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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3일 04시 56분 등록
URI-com은 1995년 내가 부산세관에 근무할 때에 몇몇 동료들과 만든 컴퓨터 동아리 이름이다. 같은 세관에 근무를 하면서 컴퓨터에 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해주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간단한 문제야 혼자 알아서 해결했지만, 한계를 넘어가는 문제를 같이 해결하다보니 서로 친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가 지금처럼 전부는 아니었다. 한참 보급되기 시작한 도구였고, 인쇄소에서 나올 정도의 문서를 직접 자기가 만든다는 매력도 있었다. 스스로 독학을 하여 컴퓨터를 조금 잘한다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 있었다. 대체로 성격이 좀 특이하고 괴팍하였지만, 컴퓨터에 대한 열정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남달랐다. 이들이 점점 소문을 타게 되자, 부산세관을 비롯한 산하 세관의 굵직한 문제들과 업무와 관련된 대량의 통계 처리 방법, 그리고 각종 감사에 대비한 많은 자료들의 처리 문제로 일은 끊이질 않았다. 일과 컴퓨터 관련된 부가적인 일을 하며 바쁘게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이 공부를 더 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동호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막상 동호회 차원으로 운영을 하려고 하니, 가장 시급한 문제는 동호회 창설멤버들의 실력이었다.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귀동냥해서 얻은 것과 여러 차례 현장 문제 해결식으로 쌓아온 실력은 정확히 검증되지 않았고 그냥 컴퓨터를 잘한다는 평만 받았다. 동호회원들이 서로 모일 수 있는 장소도 없었고 제대로 된 컴퓨터를 장만하는 일도 일이었다. 급한 대로 아침에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을 하여 창설멤버 다섯명이 학습을 시작하였다. 제대로 된 교재도 없었기에 컴퓨터 관련 잡지와 프로그램 매뉴얼 등을 주요 교재로 하였다. 직원들의 교육도 조금씩 시작하였다. 6개월 정도 운영을 하다 보니 여러 불협화음들이 들려왔다. 우선 일과 공부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였고, 5명으로 시작된 초기 창설 멤버들의 독특한 성격도 서서히 대립양상으로 변해갔다.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때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들이 모일 별도의 독립된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안의 공간을 살펴보다가 창고로 사용하던 사무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담당 과장님의 허락을 얻어 버릴 것을 버리고 정리를 하여 책상을 갖다 놓고 임시로 동호회 사무실을 개설하였다. 컴퓨터는 집에 있는 것을 가져와서 대충 동호회 형식은 갖추었다. 문제는 PC였다. 명색이 컴퓨터 동호회에 변변한 컴퓨터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 가슴이 아파왔다. 당시 컴퓨터 환경은 운영체제는 MS-DOS5.0과 윈도우 3.1이 새롭게 나오던 시기였다. 컴퓨터도 386 CPU에 RAM 256M, 하드40M Byte정도였다. 지금 보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지만 당시 100M Byte가 넘는 하드 드라이브를 컴퓨터에 달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어차피 살 것이라면 돈을 조금 더 내어서 미리 사서 배우는데 투자를 더 하자고 해서 회비를 각출하였다. 최신 486 PC와 컬러프린터를 한 대 장만하였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영화를 보고, 사진을 뽑아든 순간 세상이 부러울 것이 없었다.

동호회 창립에 필요한 준비를 마치고 조촐한 창단식을 가졌다. 초기 회원이 약 40여명이 되었다. 그 당시에 대부분 테니스 동호회나 축구 동호회 등 스포츠 관련 동호회가 대부분인 가운데, 컴퓨터 동호회는 나름대로 특이하였고 비싼 돈을 들여서 학원을 다녀야했기 때문에 직원들의 호응도 높았다. 사무실이 생기고 정식으로 동호회가 발족되면서부터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회원들의 강좌와 우리들 스스로 배우는 것이 중복되었고, 회보를 발간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즉각 실행에 옮겼다. 회보는 컴퓨터 관련 새로운 소식과 하드웨어 설명, 그리고 프로그램 사용법과 간단한 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계간지 형식으로 나와도 역시 일이 만만치가 않았다. 이렇게 1년 6개월을 지속하였다.

가장 힘이 들었던 것은 컴퓨터를 배우려고 첫날에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고, 기관장들의 관심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정작 힘들었던 것은 창립 멤버가 인사이동으로 떠나고, 바쁜 업무를 핑계로 서서히 자신의 일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2년 정도가 지나고 나니,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주로 운영체제와 워드, 엑셀 등 응용프로그램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고, 내 후배는 데이터베이스 위주 프로그래밍을 담당하였다. 다른 사람은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후배는 계속 DB프로그래밍을 배워서 직업을 바꾸고 싶어 했고, 나는 공무원의 영역 안에서 유용한 도구로 컴퓨터를 배우고 싶었다. 둘 사이의 관계가 시들해질수록 회원들의 참석과 열기도 시들해져갔다.

프로그램의 진화가 사람의 배움의 속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한참을 배워야만 하는 기능들이 몇 개의 키 조작으로 가능해지고, 하드웨어의 발전은 여러 가지를 쉽게 구현하게 해주었다. 끝내 우리컴은 창단한지 2년 6개월 만에 해체되고 말았다. 2년 6개월간의 열정과 일정을 고스란히 뒤로 하고 간판을 내렸다. 부서가 바뀌어서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하여 도저히 모임에 참석을 할 수가 없었고, 둘 사이의 맹맹한 관계도 동호회의 불을 다시 지피는데 힘들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다시 새로운 출발이었다. 내 후배는 계속 DB 프로그래밍을 배워 몇 년 후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벤처회사를 설립하였다. 지금도 자신의 회사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컴퓨터에 대한 열정이 많았고, 도전하기를 좋아하였고 끝내 본인이 원하는 길을 걷고 있다. 공직을 그만두고 나온 그만의 방식도 좋아한다. 나도 프로그램에 대한 공부를 더 했더라면 후배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젊은 날, 내 마음을 3년 동안이나 끓어 넘치게 하였던 우리컴을 거의 잊고 살았다. 다시 우리컴이라는 이름이 떠오른 것은 안철수의 영혼이 있는 승부를 읽으면서 부터였다. 우습게도 내가 그 당시에 고민했던 문제에 대한 답을 운 좋게도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당시에 그냥 묻어놓았던 문제들이 고스란히 다시 살아왔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은 바로 장기전으로 가는 것이었다. 너무 동호회의 성과에 치중하고 단기전에 집착을 한 것 같았다. 회원들의 참석보다는 요구와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도와주었어야 했던 것 같다. 참석율에 고무되고 적게 오면 실망한 적이 많았다. 안철수 사장은 장기전에 대하여 이런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영리하고 빠른 조직과 느리더라도 건강한 조직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느리더라도 건강한 조직을 택할 것이다. (120p)


뜨거운 열정을 바로 화산처럼 분출하기 보다는 건강하고 느린 조직이 되기 위해서 안분을 해놓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에는 노력하는 부분이었다. 컴퓨터를 좋아한다고 현실에 안주하기 적당한 어정쩡한 자세였고 치열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꾸준하면서도 절실한 배움이 절실하다. 책 마지막 부분에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목에서 안철수 선생님의 노력하는 자세를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에서 배웠다고 한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미리 남보다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제 오랜만에 후배와 전화통화를 했다. 안철수와 같이 커다란 벤처회사는 아니지만, 부산에서는 기반을 잡고 서서히 도약하는 단계에 있다고 한다.
우리컴에 쏟아부었던 열정을 다시 찾아서 기뻤다.
다시 살아난 불꽃이 다시 한번 뜨거울 수 있는 그것을 기다려 본다.
IP *.118.10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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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9.03 14:46:10 *.93.113.61
영훈의 기질과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구나.

항상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모습에 감동받는다.

그것의 너의 매력이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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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9.03 14:47:39 *.249.162.56
'젊은 날, 내 마음을 3년 동안이나 끓어 넘치게 하였던 우리컴' ... 글을 읽으면서 제 가슴을 뜨겁게 했던 기억들을 더듬어봅니다. 그런 추억이 부족하다면 다시 한번 불을 붙여 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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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9.03 16:47:12 *.70.72.121
의지력 대단, 체력 대단, 술과 담배를 조금 먹어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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