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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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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6일 10시 44분 등록
걷는 것은 기분 좋다. 내가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진리다. 걸어 다니기 싫어하던 나에게 이시형 박사의 충고는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힘들게 따로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생활 속으로 운동을 끌어오거나, 생활을 운동에 이용하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 첫 작전이 계단을 이용하는 것,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다니는 것이 얼마나 운동이 되는지 알면 다들 놀랄 것이다. 나는 9층에 산다. 하루 두 번씩만 왕복해도 160계단*4=640계단을 오르내리게 된다. 정말 무시 못할 숫자다. 640 계단을 일부러 운동으로 하려면 겁이 먼저 날 것이고 기피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주차 멀리하기, 혹은 짧은 거리는 걸어 다니기.

나는 걷는 것에 대하여 맘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고 힘들게 걸어 다니는 것이 무조건 싫어서 늘 운전을 하고, 가까운 거리조차도 택시를 타던 사람이다. 아무 목적 없이 걷는 사람은 차비 아끼는 좀생이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인간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내가 걸어 다니기 싫어하는 것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었다. 일단 걸으면 힘이 들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걸으면 시간을 뺏기기 때문이다.

두 가지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면 될 것이다. 먼저 힘들다는 문제. 가방을 늘 무겁게 하고 다니는 습관을 바꾸면 된다. 가방에 정말 필요한 것만 넣어가지고 다니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내 경우 이것이 심리적인 것과 연관된 매우 뿌리 깊은 습관 중의 하나라서 의도적으로 고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구두를 편하게 신기. 멋을 꼭 희생하지 않고도 편한 구두를 고를 수 있다. ‘언제든 걸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구두를 고르면 편하면서도 패션을 해치지 않는 것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눈치 빠른 구두장사라면 이미 그런 목적에 맞는 구두를 생산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두 번째 시간 문제, 10분 맨이 되는 것이다. 약속에 10분 먼저 나가 있겠다고 결심하고 일찍 나서는 것이다. 그러면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차를 이용해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전철을 타면 교통 체증과 상관없이 정확한 도착 시간을 계산할 수 있으니 일석 이조다.

어제 저녁 요가를 하러 나가는데 습관적으로 차 키에 손이 갔다. 무거운 가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를 갔다 오는 길도 아니었다. 걸어야지, 이젠 좀 걸어야지 하는 생각을 요즘 계속하고 있었는데도 걸을 생각이 아직 내 몸까지는 전달이 안된 것이다. 따뜻하게 머플러를 두르고 나서서 요가 클라스가 열리는 동네 상가까지 15분 정도 천천히 걸었다. 의식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느꼈다. 걷기 싫지만 대안이 없어서 걷는 것이라면 분명 춥고, 힘들고, 짜증이 많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운동할 기회로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걸으니 일단 힘들다는 생각은 없어진다. 제법 쌀쌀한 저녁 날씨도 즐길 만한 것이 된다. 허리를 쭉 펴고 바른 자세로 우아하게 걸어보는 것도 즐겁고, 폴짝폴짝 뛰면서 걷는 것도 즐겁다.

상쾌해진 내 마음이 우주를 다 품을 만큼 커졌다. 갑자기 친구 생각이 났다. 작은 오해로 마음이 서로 불편해져 몇 달 동안 연락을 끊은 친구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굳이 화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친구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느라 그랬을 거라고 이해하고픈 마음이 가슴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생활이 힘든 친구는 다른 일도 넉넉히 품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친구가 갑자기 안쓰럽게 다가왔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친구가 고맙기까지 했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친구야, 사랑해. 내가 많이 힘들게 했지. 부족한 나를 계속 사랑해줘.’ 친구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친구 반응이 어떻든 그건 이미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나쁜 감정을 이미 털어버렸다는 것이고 친구를 다시 사랑하게 된 마음이 나를 구원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동안 너무 에너지를 이 일에 많이 썼고, 오랫동안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아무 것도 안 해도, 혹은 무언가를 해도 괴로운, 그런 불편한 감정 속에 자신을 너무 오래 방치해 두었었다. 이 홀가분함, 걸으니 이렇게 생각이 넓어진다.

돌아오는 길에는 외출 나온 둘째와 만나 동네 수퍼에서 장을 조금 봐가지고 돌아왔다. 장본 것들을 들고 걷는데도 그다지 힘이 들지 않았다.
‘이것 들고 먼저 올라가!’
딸에게 짐을 맡기고 나는 계단을 탔다.
금방 자신의 뒤꽁지를 따라 들어오는 엄마를 보며 딸이 외친다.
‘이햐, 엄마 정말 빠르다!’

집에 도착하니 벌써 10시가 훌쩍 넘었다. 저녁을 안 먹고 버티려니 너무 배가 고파 결국 라면을 먹었다. 셋째가 끓인 라면이 왜 그리 맛있어 보이던지.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과 ‘가끔은 이럴 수도 있지’ 하는 맘이 여전히 내 안에서 싸운다.

또 다른 생활 속 운동.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스트레칭. 일어나면 10분간은 기지개를 펴고 몸을 풀어주는 나름의 스트레칭 동작을 몇 가지 한다. 요가를 배우는 것이 참 도움이 된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어느 근육이 상대적으로 더 이완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그곳을 펴줄 만한 동작은 굳이 클라스에서 배운 요가 동작을 떠올리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있다. 전문가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동작 만들기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니 기분이 꽤 괜찮다. 요가는 힘이 들지만 내 몸이 감당할 만큼만 힘이 들고, 오히려 그래서 즐겁다. 요가는 나와 궁합이 잘 맞는 것이 분명하다. 고통을 당할수록 상큼해지는 것, 그 만큼 내 몸이 확장된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낀다. 안되던 동작이 되기 시작하고, 몸이 더 유연해지면서, 요가 동작의 바운더리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확장이 재미있는 것은 나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은 (문명 이전의) 욕구, 즉 정복의 욕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앞에 보이는 적이 두려워서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한편 그 적을 통쾌하게 깨뜨려 버리고 싶은 욕구는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닌가. 일단 용기를 내서 쳐들어 가면 생각보다 적이 약하다는 사실에 놀랄 때도 있는 법이다. 그 다음은 정복이 더 쉬워지는 것이겠지. 그렇게 영토를 넓혀갈 때, 우리 안에 각인된 야만의 DNA가 저절로 기쁨에 떨게 되는 것이겠지.

침대에 편히 기대 오랜만에 내셔널 지오그라픽을 펼쳤다.

고릴라 가족 이야기
:아프리카 중부의 콩고 분지에서 은둔해 사는 서부 로랜드 고릴라 킹고 녀석네 가족의 자유로운 야생 생활. 이들에 대한 취재가 가능하기까지 한 인류학자의 8년 동안의 인내가 있었다. 고릴라들을 멸종에서 구하기 위한 학자들의 계속되는 수고가 장엄하다.

폴란드 원정대의 낭가파르바트 겨울 등정
매서운 강풍이 낭가파르바트의 장엄한 루팔 벽을 맹공격한다. 이 산에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전에 시도된 겨울 등정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2006년 말, 아홉 명으로 구성된 폴란드 원정대가 정상을 향해 과감한 도전을 시작한다. 결국 이들은 40여일 간의 분투를 접고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그런 시도가 상업의 논리에 상처받지 않기를, 스폰서들은 그들의 철학을 지지만 할 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새삼스러운 진실 하나, 그 어떤 목숨도 천하보다 귀한 법!

잡지를 읽다 뜬금없이 든 생각
책을 하나 잡으면 그걸 다 끝내야 한다는 부담이, 이 책 저 책 옮겨 다니며 읽는 것을 방해한다. 오늘은 책 읽는 방법을 좀 바꿔보기로 했다. 읽고 싶은 책 5권을 골라놓고 맘이 가는 책을 집어 들고, (다 끝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원하는 장을 골라 읽는 것이다. 그 날 잘 읽히는 책은 좀 더 읽고, 안 읽히는 책은 잠시 미뤄두면서 그렇게 맘 편히 독서를 즐기다 보면 독서가 스트레스가 되는 역설적인 상황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시도해보고 장점을 찾아봐야겠다.

그럼 먼저, 읽고 싶은 책을 찾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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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5.26 19:49:57 *.244.220.254
걷기.
그것은 명상이죠. 팃낙한 스님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불쑥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조용한 숲가를 걷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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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8.05.26 22:27:11 *.77.6.211
아줌마 화이팅!! 잘 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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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5.28 06:12:04 *.178.33.220
양수님이야말로 잘 살고 계신거죠? ^^

여기 한숙아줌마도 잘 살고 계신답니다...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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