서의 적응도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회사나 집 모두 정신이 없이 다시 새롭게 정비를 하던 때인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아이며, 집이며, 회사며 내가 그동안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다 무너져 버린 느낌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그동안 일을 했나 하는 회의감과 더 충격이 컸던 것은 시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다들 시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에 경황이 없었는데 더 놀란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10년 동안 할머니와 친하게 지냈는데 할머니와의 빈 공간을 다른 어떤 것으로 채우기가 어려웠다. 간헐적으로 보이던 아이의 야뇨증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약은 먹을 때 그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했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상담소를 권유해서 상담소에 가보았다. 아이에 대해서 심리 검사를 한 후에 내린 처방은 엄마와 아이와 함께 하시는 게 좋겠는데요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왜 아이의 문제인데 엄마까지 같이 해야 해요?” 라고 물었더니 그래야 아이의 상태가 빨리 호전될 수 있어요. “ 하는 것이다. 시간당 내는 상담비용이 부담되어서 아이만 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 상담소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일단 같이 시작해보기로 했다. 초기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갔다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2주일에 한번, 한 달에 한 번씩으로 횟수를 조절해가면서 1~2년을 다녔다. 아이들은 그동안 사립 초등학교에서 일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고, 학원을 다니던 것도 중단을 하면서 스스로의 시간과 친구들과의 놀이 시간을 늘렸다. 부모와 자식 간의 시간을 더 갖기 위해 주말에는 인라인이나 자전거를 같이 타고, 방학 때는 여행을 떠났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출퇴근 거리가 멀어지면서 내가 육아를 거의 책임지던 방식에서 남편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변화가 이루어졌다. 아이들도 서서히 얼굴 표정이 밝아지고, 자신들의 생각이나 표현이 점점 더 많아졌다.

상담 소장님이 나한테 그런데 다른 워킹맘들에 비해서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나, 엄마로서의 죄책감이 더욱 심하신 것 같아요.”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워킹맘들도 다 그렇지 않아요?“ 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말이 낯설게 느껴졌는데 상담을 계속하고, 관련 책들을 보고, 나를 돌아보면서 하나둘씩 나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워킹맘으로서 내가 갖고 있는 잘못된 죄책감’, 오랜 회사 생활로 나도 알지 못하게 익숙해진 회사 습관’, 좋은 엄마 콤플렉스,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내면아이’, 무의식속에 살아 있는 나의 엄마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있는 워킹맘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마음속 깊이 죄책감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의 실체들을 하나씩 보면서 나를 이해하게 되고, 그동안 아이들과 엄마라는 부모-자식관계 속에서 얽혀있던 워킹맘에서 오롯이 나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문제는 부모에게서 온다. 나도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상담소를 다니면서 아이 자체가 바뀐 부분도 있지만 부모가 바뀌면서 아이가 서서히 바뀌는 부분이 많아지고, 관계가 좋아지다 보니 하나둘씩 해결이 되었다.예전에는 남편이 먼저 바뀌길 원했고, 아이들도 엄마의 말에 따라 바뀌길 원했다. 그래서 늘 남 탓이 많았다. 남편이 안 도와줘서, 아이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않아서…… 하지만 시작을 나로부터 바꿔보았다. 그랬더니 남편도 바뀌고, 아이들도 바뀌었다.

상담소를 다니면서 많은 엄마와 아이들을 보았다. 상담소의 대부분은 워킹맘이라고 한다. 아빠들은 상담소에 오는 것을 꺼려하니 대부분은 맞벌이인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서 돈은 벌었지만 잃어버린 것이 있었다. 어릴 때는 보이지 않고 잘 몰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괜찮다. 허둥지둥 살아가는 삶에 쉼표가 하나 주어졌다고 생각해보자. 관점을 달리 보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이다. 쉼표가 2분 쉼표가 될지, 4분 쉼표가 될지 그건 개인마다 다르고, 쉼표를 무시하고 가려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현재의 문제를 인정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을 수 있지만 인생의 문제는 결국엔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것이 삶인 것 같다.

 


     힘들 때 책에서 위로 받고 일을 계속 해 왔듯이 다른 워킹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하나씩 정리를 해갔다. 워킹맘 혼자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이 아닌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동료들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책을 쓰면서 워킹맘으로서 쌓였던 마음의 짐의 보따리를 풀면서 잘못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출근할 때 마다 울며불며 하던 아이들도 어느 덧 자라 이런 엄마를 응원한다. 엄마가 아이 옆에 없으면 안 될 것 같고, 큰일 날 것 같았는데 이제는 친구들도 사귀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 아이들도 자신의 날개를 달고 자신의 날갯짓으로 둥지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워킹맘의 죄책감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자. 죄책감이 있는 것일까? 죄책감을 내어보여줄 수 있는가? 보여줄 수 있는 실체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제는 잘못된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이해하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워킹맘들이 행복한 워킹충분히 좋은 엄마로서의 삶을 느끼면서 살아가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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