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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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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8일 12시 01분 등록

칼럼. 수련회에서 생긴 일

< 선한 학생을 선하게 대하고 선하지 않은 학생도 선하게 대한다. 이것이 진짜 선(善)이다. 믿음직한 학생을 믿고 믿음직하지 못한 학생도 믿는다. 이것이 진짜 신뢰다. - 『배움의 도』, 파멜라 메츠 >

1.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련회날. 운동장에 모여 반별로 줄을 서고 예나 지금이나 짧으면 짧을수록 좋은 교장샘의 훈화말씀을 듣고 버스에 올라타다.

아이들의 안전벨트를 점검하고 자리에 앉아서 이제 좀 쉬어볼까하던 찰나...버스탄지 30분도 되지 채 되지 않아서 내 옆에 앉은 녀석이 오바이트를 시작하다. 검은 봉다리에 받아 꽁꽁 싸매어 첫번째 여주휴게소에서 버려주시다.

2. 버스가 점심을 먹을 2번째 평창휴게소를 향해 가는 도중 박군 어머니가 전화를 하시다. 등교하다가 버스에서 도시락을 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체불명의 아저씨가 박군의 도시락을 낚아채 버스에서 내려버렸다고 한다. 박군의 어머니는 박군이 행여나 점심을 못 먹을까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하셨다. 다행히 학급 몇몇 어머니들이 후원해준 햄버거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점심을 먹을 수 있으니 걱정마시라고 안심을 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정말 별일 다 본다. 중딩 도시락 날치기 사건이라니 듣기만 해도 황당한데 당사자인 박군은 자초지종을 묻자 여전히 어안이 벙벙 어이상실 모드다.

3. 점심을 먹고 향한 오대산 월정사. 선두차의 판단 오류으로 월정사로 빠지는 IC를 지나쳐 다시 고속도로에서 백하는 사건이 벌어지다. 겁 없는 기사님들! 같은 운전자로 고속도로에서 백하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은 백배공감이지만 교육상 에라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월정사. 예전에 템플스테이 하던 추억이 되살아나면서 아이들보다 내가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우리 반 아이들을 빠짐없이 이끌고 월정사를 향하는데 미리 도착한 다른 반 아이들이 멀쩡한 다리를 놓아두고 다리 옆 물가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막 건너려고 폼 잡는 아이들을 말리고 건너는 아이들에게 위험하다고 소리치는 부장님의 모습이 안타깝다.

부장님과 다른 반 아이들을 뒤로 하고 우리 반 아이들을 최대한 끌어 모아 월정사 경내에 들어섰다. 아이들에게 흔치 않은 기회이니 잘 구경하라고 말을 하니 함께 가자는 말을 할 틈도 없이 아이들이 사방으로 퍼져간다. 그럼 나도 구경을 시작하려는데 다기(茶器) 전시회가 한눈에 들어온다. 확~ 땡긴다. 올커니 저걸 먼저 구경해야겠다. 전시회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내 뒤로 주변의 아이들이 줄줄이 따라 들어온다. 내 뒤에 딸린 식구를 본 안내원의 얼굴이 굳어지는 찰나를 보았다. 뒤돌아서서 따라오려는 아이들에게 이건 찻잔을 전시하는 곳이니 관심 없는 사람은 들어오지 않도록 하라고 말을 해준다. 아이들은 내 맘도 모르고 일제히 "관심있어요!!!"라고 소리친다. '그래 얼마나 관심 있는지 들어와서 한 번 봐라. 이것도 공부니까. '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입구부터 안내원이 일부러 들으라는 듯 '조용히, 얌전하게, 질서있게 관람하도록 하자'라는 말을 크게 전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네"라고 대답을 잘해주었다. 왼쪽에 신발을 벋고 실내화를 갈아 신는 것까지는 매우 훌륭했다. 고요한 전시회장을 들어서자 곱게 생긴 찻잔과 차사발, 차주전자가 수줍게 웃고 있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순식간에 전시장은 시장? 아니 놀이터로 변한다. 나와 함께 들어선 아이들은 뛰기 시작하며 멀어져가고 옆에 남은 아이들은 전시회 물품에 손을 대려고 시도한다. 으아~ 순간 내가 보고싶은 것을 보려고 한 내가 욕심이 컸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전시회장 안내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모퉁이를 돌아 들려온다. ‘뛰지마세요. 여기는 놀이터가 아니에요!’ 아~ 부끄럽다. 빨리 애들을 데리고 나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다른 반 심하게 노는 여석들이 불전함을 맴돈다. 여기에 돈을 넣는 것이냐며 손을 스윽 넣으려는 제스춰를 보인다. 이런 이 녀석들! 불전함 옆에 지켜서서 아이들에게 불교신자면 여기에 절하고 복을 빌어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그런 건 재미없다는 듯 자리를 뜬다. 다행이다. 그 녀석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전시회장 출구를 나선다. 안내원이 인솔교사를 원주실에서 찾는다며 말해준다. 이런 부장님 대신 내가 가야하나? 가면 아이들이 천방치축이라고 한소리 들을 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전시회장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조용한 산사가 500여명의 중딩 남학생들로 시끌벅적하다. 저만치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이끌고 황급히 월정사 경내를 빠져나가는 것이 보인다. 월정사로 들어온 지 15분여만의 일이다.

예전에 느꼈던 가을 산사의 로망을 느끼기에 단체관람은 적당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간다. 아이들은 재미가 없다며 투덜거린다. 버스에 도착해서 1시간 예정으로 된 월정사관람이라 아직도 출발하려면 30분이 남았다고 한다. 버스에 도착한 아이들을 파악하는데 우리 반 한군과 현군이 문군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해준다. 문군이 월정사 대웅전앞 국보 팔각구층석탑 주변에 사람들이 소원을 빌려 던져놓은 돈을 주워왔다고 일러준다. 저희들이 말했다고 하시면 안 돼요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1학기 소풍 때도 분수대에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던져놓은 동전을 수거해갔다고 하더니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나보다. 그렇지 않아도 반에서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친구들에게 자주 시비를 걸어서 예의 주시하고 있었는데 문군은 어김없이 사고를 쳐주신다. 이번엔 다른 반 몇몇 노는 아이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문군과 함께 탑주변에 놓여 진 돈을 수거한 모양이다. 버스에 올라가 문군을 소리쳐 부른다. 문군이 귀찮다는 듯이 ‘왜요?’라며 나를 쳐다본다. ‘왜요는 왜요야 일단 나오셔’하고 버스에서 내려갔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모두 듣는 앞에서 문군을 다그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지도 모른다. 문군에게 월정사에서 제보가 들어왔는데 부끄러운 행동 한 것이 있으면 털어놓으라고 다른 반 아이들도 다 걸렸다고 말했다. 문군은 탑 주변에 있는 돈을 집어왔다고 순순히 말한다. 버스로 돌아가 집어온 돈을 가져오라고 했다. 문군이 돈을 들고 나타난다. 100원짜리 동전 2개를 내민다. 제보에 의하면 더 큰 돈이라고 들었는데 여기까지가 문군의 양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다그치고 싶지도 않다. 문군을 데리고 다시 월정사로 올라갔다. 문군에게 이런저런 도덕성 강의를 하며 대웅전 앞 탑에 이르렀다. 돈을 원래 자리에 놓아두고 죄송합니다라고 두손을 모으고 인사를 드리라고 말했다. 문군은 순순히 가르쳐준 대로 동전을 놓고 사죄를 하고 돌아선다. 월정사를 등에 지고 문군을 어깨동무하며 다시 도덕성 강의를 시작했다. 버스에 도착하기전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임을 다짐을 받아둔다.

4. 다시 버스는 목적지인 평창국립수련원으로 출발을 한다. 오후 3시쯤 수련원에 도착하다. 수련원의 지도자들이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나와서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긴다. 나도 정말 반갑다. 저녁 먹기 전까지는 아이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테니 잠시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아침부터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들이 수업하는 것보다 더 긴장되는 순간들이었다. 아이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동안 샘들도 수련원 수칙과 프로그램진행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다시 아이들이 수련원에서 잘 지낼 것을 선서하는 입소식에 가보니 벌써 학교와는 다르게 더욱 예의바른 모습으로 변해있다. 학교에서 그렇게 시끌시끌하던 녀석들이 이렇게 조용한 것을 보니 서운하기도 하지만 이런 모습이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바래본다.

입소식을 마치고 아이들의 귀중품이나 특히 핸드폰을 걷기로 했다. 선생님들과 의논을 한 뒤에 내린 결론이다. 핸드폰을 소지하도록 허용해주면 도난사건도 많고 핸드폰을 갖고 노느라 수련회 활동에 집중을 못할 것이라고 판단을 했다. 아이들에게 사전에 걷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터라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반발이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다. 엄마랑 수시로 통화를 안 하면 불안하다는 아이, 핸드폰에 저장된 노래를 들어야 된다는 아이, 집에 전화를 하고 싶다는 아이, 게임을 해야된다는 아이 등등 이유는 가지가지이다. 하지만 전교생이 걷기로 했기 때문에 학교 지침에 따라달라고 하며 핸드폰 수거를 했다. 착하게도 다들 핸드폰을 내주었다. 핸드폰을 안 내고 숨기려는 아이들을 제보까지 해주는 물귀신 녀석들 덕분이다.

수련원에서 식사는 배식 자체가 셀프이다. 아이들이 먹고 싶은 만큼 퍼먹을 수 있다는 아주 매력적인 조건이다. 몇 년전에 중3 아이들과 왔을 때 배식 셀프를 하다가 아이들이 심하게 퍼먹어서 밥이 모자랐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에게 먹을 만큼만 배식하고 다 먹고도 배가 고프면 또 먹을 수 있다고 말해둔다. 수련원에서도 음식에 욕심내어 심하게 배식하고 남기면 안 된다고 말해준다. 다행이 아직 1학년이라서 그런지 얌전하게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는 아이들을 보니 안심이 된다.

첫날 저녁엔 아이들이 고대하던 야간 산행 및 야간 미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남자 중학생들이라 실내에서의 활동보다는 실외에서 뛰어다니며 활동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자기들끼리 조를 짜고 지도와 나침반을 보면서 목적지를 찾고 숨겨진 보물을 획득해서 돌아오는 프로그램인데 나름 조장을 선두로 자신의 조원들을 서로 챙겨가며 미션을 수행하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렌턴이 있고 수련회 주변에 가로등이 있으나 어두워진 저녁이라 아이들이 다칠까봐 걱정이 되긴 했지만 무사고로 프로그램이 좋료되어서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저녁프로그램을 하는 중에 아까 핸드폰을 걷을 때 엄마에게 수시로 전화를 해야 한다며 불안해하던 녀석이 생각이나 저녁에 꼭 수시로 전화통화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늦둥이에 외동아들이라 엄마와 친밀한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수련회에 온 잠시도 혼자서 활동하지 못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전화를 받으신 어머님은 꼭 수시로 통화하지 않아도 되는데 몸이 안 좋아서 그런가 보다며 학교에서 정한 규칙대로 해달라고 하신다. 점호할 때 통화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들은 모든 저녁프로그램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 씻고 1시간정도 자유시간을 갖고 점호를 기다린다. 샘들은 11시에 아이들의 방을 돌면서 점검을 한다. 나도 낮에 걷은 핸드폰을 방별로 가져가서 집에 전화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한 방에 13명 정도가 생활을 하는데 한 3분의 2 정도가 집에 전화를 건다. 아까 엄마랑 수시로 통화해야한다고 투정을 부리던 녀석은 벌써 꿈나라다. 아이들이 전화하라고 깨워도 일어나질 않는다. 전화를 다 마친 아이들이 핸드폰을 다시 가져온다. 아이들을 믿고 ‘다 냈지?’로 마무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방문 입구에 한 녀석이 복화술로 이야기를 한다. ‘찬군이 안 냈어요.’ 몸짓으로 찬군의 행방을 알려준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찬군을 부른다. 찬군은 벽에 있는 옷장에 숨어 여기에 그런 애 없어요를 외친다. 나는 찬군에게 시간끌지말자고 다른 방도 돌아야 한다며 재촉을 한다. 이미 자기 것을 낸 아이들이 찬군에게 빨리 내라고 나보다 도리어 다그친다. 찬군은 할 수 없이 핸드폰을 낸다. 짐작컨대 요즘 성능 좋은 이 핸드폰안에 다양한 영상자료들이 있을 것이다. 이불속에서 아이들과 명화감상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찌나 아쉬워하는지 갑자기 영상자료의 수준이 궁금했지만 검열은 참는다. 다른 방으로 이동해서 숙소를 점검하는데 아이들이 난리다. 이군의 돈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방에서 잘 찾아보았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가방도 다 확인을 했다며 울상이다. 아이들의 3분의 2정도는 나에게 돈을 맡겼는데 그냥 들고 있다가 이런 일이 발생한 모양이다. 돈도 3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그 방의 방장인 한군은 이군이 정말 3만원을 들고 왔는지 잘 모르겠다며 이군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봐 달라고 한다. 돈을 잃어버린 이군이 사실 평상시에도 어리버리해서 돌발사고를 잘 일으켰던 전적이 있다. 한군의 심정도 이해는 갖지만 일단 잃어버렸다면 방안에서 잃어버린 것이 확실하니 이 안에 범인이 있거나 흘렸을 것이라고 말하며 다시 잘 찾아볼 것을 당부한다. 언제나 분실사건은 난감하다. 서로의 신의를 저버리는 사건이라 더욱 그렇다. 다른 방에 다녀오겠다며 문을 나서서 이동을 하는데 저멀리서 한군이 달려온다. 돈을 찾았다는 것이다. 방으로 돌아가보니 이군이 어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가방을 들고 서있다. 결국 돈은 잃어버렸다던 이군의 가방에서 나왔다. 어리버리 이군은 돈을 잃어버릴까봐 너무나 깊숙하게 돈을 넣어둔 것이다. 서로를 의심하며 난감했던 아이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이군은 ‘분명히 난 여기 가까이에 넣었는데 왜 돈이 저 끝에 가있지?’라는 말을 하며 여전히 꺼벙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집에 가기 전에 찾았으니 다행이다. 아마 이군이라면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 가방 안에 3만원을 찾아 그게 무슨 돈이었는지 모르고 횡재를 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야 이군은 3만원을 내밀며 나에게 맡긴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가 마감된다. 오늘도 무사히! 내일도 무사히를 기도해본다.

5. 아침 7시 기상 벨이 울린다. 아이들이 일어나서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난다. 숙소의 창문을 여니 아침공기가 상쾌하다. 벌써 아침 먹을 준비를 마치고 식당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녀석들도 눈이 보인다. 샘들과 준비를 하고 식당으로 향한다. 우리반 아이들이 밥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부스스한 머리에 부운 눈으로 밥을 먹는 녀석들도 있지만 말끔하게 차려입고 머리에 힘도 주고빵 모자로 멋까지 내준 녀석들도 있다. 밥을 먹고 잠시 휴식 후 하루 일정이 시작된다. 수련원의 하루는 자연속에서 빠르게 흐른다.

마지막날 저녁에 모닥불놀이가 준비되어 있다. 11월이라 영하로 기온이 떨어질까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영상이라 캠프파이어를 시작했다. 반별로 둥글게 모여서 무닥불 주변을 돌면서 게임을 하고 춤을 추는데 단합이 잘되는 반, 얌전하게 노는 반, 작은 무리로 개인적으로 노는 아이들, 자기반이 아닌 이반 저반을 들쑤시고 다니는 아이들, 내 주변을 졸졸 쫒아 다니면서 툭 건드려 놓고 아닌 척 장난을 치는 아이들, 춤추는 타이밍에 혼자서 흥에 겨워 춤을 주기 시작하는 아이, 흥겨운 분위기에 함께 하지 못하고 원을 이탈해 풀섶에 주저앉아 관망하는 아이 등등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중학교 시절 마지막 수련회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자며 아이들의 흥을 돋우려고 해보지만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라서 일까 진행이 미숙해서 일까 프로그램 자체가 재미가 없어서일까 역부족이다.

수련원에서 준비한 모든 저녁 프로그램이 마무리가 되고 숙소로 들어간다. 아이들은 씻고 핸드폰을 든 나의 방문을 기다린다. 수련회의 마지막 밤이라고 방별로 들어가서 기념촬영을 해준다. 이미 자고 있는 아이들의 리얼한 취침 모습도 촬영해준다. 아이들은 서로 찍겠다고 온갖 포즈를 취해준다. 집에 전화할 사람을 물어보니 어제밤의 절반도 안 되는 아이들만 전화를 한다. 그리고 전화를 하겠다고 핸드폰을 가져간 아이들 중 일부는 집이 아닌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아마도 이성친구일 가능성이 크다. 옆으로 다가가니 문자내용을 숨기기에 바쁘다. 집에 전화를 했는데 응답이 없는 아이들은 자기 전화를 받지 않고 자는 것이 무척 서운한 눈치다. 우리 반은 모두 3개의 숙소를 사용하는데 다 점검을 하고 마지막 방에 도착을 했다. 그 방 방장인 한군이 미리 문앞에서 나를 맞이한다. 그리곤 귓속말로 ‘오늘 마지막 날이니까 과자파티를 준비했어요 봐주실꺼요? 선생님을 위한 것도 있어요^^’수련원에서는 밤 9시 이후로 아이들이 간식을 먹는 것을 금한다. 저녁 늦게 먹고서 밤새 배탈이 나서 고생하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마지막 날이니까 그냥 슬쩍 봐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겐 이것도 추억이니까. 방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각자 한봉지씩 과자를 꺼내어 가운데에 펼쳐놓고 집어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내가 들어가니 한 아이가 캔커피를 전해준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주저앉아 아이들이 준 커피를 마시며 수련회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도 수다를 떤다. 수련원 지도자분이 시끄러웠는지 문을 벌컥여신다. 내가 있는 것을 보고 이내 문을 닫는 것을 보니 미안하다. 아이들에게 먹던 것을 빨리 치우고 이빨 닦고 잠을 자라고 말을 하고 나온다.

6. 아침 7시, 수련회의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온다. 오늘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도 나도 정말 기쁜 날이다. 아침을 머고 숙소의 짐을 정리하고 오전 일정을 마친다. 점심을 먹고 소화를 시킬 틈도 없이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오던 날 우리와 함께 했던 기사님이 아니시다. 가는 날 버스 기사님들이 대폭 물갈이 되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련원에 도착해서 우리가 버스를 타고 오면서 느꼈던 애로사항이 전달된 모양이다. 수련회 가면 샘들은 그냥 노는 게 아니냐며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물론 예전엔 놀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한껏 다르다. 수련원 프로그램을 참석해서 평가하고 더 좋은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 있도록 요구한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도착해서 버스를 타는 동안 느꼈던 점을 말하고 평가를 하면 그 내용이 버스회사에 전달이 되어 잘못된 것은 시정이 된다. 그날 어느 반 버스기사님의 아이들에 대한 불친절함이 문제 되었는데 그 때문에 모든 기사님이 바뀐 것이다. 아이들의 안전벨트를 확인하고 이제는 좀 쉴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본다. 한 30분쯤 흘렀을까. 저 끝에서 한 녀석이 손짓을 한다. 옆 친구를 가리키면서 ‘ 샘샘샘~ 얘가 토할 것 같아요.’ 다급히 외친다. 검은 봉다리를 한웅큼 집어 들고 뒤로 달려간다. 봉다리를 2개 겹칠 틈도 없다. ‘우웨~엑’ 봉지를 받은 녀석이 MP4를 건낸다. 앗! 애들이 왜 이렇게 토를 많이 할까 생각했는데 원인은 이거였다. 요즘에 차를 처음 타는 것도 아닌데 예전보다 토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이 이상했다. 기초체력이 약해진 것일까도 생각해봤는데 지금 보니 원인은 작은 창의 동영상 플레이어들이었다. 스마트폰, MP4, 닌텐도, PMP 등등 기계치인 나는 잘 모르는 다양한 기기들이 아이들의 놀이감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수련회를 와서나 틈만나면 그 기기들에 눈을 박고 집중을 한다. 한창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라 나들이 간다고 간식을 싸와서 쉴새 없이 먹으면서 작은 창에 시선을 고정하니 속이 울렁거릴 수밖에 없다. 토하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지 말라고 그것 때문에 토한 것이라고 하니 모두들 놀라워한다. 하나같이 그러던 녀석들이다.

7.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학교에 거의 도착할 무렵, 아이들은 다 왔다는 소리에 시끌벅적해진다. 버스가 택시인 듯 자기 동네를 말하며 거기에 세워달라고 사방에서 기사님에게 요청을 한다. 기사님이 마이크를 대고 조용히 해달라고 운전하는 데 지장이 있다며 앞으로 5분 뒤에 학교운동장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고 거기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말하였다. 내가 할 말을 대신 해주시니 편했다. 그런데 저만치 뒤에서 삐딱이 찬군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네 입닥치고 가만히 있을께요’ 으아~ 저 녀석을~ 버스기사님을 뵐 면목이 없다. 오는 동안에 군대간 아드님이 우리학교를 나왔다며 요즘 아이들은 예전같지 않은 것 같다며 격려를 해주셨는데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찬군의 버르장머리 없는 한 마디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게 만든다. 찬군에게 다가가서 ‘너도 참 선생님을 부끄럽게 하는 구나’ 한마디를 했다. 찬군은 멋쩍게 죄송하다며 내릴 때 기사님께 사과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래 아직은 다행이다. 자신이 실언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니 말이다.

5분이 지나고 학교에 도착했다. 버스안의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아이들은 차례로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이정도면 무탈하게 2박3일이 지났다는 자체 평가를 하며 기사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IP *.203.20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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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11.30 17:05:09 *.236.3.241
학교는 본능이 덜 길들여진 사회라는 점에서 군대와 비슷한 조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밖의 세상보다 감정의 부침이 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마음 고생이
많을텐데 지혜롭게 잘 대응하고 있는 김 샘이 참 대단해 보이네 ^^ 

바람잘날 없는 학교에서 낭만의 깃발을 굳건히 세우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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