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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4일 10시 08분 등록

눈을 떴다. 아직 깜깜하다. 깊은 잠에서 깬 나는 방을 나선다. 복도 끝 문 틈 사이로 빛이 보인다. 자석에 끌리듯 그곳으로 향한다. 커다란 문틈 사이로 눈부신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문을 살짝 밀어 본다. 커다란 문은 생각과 달리 쉽게 열린다. 삐걱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그 안에 환한 빛이 나에게로 쏟아져 들어온다.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 발을 한 발 내딛어 본다. 전혀 다른 세상이다. 들어 본적도 없는 세상이 내 눈앞에 지금 펼쳐져 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몇 걸음을 더 걸어본다. 위험한 듯 안전하고 각기의 소리로 둘러싸여 있지만 고요하다. 문득 나는 깨닫는다. 내가 아직 잠옷차림이고 신발도 신지 못했음을. 뒤를 돌아서 다시 올까 생각한다. 열린 문으로 깜깜한 복도가 보인다. 지금이라면 다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주먹을 꼭 쥐고 앞으로 걷는다. 문에서 점점 멀어진다. 길은 모르지만 마치 아는 듯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길을 걸어간다.

2002년 나는 모험을 떠났다. 나는 주변의 모든 것과 헤어진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분명히 보았다. 내가 없어지고 주변의 모든 것과 같은 기운이 흐르고 있는 나를 보았다. 모든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라지자 모든 것은 나와 같았고 나는 그들과 같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운과 흐름이 내가 아는 모든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경계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순간 눈을 떠서 본 방의 모습, 내 옆에 있는 의자가 나와 같았고, 내가 잡고 내려가는 계단의 난간과 나의 공통점을 느꼈으며, 결국은 내가 만들고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세상 가득 채운 에너지가 모든 것을 통해서 느껴졌다. 그것은 일종의 신비한 체험과 같았다. 그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였으며 동시에 고요였다. 나는 내가 가진 우주의 한 자락을 잠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의식을 확장시키는 것에 실패했다. 그 느낌을 간직하는 것에 실패했다. 결국 나는 문턱에서 구경만 하고 돌아온 것에 불과했다. 그 의식을 지닌 채 일상으로 복귀했어야 하는 데 나는 단지 구경만 하고 돌아와서는 그 신비함과 나는 알고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게 되었다. 머리로 알던 내용을 잠시 구경만 하고 와서는 내가 아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더 확실히 알고 더 느꼈어야 했는데 잠시 훔쳐보고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양 우쭐했던 것이다. 허용의 범위는 넓어졌지만 나에 대한 허용의 범위가 넓어졌을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나에게만 유리하게 적용했던 것이다.

영웅은 모험을 떠나 어떤 것을 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나는 떠나기는 떠났으되 제대로 얻지를 못했고 내가 얻은 것을 간직한 채 일상으로 돌아오지를 못했다. 결국 체험과 자만심만이 남았고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예전보다 더 오만해지고 고집이 세진 나만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고 있다는 사실에 우쭐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자는 말이 없는 법인데, 나는 말이 많았다. 사실은 박물관 입구에서 전시목록을 읽고 돌아온 것에 불과했으면서도 말이다.

2011년 나는 다시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그저 알 수 있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아마 또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나 가능하게 될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내 안의 우주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추진력이 생기고, 묘하게 현실이 조정되기 시작했다. 시기적절하게 어떤 방법으로든지 원하는 것들이 나에게 주어졌다. 결심을 한 순간 알 수 없는 손에 이끌려 걸어가게 되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나는 걸어갈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모험이 시작되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다시금 시작된 이 모험이 예전보다 더 힘들 수 있다. 몇 년 간 쌓아온 나만의 모습을 깨부수는 것이 예전보다 더 마음 아프고 힘들 수 있다.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계속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이제 주저앉을 수 없음을 내가 더욱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미 이 길에 접어들었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 길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철저해 질 것이다. 그저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나는 한 번 죽을 것이다. 모든 것에 용서를 빌고 내가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잘못한 점을 알고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다. 세상에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과 감정들을 정리하고 죽을 것이다. 철저하게 죽어 없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의식을 발견할 것이다.

그 길에서 나는 나만의 희열을 발견하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번에 돌아오는 길은 아마 그 전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리고 돌아 온 일상의 모습은 그대로인 듯 보이지만 매우 다를 것이다. 나는 그 희열 안에서 나만의 희열을 따라서 살아갈 것이다. 그 것이 나의 길이고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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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0:49:21 *.160.33.89
글을 쓸 때  구체적인  이야기 하나를  데리고 들어 오는 훈련을  해라. 
추상성이 강하면 모호하고,  모호하면 공감받기 어렵다.  
책을 꼼꼼히 읽어라.  그러면  도처에 사례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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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4.04 12:53:23 *.23.188.173
뭔가 부족함에 글을 올리기가 두려웠어요.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니 더욱 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안하는 거 보담은 낫지 하고 올렸는데
이 부분부터 보완해봐야 겠어요
역쉬~ 한눈에 알아보시는 싸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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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2:15:32 *.111.51.110
2002년 참여한 명상프로그램에 대해서 궁금하다~
나중에 꼭 알려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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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4.04 12:54:01 *.23.188.173
홍홍홍~
도 닦는 거였는데~ㅋㅋㅋㅋㅋㅋ
도인루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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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5:55:54 *.124.233.1
모험을 떠난 루미 축하!! ^^

그대가 경험한 신비체험과 아주 비슷한 체험을 나도 해본적이 있지..
그것은 마치 아주 맑은 옹달샘에서 두손으로 물을 떠서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 나가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더라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그래서 힘든 것이겠지?

파울로 코엘료에 연금술사에 나오는 말이 떠오른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데 있도다."


그래 우리 멋지게 한 번 죽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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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4.04 23:02:06 *.23.188.173
저도 연금술사 그말 정말 좋아해요
읽고난 이후로 잊어버릴 수 없는 말이기도 하고
잊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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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4.04 21:21:59 *.35.19.58
루미는 참 나를 놀라게해.
대학생 같은 외모인데 딸이 있다고 해서 놀랐고
아동화를 신고 아동복을 입는다해서 놀랐고
나이보다 훨씬 깊은 고민과 사고의 깊이에 다시 한번 놀랐네.
나만의 희열 따르기에서 5단계가 제일 어려울 것 같아.
우리 함께 옹달샘물을 손에 가득담아 돌아오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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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4.04 23:10:51 *.23.188.173
25살에 피시방에서 주민등록증 없다며 쫓겨나고
30살이 되면 25살 처럼 보일거라고 이를 박박 갈았는데
나름 성공인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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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4.07 09:39:38 *.138.118.64
루미언니.. 당신은 이미 범인이 아닙니다..ㅎㅎ.. 함께 가는 이 길이 얼마나 즐거운지~!!! 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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