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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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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1일 09시 42분 등록

와글와글 그녀들의 수다.

 

혀가 반쯤 나왔다. 날씨가 더운 날은 이상하게 시간도 더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더위를 식히는 데는 차가운 타일 바닥이 최고이다. 타일에 누워 있자니 부엌에서 엔지의 발걸음이 다른 날보다 바쁘다. 평소 같으면 엔지의 뒤를 졸랑졸랑 따라다니며 참견하고 떨어진 음식 주어 먹고 바쁠 텐데 아주 꼼짝도 하기 싫은 날이다. 눈동자만 굴리며 엔지를 발꿈치를 다녔다. 텃밭에서 기른 갖가지 쌈 종류를 따가지고 와서 콧노래를 부르며 씻고 있었다.

 

방울이와 내가 저 상추에다 오줌을 깔겨 놓은 일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텃밭에서 야채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엔지는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뿐인가! 쳐다보는 눈빛 또한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은근히 질투가 났다. 저 야채만 뭉개 버리면 나와 방울이를 쳐다 보는 시간이 더 많아 질 것이라는 생각이 번개 같이 스쳤다. 야채들을 뭉개 놓기 위한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콧등에 주름을 잡고 윗입술을 살짝 말아 올려 이를 드러내고 크르릉 방울이를 위협을 하고 밭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나머지 일은 방울이 몫이다. 날 잡겠다고 가로 뛰고 세로 뛰고 금새 연한 야채들은 삶아 놓은 것처럼 후즐근 해진다. 성공이다! 나는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방울이는 벌써 엔지의 손에 처참히 매달려 있다. 좀 불쌍하긴 하지만 단순한 방울이는 엔지의 야단치는 소리에 눈을 지지 감으며 갖은 애교를 부려 금방 풀려 날 것이 뻔 하다. 저런 애교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따라 해 볼 수도 없는 방울이의 재능이다.

 

엔지가 잡초를 뽑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마다 내가 슬쩍 오줌으로 비료를 준 유기농 야채를 먹을 주인공은 누구일까? 저녁에 논에 댄 물 속에서 우는 개구리 합창 소리가 동네 어귀에서부터 들렸다. 와글와글 까르르 엔지의 친구 세 명이 수다를 떨며 대문을 들어섰다.

아이고 우리 애기 이렇게 살아있구나! 고생 많았쪄 오늘 누나가 각종 영앙제를 갈아 왔떠.”

혀가 짧은 소리로 나를 위로하며 안아 주는 그녀의 몸에서 개 냄새가 났다. 개 냄새가 나는 사람에게 붙어 앉아 있으면, 맛난 음식을 먹게 되는 운 좋은 날이다. 나는 그녀의 몸에 착 달라 붙어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구석에 깔아 놓은 헌 이불에 올라 앉아 턱을 괴고 그녀들을 보고 있었다. 그녀들은 유기농 오줌 쌈 밥을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으며 엔지가 산들이란 친구에게 물었다.
올 봄도 다 갔으니 오월에 드레스 입고 들러리 서기는 또 글렀네.”

오늘로 독신주의 선언을 하니까 잊지 말아라. 그리고 앞으로 드레스 입는 것 기대도 하지 말고. 내가 공무원 생활이 벌써 이십 년이 지났잖아. 그 많은 남자들 중에 왜 시집을 못 갔냐고 수 없이 물어도 나도 왜인지 몰랐어, 그런데 지난 주에 처음으로 여동생이 왔었어. 그 지지배가 아주 심각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더라.”

언니, 키도 죄다 똑 같고 양복도 다 똑 같은 저 남자들을 어떻게 알아보는 일을 하는 거야? 세상에 언니가 결혼을 못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그날 따라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남자들이 눈에 들어 오는 거야. 내가 봐도 참 대단하다 싶더라고. 정말 매력이나 개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남자들은 아주머니, 거울을 보고 입을 나불나불 하시지요?’ 왜 안 그렇겠어. 외모가 다가 아니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말투, 심지어 아주 작은 행동까지 매력이 숨어 있는 것이 또 사람이잖아. 그래서 마음을 다 잡았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오만과 편견으로 사람들을 다 싸 잡아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오랜만에 구내식당에서 밥을 안 먹고 동생이랑 밖에서 점심을 먹고 보낸 후, 우아하게 커피 한잔을 사 가지고 손에 들고 다른 관점으로 사람을 바라보자 하는 마음으로 입 꼬리를 살짝 올리고 미소를 입가에 걸고 엘리베이터를 탔지.”

그래서? 관점을 바꾸니까 멋진 사람이 눈에 들어온 거야?”

야야 말도 마라,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여기저기서 쯧쯧, ~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어. 어머 이빨 사이에 낀 음식물 빼먹는 악어 새들 같더라. 이쑤시개 물고 다니는 남자들 매력 없다고 여자들이 한 말을 주워 들었는지, 혓바닥이 구석구석 음식 찌꺼기 빼느냐 수고를 하더라. 도대체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이를 닦고 광을 내며 씩~ 웃는 남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사는 걸까?””

엔지와 다른 친구들은 동시에 그냥 혼자 살아라 아니면 말을 말고 쌈 밥이나 먹던지…….

네가 사랑이 뭔지는 알아? 그 이빨 사이에 낀 음식물도 네 손톱으로 빼 줄 정도가 되는 것이 사랑이야. 사랑을 하면 그 사람의 악어 새가 되어 주는 거지.”

그녀가 쌈을 크게 싸서 입에 넣기 전에 한 마디 했다.
아 더러워, 밥 맛 떨어지니 그만 해라. 난 그렇게는 못 살겠다. 난 지금 키우는 호두토토를 자식처럼 키우며 살란다. 나는 퇴근하고 달려가 그들의 애교를 보면 피로가 풀려. 그보다 더 행복 한 일은 나에게는 없을 것 같아
.”

이 말을 들으니 엔지는 항상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살았지 내가 엔지에게 애교를 부리며 행복을 주지 않은 것 같았다. 야채에 오줌은 주었어도 행복을 주지 않은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자는 척 하고 있었다. 엔지가 나를 째려 보는 것 보는 것 같아 깔아 놓은 이불에 코를 슬그머니 박고 있었지만 쫑긋 선 두 귀는 마음처럼 내려지지 않았다.

 

경희라는 친구는 불독처럼 눈이 툭 튀어나와 퉁퉁 부어 있었다. 이야기를 듣자니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 난지 49일이 되어 49제를 절에서 지내고 왔다고 했다.
애들아, 부모님 살아 생전에 잘 해드려. 가시니까 너무 그립고 잘 해드리지 못한 생각만 나서 눈물만 나. 돌아가신 다음 울어도 소용 없다고 하지만, 울음 밖에 나오지 않더라.”

친구들은 모두 그녀의 등을 말없이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었다.
영미라는 친구의 이마에는 갈매기 세 마리가 날아 가고. 턱을 잡고 물을 푸면 볼에 마실 물 정도는 고일 정도로 움푹 파이도록 말라 있었다.

아니 너는 이렇게 말랐어?” 한 석 달 못 봤더니 다이어트를 무리하게 하셨나?”

영미는 엔지의 놀림에도 표정이 없다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재식이가 대학 등록금 벌려고 주말 마다 이삿짐 센터에 나가고 있었어. 그런데 애가 계속 허리가 아프다고 그러는 거야. 원래 무거운 것 들면 그렇다고 신경도 안 쓰고 한 달을 그냥 일을 하게 내 버려 뒀어. 일이 하기 싫어 그러는 줄만 알았지 뭐야. 그런데 어제 검사 결과가 디스크가 터져 흘러 나왔다네. 얼마나 아팠을까? 그 놈의 돈이 무엇인지 이래도 돈이 행복의 조건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요즘 티브이도 책도 안 본다. 강연은 죄다 행복은 돈이 아니라고 떠들어 대고 자기 개발? 새끼 허리 병신 만들어 군대도 못 가고 그것도 단 하나뿐인 아들인데 내 개발해서 뭐 하나 싶다.”

 

그녀들의 와글와글 대는 수다에는 웃음과, 슬픔과 고통이 있었다. 이렇게 떠든다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같이 말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에 그녀들은 서로 위로를 받는 것 같이 보였다. 그녀들이 돌아가고 밤이 되자 논에서 와글와글 개구리의 울음이 들렸다. 저들도 서로 들어주는 친구들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들렸다. 같은 소리에 반응하고, 같이 짖어주는 방울이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동그랗게 말아 자는 방울이의 등에 슬쩍 붙어 잠을 청했다. 개구리는 사람들보다 더 사는 일이 복잡한가 보다. 쉬지도 않고 저렇게 밤새 떠드는 것을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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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5.31 14:36:48 *.237.209.28
산다는 게 다 그런가봐요.
어디서나..전쟁같은...

피할 수 없는 슬픔이라면
그조차도 양분삼아 한톨의 기쁨이라도 더 생산해보고 싶은 마음 뿐이죠.

언니, 보고 싶었어요.
열흘 남짓 떠나 이정도 그리움이면...후~!!
정떼기전엔 함부로 떠날 생각말아야겠어요. 그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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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1.06.02 01:31:07 *.34.156.74
갑자기 사부님이랑 꿈벗 뒷풀이할 때
김뭍이며 개다리 춤추던 생각이 나먼서
너의 책 제목이 개수다면 어떨까 그런 잡생각이...
이해해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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