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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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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6일 11시 58분 등록

한동안 철갑을 두르고 산 세월이 있었다. 그것이 '또 다른 상처'로 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고 그렇게 꼿꼿하고 완벽하니 남자가 접근을 못하는 거야!”했다. 나처럼 허점투성이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 여기에 단점을 더 추가시키라는 말인가. 허술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한 행동들이 완벽주의자처럼 보였나 보다. 이런 제기랄! 그럼 저 칠칠 맞아서 질질 잘 흘리고요. 먹은 것은 항상 티를 내고 다닙니다. 사람들을 잘 믿어 뒤통수 맞고 혼자 끙끙 앓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잘 챙기지 못하고 마음만 먹고 실행력 부족의 난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나의 단점소개서를 가슴에 붙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세상을 어느 정도 산 사람이라면 내 웃음 뒤로 보이는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내공은 있어야 할게 아닌가?

철갑을 두르고 살았을 때는 누군가 호감 어린 눈빛을 보내도 도도하게 곁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간절함으로 바뀌니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대략난감! 이팔청춘 꽃다운 나이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을 만나지? 소개팅, 미팅, 길거리 캐스팅은 1~20대의 전유물이 아닌가?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정보회사를 찾는구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왠지 꺼려지는 결혼 정보회사! 안그래도 홧김에 한 번 등록했다가 다음 날 바로 취소한 기억이 있었다. 그 뒤 끈질긴 회유의 전화를 아주 오랫동안 받았다. 내 얼굴 한 번 보았을 뿐인데, 나의 재혼에 이리 관심이 많을 줄이야!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곳이 이곳뿐인 현실이 서글프구나!

나는 사랑과 연애와 결혼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 셋은 삼둥이처럼 항상 함께 한다. 그래서 누굴 만나는 것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래 그럼 결혼을 덜어내고 보자. 일단 사람을 보고 생각하자. 이렇게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변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현실은 암담했다. 뉴스에서는 이혼률이 40%에 육박한다고 떠들어 대는데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같은 상황의 사람을 만나기를 원했다. 서로 부여안고 있는 상처에 마데카솔 발라줘가며 호호 불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에 혼자 된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굳이 내세우고 다닐 이력은 아니지만 적어도 꽁꽁 숨겨야 할 사실도 아닌데 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지인들의 조언에 따라 함구령을 철저히 지키고 다녔다. 이 사회는 아직 보수적이니 그런 일로 도마 위에 오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조언이니 그리고 세상을 잘 아는 사람들이 해주는 말이니 한 번 따라보자. 그 뒤 나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남들이 모르는 나의 헤어짐을 굳이 밝히지 말자고 결심했었다. 3년 동안 입 꾹 다물고 생활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처럼 타인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직업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다 조금만 낯을 익히면 무조건 호구조사부터 하려 들었다. “남편은 뭐해요? 애는 몇이에요?” 그 전에 나도 아무 생각 없이 해대던 질문들이었는데, 여러 사람 난처하게 만들었겠구나! 싶었다. 그런 질문에 사실이 아닌 답을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얼렁뚱땅 얼버무리는 대답을 하던가,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리든가. 이런 생활이 지속될수록 나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내가 부끄러운 짓을 한 것도 아닌데, 굳이 이 사실을 숨기며 살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이고, 또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마음이 아팠고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 선택에 대한 후회나 부끄러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챙기는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더 이상 나와 사람들을 속이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적당한 자리가 마련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것이 내 인생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인 생이고 내 선택이다.’ 후련함과 자유로움은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했지만 곧 내성이 생겼다. 그리고 한 손에 두 가지를 쥘 수 없다는 것은 진리가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아직도 함구령주의보가 해제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40%의 이혼률에 사별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을 텐데 말이다.

IP *.255.24.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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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16:49:32 *.70.27.42
오호~ 본격적인 책쓰기에 돌입하셨군요. 주제가 잡히니 글이 술술 풀리는 느낌 좋네^^

"호호 불어주고 싶었다" 이 대목이 참치를 잘 나타내는 감동의 장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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