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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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 시범학교 운영에 선정 되었다는 가정통신문이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뉴스에서 그토록 떠들던 사교육 대책의 일환으로 내 놓은 방안 중 하나인 모양이다. 남의 이야기 인줄 알았더니 바로 지금 내 일이 된 상황이 우습기도 했다.
그 안내문에는 시범학교 추진에 있어 학부모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므로 설명회를 가질 것이며 신청하라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신청서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하고 그제서야 기본 취지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간단히 기술해 보자면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초중고 가운데 400곳을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했으며 공교육의 내실화와 사교육비 경감 등을 위해 7월부터 사교육 없는 학교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 학교는 충실한 정규수업과 학교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사교육 수요를 학교교육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특성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이란 방과 후 교실을 말하는 것이다. 3년 내에 학생들의 사교육비 지출을 50% 줄이고, 학교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를 8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라고 한다.
사교육 없는 학교는 모두 자율학교로 지정돼 교육과정 편성·운영이나 학교장의 교원인사 자율권이 대폭 확대된다. 따라서 학교장은 상위권 학생에 대한 수월성 교육과 부진학생을 위한 보충학습 등의 맞춤형 수업이나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에 맞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들 학교에 연차에 따라 평균 1억5000만원~ 1억원씩 지원해 주고 2010년에는 600개, 2012년에는 1천 개로 늘려갈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내용만으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서 학교에서 하는 설명회에 참여했다.
교장선생님은 직접 브리핑을 하면서 서울시 전체 570여 초등학교에서 7개 학교 선정에서 운영하게 되는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 시범학교에 선정 확정된 것을 참으로 치하했다.
먼저 사교육 현황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학생1인당 사교육 비용이 한 달에 23만3천원으로 작년에 비해서도 5%정도 늘어났으며 서울지역의 경우에는 이 금액보다 배로 보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빈익빈 부익부 교육기회의 불균형 발생과 지나친 가계부담과 자녀와의 대화부족을 사교육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난 이 문제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이것은 교육의 문제가 아니고 경제 문제가 아닌가. 교육을 위한 교육개선이 아니라 가계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교육정책을 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가계의 경제 문제를 학교에서 방과후 교실 운영으로 해결하려 한다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사교육 문제는 교육기회보다 교육정책에 대한 문제로 봐야 하고 대학까지의 전 교육과정과 다 물려있는 문제이다. 그러니까 사교육에 보낼 수 밖에 없는 교육현실을 봐야 하는 것이다.
세부적인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의 내용으로 다양한 방과후학교 운영으로 어린이들의 학력 및 특기 신장에 힘쓸 것이라며 교육청에서 개발한 전문 프로그램 도입으로 온라인으로도 학습 성취도 및 평가를 할 것이며 학년별 영어 엘리트반과 학년별, 수준별 교과 종합반 운영을 내세웠다. 이번의 시범학교에서 내세우는 것은 학원에서 배우는 사교육이 영어와 교과목 비중이 크다고 생각해선지 학습에만 편중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는 시간에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후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교육이 아니고 무엇인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우려한 것처럼 학교가 학원화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랬지만 학교에서 수업 마치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는데 또 수업이라니. 아이들이 답답해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내가 또 실망한 것은 이 정책에서도 교육의 기회는 골고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어 엘리트반은 9개 반인 3학년의 경우 겨우 8명에게 주어졌다. 필요에 따라 고급, 중급반을 개설한다지만 터무니 없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 정책이면 원하는 아이는 무조건 기회가 주어줘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 년에 몇 개 학교로 확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학교가 얼마나 알차게 잘 진행되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 동안에도 방과후교실은 있었다. 그 내용은 특기 적성에 맞추어 바둑, 미술, 컴퓨터, 댄스 등이었다. 학부모 입장에서 왠지 이 방과후 교실에 대해서는 배움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않게 된다. 특별활동 하나 더하고 오는 수준으로 생각한다. 다들 선생님과 교육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열성을 다해 설명하는 교장선생님의 격양된 목소리와는 달리 내 마음 속에는 무늬만 화려한 프로젝트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고 있었다.
학습에 관련된 방과후 수업을 정규수업 시간 안으로 넣을 순 없는 것일까? 공교육 강화가 메아리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실 있는 정규 수업시간에 학습은 모두 끝냈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중학교, 고등학교 가는데 문제가 없었음 좋겠다.
차라리 방과후 시간에는 아이들이 놀이처럼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창조성을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짜이면 낫겠다. 다중지능의 창시자 하워드 가드너가 어린아이의 천진함이 창조성의 근원이며 창조적 거장들은 이런 아이다움을 어른이 되어서도 지녔음을 알려 주지 않았던가. 아이들 각자의 창조적 기질을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구성되었으면 좋겠다.
학교 성적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의 동심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아 있도록, 우리 아이만이 가진 창조적인 기질은 무엇이지, 그것을 발현할 수 있도록 엄마로써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고민된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어루만져 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바람직한 교육개혁을 기대하기 보다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자 어머니의 마음을 더 헤아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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