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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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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7일 00시 54분 등록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글을 시작하며


니체에 관한 책을 겨우 두 권 읽었을 뿐이지만, 니체가 얼마나 거대한 구조물인지 감이 잡힌다. 정치, 경제, 종교, 도덕, 철학....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스케일과 깊이, 언어적 재능, 게다가 스스로 미래 속으로 날아갔다고 말하는 현대성까지, 천재라는 이름을 바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처럼 거대하고 상징적인 체계에 일반적으로 승인된 용어보다는 스스로 창안한 개념을 사용하다 보니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음직도 하다. 그 중에는 지극히 초보적인 오해들도 있어서,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노동이 아니라 전쟁을 권한다’고 강변했는데, 이 때의 전쟁이란 우리가 알고있는 전쟁이 아니라, 생산한 가치를 빼앗기는 임금노예로 사느니 자기가치를 창조하는 전투에 나서자는 뜻이다. 그런데 더러는 니체가 전쟁광으로 알려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독자적인 개념과 은유가 횡행하여, 읽다 지치는 원전보다 고병권의 해설서를 읽은 것에 기꺼이 만족한다. 해설 중에서도 또 내 마음에 와 닿은 용어를 중심으로 추린다고 생각하니, 책이란 쓰여지는 순간부터 저자의 것이 아닐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백년 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옆에서 조언해 주는 위버멘쉬-보통 초인으로 번역됨- 를 만난 기쁨이 크므로 ‘아름다운 오해’라도 좋다. 동굴을 들락거리며 내공을 쌓고, 저자거리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설파하려다 절망하고, 세상의 논법에 대해 구토하는, 살아있는 차라투스트라, 그의 말은 과거형이 아니라 명백한 현재형인 것이다.



2. 중력의 영


이 책에서 소개된 차라투스트라의 주장 중에 일맥상통하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그것은 ‘중력의 영’과 ‘새로운 우상인 국가’와 ‘최후의 인간’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제 발로 선 적이 없고 항상 무언가에 의존하고 숭배해 온 인간의 종착역과도 같은 유형을 ‘최후의 인간’이라고 부른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도,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도, 무언가를 동경하는 것도 다 귀찮아하는 것, 수면제 한 움큼 먹은 것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속에서만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최후의 인간’이 양성되는 데에는 ‘중력의 영’이 작용한다. 니체가 말하는 ‘중력의 영’이란 경험, 관습, 도덕, 법률, 법칙 등 다양한 것들 속에 기거하면서 자유로운 비상을 막는 정신이다. 보통 난쟁이로 상징되는 그것은 차라투스트라의 등에 올라타 자꾸만 심연으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내가 예전에 해봤는데 아무 소용없어!’ ‘너 그러다 큰일 난다, 세상 물정을 통 모르는 녀석이군!’ 그런 식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스스로 주체적 인간이고자 하는 전투에 지친 ‘최후의 인간’은 국가라고 하는 새로운 우상을 섬기게 된다. 그런데 차라투스트라는 국가의 출현이, ‘연기 피워 올리고 복화술 쓰는’ 완전한 쇼라고 비난한다.

“국가는 마치 그 누구로부터도 불편부당한 존재인 양, 그 스스로가 보편적 선이고 정의인 양 행세한다. 실제로는 특정한 계층, 특정한 계급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혹은 그 스스로가 특정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사회로부터 초연한 양 거드름을 피운다. 국가에 있어서는 모든 게 거짓스럽다. 심지어 그 내장조차도 거짓스럽다.

자유보다는 복종을, 생명보다는 죽음을 부추겨, 모든 사람이 서서히 자신의 목숨을 끊어가면서 ‘생’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곳, 그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

고병권이 이 책을 위험하다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따라가기 겁날 정도의 완전한 부정이다. 그런데 차라투스트라는 무릇 삶에는, 쓰디쓴 부정-죽음이 허다하게 있어야 한다고 한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운명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것이고, 재창조되기 위하여 하나의 삶은 다음 삶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진실로 나는 백 개나 되는 영혼을 가로질러 나의 길을 걸어왔으며 백 개나 되는 요람과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나의 길을 걸어왔다.”



3. 시간


우주에는 단 하나의 시계만 있는 게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그에겐 현재인 시간이, 그의 청중들에게는 미래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번개의 섬광은 소리보다 먼저 도착했고, 이미 소멸한 별이 밤하늘에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특히 그 시대가 포착하지 못하는 ‘광기’ ‘탈주’ ‘예외’등의 문제를 시간상의 불일치와 관련시켰다. “광기에 반대되는 것은 건강이 아니라 길들여진 두뇌다”
헤겔이 ‘모든 사상가는 자기 시대의 아들’이라고 말한데 비해, 니체는 ‘참된 철학자는 가장 깊은 의미에서 비시대적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작품이 시대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결코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니체 사후 100년을 기념해서 출간되었다는 저서의 제목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은 암시적이다. 아직도 니체는 철학을 뒤흔들고 있고, 미래의 학자들은 니체를 분석하느라 노심초사하고 있으니, 니체 말대로 그 자신이 시대를 뛰어넘은 참된 철학자라고 하겠다.


오직 미래적인 것만이 현재를 돌파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속에서 미래를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차라투스트라처럼 시대의 왕따를 감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즐겨야 한다. 니체는 선택을 요구한다.

무리에 묻혀서 살아갈 것인가, 왕따를 감수하고 자기 길로 갈 것인가?

시대의 시간과 다른 시간을 사는 것, 바로 ‘비시대성’이 타임머신 없이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미래로 떠나고 싶다면 지금 여기서 그 미래를 만들어라.
이것이야말로 ‘머무른채로 떠나기’이며, ‘앉은 채로 유목하기’ 아니겠는가.

차라투스트라는 시간 여행의 비밀을 창조와 생성에서 발견했다. 창조와 생성은 현재와 과거를 구원하는 방법이며, 미래를 구성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시간 자체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해는 하겠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창조하고 생성할 것인가.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말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노하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모두가 가야할 단 하나의 길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4. 어린 아이


니체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다 다른 스타일로 썼는데, 논문이나 에세이, 시집이나 희곡, 서평과 설교와 노래가 나오는가 하면 단 한 줄로 된 아포리즘도 있다. 니체가 이처럼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한 이유는 바로 독자를 선택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니체는 독자들을 낚기 위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작품은 낚시 바늘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낚시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 해도 내 잘못은 아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물고기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아포리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산맥 중에서 가장 가깝게 가는 길은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까지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긴 다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포리즘은 산봉우리여야 한다. 그리고 그 아포리즘을 듣는 자는 몸이 크고 큰 자여야 한다.”

니체는 은유와 상징을 능숙하게 사용했는데, 그것은 ‘생명력을 상실한 화석화된 문자’를 공격하는 수단이었다. 차라투스트라에는 많은 동물들이 인간유형에 비유되는데, 삶을 견뎌야 할 고통으로 여기며 한번도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한 유형은 낙타이다. 당연히 그는 자기 삶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린다.

반면에 자유를 위한 열망을 가지고 있으며, 아무의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의지를 따르고자 하는 유형은 사자에 비유된다. 만약 낙타가 사자가 되었다면 참으로 큰 소득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정신의 마지막 단계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이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이고,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기” 때문이다. 아이에 이르러서야 정신은 자기 자신의 의지를 찾는다. 어린아이들은 자기 욕망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보통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다. 스스로 자기 욕망의 주인인 자만이 자기 세계를 갖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제우스를 ‘세계의 어린아이’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안에는 어린 아이가 있다. 나는 내 아이들이 뱃속에 잉태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내가 자주 입덧을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네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아이가 나오는 것이다.”

청소년시절, 막연하게 니체 하면 허무주의와 등식이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다른 저서에 차라투스트라와는 다른 차원의 사색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일반에게 와전된 것인가 어리둥절하다. 허무주의는 커녕 생의 철학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자기애와 긍정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이해가 될듯말듯한 ‘권력의지’와 ‘영원회귀’만 해도 전적으로 긍정의 철학인 것이다.



5. 놀이와 춤 그리고 웃음


차라투스트라는 세상일을 어떤 목적에 꿰어 맞추는 목적론을 거부한다. 그가 ‘세상은 주사위 놀이를 하는 신들의 도박대’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우주에는 목적이 없다는 것과 ‘세상이 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세상이 놀고 있다’는 말은 헤라클레이토스가 먼저 했다.

“생성과 소멸의 반복은 저토록 많은 다양성을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거기에 무슨 도덕적 책임이 거론될 수 있는가? 왜 그러느냐고 묻지 말라. 그것은 하나의 유희일 뿐이다. 그것을 너무 비장하게 특히 도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헤라클레이토스

이 세상에는 주사위 놀이를 할 때조차 ‘계산하고 셈하고 싶어하는’ 학자풍의 인간들이 많다.
또한 ‘아무리 던져봐라, 똑같은 것만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괜히 새로운 것이 생겨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던져봐야 네 몸만 상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중력의 영’ 난쟁이들도 많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주사위놀이에서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던지지도 않은 주사위가 계속 돌아올 리는 없다는 것, 주사위놀이 자체는 반복일지 몰라도, 반복은 차이와 다양성을 생산한다. 세상은 엄청난 다양성의 소유자이다. 중요한 것은 용기를 내는 것,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다른 누구를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향해 힘껏 싸워보라.

“내게는 용기라 부르는 것이 있다. 용기는 심연에서 느끼는 현기증까지 없앤다. 사람이 있는 곳 치고 심연이 아닌 곳이 있던가! 용기는 최상의 살해자다. 그것도 공격적인 용기는.
그런 게 생이던가? 좋아!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차라투스트라에게 춤과 웃음은 ‘중력의 영’을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는 ‘모든 무거운 것들을 가볍게 만들어야’ 춤을 출 수 있으며, 추악한 현실은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다시 되살아나지 못한다. 사람들은 분노가 아닌 웃음으로 죽인다. 자기 시대 자기 삶에 대한 거부만으로는 결코 날 수 없다. 우리는 부정을 통해 도약해서는 안된다. 차라투스트라는 묻는다.

“오! 그대 심각한 동물들이여 생각해보라. 그대들이 가벼워지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지를, 그리고 그대들이 결국 얻고자 하는 게 웃음인지 울음인지를”


6. 밑줄을 그으며


이 책을 읽으며 숱하게 밑줄을 그었다. 이제까지 쓴 내용도 90프로가 책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아직은 내 철학으로 곰삭을 시간을 갖지 못했지만 여러 군데에서 암시를 받은 것만으로 고마운 노릇이다.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할 친구를 당대에 만나지 못했으나, 니체는 아무나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누구나 읽어주기를 소망하지도 않았다. 선물은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친구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하는 자가 찾고 있는 것은 친구다. 무리나 추종자가 아니다. 창조하는 자는 더불어 창조할 자, 새로운 가치를 새로운 판에 써넣을 친구를 찾는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에서-

300년을 기다릴 수 있는 ‘위대한 정신’을 만난 것에 감사하며, 내 안으로 들어온 몇 가지의 씨앗에도 감사한다. 이 씨앗이 어떤 나무가 될 지 지금은 모른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자기자신을 ‘거대하고 무제한적인 긍정과 아멘’이라고 말한 차라투스트라처럼
“모든 심연 속으로 나는 여전히 나의 긍정이라는 축복을 가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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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6.06.25 01:17:07 *.145.124.204
저도 이 책을 필독 목록에 올렸습니다.
지금은 책보다 한선생님 글을 먼저 읽지만.
읽고나니 더 땡기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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