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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9일 19시 45분 등록
서원.jpg

떨리는 기대감과 두려움의 상반된 감정 속에 버스에 올랐다.

구본형 연구원 여정에서의 공식적인 1박 2일 첫모임.

거기서 초아 선생님 이란 분께서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축복해 주듯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호(號)를 하나씩 선물해 주었다.

 

개인의 생년월일과 출생 시간을 바탕으로 역학적인 논리로 지어진 호.

나의 이름이 호명 되었고 두근거리는 마음에 설레어하며 그것이 쓰인 종이 하나를 귀하게 받았다.

書元!

가슴이 뛰었다.

쑥스러움과 함께 초등학교 6학년 첫사랑의 대상자를 만난 듯 다리가 후들 거렸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어찌 보면 연구원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들어낸 브랜드 네임이 나에게 부여된 것이다.

공동의 미션이기도한 책을 통해서 으뜸이 된다는 의미는 가장 드라마틱하고 환상적인 호였던 것이다.

흥분이 되었다. 우와! 하늘이 나를 알아보는구나.(?) 앞으로의 나의 길은 탄탄대로 겠구나 라는 자만심까지 들게 하였다.

하지만 그 기쁨과 환호는 오롯이 여기까지 이었다.

 

모두가 그러했겠지만 나 역시도 연구원 여정을 모든 생활의 일순위로 여겼다.

다시 하라고 하면 과연 할 수 있을까 라고 할 정도의 스파르타식 커리큘럼에서의 과제를 정해진 일 년 동안 100% 소화해 내었다.

어렵고 평소 접해보기 힘든 두꺼운 50권의 책을 읽고 리뷰 및 칼럼을 쓰고…….

출장길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버스와 기차에서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흔들거리는 일상을 벗 삼아 책을 읽었다.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에 한권의 그 힘에 겨운 내용들을 도저히 소화 하지를 못하였기에.

토요일이면 텅 빈 사무실에 나가 하루 온종일 리뷰 작성을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대었다. 타이핑에 팔이 너무 아파 높으신 분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리기도 하였다.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부터는 마음이 헤이 헤져 내가 이것을 왜 한다고 하였나 자괴감도 들어갔다. 하지만 주별로 이어지는 과제를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나 스스로와 약속한 길이기도 하였기에 쉬지 않고 앞으로 전진 해야만 하였다.

주말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유배생활동안 24시간 이상 자리에 앉아 엉덩이의 물러지는 땀띠와 신체적 고통을 뒤로하고 해내야 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남들은 이런 나를 두고 너무 과제에 목숨 걸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무조건 의미 없이 글을 쓰고 사이트에 등재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이야기를 하였다.

쉬면서 과제를 한주 건너뛸 수도 있지 않느냐고 이야기를 하였다.

나도 안다. 내가 보기에도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의무적으로 올리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절망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렇게 함에도 글 솜씨가 늘지 않는 것에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남들처럼 분석적, 비판적, 논리적, 체계적으로 글을 쓰지 못하는 것에 나의 부족한 재능을 한탄하기도 하였다.

기계적인 글이 아닌 의무적인 글이 아닌 즐기면서 재미를 느끼며 나도 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에 한숨이 나오기도 하였다.

글 쓰는 능력이 나에게 과연 부여되어 있는가 의문감을 가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두려웠다. 한번을 제출치 못하면 두 번을 건너뛰고 두 번을 빠지면 그다음 세 번도 빠질 수 있는 밑바닥의 유혹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렇기에 정말 독하게 마음먹고 나 자신을 채찍질할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을 학대하며 괴롭힐 수밖에 없었다.

장기 레이스에서 악이다 깡이다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과정동안 내가 버틸 수 있는 것은 화려한 글 솜씨가 아니었기에 끈기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나의 이 書元이란 호가 있었다.

거기에 나의 이 書元이란 호가 항상 동행을 하였다.

 

나는 호를 받자말자 사진을 찍어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저장후 날마다 그것을 바라보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였다.

나는 반드시 책의 으뜸이 될 거야. 그렇게 될 거야. 언젠간 한권의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될 거야. 분명히 한번은 뜰 거야.

그리고 기다렸다.

나의 노력에 나의 정성에 하늘이 감복해 송대관의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라는 노래가사처럼 빛을 볼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었다.

거기가 나의 한계였다.

무너졌다. 글을 쓰는 것에, 글의 재능이 없는 것에, 글을 즐기지 못하는 것에.

너무 싫었다.

무언가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최소한 누군가는 나의 글에 관심을 보일 줄 알았다.

글을 쓰되 그것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누군가는 알아줄 줄 알았는데 철저한 무관심은 끝없는 어둠속으로 나를 패대기 쳐댔다.

육지랄 같은 세상. 저절로 욕이 밑바닥에서부터 틔어 나왔다.

그렇구나. 나의 글은 대중이 외면하는 대중이 찾지 않는 주제와 내용이구나.

책을 세상에 낸다는 것은 그들의 시선에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함인데 나를 찾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집어치우고 싶었다.

2년여의 시간과 노력을 돌려받고 싶었다.

이게 뭐하는 짓거리람. 이 시간에 딴 지랄을 떨었으면 뭐라도 될 것인데.

나는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쓸데없는 데에 목표를 두고 미련을 두고 가능성을 두었었다.

세상은 냉정했다. 사람들이 세상이 바라보지 않는 글을 나만 혼자 미련하게 쓰고 있었다.

 

書元이란 호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럼 이 호는 무언가. 장밋빛 환상을 꿈꾸게 하였던 이 호는 무언가.

괜한 기대감으로 여기까지 오게 만든 이것은 무언가.

사기인가. 거짓인가. 나를 농락한 이것은 무엇인가.

누군가가 이야기 하였다.

호라는 것은 자신의 타고난 내면을 반영하는 것도 있지만 단점 등을 보완해 주는 의미도 있는 것이라고.

그럼 그랬었던가.

나의 글이 형편없기에 글에 대한 재능이 모자라기에 이것을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이름을 부여한 것인가.

그렇다면 단순한 깨몽이요 신기루며 희망사항으로 끝나는 것인가.

눈물이 났다. 농땡이를 친 것도 아니고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닌데 왜 나의 글은 빛을 보지 못하는 건가.

누구의 말대로 일만 시간을 채우지 못해서인지.

누구의 말대로 지독한 고독과 침잠 속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내지 않아서인지.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 후에 빛을 볼 수는 있는 건지.

말을 해봐요.

입이 있으면 누군가라도 속 시원하게 말 좀 해주구려.

 

書元!

나에게 주어진 이 호는 나를 여기까지 지탱해 왔고 이끌어 왔다.

푯대로

희망으로

부푼 꿈으로

때론 땀을 요구하는 징표로

날마다 나는 이것을 보며 이렇게 되어야지 라는 가슴속 각인을 새기게 하였다.

 

힘들다.

이 게임은 이 싸움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언제쯤이면 목표점에 다다를 것인가.

보이지 않는 끝이 끝날 것 같지 않는 순례자의 여정 그 속에서 그래도 외로운 레이스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그마나 힘이 되는 것은 이 호이다.

때론 친구로서 나를 격려하고 지지하며 용기를 준다.

때론 애인으로써 달콤한 꿈의 세계로 나를 유혹한다.

때론 사부로써 채찍질하며 힘을 내라고 이끌어 준다.

그리고 때론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게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書元을 버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호를 핸드폰 배경화면에서 아직도 삭제하지 못하고 내 가슴 남아있는 뜨거움에 간직하고 다닌다.

무언가 희망의 끈을 연결해 지친 몸이지만 아픈 몸이지만 더딘 발걸음이지만 한걸음씩이라도 걸어가게 만드는 에너지요 원동력이요 키의 역할을 하게 한다.

언제까지 내가 걸어갈 수 있을지

언제까지 내가 그래도 지치지 않고 갈수 있을지

언제까지 내가 태양을 바라보며 별을 바라보며 바람을 노래하며 갈수 있을지

끝내는 희망하는 목표를 이룰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곁에 항상 가장 가까이 함께 하였던 건 이 書元의 앵커링 이다.

 

이것은 마약이며 치명적인 유혹이다.

IP *.117.11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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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수
2011.05.31 09:23:11 *.166.205.131
이승호선배님이시죠?!
글 잘보고 있습니다.
2년간의 혹독한 수련이 이런 맛깔란 글을 뽐아내게 하는 구나
생각했었어요.
바쁘다는 핑게로 댖글도 안달고, 스쳐지나갔었는데
선배님 글에서 '힘들다' 라는 말이 나오니
그냥 지나갈 수가 없네요.
지쳐도 잠시 쉬고 다시 시작하시리라 믿습니다!
경주여행때 뵈었던 선배님은
긍정과 웃음의 모습이셨습니다.
힘내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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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1 10:52:20 *.124.233.1
승호 선배님..ㅠㅠ

선배님 글에서 직장생활에 매주 주말 죽을똥 살똥 하며 리뷰를 하고 칼럼을 쓰는
제 지친 모습과 선배님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웬지 모르게 제가 선배를 닮은 건 아닐까 라는 동질감도 들었구요..
무엇보다 라뽀, 앵커링 등의 NLP 용어도 반가웠구요.

주저리 주저리 많은 말 늘어 놓는 것보다 직접 뵙고
술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진정성 가득 담긴 선배님의 글이 저는 참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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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11.06.02 04:57:12 *.117.112.109
서울에는 새벽녘 그렇게 세찬 비가 내리더니 지방에 내려가니 햇볕이 쨍쨍.
똑같은 것이 아닌 다양성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글에 너무 나의 개인적인 생활과 느낌을 노출하지 않았나 하여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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