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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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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일 09시 13분 등록


그 남자

정말 좋은 여자가 있는데 만나볼래?’ 누이의 말이 있었습니다. 벌써 두 번째 듣는 이야기 입니다. ‘세상에 좋은 여자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신중하게 권하는 누이의 말에 조금의 호기심과 기대치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관심 없는 척 하면서 한쪽 귀를 열어놓고 중요한 이야기는 다 들었습니다. 사실 1년전부터 맥주 한잔 할 때 말 통하는 친구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아 들었습니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톡을 보냈습니다. 잠시 후 답신이 왔습니다. , 그런데 이 여자 톡에 실린 내 사진을 보고 취미를 금방 알아맞힙니다. 호기심이 조금 더 커졌습니다. 원래는 내일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술 기운에 용기를 내서 오늘 밤에 만나자 했습니다. 그것이 상식적이지 않고 무례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치만 졸랐습니다. 그리고 우겼습니다. 몇 번의 문자 요청과 한 번의 통화 끝에 그 여자의 집 앞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마지못해 나오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좋은 여자에 대한 호기심과 의구심을 빨리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악수를 청했습니다. 잡은 손이 작았습니다. 그리고는 술 한잔을 더 하자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차를 마시자고 합니다. ‘카모마일그 여자와 내가 처음으로 마신 차입니다. 시선이 자꾸만 찻잔으로 향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누이의 선보라는 소리가 귀찮기도 하고, 이야기 속의 그 여자가 궁금하기도 해서 바람같이 달려왔는데 이제와 정신이 드는 조화는 뭘까요? 초면에 이 실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처음 보는 여자를 그것도 술에 취해 밤 10 20분에 만나러 오다니…. 그런 나를 만나러 온 그 여자도 정상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 이 당황스러움이 묘하게 기분을 편안하게 합니다. 그래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여자는 두서없는 말을 침착하게 잘 들어줍니다. 심지어 웃기까지 합니다. ‘나도 억지로 나왔으니 그만 만납시다. 인연이 아닌 것 같네요라는 말도 준비해 왔는데 목구멍 속에서 저 밑으로 꺼져버렸습니다. 문 닫을 시간이 되어서 카페를 나왔습니다. 인사를 하고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택시 안에서 계속 톡을 보냈습니다. 귀찮을 법도 한데 꾸준히 답장을 보내주는 그 여자가 또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원래 만나기로 한 내일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오케이 답장을 받았습니다. 집에 가서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그 여자와 82일 만에 한 이불을 덮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년째 그 여자가 해주는 밥을 먹고 출근을 합니다. 그 여자는 나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차분하고 말을 잘 들어주던 그 여자는 점점 잔소리꾼이 되어갑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지만 가끔은 짜증이 납니다. 처음 만났을 때 다소곳하던 그 여자가 그립기도 합니다. 이 일을 어찌 할까요?

그 여자

처음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내키지 않았습니다. 제일 싫어하는 직업군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친한 언니로부터 조심스레 건네 받은 말에 알겠다고 했습니다. 들어오는 선을 다 보겠다는 스스로 정한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느 날 문득 톡이 왔습니다. 전해들은 그 남자의 이름입니다. 얼굴도 보지 못한 남자의 카톡이 낯설어 사진을 보고 운동을 좋아하냐고 물었습니다. 반색을 표하는 그 남자에게서 외로움이 물씬 느껴졌습니다. 몇 마디를 주고 받고 내일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에게서 밤에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만나자는 것입니다. 분명 술자리에서 우발적으로 생긴 개끼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거절을 했지만 그 남자는 막무가내입니다. 친한 언니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한판 싸우고 끝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남자들이 함부로 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유독 남자에게만 나오는욱하는 성격이 발동이 걸릴 지경입니다. 마지못해 집 앞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옷을 입고 나가는데 분이 풀리지 않습니다. ‘화를 낼까? 뭐라고 해야 하나?’ 처음 겪는 상황에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5분 정도 걸어가면서 심호흡을 했습니다. ‘오죽 답답하면 이 시간에 왔을까?’ 분노가 동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먼 발치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습니다. 그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에게서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깊은지 고름 냄새가 납니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 스스로 할퀸 상처에 겨우 붕대를 감아 놓았을 뿐입니다. 인사도 하기 전인데 그 사람의 아픔이 전달되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눈인사를 하고 악수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카페로 갔습니다. 의외로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합니다. 생각보다 많이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의가 바릅니다. 소탈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습니다. ‘나를 뭘로 생각하고 이리 무례한 짓을 하느냐?’는 말은 그 남자의 정직한 모습에 허공에 흩어졌습니다. 30분 정도 흘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택시를 태워 그 남자를 보냈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울리는 카톡은 그 남자의 외로움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귀찮은 일이었지만 일일이 답장을 보냈습니다. 내일 다시 만나자고 합니다. 그날 밤 잠을 설쳤습니다. 만남이 기대되어서가 아니라 그 남자의 아픔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는 몇 년 전의 나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만난 그 남자와 82일 만에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도 남편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겠던 그 남자. 어느 순간부터 한국말을 해도 외계인의 말처럼 들립니다. 그 남자가 이 남자 맞나요?

IP *.38.11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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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2 13:23:58 *.196.54.42

음~ 그 이야기가 이렇게 작품으로 살아날 줄은....^^

만남이란 인연을 불러오고 땅속줄기같은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겠죠^^

 

책 차례 만드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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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3 10:27:57 *.255.24.171

오늘부터 해야죠.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집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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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2 19:06:06 *.143.156.74

좋네요. 독자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위로받는 법이지요.

Keep Writing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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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3 10:29:14 *.255.24.171

항상 감사합니다.

이렇게 흔들리며 가는 것 같아요. 먼저 책을 내신 분들을 존경하기로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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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5 01:17:26 *.38.189.36

이런 패턴으로 책을 써도 좋긴 한데 (그 남자, 그 여자의 두 번째 결혼)

지난 번에 말한 것처럼 재혼가족의 아이와의 관계로 좁혀서 가족심리처방으로 써보면 어떨까?

새엄마를 부탁해, 재혼가족의 시련과 성장 이야기

쯤으로 제목과 부제를 정하고

다양한 고민과 사례를(물론 본인의 이야기도 들어가야겠지) 통해 재혼가족, 특히 아이와의 관계를 잘 풀어가기 위한 노하우, 십계명, 심리/현실적인 처방을 소개하는 책으로 포지셔닝해보자.


괜찮은 책을 한권 찾았다. 상처입은 가족을 위한 심리학.

이혼가족을 다루고 있는데, 그대 책은 이 책을 참조하여 재혼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그럼, 계속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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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5 11:15:27 *.7.52.180
감사합니다. 책 잼나겠어요. 오늘 사갖고 들어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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