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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6일 10시 11분 등록

얼마 전에 읽은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김정운 교수는 한국 남자들은 감탄을 받지 못해 우울하다고 한다. 그래서 감탄을 돈을 주고 산다. 새벽부터 나이스 샷을 듣기 위해 골프장에 가고 저녁에는 어머, 오빠!!! 오빠는 왜 이렇게 멋있어?” 감탄 소리 들으러 술집에 간다고 한다. 싸구려 감탄에 뭇 사내들은 돈과 넥타이를 푼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낄낄대며 저자의 날카로운 진단에 감탄했다. 그리고 나는 한 편의 영화를 떠올렸다. 2007년에 개봉한 송강호 주연의 우아한 세계”.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이다. 당뇨병에 걸린 채 큰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에게 가족에게서 온 비디오가 배달된다. 대형 TV 앞에 앉아 혼자 라면을 먹으며 그는 자신이 쏙 빠져버린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울먹이기 시작한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서러움에 복받쳐 울던 그는 먹던 라면그릇을 던져버린다. 하지만 화가 나서 던져버린 라면과 라면그릇을 그는 쓰레기봉지를 가져와 조용히 다시 치우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기러기 아빠들의 모습을 어찌 이리도 잘 표현할 수 있는지 나는 송강호의 연기에 감탄, 또 감탄했다.

 

 우아한세계.jpg

 

사실 내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주된 목적은 감탄하기 위해서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책을 왜 읽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하~ 이거구나. 무릎을 치며 감탄할 대목을 찾기 위해서 나는 책을 읽습니다.” 살다 보면 감탄할 일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감탄이 드문 까닭은 감탄을 너무 큰 곳에서 찾기 때문이다. 너무 거창한 것을 바라면 일생에 기뻐할 일이 몇 번 없게 된다. 그래서 영국의 작가 G.K. 체스터턴은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다. 부족한 것은 감탄이다.”

 

나는 나이 드신 분들이 물끄러미 지는 노을을 한참 바라보거나 이맘때쯤 소녀처럼 수줍은 표정으로 피어난 붉은 진달래를 음미하는 모습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또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술을 한잔하다가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면 조용히 눈을 감고 음악에 취하여 좋다를 연발하는데 이 역시 의아해했다.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주함이 감탄을 몰아냈다. 이제는 나도 그런 청승을 가끔씩 떨곤 하는데 그런 짓을 자주 할수록 내가 행복해지는 느낌이 든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고 소소한 일에 감탄할 일이 늘어나면 인생의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나는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덧 거북이 등껍질처럼 무감각해진 우리의 촉수와 감각기관을 깨우는 것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가슴을 활짝 열고 주위의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 일상의 작은 것에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 설 수 있어야 한다. 왜 멈추어야 하는가? 우리는 한적한 산길을 따라 빨리 올라 갈 수도 있고, 길가에 핀 이름없고 주인 없는 들꽃을 보기 위해 잠시 멈출 수도 있다. 만약 산길을 따라 빨리 걸어 올라가면 우리는 들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잠시 멈추어 서서 꽃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함빡 이슬을 머금고 있는 들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도 이와 같다. 잠시 멈춰 섰을 때 우리는 그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눈을 뜨게 되고 그 깨달음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회사 워크샵을 가서 용문산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이전 같으면 구시렁거리며 마음의 문을 닫고 올랐을 고행의 등산길이 가슴을 쫙 펴자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은빛억새풀이 가을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은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굳센 억새가 되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길섶의 노란 산국(山菊)이 하늘거릴 때면 나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 그 산마루에는 그렇게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감탄이 드문 또 다른 이유는 소통의 부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감동이 마음으로 공감하고 동화하는 기분이라면 감탄은 그 기분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감탄해야 행복해진다. 마치 웃어야 행복해지는 것처럼 감탄도 그렇다. 감탄한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인색할 필요가 없다. 감탄할 거리가 있으면 참지 말고 즉시 감탄하자.

 

~ 좋다.”

끝내준다.”

멋져부러~”

쥑인다.”

 

나는 살짝 맛이 간 저속한 감탄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저속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멋진 감탄사를 하나 개발해보자.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감탄의 경지는 바로 . “때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잘 견뎌왔고 잘 살았어. 자쌰~ 멋지다.” 여러분과 나 모두 이런 감탄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대, 행복하려면 하루 한번만이라도 감탄하며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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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4.16 10:18:27 *.216.38.10

와우~~~ 감성플러스(+)~~  나이스 쌰아샷~!!!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우아한 세계>에 대한 저의글을 한번 올릴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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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4.16 14:03:39 *.93.198.156
재엽아~ 브라보!!!
왠지 말이야 '우아한 세계'에 대해서는 네가 할 말이 무지 많을 거라 생각했어.
아닌 게 아니라 뭔가 맺힌 듯한 댓글이네.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의 한계는 바로 이거다'라고 감탄할 수 있도록
모든 총 지식과 구라를 동원하여 너의 뽕맛을 느끼게 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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