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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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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3일 17시 24분 등록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고병권, 소명출판 2001

<1>저자, 고병권이 누구냐
난 그가 찾아온 때를 뚜렷이 기억한다. 사회학과 대학원에 들어가고 서울사회과학연구소라는 곳에 고개를 내밀 때까지만 해도 내 관심은 온통 맑스에게 있었다. 사회변혁에 대한 열망이 한풀 꺾이고,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 맑스를 그 근본에서 새롭게 살펴보자는 흐름에 나도 끼여들고 싶었던 때였다. 때마침 대학원 동기들 사이에 맑스 원전을 읽는 모임이 만들어졌는데, <경철초고>를 읽은 직후였을 것이다. 누군가 머리 좀 식히자며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을 소개했다. 하나의 휴식으로서. 그렇다. 니체는 내게 하나의 휴식으로 찾아왔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를 수료했다. 현재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회원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니체 사상의 정치 사회학적 함의에 대한 연구」 「틀뢰즈의 니체:헤겔 제국을 침략하는 노마드」 「투시주의와 차이의 정치」 「노동 거부의 정치학:새로운 '구성'을 향한 투쟁」이 있고, 번역서로 「데모크리투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 등이 있다.
지은 책에 <니체-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옮긴책에 <한권으로 읽는 니체>, <데모크리투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 등이 있다.

“니체는 우리 모두 내면에 천재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천재가 피곤할 것이라 말했지만 니체에게는 피로야말로 가장 큰 적입니다. …니체에게 A에서 A'로 바뀌는 것은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인 채 그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니체가 말한 천재는 반시대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이죠. 니체는 철학자를 ‘자연이 인간세계에 박아둔 화살’로 묘사했습니다. 철학자들의 사상을 받아쓰는 ‘철학적 노동자’가 되지 말고 그 철학자를 화살로 삼아 진리를 향해 쏘는 ‘미래의 철학자’가 되는 것이 천재가 되는 길이겠죠.”


<2>읽고난 뒤, 생각 파편들
나는 철학이 쥐약이다. 나는 철학책이 싫다. 철학자들의 주장이 너무 맹목적으로 내 뇌속을 파고드는 것이 머리 아프고, 그들의 논리를 따라잡기 위해 100미터를 12초로 뛰어야 하는 두뇌속도가 피곤하다. 나의 뇌구조는 그들의 논리흐름을 따라잡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자위한다.) 그럼에도 니체를 집어든 까닭.
지금의 나의 바닥을 헤매는 심정을 니체는 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마키아의 유혹도 뿌리치고, 순서를 뒤집어 니체를 잡았다. 저자 고병권씨의 머리말이 큰 역할을 했다.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행복에 대해 혼동하지 않는다. 철학을 하려거든 행복해지는 법, 건강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걷고, 뛰고, 오르고, 춤추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하게 웃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
좋은 해석을 위해서도 좋은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 해석하기 위해서도 실천이 필요하다.
“삶의 방식을 바꾸기 전에는 병이 낫지 않는다.” 니체는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맛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언제나 수십 개의 문이 열려있어, 아무 때나 들어가도 나를 만날 수 있는 아포리즘. 니체는 아포리즘의 다이너마이트로 뻥~튀었다.

아포리즘들은 모두 화살이다. 그것들은 읽혀지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쏘아지기를 바란다. “급소를 맞춘 화살의 저 떨림을 보라, 저 흔들거림을 보라.” 저기 니체라는 화살 통에 천 개의 화살이 들어있다. 니체라는 이름의 다이너마이트들이 널려 있다!

철학을 진단하고, 가치를 가치평가하고, 도덕을 판단대 위에 세운 철학가. 니체는 철학가이기보다 철학의사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철학의 권위에 억눌린 나와 같은 몽매한 군중들에게 니체는 철학이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주었다. 절대적인 신과 다름없이 여겨오던 진리에 감히 청진기를 대고 수술을 감행하려 하다니, 이 얼마나 통쾌한 발상인가!

가치의 가치를 묻는 계보학자는 그러한 도덕적 판단들이 어떠한 토양에서, 어떠한 건강상태에서 나온 것인지를 진단한다. 유래와 혈통을 밝혀주는 것.
‘도덕의 계보학’은 ‘도덕의 자연사’를 넘어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가치에 대해 가치 평가하는 것, 도덕적 토양의 건강성을 진단 하는 것으로..... -73p


진리란 하나의 신앙이며 가치평가다. “너는 이러이러해야만 한다.”는 것은 다양한 시선을 특정 방향에로 향하게 하는 일종의 훈련이다. 이같은 광학의지는 그들의 주장이 허구일 때조차 “하나의 의무이며 명령”이다. 세계를 해석하는 우리의 눈은 조작되고 훈련받는다. -107p

니체의 사회와 철학에 대한 진단서들은 내가 매몰된 채 살아가던 곳을 둘러보게 만듦으로써 “하~~”하는 탄식과 놀라움을 낳게 했다. 내 생각이 나의 생각이 아니었구나. “신은 죽었다.”는 글귀 외에 니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던 나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나는 내 머릿속에 생의 철학으로서 니체를 집어넣었다. 천 개의 눈과 천개의 길. 니체가 내 앞에 있었다면 한 마디 했을 텐데... “당신, 내 과야!”

“왜 진리를 찾으려고 하는가? 철학은 ‘죽음의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을 위해 쓰여야한다. 나는 철학이 비탄의 음울한 구름을 걷어내고 삶 앞에서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길 바란다. 그것이 철학이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니오? 니체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읽기가 힘들어졌다.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으려고 한 시간 읽으면 한 시간은 쉬면서 조심했는데도 결국 ‘상실감’으로 체해버렸다. 나의 것이라 믿어온 가치와 절대적이라 여겨온 진리들이 ‘근대화’의 산물에 불과한 것으로 까발려 버릴 때, 나는 힘들었다. 사명을 찾고, 내 인생을 계획하고자 노력해온 것이 근대화 인간들의 특성에 불과하였단 말인가? 나 역시 시대의 흐름에 훈육되어온 한 인간에 불과했단 말인가? 세상 참 엿 같구나. 정말로 이 사회라는 틀에 박힌 바퀴처럼 살기는 싫었는데 말이다.

위대한 수사나 장군은 시간과 공간을 분할하고 사람들을 그것에 맞추어 생활하도록 강제하면 자신들의 원하는 목적을 훨씬 쉽게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베버는 사람들의 생활을 시간과 공간에 다라 분할하고 그것을 계산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훈육이라고 개념화했다. (…)
적어도 신체를 부품화 하는 훈육 작업은 두 단계에 걸쳐 일어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신체를 길들이는 작업으로 신체가 이전이 습관으로부터 철저히 단절되도록 강제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는 신체를 길러내는 작업으로 신체가 능동적으로 이 과정을 의욕하고 여기에 참여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훈육의 최고 목적은 능동적 자제다. -베버 270~274p


비록 마지막에 소화불량에 걸리긴 했지만, 니체는 ‘생의 철학’으로 내 가슴에 충분히 닿았다. 자신의 밑바닥을 살펴보고 싶은가? 일단 니체가 쏘아대는 천 개의 화살을 맞고, 니체가 드리운 천 개의 낚시밥을 물어라.
왠지 생이 가벼워진다.


<3> 저자라면
내가 손댈 부분 없이 훌륭한 책이었다.
저자가 분명 있었는데도, 나는 저자를 느낄 수가 없었다. 저자는 니체의 등 뒤에서 교묘히 그에게 내공을 불어넣고 있었다. 니체의 편에 서서 옹호한 것이 아니라, 요리조리 다른 철학자들을 내놓으며 니체를 공개하였다. 니체 대신 니체의 화살을 쏘아댄거다.

다만 1부와 2부의 갭을 메울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내 생각이 미처 저자의 의도를 따라갈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2부에서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바를 잡을 수 없었다.


<4>인상 깊은 글귀들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철학
니체의 철학에 대한 비판은 분명히 사유로부터 삶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염세적 사유의 굴레로부터 삶을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니체의 비판이 지향하고 있는 바다. 그러나 이는 ‘철학을 비판하는 철학’으로서 니체 철학의 절반일 뿐이다. 왜냐하면 삶을 속박하는 사유가 비판받아 마땅한 것처럼 사유를 속박하고 있는 삶 역시 비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49p

니체에게 심판은 무엇인가? 그것은 법정을 법정에 세우는 것, 심판을 심판하는 것, 가치들에 대해 가치 평가하는 것이다. -55p

니체가 철학에 보내는 권고는 ‘삶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라’는 것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삶을 사랑함은 우리가 사는 일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철학은 본래부터 사랑의 학문이다. 진리와 사랑에 빠진 철학자, 그는 현인이기보다 ‘지혜의 친구’여야만 한다. -56p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파괴적 행동도 아니고 숙명적인 운명을 받아들이는 체념적 행동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예술적 행동이다. 니체는 말한다. “삶을 사랑하는 철학은 변화하는 건강상태를 횡단하는 변모의 예술이다. ” 그리고 건강은 새롭게 획득하고 계속 획득되어야만 하는 그런 것“이다. -59p

니체는 항상 떠나는 사람이며,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일이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명한다. 나를 잃어버리고 너 스스로를 찾으라, 너희가 나를 완전히 부정하였을 때 나는 너희에게 돌아가리니” -250p

▶미래의 철학
우리는 잘못 간주되어진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계속 자라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벗고 매년 봄마다 새 껍질을 입으며 계속해서 젊어지고 미래로 채워지며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 -5p

프로메테우스 전설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인적 노력을 하는 개인은 필연적으로 (신을) 모독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38

미래란 ‘항상’ 와 있지만 ‘항상’ 오해되고 있는 시간이고, 아무리 늦게 나타나도 ‘항상’ 너무 이르게 나타나는 시간이다. 그것은 시대와 불일치하는 시대이며, ‘때 아닌 것’의 형태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53p

“늦게 온 손님이 자리를 얻으려면 아주 위대한 일을 하면 된다. 그렇다면 늦게 도착했어도 진실로 좋은 자리가 마련되리라.” 위대한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다. 미래를 건설하려는 자에게 과거는 재현이나 보존, 부정의 대상이 아니다. 과거의 시간 속에 들어 있는 건설의 질료와 힘들이 모두 미래적 건축가에게는 소중하게 이용된다.
니체의 해석이란 바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차이의 생성이다. -114, 115p

▶니체의 계보학, 강한 자와 선한 자
강한 자는 선한 자가 아니다. 강한 자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이다. -77p

강자들, 고귀한 자들의 평가 양식을 니체는 “거리에 대한 열정”으로 표현하곤 했다. 거리에 대한 열정이란 다른 것과 자신의 것을 구별 짓는 차이에 대한 열정이다. 그들은 자신의 사회적인 힘과 위계를 긍정하며, 이것을 다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기반으로 사용한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아니라 긍정의 대상이 되며, 이들은 오히려 더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도록 노력하는 것, 이 때문에 거리에 대한 열정에는 자기 극복의 원리도 내재해 있다. -78p

니체는 자신이 인정한 덕은 “판단을 누구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 인정받는 것과 상관없이 평가하는 것, 가축떼적 입법이 금지하고 있는 것을 행하는 것, 요컨대 르네상스의 덕”이다. -88p

악이란 지금 현재의 조건 속에서 나에게 맞지 않는 것과의 마주침이다. 다른 관계 속에서 만났거나 내가 훨씬 강한 소화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악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해로운 존재, 그것이 바로 악이다. 이처럼 스피노자의 선/악의 개념은 좋고 나쁨의 의미만을 가진,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자연학적인 것이다. -90p

니체가 높이 평가하는 강한 인간들은 차이를 끊임없이 생성하고자 하며, 차이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다양성이야말로 좋은 사회의 조건이라 말한다. -96p

니체에게 강함은 무엇보다 ‘먼저 시작하는 것’, ’창조하는 것‘, ‘자율적인 것,’ ‘넘치는 것’, ‘선사하는 것’, ‘공격하는 것’ 등으로 그려진다. 약함은 ‘권리를 양도하는 것’, ‘무리짓는 것’, ‘보편적인 것에 대한 추구’, ‘결여된 것,’ 적응하는 것,‘ 외적인 것에 대한 비난과 원한’ 등으로 그려지고 있다. -166p


▶니체의 해석학
해석학자들이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타자와 벌어져 있는 ‘차이’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타자’보다 ‘차이(거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서 니체의 독창성이 드러난다. -95p
니체의 해석학은 해석 대상이나 해석자 어느 쪽도 절대화하지 않는다. 니체는 필연성을 갖는 사실도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을알게 되고, ‘주체’가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연쇄적으로 더 많은 것을 알수 있다고 말한다. -105p


근대 사회에서 지배적인 것은 ‘정치’가 아니라 ‘사회’이다. ‘사회’는 공통성의 영역이며, 공동선을 추구하는 영역이다. 그리스에서 정치적 영역이 갖추어야 할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 ‘다원성’이었다면,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은 ‘표준화’다. -124p

긍정이 어려운 이유는 끔찍한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달리 느껴져야 한다는 것, 즉 그것이 즐거운 것으로 뒤바뀌어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고통이 고통으로 느껴지고 있는 한 그 긍정은 허위다. 다른 감수성, 다른 느낌을 갖는 신체로의 변신만이 그것을 긍정하게 한다. -201p

신체의 능력은 초월적인 가치를 지도 받거나 내면화 시킴으로써 성장하는 게 아니다. 반대로 신체는 제 자신의 욕망과 능력을 긍정함으로써만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욕망과 능력을 긍정해야 함을 여러 번 주장했다. -2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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