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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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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5일 21시 20분 등록

주말에 하록이가 다녀갔다. 연수원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와락 안기는 아이가 낯설다. 열 세살..벌써 키가 내 어깨를 넘는다. 이제는 무릎꿇고 안아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커버렸다. 언제 이렇게 컸지.. 트렁크 하나를 질질 글며, 아빠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아이의 말끝이 시끈하게 젖어 있었다. 토요일 오후 하나절을 하록이는 아빠 책상 앞에 앉아서 게임도 하고, 관사에 가서 TV도 보더니..이내 심심해진 모양이다. 뭘 도울 게 없냐고 묻길래 프로그램 진행할 때 보조를 해달라고 했다. 교구도 나르고, 테라리움 만드는 것도 직접 해보면서.. 모니터도 해달라고 했다.

전주로 내려가는 팀들 차편에 맞추려고 식당에서 저녁을 서둘러 먹고 4킬로미터 쯤 떨어진 집으로 내려왔다. 짐을 풀고, 맨 먼저 시작한 것이 가마솥에 물을 붓고, 군불을 지피는 일이었다. 일주일 내내 지핀 방이었지만, 아직도 빈방 냄새가 나고, 자고 일어나면 몸이 축 처지는 것이 채 눅눅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탓이다.

잘 마른 장작 중에 적당한 것들을 골라 아궁이에 채워 넣고, 이번에는 신문지를 구겨넣었다. 몇 번 꺼졌다.. 지폈다를 반복하더니 마른 관솔가지를 집어 넣고서야 불이 붙었다. 아궁이 밖으로 혀를 날름거리는 불기운에 나무토막 두 개에 나란히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아궁이 불피우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나보다. 툭툭 불똥을 튀기며, 매캐한 연기를 품어내는데도 연신 아궁이 들여다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와인을 한 잔 따라주었다. 건배를 했다.

어릴 적 막걸리 술 심부름 다니던 이야기며, 내가 하록이 나이였을 때 수학여행을 가서 맛보았던 보드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샴패인 맛을 보자고도 했다.

군불이 지펴지고, 먼저 타기 시작했던 장작들이 벌겋게 제 몸을 달구면서 가마솥에서도 김이 올랐다. 이제 옷갈아입고, 발을 씻으라고 했다. 한 바가지 그득 물을 담아서 수돗가 대야에 부어 주었다. 찬물을 섞어 적당히 온도를 맞추고서.. 의자에 하록이를 앉혔다. 발을 씻어 주었다. 멀리까지 이 애비를 보겠다고 찾아온 발걸음을 고맙기도 하고, 가까이 살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에 비누질도 해주고, 다시 깨끗한 물로 행구었다. 나중에 꼭 소중한 사람이 생기거든, 발을 씻어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몸을 씼어주는 일.. 이번에는 하록이가 내 발을 씻어 주겠다고 했다. 간지러웠다. 꼬물꼬물한 손 동작이 조심스러웠지만, 싫지 않았다.

군불로 지펴진 방안에 이부자리 하나에 그냥 배게만 두 개를 두었다. 이불을 한 채 더 들고 오긴 했지만, 꼭 보듬고 자고 싶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내성적이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책 속에 파묻혀 사는 하록이, 때로 엉뚱한 질문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모습이 참 나랑 닮았다. 피는 어쩔 수 없나보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중세 암흑시대와 르네상스가 주된 화제가 되었다. 종교와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하다가.. 다빈치코드며, 미켈란젤로, 그리고 코페르느쿠스나 갈릴레오같은 과학자들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막혔던 물꼬를 트였던 모양이다. 하록이는 궁금해라 했던 이야기들을 늦은 밤까지 쏟아내었다.

별이 떴더라면, 밖으로 데리고 나갈 생각이었다. 알퐁스 도테의 목동과 스테파니 아가씨이야기도 하고, 윤동주라는 시인의 삶과 그리고 천상병.. 그리고 아직은 별볼일 없는 제 아비의 시에 대해서도 말해 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하늘이 흐릿하고.. 비내린 다음 바람끝이 차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 별도 보이지 않은 밤.. 대신 멀리서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불도 끄고.. 밤이 깊어서야 우리는 그렇게 넉넉한 덕유산의 품에 안겨 잠을 청했다.

아침 산책을 청했더니, 하록이 이부자리 속으로 파고 든다. 음악을 틀어주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지만, 배게까지 푹 파묻은 머리는 당췌 아침 햇볕 보기를 꺼려했다. 혼자서.. 동네 앞부터.. 숲 길을 따라 깊게 들어갔다가.. 우리집 뒷길로 진달래가 이슬젖은 아침길을 돌아왔다. 조팝나무며, 냉이며, 꽃다지들이 밤새 축축하게 젖은 몸으로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었다.

아침으로 무얼 지어먹이나 하고 궁리를 잠시 해봤지만, 별 뽀족한 수가 없었다. 예정대로 오토바이 수리가 끝났다면, 태우고 연수원에 가서 아침을 먹일 생각이었지만, 걸어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거리였다. 라면에 누룽지를 넣고 끓여서 먹어야 겠다고 맘먹고, 하록이를 깨웠다. 아직도 따뜻한 가마솥에서 더운 물을 덜어다가 대야에 부어주었다. 세수를 하기에 딱 적당했다. 주방으로 향하는 안채 문을 열고 가스불을 당기려는데, 영 불꽃이 올라오지 않았다. 설마하고, 중간벨브를 다시 보고, 뒤안으로 돌아가 가스통 연결을 새로 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가스통을 흔들어 보았다. 그냥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이미 오래 전에 바닥난 모양이었다. 아뿔사.. 생각도 못했는데.. 설마허니.. 지금 어디로 전화하기도 막막하고, 일요일 아침부터 사람이 나왔을지도 의심스럽다. 어찌 식빵이라도 사둘걸.. 후회를 했지만, 동네 구멍가게 하나도 없는 마을에서 당장 뭘 해볼도리가 없었다. 세수를 마친 하록이에게 수건을 건네주면서, 아침은 그냥 건너뛰고, 대신 조금 일찍 안성면에 나가 짜장면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침을 건너뛰고, 오전 동안 무엇을 하고 놀까 궁리를 했다. 생각해낸 것이 정원에 나무가지치기하고, 텃밭을 만들기로 했다. 버닝이라는 영화 포스터에 나왔던 커다란 가위하고, 전지가위를 각각 나누어쥐고, 소나무도 자르고, 주목도 치고, 철쭉이며, 잣나무를 다듬었다. 아버지 생각이 잠깐 났다. 내가 하록이만할 무렵, 아버지가 동생과 나에게 시키시던 일이었다. 막 우리 집을 장만하고서, 아버지는 집가꾸는 일에 열중이셨다. 그때 아버지나이 서른 끝무렵이었다. 일요일이면 우리는 아침잠을 포기하고, 하기 싫었던 그 일들을 억지춘향격으로 해야했다. 단 일년뿐이었다. 그 이듬해 아버지가 위암 판정을 받고 드러누우시면서 부터는 아예 그런 일도 없었다. 그럴줄 알았더라면 그때 짜증내지 말걸.. 그때 좀 더 재밌게 했더라면.. 아버지 마음이 어땠을까.. 결국 사연많았던 그 집의 정원은 매년 풀이 가득해졌고, 나무들도 아버지처럼 차츰 생기를 잃어갔다.

다행이었다. 처음해보는 일이어서 그랬는지.. 나보다 제 아비를 생각할 줄 아는 아들이어서 그랬는지 하록이는 싫다하지 않았다. 간혹 심드렁 해지면, 방안에 들어가 책도 읽고, 게임도 하라고 했다. 일로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재미로 하는 놀이처럼.. 하다 싫어지면 다음에 하면 되니까.. 뭐 그리 서두를 것도 아니고.. 텃밭 고랑 파는 일도 그랬다. 삽이며..호미며.. 이름 흔한 농기구들이 손에 낯설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풀을 뽑다가.. 개미집을 발견하곤 또 한참을 개미들 구경을 하다가.. 봄맞이꽃과 제비꽃은 따로 옮겨 심기도 했다.

배가 고프다고 했다. 뜨금했다. 슬쩍 잊어먹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곁에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노발대발 하실 일이었다. 아침밥도 안먹이고 일을 시켰다고.. 한참을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할 일이었다. 어찌할까 하고 있는데.. 마침 옆집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밭일을 나가려다가 하록이 괭이질 하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누구냐며.. 아들이랬더니.. 총각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아들이 있었냐는둥.. 딸은 없냐.. 얘들 엄마는 같이 오지 않았느냐..등등 끝도 없이 질문이 이어질 것 같았다. 청이 있는데, 폐가 아니면 라면 좀 끓일 수 있겠냐고 여쭈었더니.. 아예 가스버너하고 가스통 몇개를 통째로 꺼내주셨다. 다행이었다. 애비 체면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연수원에서 내려오던 길에 챙겨둔 라면 두봉지를 끓이고, 라면을 먹고 난 다음, 그 국물에 누룽지를 넣고 탕을 만들었다. 김치 한 조각도 없는 식단이었지만, 마당 한켠에 나무 테이블에 앉아 햇볕을 등지고 먹는 따뜻한 아침이었다.  많이 먹어주었다. 집에서보다 훨씬 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맛있다며.. 다 컸다 싶었다.

그렇게 늦은 아침을 해결하고, 하다 말았던 텃밭만들기를 계속했다. 고랑을 파고, 이랑을 만들면서 무엇을 심을까를 궁리했다. 하영이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심고, 하록이가 좋아하는 감자를 심어보기로 했다. 빈 닭장에 병아리를 사다 닭을 키울 것인지는 끝내 결정하지 못했다.

이른 오후가 되자, 햇볕이 제법 나고, 등짝도 따뜻해졌다. 우리는 돌 위에 걸터앉아보기도 하고, 마른 풀이 무성한 잔디밭에 누어진 개똥에 흙을 가져다 덮어보기도 하고, 마른 관솔가지로 아궁이에 불을 붙여보며 소나무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재미로 솔방울을 넣어보기도 하고, 안주로 먹던 기름많은 땅콩이 불 속에서 어찌되는가를 시험삼아 던져보기도 했다. 바람에 떨어진 빨래를 주어 자기 키보다 훨씬 높은 빨래줄에 걸기도 하고, 풀을 뽑다가 따로 모아둔 쑥을 햇볕에 널어 말리기도 했다. 딱히 빨리 해야하는 일도 아니고, 재미삼아 시작한 일이니.. 하다 말면 그만이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그렇게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가야할 시간이 되어갔다. 해가 중천을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 다시 하록이 짐을 챙겨들고, 테라리움 상자도 손에 들고서.. 우리는 안성면까지 걸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면 보지 못했던 것들에 새삼 이런저런 한 눈들을 팔았다. 춤추는 모양으로 키워준 사과나무 밭을 지나기도 하고, 발에 밟히는 꽃다지와 냉이를 핑계삼아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나무 밑을 지나면서, 하록이가 개미이야기를 했다. 꽃다지 들꽃기행을 따라다니며 주워들었다며.. 제법 구성지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그 이야기는 내가 꽃다지 모임에서 단골로 꺼냈던 이야기였는데.. 하록이는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흐믓했다. 수목원이다.. 들꽃기행이다 하며 억지로 끌고 다니는 것 같아서 미안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하록이가 네살쯤으로 기억된다. 거의 매주 전주수목원에서 주말을 보내다시피 했던 시절이었다. 시민들을 상대로 꽃다지 모임에서 해설자원봉사를 시작했던 때였고, 시민행동21의 상근자로 일할 무렵이었다. 꽃에 대해서 배우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일이 좋았다. 하지만 아내가 당직근무가 걸리는 때면,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 부득불 수목원에 데리고 가곤했었다. 주로 진행을 맡거나, 해설을 해야 했던 탓에 하록이는 여자후배들 차지가 되곤 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쳐 맡겨지기도 하고, 이름도 모르는 삼촌 등에 업혀 잠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해설을 마치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쉼터에 다시 모였는데, 아무도 하록이의 행방을 알지 못하였다. 순간 뒷통수를 맞은 듯 멍했다. 아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어느 누구 손에 이끌려 수목원 밖으로 나가버렸을 수도 있겠다 싶으니까..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정신없이 수목원 방송실로 가서 안내를 부탁하고, 여러 꽃님들과 흩어져서 하록이를 찾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시간이 너무 길었다. 심장은 계속 쿵쾅거리고, 지나치는 아이는 모두 하록이처럼 보였다. 미칠 것 같았다. 만약에.. 만약에... 이 아이들 다시 보지 못하다면... 이 놈의 잘난 짓이고.. 뭐고.. 다 때려치겠다는 후회도 잠깐... 제발... 제발 이 아이를 떼어가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다. 또 기도했다.. 발과 눈은 정신없이 수목원 구석구석을 뒤지는데... 터질것 같았던 심장소리는 관자놀이에서 계속 뛰었다. 그러기를 반 시간 남짓.. 누군가 토끼장 앞에서 어린 아이가 혼자 있더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너무 기뻤다. 단걸음에 달려가보니, 맞았다. 하록이였다. 베이지색 반팔 돗고리에 곤색 모자, 곤색 반바지.. 우리 아들 하록이였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맥이 풀려서인지 주저앉은 것만 같았다. 천천히 다가가서..그냥 천천히 뒤로 다가가서.. 꼬옥 껴안았다. 아이는 너무나 태연했다. 오히려 이상하다는듯이 아빠를 쳐다봤다. 그러더니..제 손에 들려있던 풀을 보여주며..토끼가 잘 안먹는다며 시큰둥해라 했다. 그 뒤로 어떻게 일이 마무리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냥 집에 오던 내내 하록이의 손을 놓치 않았다. 그때처럼..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하록이 손을 꼭 잡았다.

안성터미널은 텅비어 있었다. 일요일 오후 인기척도 없는 터미널 한켠에 배낭을 내려놓고, 전주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하루 여덟던 전주가는 다음 차는 한 시간 반 남짓 기다려야 했다. 미리 표를 끊고, 화장실에 다녀온 다음 또 뭘하고 놀까 궁리를 했다. 안성 장터를 돌아보기로 했다. 나란히 배낭을 메고, 터미널 문을 나섰다. 이번에는 하록이가 먼저 내 손을 잡았다. 아직 바람이 찼다.그 손을 끌어다가 겉주머니 속에 넣었다. 일요일 오후 안성장터에는 사람 하나 없고, 문을 연 가게도 드물었다. 신발가게도.. 채소가게도.. 건어물 가게도 꼭꼭 닫혀 있었다. 큰 길가로 나서고야 이따금 지나는 사람들도 보였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도 볼 수 있었다. 라면을 먹인 죄로, 짜장면 가게를 찾았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찐빵가게도 내부 공사를 하는지.. 주인 여자는 지금 당장은 어렵다고 했다. 삼십여분 끝에 찾은 것이 찐 옥수수와 도너츠 그리고 술빵을 파는 트럭이었다. 배고프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별로 먹고 싶지 않다며.. 대신 옥수수를 사달라고 했다. 먹으려고 그러나 싶었더니.. 하영이를 가져다 주어야 겠다며, 등을 돌려 제 배낭에 넣으란다. 집에서는 매일같이 싸우던 남매간이면서.. 동생이랍시고 챙겨드는 모양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씁슬해지기도 했다. 하록이 배낭을 열고, 옥수수 봉지를 넣었다. 아직 따뜻했다.  

다시 터미널로 오면서, 우리는 배낭이야기를 했다. 하록이가 매고 온 배낭은 칠년전 내가 영국에 머물무렵에 이탈리아로 스위스로 다시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해매고 다니던 배낭이었다. 그 배낭을 하록이는 좋아했다. 바퀴로 끌수도 있고, 맬 수도 있었다. 아직 하록이에는 커보였지만, 금새 작아질 것이었다. 이미 그렇게 볼때마다 커가는 아이를 볼 때마다.. 언제까지 내 곁에 머물러 줄 수 있을지.. 또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지를 가늠해보곤 한다. 언젠가는 답답해라 하겠지.. 담장 밖 더 넓은 세상을 궁금해라 하겠지.. 그 때가 되면, 푸른 창공으로 날려보내야 겠지.. 떠나보내야 겠지.. 내가 보고 싶을 때보다.. 제가 보고 싶어야 전화나 한번 해주며 살 수도 있겠지. 생각 끝에 허탈한 웃음이 지어졌다.

버스가 왔다. 전주로 가는 5시 15분 버스가 늦지도 않고,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다. 버스에 같이 오를까 하다가.. 그냥 기사에게 도착시간만을 묻고, 배낭을 건내주었다. 아이가 버스에 오르더니, 청바지 앞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두었던 표를 꺼내 기사에게 건네주고는 버스 뒤켠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잘 가라는 말에.. "네"라고 딱 한마디를 남기고서는. 전주 집에 전화를 했다. 일곱시쯤 터미널에 도착할 거라는 버스 기사의 말을 전하며... 멀어져가는 버스를 잠시 서서 지켜봤다. 그리고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서.. 다시 봉산마을 자취방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주머니속에 혼자 남겨진 손을 비벼보면서.. 잡히지 않는 그 조무락거리던 손을 더듬어보며.. 봄날 오후 햇볕을 등지고 걸었다. 풀이 꺽인 햇볕은 시샘많은 바람을 이기지 못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 올랐다.

멀리 어머니 품 같다는 덕유산이 팔을 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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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4.25 22:39:15 *.204.162.54
한주만에 아부지 품을 다시 찾았구나, 하록이가 ㅎㅎ
전주가는 차안에서 짐칸에 앉아 내내 멀어지는 풍경들을
보고 있더구나. 그때도 아마 너랑 함께 한 시간들을
곱씹고 있지 않았을까. 아이의 배고픔을 채워줄 방법은 없을까나.
사춘기 하록이가 제 세상을 찾아 떠날 때가 머지 않았는데.
 '행복해야 한다'- 네가 보낸 문자 보다가 피식 웃었다.
우리는 서로의 거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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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4.28 07:25:56 *.1.108.38
거울은 거짓말은 못한다네..
거울을 보며 묻자..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지?
거울은 거짓말을 못한다네...
거울을 보며 묻자..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지?
거울은 거짓말을 못한다네...

하지만 이렇게 묻지는 말자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지?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 가장 못난 사람이 누구지?
왜?
거울은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이지...

거울을 보거든.. 이렇게 묻자
꼭 이렇게 묻자...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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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4.25 23:38:04 *.34.224.87
야..
니들 그럼 안돼지...
은주가 보면 을매나 성나겠냐?
남자끼리 사귀면 쓰냐? 아..정말 얘들이...참...

진철이 니가,
담배를 못끊은 이유가 있능겨..
나도 피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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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4.28 07:21:26 *.1.108.38
무자게 보고 싶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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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1.04.26 11:23:04 *.42.252.67
아이 혼자 버스를 태워  손을 흔들어 보내는 마음이 얼마나 짠 했을까....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경험이 습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없는 일이
헤어짐이지......
하록이는 책처럼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친구처럼 이해해주고
다정한 아빠를  가지고 있어 행복한 아이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하록이가 네 나이가 되면 추억이 글로 나오겠구나! 
역시 부모는 자식이야기를 하면 시간 가는 줄도 할말도 많아 지는것 같아. 그렇지?
글에 강은 없지만 강처럼 부자의 이야기가 느릿느릿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아름답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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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4.28 07:20:35 *.1.108.38
아들이 아빠를 찾는 나이가 되어간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거겠지?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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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6 11:25:48 *.166.205.131
글을 읽다가 전 하록이가 딸일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제목은 "아들과 보낸 하루" !
아버지와 아들의 정이 이리 깊군요.
선배님! 이번 북페어에 못오시는건감용? 아이고 뵙고싶었는데....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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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4.28 07:19:17 *.1.108.38
프리북페어 내내..
거기 빈 자리.. 아니 어쩌면 미옥이 무릎 위에
한번씩은 은주누나 등뒤에
상현이가 발표할 때는 바로 코 앞에 앉아 있었는데..ㅎㅎ

새벽 2시에 걸려온 은주누나의 전화...
술자리.. 얼핏얼핏 들리는 선생님의 그리운 목소리...
나는 온 밤을 홍대앞 까페에서..
별 쏟아지는 무주의 밤하늘 아래에서..
그리운 사람들을 그리워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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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7 08:46:48 *.166.205.132
<살아가는 힘>

도심을 벗어나
한 번이라도 강줄기를 따라 걸어본
사람은 알리라

한 번이라도 금모래 은모래 빛
강변 백사장을 맨발로 걸어본
사람은 알리라

여울지는 강물의 노래가 있어
나는 이 땅의 한국인이라네
철마다 표정이 바뀌는 강이 있고 산이 있어
나 또한 철 따라 깊어져 온 한국인이라네

내 안의 강물이 마르는 날도 내가 살아 있고
내 안의 강물이 범람한 날도 내가 좌절하지 않고
저기 아득히 멀고 험한 길도 포기하지 않고
굽이쳐 흐르며 내가 살아가는 힘은
내 등 뒤에 그 강물이 흐르기 때문이라네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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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8 19:00:21 *.111.51.110
서로의 멘토가 되어준다면 더욱 좋겠네요.
시가 넘쳐나는 진철형님의 마음에 푹 빠집니다~
좋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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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4.28 07:15:09 *.1.108.38
내가 경수의 멘토가 아니라..
경수가 나의 멘토를 해얄랑가비네..ㅎㅎ

살아가는 힘... 내 등 뒤에 흐르는 그대라는 이름의 강물..
굽이쳐 흐르며 내가 살아가는 힘은
저기 아득히 멀고 험한 길도 포기하지 않고
내 안의 강물이 범람한 날도 내가 좌절하지 않고
내 안의 강물이 마르는 날도 내가 살아 있고...

경수가 적어 준 시를 꺼꾸로 읽어봤네
그대가 보여 준 강을 거슬러 흘러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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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8 라뽀(rapport) 48 - 날마다 명동으로 출근하는 여자 [2] [5] 書元 2011.04.24 2476
2337 단상(斷想) 61 - 멘토와 멘티 file [4] 書元 2011.04.24 3430
2336 [첫책 기획] 서문 (수정) [18] 최우성 2011.04.23 1849
2335 응애 65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0] [3] 범해 좌경숙 2011.04.23 2708
2334 푸르잔 스토리 - 4 [2] 홍현웅 2011.04.23 1935
2333 의도적으로 능력과 재주를 떨구어내다. file [12] [1] 달팽이크림 2011.04.22 2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