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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9일 03시 46분 등록

응애 5 - 죽음의 미학 (아르스 모리엔디)

  잘 살고 싶다. 죽음 앞에 장사 없다고, 우리의 인생은 시작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누구는 빠르게 거침없이 나아가고 누구는 실날같이 여릿여릿 간다. 사람은 다가오는 공포를 물리치기 위해서 죽음을 애써 부정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는 시늉일 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손가락 사이로 죽음을 훔쳐보기 마련이다.

서구의 사교계에서는 죽음을 예술로 승화시켜 표현한 죽음의 미학( ars moriendi )을 직접 느껴보기 위해서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미리 죽음을 미리 연습해보는 전통이 있었다. 곧, “건강한 영혼을 위하여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자”는 각본이다. 현대에는 우리가 죽음을 직접 만나볼 기회가 점점 줄어들기에 ‘존엄한 죽음’은 이제는 이상향이며 신화가 되고 있다.

이번에는 예일대 의대 교수이며 의료 윤리학과 의학사를 강의하고 있는 외과의사 셔윈 뉴랜드가 40여년 간 보아온 무수한 죽음을 관찰하고 기록한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라는 책을 통해서 죽음을 미리 공부해보기로 하자.

죽음에는 수만 개의 출구가 있다. 뉴랜드가 의학계 입문 초기에 겪었던 일이다. 의대 3학년으로 대학병동에서 실습을 하던 때의 일이다. 유망한 건설회사 중역으로 활발하게 살아온 환자가 응급실에서 심근경색의 고비를 겨우 넘기고 회복실로 옮겨졌다. 당직 인턴은 급히 다른 환자를 돌보러 갔고 22살의 솜털이 보송보송한 애송이가 병력 기록철을 보고 검진을 맡아서 환자 곁에 다가갔다.  그때 환자가 갑자기 목을 뒤로 꺾더니 가슴 깊은 곳에서 끌려나오는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주먹을 쥔 양손을 들어 가슴을 힘껏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순간적으로 목과 얼굴이 보라색으로 팽창되었다. 눈동자가 밖으로 튀어 나올듯이 크게 부풀어 오른 뒤 그는 깊게 그리고 허덕거리는 한숨을 내쉬면서 숨을 거두어 버렸다.

그때 그 충격이란.... 그는 환자의 이름을 크게 소리쳐 부르며 동시에 당직의사를 크게 불렀지만 상황은 급박해 초를 다투는 순간이었다. 그는 메스를 들어 가슴을 절개하고 금속제 견인기를 절개된 늑골사이로 밀어내어 겨우 손이 들어갈 틈을 만들었다. 그리고 멈춰버린 심장을 최대한 부드럽게 움켜쥐고 리드미칼하게 압박운동을 시작했다. ‘촉촉하면서도 따뜻한 젤리를 쥔 듯한 느낌’이라는 교과서의 내용을 확인하며 규칙적으로 압박마사지를 했으나 심장에는 피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폐에는 이미 산소가 다 빠져 나가버린 뒤였다. 그가 완전히 팽창되어버린 동공을 미리 보았더라면 뇌가 이미 죽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텐데....

그때 갑자기 이미 영혼까지 빠져나갔을 만큼 완전히 죽어버린 환자가 부릅뜬 눈동자를 천장으로 올린 채, 지옥의 사자가 울부짖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까지도 심장마사지를 계속하던 그의 얼굴에서는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렸고 두 손과 팔 짧은 가운에는 환자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흐느꼈다. 몸까지 흔들고 울며 환자의 귀에다 입을 대고 제발 살아달라고 악을 썼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가버리고 만 것이었다.  환자가 죽어버린 것도 슬펐지만 그 역시 실패했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울었다.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괜찮아. 할 수 있는 한 힘껏 최선을 다 한거야” 주검이 널브러져 있는 병실 구석에 그를 앉힌 뒤 선배는 그 어떤 의료진도 환자의 죽음을 막아내지는 못했을 거라며 그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이제 의사가 된다는 것이 어떤건지 알 수 있을거야”

죽음에 관한 신화는 두려움과 희망이라는 극단의 대결을 의미한다. 잠을 자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삶의 끝자락을 직접 느끼면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라는 죽음의 종류는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아름답게 생을 마치고 싶어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육체가 무너지면 존엄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도 자연히 따라서 무너져 내리게 된다. 물론 가끔씩, 아주 가끔씩 내외적으로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행운은 그리 흔하지 않다. 갖가지 형태의 죽음을 살펴보면 정말 죽음에는 인간이 출구로 삼는 수만 개의 문이 있다. 그러니 릴케는 “오 주여 우리들 각자에게 알맞은 죽음을 주소서!” 라고 노래하며 시인답게 장미가시에 찔린 것일까?

우리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통해 죽음을 냉정하게 사실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상세한 과정을 알고 나면 죽음이라는 존재 앞에서 나름대로 공포와 두려움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뒤에야 비로소 죽음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자기기만과 환멸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회백색 죽음의 공포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무너지는 육체와는 달라 마음의 상태를 아름답게 유지하며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순서 없이 그리고 예고 없이 닥쳐온다. 언젠가는 죽고 말 우리, 마지막 순간을 향해한걸음씩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자신의 생이 남들에게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마감될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축복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심장만이 멈춰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신체조직은 그 나름대로의 속도에 따라 죽음의 과정에 돌입하게 된다. 죽음이란 영혼이 빠져나갈 때처럼 ‘일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다. 과거에는 심장이 박동을 멈추는 순간을 완전한 죽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심장의 침묵 뒤에도 완전한 죽음을 향해 진행되는 소리없는 과정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뇌기능의 정지를 죽음으로 정의하고 있다. 심장이 박동을 계속하고 골수가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낼지라도, 뇌의 활동이 정지되면 그것은 결코 살아있는 상태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골수에서 신체조직의 세포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포는 점진적으로 죽어간다. 공식적으로 죽음이 선포된 시점을 몇 시간 전후해서 각 신체 조직과 기관들이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가는 과정은, 죽음의 신비로운 생의학적 메커니즘이다.

생의학의 발달이 인류의 평균수명을 크게 끌어올렸다고는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록될만한 수명을 누리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임신기간도 길고 개체가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다. 그 까닭은 종이 완전히 존속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시간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수명이며,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 가장 긴 수명을 누리고 있다. 인간은 한번 태어난 이상 반드시 죽는다. 아니 죽음으로써 새로이 교체되어야만 한다.

젊은이의 눈을 통해 모든 것들은 끈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고, 그들이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배우고 이해함으로써 재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다. 새 세대들은 스스로를 개선하기를 열망하고, 바로 그 과정에서 인류를 위해 크나큰 공헌을 할 수 있게 된다. 무릇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때가되어서 그들의 생을 마감하고 다음 세대에게 생의 무대를 물려주는 것이 신의 섭리이다. 자손들을 위하여 삶으로부터 부드러운 탈출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많아도 얼마든지 진취적이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미리부터 늙었다고 뒷전으로 물러나 앉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불필요한 저항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가슴을 해치면 안된다. 생에는 정해진 한계점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생은 균형있는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중에 스스로 보람있고 남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할 시간은 사실 별로 길지 않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사실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결코 소흘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대의 죽음은 우주 질서의 한 부분이고, 세상 삶의 일부분으로 창조의 근원을 이룬다. 몽테뉴의 말이다. 그는 또 철학 연구는 죽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곧 죽음이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있으면 매사에 부지런하고 뜻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가치는 그 길이에 있지 않고 그 순간순간을 얼마나 충만하게 보냈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 부디 죽음을 통해 삶을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지혜를 펼쳐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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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10.04.19 09:13:34 *.93.112.125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란 정말 어렵죠.
더구나 생명이 넘치는 젊은이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 생이 더욱 생명력을 얻게 됨을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죠.
좌샘의 책은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임을 이미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시작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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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4.20 12:29:09 *.248.235.12
여해 송교수,

오늘 아침에 올케언니에게 내가 아는 것 다 말해주다가 ......그만 관계를 망쳐버렸어요.

죽음을 얘기하지 말고 시크릿처럼 희망을 말해달래요.
그래서 궁색해진 내가 "나는 내가 가진 최고의 것을 언니에게 선물하려고 하는데....."왜 못믿어? "

아직은 듣고 싶지 않다고 하다가
너만 알고 있지말고 내게도 말해줘라 하다가....
넌 왜 화를내니? 하길래....

난 다만 말을 접었을뿐인데....

언니야, 우리는 참 달라도 한참 다르지?....
그래도 줄기차게 만나오는걸 보면...인연이다 인연..... 이러고

과학자의 길, 산책로 벚꽃 길을 다섯번 왔다갔다 했더니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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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4.20 16:08:27 *.216.38.10
"생에는 정해진 한계점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생은 균형있는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삶의 가치는 그 길이에 있지 않고 그 순간순간을 얼마나 충만하게 보냈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 부디 죽음을 통해 삶을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지혜"

'죽음'을 통해 인생의 균형있는 조화를 이루고, 삶을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라는 논리가 가슴에 다가옵니다.
<죽음과 삶 사이에 선 인간> 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다음 작가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입니다. 이 책 중간 앞부분까지 읽었는데, 죽음을 보면 날아서 춤이라도 출듯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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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4.20 23:46:56 *.67.223.107
재엽씨
<춤추는 죽음>하고  <죽음의 춤>하고.....어느 주제가 더 끌려요?

죽음의 춤  Dance Macabre,  생생의 작품이죠, 김연아가 처음 등장하면서 배경음악으로 선택했던
그 아름다운 곡, 말이죠. 나는 이 음악을 헤이리 카메라타에서 처음 들었는데...
디제이에게 쪽지를 보내서 곡명을 알았어요. 아주 마음을 뒤흔드는 매혹적인 음악이었어요.

이 죽음의 무도, 죽음의 춤을 주제로 쓴 책이 있는데...예술이더군요.
봄바람, 꽃바람 땜에 진도가 안나가요. 
책을 베고자면 아침에 그대로 회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책무덤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봄날이 가는걸 안타까워하는 .......... 연두빛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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