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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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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일 22시 04분 등록

내가 경쟁이라는 단어에 약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는 바로 중학교 2학년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전학 온 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굉장히 살가운 성격에 단숨에 친구들을 사귀었고 얼굴도 예쁘장해서 사모하는 친구들도 여럿 생겨났다. 나 또한 그 친구와 매우 친해졌다. 밝고 활발한 성격 때문에 우리는 잘 통했고, 나의 덤벙거림을 그녀가 잘 감싸주면서 나 또한 그녀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사이는 1학기 기말고사를 치고 나서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갑자기 1등을 차지한 것이다. 기뻐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나는 박수를 쳐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못내 상했다. 계속해서 친하게 지내면서도 같이 공부하자고 하면 피해 다녔고, 남몰래 일기장에 1등 탈환을 위해 절치부심하는 내용들을 써내려 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친구들과 잠깐 떡볶이를 먹고 학원 독서실로 돌아왔는데 무언가 분위기가 싸한 것이 느껴졌다. 그녀 주변으로 친구들이 쑥덕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에게 잠깐 이야기를 하자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약간 격앙된 목소리의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어떤 친구가 독서실 책상의 내 수첩에서 내가 그녀를 이기고 1등을 하자. 라고 써 놓은 글귀를 보았다는 것이었다. 순간 아차 싶으면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내 딴엔 공부를 소홀히 하는 나에게 채찍질을 가하고자 낙서처럼 쓴 글이었는데 그녀는 내가 자신을 그렇게 경쟁자로 생각하는지 몰랐다면서 어떻게 친구 사이에 그럴 수 있냐고 크게 화를 냈다.

그 이후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내가 그 친구와 연락하고 있는 것을 보아 우리 사이는 예전처럼 돌아 갔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누군가를 나의 경쟁상대로 바라보는 것을 회피하게 되었다. ‘쟤를 이겨봐야지라는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그 친구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와 경쟁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특정 타인을 지칭하며 이뤄지는 것은 왠지 껄끄럽게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친한 사이가 되면 더더욱 그러했다. 경쟁자라는 생각이 들면 의식적으로 친하게 지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경쟁을 회피하는 경향이 늘어났던 것 같다. 아마 경쟁을 하고 있으면서도 의식적으로는 경쟁이라는 글자를 떠올리는 것을 터부시했을지도 모르겠다. 스트렝스 파인더의 가장 처음 단어가 경쟁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무언가 검사가 잘못된 것이라며 계속해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었으니 말이다. 아마 나 외에 많은 사람들도 경쟁이라는 단어가 떠올리면 괜히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하고 불쾌감이 들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경쟁을 누군가를 쓰러 뜨려 이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또한 경쟁에는 반드시 승패가 있어 승자 아니면 패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도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쟁이 우리 사회에, 특히 우리 현대인들에게 왜곡되게 받아들여졌다고 이야기한다. 무한 경쟁하는 사회 속에서 오히려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계속해서 성장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에너지를 주기도 한다. 희대의 운동 선수나 전설이라 불리는 가수들의 경우 그 라이벌이 있어서 더 성장할 수 있기도 했다. 내 또래 세대가 HOT를 더욱 찐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라이벌이던 젝스키스가 있었고 그래서 치열하게 아이돌 팬클럽 활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또한 현재 내가 다니던 회사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쟁쟁한 라이벌이 계속해서 나타났던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내가 입사할 무렵, 나는 늘 제 1위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한 분석들을 해야 했고, 1위에 등극하자 그 이후에는 압도적인 1위가 되기 위해 다른 경쟁사들의 분석을 해야 했다. 새로운 경쟁자들이 나타날 때 마다 우리는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또 그들에게 대응을 해나가면서 또 다른 힘을 얻기도 했다.

 

경쟁에 대한 책을 읽어나가는 요즘, 책을 읽을 수록, 내가 경쟁을 회피하려 했기 때문에 내가 멈추게 되었구나, 그리고 지치게 되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배움그리고 성장에 대한 욕구가 큰 나는 늘 내가 발전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낄 때 가장 행복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업무 강도가 세면서도 배울 것이 많은 부서로의 이동은 고려치 않았다. 결혼도 해야 하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도 많은데 그 부서에 있는 사람들처럼 개인적인 생활이 전혀 없는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매너리즘을 느끼는 와중에서도 그렇게 업무강도가 세기로 유명한 부서로의 이동을 고려하기 보다는 그나마 일이 익숙한 현재 부서에 계속 남아있게 되었던 것 같다. 역시 바쁘기는 하지만 현재 부서의 일은 손에 익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빠르게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서에 가면 당분간은 또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싶지가 않았다. 현재 부서에서도 분명 도전적으로 업무를 해야 할 영역이 있었으나, 가급적이면 일을 벌리고 싶어하지 않아했고 시키는 일 외에 다른 일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시간이 많으면 더 게을러진다고 하던가, 그렇게 나는 게으름 속에 침잠하며 도태되는 내 자신을 눈치 챘다. 어느새 늘 제자리인 내 자신이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감을 잃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또한 나는 친한 부서원들과의 경쟁을 가장 어려워하기도 했다.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내가 먼저 승진을 하거나 좋은 기회를 얻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부서의 누군가 승진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번에 고과를 좀 적게 줘도 이해해달라고 상사가 이야기하면 그것이 억울하기는 하면서도 순순히 받아들이기 일 수 였다. 그렇게 계속 제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이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동기들은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비전을 뚜렷이 밝히고 때로는 그것이 분란을 일으키더라도, 심지어 태업을 하면서 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내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스스로가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설령 그것이 이뤄지지 못하게 되었을지라도 내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란다. 나 또한 스스로에게 가장 답답한 것은 3년 전의 고민이 5년 전의 고민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것의 주된 이유는 내가 나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도전적인 상황에, 경쟁 상황에 나를 던져놓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내게는 다른 중요한 일들이 있다고 외치며, 내가 노력해야 할 상황을 자꾸 회피하려고 했기에 그만큼 발전이 없었던 것이다.

 

경쟁은 사람에게 일정 부분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경쟁 후에 패자 또한 경쟁의 과정을 통해서 얻는 배움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성공이든, 실패의 경험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젊을 때는 뭐든지 부딪치고 해보라는 어른들의 말씀도 다 이에 근거한 일일 것이다.

 

경쟁을 정면 돌파하고 이를 통해 성장하는 하루하루를 살았더라면 어쩌면 나는 경쟁을 즐기고, 또 경쟁 속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다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를 조금 더 많이 도전적인 상황에 노출시키려고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분명 배움이 있을 것이며, 실패는 어릴 때 더 많이 해보면 좋다고 하질 않는가? 삼십대여. 어제 보다 나은 우리가 되기 위해, 그래서 하루하루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우리 스스로를 만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경쟁을, 승부를 두려워 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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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3 09:11:45 *.70.26.194
1등은 속이 편할줄 알았는대 나름의 고충이 있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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