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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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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4일 07시 02분 등록
Ⅰ.내가 저자라면

이번에는 조셉캠벨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볼까 한다.
먼저, 캠벨은 그의 강의와 글을 통해 종종 모던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와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작품을 언급하곤 한다. 일단,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에 대해 알아보면 그는 20세기 영문학의 새 장을 연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가로 유명한 작품 ‘율리시스’를 쓴 저자이다. 특히 그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이용해 완성한 <젊은 날의 예술가의 초상>은 큰 효과를 거두었으며, 이후 버지니아 울프 및 윌리엄 포크너등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캠벨의 중요한 첫 책 (헨리 모튼 로빈슨과 함께 쓴) ‘A Skeleton Key to Finnegans Wake’ (1944년)은 조이스의 마지막 작품인 ‘Finnegans Wake(피네간의 경야)’의 중요한 분석서이기도 하다. 게다가 캠벨의 독창적인 작품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캠벨은 ‘monomyth(원질 신화)’로 언급되는 것을 다루는데 이 ‘monomyth’는 조이스의 ‘Finnegans Wake’에서 빌려 쓴 단어이기도 하다.

토마스 만(Thomas Mann) 은 독일의 소설가이자 평론가로서 다양한 장,단편 소설과 산문들을 써낸 작가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도 인용된 "시인적 본성은 심리학적 관심과 무관하지 않고, 심리학적 관심은 신화에의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캠벨에게는 분명 매력적이었을 작가였을 것이다.

인류학자 레오 프로베니우스(Leo Frobenius) 또한 캠벨의 문화,역사의 관점에서 중요하다. 조셉캠벨은 종종 그의 지적 발전에 중요한 책으로 오스와일더 스펭글러(Oswald Spengler)의 ‘The Decline of the West(서양의 몰락)’를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 작품 또한 레오 프로베니우스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작품이다.

또 신화와 인간의 영혼과의 관계에 대한 캠벨의 사상들은 정신분석 학자인 칼 융(Carl Jung) 의 작품들에 의지하고 있다. 신화에 대한 캠벨의 개념은 꿈의 해석에 관한 융의 방법과 매우 관계가 깊다. 원형에 대한 융의 통찰은 Bardo Thodol (‘티벳 사자의 서’라고 알려진)에 의해 중요한 영향을 받았는데 캠벨 또한 1981년 글 ‘신의 이미지’에서 bardo Thodol에 대한 융의 해석을 인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캠벨하며 떠오르는 ‘천복’이라는 말. “너의 천복을 따르라”는 그의 철학은 1922년 싱클레어 루이스(Sinclair lewis) 의 소설 ‘Babbitt’에 의해 영향 받은 것으로 그녀는 미국 사회와 종교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지성이었다고 한다. 어떤가. 조셉캠벨과 잘 연결되지 않는가?

캠벨은 컬럼비아대학에서 학생일 때 하인리히 짐머(heinrich Zimmer) 교수 아래에서 신화를 연구했다. 짐머는 캠벨에게 신화는 복잡한 현대 사회의 미로에서 그 스스로를 찾기 위한 심리적인 로드맵을 제공하는 개인의 멘토의 역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는 캠벨의 신화에 대한 기본 입장이기도 하다.
캠벨은 후에 융의 해석적 기교를 차용하고 짐머의 세계 신화학의 해석과 같은 방식으로 그것들을 새로이 만들어 냈다.
제임스 조이스와 토마스 만,칼융,짐머 박사의 이야기들과 작품들은 ‘신화의 힘’ ‘천의 얼굴을 한 영웅’등 현재까지 내가 읽은 책 곳곳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즉 캠벨의 밑간을 이루는 사상에 그들의 영향이 컸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캠벨은 ‘신화의 힘’에서 마음에 드는 작가를 하나 붙잡고 그 작가만 물고늘어지라고 충고했다. 그 작가가 쓴 것은 모조리 읽고 그 작가가 읽은 것까지 모두 읽는다면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그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또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었다. 캠벨 또한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레오 프로베니우스와 칼융 등을 물고 늘어져서 캠벨 그 만의 색을 가진 독특한 관점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 또한 현재 많은 학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고 그의 책을 접하는 우리와 같은 소소한 독자들에게도 끊임없는 영감과 사상을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

아래는 조셉캠벨의 책 이외의 매체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을 정리한 것이다. 혹 미국 여행등에서 캠벨과 관련된 아래 매체를 구매할 수 있다면 색다르게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조셉캠벨의 오디오 테이프
- The Power of Myth (신화의 힘) (1987년)
- Trasformation of Myth Through Time (신화의 세계) (1989년)
-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990년)
- The way of Art (1990년)
- The Lost Teachings of Joseph Campbell (1993년)
- On the Wings of Art : Joseph Campbell : Joseph Campbell on the Art of James Joyce (1995년)
- The Wisdom of Joseph Campbell (1997년)
- Joseph Campbell Audio Collection 1~6 (1997년)
- Myth and Metaphor in Society (With Jamake Highwater) (2002년)

조셉캠벨의 비디오 / DVD들
- Psyche & Symbol 13 part KQED/PBS 비디오 시리즈
- Trasformation of Myth Through Time (신화의 세계) (1989년)
- Mythos (1987/1998년)
- Joseph Campbell and the Power of Myth (1988년)
- The Hero’s Journey : The World of Joseph Campbell (1987년)
- Myth and Metaphor in Society (1993년)
- Sukhavati(극락) (2005년)


Ⅱ.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프롤로그
<원질신화>
13P 변화 무쌍한 듯하지만 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야기의 일정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도전적이리만치 끈질긴 암시를 던진다.
14P 신화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살아 있는 영감을 불어 넣었다. 신화는, 다함 없는 우주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14P 신화학의 상징은 꾸며낸 것도 아니고 누가 있으라고 해서 있을 수도,발명될 수도, 억압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5P 프로이트와 융과 그 후계자들은 영웅과 신화의 행적이 현대로 계승되었음을 여지 없이 증명해 내었..제대로 된 일반 신화학은 없어도, 사사롭고 드러내어 인정받지 못한 미성숙 단계에 있다 뿐이지, 그래도 우리의 내부에는 속으로 알찬 꿈의 판테온이 있다.
21P 의사는 신화 영역에 관한 현대의 명인이며, 그 비방과 영험이 있는 주문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의사의 역할은, 신화나 동화에서 주문으로 무서운 모험의 시련과 위기에 몰린 영웅을 도와주는 노현자의 역할과 같다.
22P 갖가지 제의를 검토해 보면, 우리는 이러한 제의의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적 삶의 패턴은 물론 무의식적 삶의 패턴까지 변화를 요구하는 변형의 문턱을 넘게 하려는 데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 상당수의 제의적 시련과 이미지가, 정신 분석을 의뢰한 환자가 유아기 고착 상태를 떨치고 미래를 향해 발돋움을 시작하는 순간 꿈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23P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내부에 있는 타락의 길을 버리고 영험적인 정신의 도움을 따르게 하는 우리 내부의 고차원적인 신경증인지도 모르겠다.
24P 비의적 이미지는 우리 심성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이 이미지들이 신화와 제의를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지 않으면, 꿈을 통해 내부에 나타나게 된다.
25P 우리는 자궁이라는 이름의 무덤에서 무덤이라는 이름의 자궁까지 완전한 순환 주기를 산다. / 나 개인을 괴롭혔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모험에의 두려움을 돌이켜볼 떄, 결국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유사 이래 이 세계 방방 곡곡, 그리고 문명의 갖가지 위장 아래서 남녀가 더불어 경험한 일련의 상투적인 변신 이야기일 뿐이다.
27P 전통적인 통과 제의가 개인에게 과거를 향해서는 죽고 미래를 향해서는 거듭 날 것을 가르쳤듯이, 저 왕위 서임 의식은 그의 개인적인 성격을 벗기고 신명이라는 망토를 입혀주었다.
29P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수수께끼이며, 영웅의 바탕이 되는 미덕과 역사적 행위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다.
31P 바스티안은, 지구 위 어느 곳에 있든지 인류의 기본적인 관념은 놀라울 정도로 동일하다고 주장
33P 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 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뚜렷이 제시되는 데 견주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 영웅은, 사회 재생의 심원한 원리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37P 극히 어렵고 위험한 작업인 자아 발견과 자아 발전을 꾀하는 모든 사람들은 생명의 바다 건너편에 정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9P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44P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 영웅이 치르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궤도는 통과 제의에 나타난 양식, 즉 <분리>,<입문>,<회귀>의 확대판이다.
48P 정각은 말로써는 전할 수 없고 오직 정각에의 방법만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름과 형태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진리의 불립문자 교리는, 플라톤 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양 전통의 근간을 이룬다./부처가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종교를 세웠지만 그 가르침의 궁극적인 요체는 침묵 속에서만 전수된다.
50P 영웅의 모험은 위에서 말한 핵 단위의 패턴, 다시 말하면,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52P 동화 속의 영웅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소우주적 승리를 거두고, 신화의 영웅은 세계사적, 대우주적 승리를 거두는 게 보통이다.
53P 모험의 형태, 등장인물의 역할,마침내 얻은 승리의 내용물에는 놀라울 정도로 별 차이가 없다.
54P 우주 발생적 순환은 모든 나라의 신성한 문헌에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고. /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 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55P 위대한 영웅은 위대한 행적을 통해, 이 다양한 얼굴이 사실은 하나임을 알고, 또 남들에게 아리게 된다.
60P 한 문화가 신화 안에서 인간 존재의 면면이나 그 문화의 면면을 키워나갈 때, 그 문화는 상징적인 암시와 함께 싱싱하게 살아난다.
62P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르기를, <신에게는 모든 것이 공정하고 선하고, 정당하지만 인간은 어떤 것을 그르다고 하고 어떤 것을 옳다고 한다.>고 했다. / 신화도 위대한 영웅을 위대한 도덕가로는 다루고 있지 않다. 미덕 역시, 최고의 직관 앞에서는 케케묵은 훈장의 읊조림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제1부.영웅의 모험
<1.출발>
82P 개인이 자기 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하면 신의 의지, 즉 자신의 자기 중심적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신 자신은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87P 인격이 이 새로운 힘을 흡수하고 통합할 수 있으면 당사자는 자기 의식의 초인간적인 단계 및 완전한 통제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
96P 모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98P 실제로 소명은, 통과 제의의 사제가 접근하고 있음을 알리는 첫 번째 통고다. / 영혼을 닫은 자들에게도 초자연적인 안내자가 오는 예가 있다.
105P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삶을 거부하던 카마르 알 자만의 운명은 의식적인 의지의 협력이 없이도 완성되기 시작했다.
113P 영웅이 겪는 복잡한 관문 통과의 다의성과, 영웅의 공포는 완전한 정신적 무장 앞에서 사라지겠지만, 자기 능력을 과신하는 무모한 영웅이 관문 통과에는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20P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122P 세계 도처에서 채집되는 이러한 모티프는, 관문의 통과가 자기적멸의 형태를 취한다는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124P 아난다 쿠마라스와미 박사는 <생명체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체든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수 없다>고 썼다. / 자아에의 집착을 끊은 영웅은 왕이 자기 궁궐에서 방방을 드나들 듯이, 삶의 지평을 넘나들거나 용의 뱃속을 드나들 수 있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 그의 죽음과 회귀는, 모든 현상계의 대립물이 창조되지 않은 불멸의 존재임을 드러내는데 여기에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2.입문>
133P 유아기 상태란 성장의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수정되고 역전되다가 현실에 적용될 필요가 있을 때 재수정된다.
143P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 시련은 첫 관문의 문제를 심화시키고 질문은 여전히 미제로 남는다. 자아가 스스로를 죽음에 내어 맡길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144P 모든 장애물이 극복되고 도깨비가 퇴치되었을 때 영웅이 치르는 마지막 모험은, 승리한 영웅과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스러운 혼례로 표상된다.
152P 숭배자의 정신은 유치하고, 어울리지 않는 감상과 증오로부터 스스로를 정화하고, 유치한 인간이 자신의 행,불행에 연결 지어 멋대로 가른 <선>과 <악>따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본성의 법과 상으로 존재하는 불가해한 실재를 향해 그 마음을 열게 된다.
154P 여신이 바라는 친절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그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화신 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
157P 여신과의 만남은 사랑의 은혜를 얻기 위해 영웅이 맞는 마지막 재능의 시험단계다. / 모험 당사자가 청년이 아닌 처녀일 경우에는, 그 재능이나 아름다움이나 욕망으로 보아 불사신의 배우자가 되기에 마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158P 만일 여자가 이 배우자를 싫어하면,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 그녀의 편견은 바로 잡히게 되고, 그녀가 바라던 존재라고 생각되는 경우 그녀의 욕망은 평화를 성취한다.
159P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삶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 즉 여성이 곧 삶인데, 영웅은 이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 세계 도처에 널린 영웅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모험은 일반적인 양식으로, 어떤 계층에 속하는 사람에게든 그대로 적용된다.
160P 참으로 까다롭고 재미있는 것은, 이상적인 삶에 대한 의식적 견해가 실제의 현실적 삶과 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61P 삶의 배후에 있는 삶을 찾아 나서는 모험가는 그녀의 유혹을 물리치고, 현실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에테르 속으로 날아 들어가야 한다.
162P 자신을 순수한 존재, 선의 정수,부동의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 그는 자유로워진다. 원래 타성적이고 추악한 존재인 이 육체의 모든 제약을 떨쳐버리라! 육체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 한번 속에서 토한 것을 다시 생각하면 혐오감만 더해지느니.
169P 옴AUM, 즉 A는 깨어나는 의식상태, U는 꿈의 의식, M은 꿈꾸지 않는 잠을 뜻하는데, 이 신성한 음절을 싸고도는 침묵은 언표되지 않은 초월성이다.
186P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인간은 이러한 신성한 절차를 통하여 현상계에 대한 공포를 이기고 불사의 존재를 향한 초월의 희망을 획득할 수 있다.
205P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도 지엄하신 그들의 주가 가르친 에고, 에고의 세계, 그리고 에고의 종족 신의 정복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식민지주의적 야만성과, 너 죽고 나 죽자 식 전쟁의 선수로 역사에는 더 잘 알려져 있다.
207P 우리가 일단 세계의 원형들에 대한 편협스런 교회적, 종족적,국가적인 해석의 선입견을 홀가분하게 벗어 던지게 되면, 우리가 전수받아야 할 최상의 도리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서슴없이 이웃을 공격하는, 누구에게만 자애스런 아버지의 도리가 아님을 이해하는 게 가능해진다.
208P 근원적인 말씀이 평화, 모든 존재에 대한 평화를 지향하는 부처의 우주적 친교에 관심해야 하는 것이다.
215P 열반과 더불어 마음은, 생각이 실체가 아님을 깨닫는다.
216P 형상은 빈 것이며, 빈 것은 즉 형상이다. 빈 것은 형상과 다르지 않고 형상은 빈 것과 다르지 않다. 형상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빈 것이며, 빈 것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형상이다. 관념, 이름, 개념 그리고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
217P 삶에서 자유로워진 사람, 욕심이 없고 대자대비하고 현명한 사람이 요가로 자아를 통일하고 만사 평등하게 보면 일체 만유 속에서 자아를 보고 자아 속에서 일체 만유를 본다. … 절대의 마음으로 만유 안에 있는 나를 우러러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속의 삶이 어떠하든 신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230P 불멸의 존재에게 희구했던 최고의 은혜는 바로, 영원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거하는 것이다.
232P 우리 모두가 무의식 속에 간직하고 있는 유아기적 환상은, 불멸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신화와 동화와 교회의 가르침에 반영되고 있는 듯하다.
235P 문학적이고 감상적인 신학의 분위기에서와는 달리, 익살은 철두철미 신화적인 것의 시금석이다.
248P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릅니다.

<3. 귀환>
269P 세계 전역에서 채집되는 수백 가지의 비유적 전설들은, 영웅에게 실패의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무서운 관문 건너 쪽에서 애인과 함께 귀환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 도망에 실패하는 신화는 우리에게 있어서 비극이지만,성공하는 신화는 신용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단일 신화가 완성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적인 실패나 초인간적인 성공이 아닌, 인간적인 성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 그럼 먼저 초인간적 상징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보고 나서, 이러한 문제를 통해 고대인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검토해 보기로 하자.
280P 영웅은 자아를 지키는 대신 자아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조력자의 은혜로 영웅은 자아를 되찾는다.
281P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 / 개인의 개성화 상실의 이 공포는, 자격 미달인 개인에게는 초월적인 경험이라는 만만치 않은 짐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영웅에 값 하는 인간은 대담하게 쳐들어가 마귀 할멈이 여신이 되고, 용이 신들의 번견이 되는 것을 목격한다.
294P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런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아보면 일치하는 하나의 필연적인 공통 분모가 엿보인다.기억 속에서 자기 영혼의 다른 부분과 만났음을 상기 시키는 신비스러운 반지는 영웅이 그곳에 간 적이 있음을 시사한다.
297P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말하자면 시간을 초월한 세계인 저승과, 일상적인 세계인 이승을 두루 돌아다니는 자유는 거장들의 재능에나 어울리는 자유다.
305P 상징이란 의미 소통의 <수레>에 불과하다. 상징은, 그 언급하는 바의 궁극적인 의미, 즉 <진로>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307P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308P 영원의 원리 안에서 집착하지 않는 이승 세계의 인간이 만일 자기 행위의 결과에 초연해하고, 이를 살아 있는 신의 무릎에다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는 이 제물에 의해 죽음의 고해에서 풀려날 수 있다.
313P 온 우주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라. 오직 변화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생될 뿐인 것이다.

<4. 열쇠>
317P 그가 가지고 온 전리품(홍익)은 세상을 구원한다. / 구조가 단순한 원질신화가 보이는 다양한 변화를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오랜 세월에 걸쳐 마모와 손상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신화나 옛 이야기의 윤곽은 원래 애매한 법이다.
319P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리려면, 이를 현대의 문제에 적용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과거의 형태로부터 암시를 읽어내어야 한다.

제2부. 우주 발생적 순환
<1.유출>
325P 동화와 신화의 패턴 및 논리가 꿈의 패턴 및 논리와 인치한다는 발견과 더불어 오랫동안 의혹의 대상이 되어왔던 고대적 인간의 기괴한 환상은 극적으로 현대인 의식의 표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33P 우주 발생적 순환은 우주 자체의 반복,즉 끝없는 세계로 표상된다. 각 순환의 주기 안에는 소멸의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삶이 잠과 깨어 있음의 주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38P 우주 발생적 순환에 의해 설명되는 철학적 공식이란, 존재의 세단계를 통한 의식의 순환을 말한다.
339P 힌두교에서는 성스러운 음절인 <옴AUM>으로 이 신비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A)는 깨어있는 의식을 나타내고, (U>는 꿈 의식, (M)은 깊은 잠을 나타)낸다. / 신화는 이 순환 속에 머문다. 신화는 이 순환을 침묵에 둘러싸인 형태, 순환과 침묵이 서로 삼투하는 형태로 드러낸다.
340P 신화는, 고도로 세련된 형상화 작업을 통하여 마음과 가슴을, 모든 존재를 채우고 둘러싸고 있는 궁극적 신비로 향하게 하는 풍향계다. /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로 보여도 신화 체계는 마음을, 가시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비현현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342P 토마스 아퀴나스 <우주의 끝을 헤아리고, 그 끝이 곧 시작임을 아는 자라야 현자라고 불릴 만하다.> 모든 신화 체계의 기본 원리는 끝과 시작이 함께 한다는 바로 이 원리다. 창조 신화는,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모태가 된 불멸의 존재와 닿아 있음을 상기시키는 파멸 의식과 함께 고루 퍼져 있다.
348P 우주 발생적 유출의 첫번째 결과는 이승적 단계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고, 두번째 결과는 이 틀 속에서 생명이 지어졌다는 것이다. 즉 생명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원적 형태 아래자가 생산을 위해 양극화했다는 것이다. 이 전 과정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성적인 용어로 나타낼 수 있다.
353P <공간은 넓게 펼쳐진 것이 아닌, 오목한 형상으로 끝이 없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무한 위로 떠 있는 껍질이다>
354P 한처음의 우주는 인간의 형상을 한 자아Self였다.
356P 신화 체계에 따르면, 우주에 있어서는 개체이든 창조적인 어버이든 그 영속적인 근본은 하나이며 따라서 동일하다. 그래서 이 신화에서는 조물주를 자아라고 부른 것이다. / 창조 신화는 아득한 옛날 일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현재 및 개인의 근본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357P 남녀간의 사랑의 신비에 따르면, 애정의 궁극적인 경험은 곧 이원성이라는 환상의 배후에 <둘은 곧 하나>라는 등식의 깨달음이 있다. 이 자각은, 우주의 만상은 하나라는 자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애정의 체험은 우주적 체험으로 확산되고, 이 자각에 이르게 한 애인은 창조의 거울로 확대된다.
358P 신화는 두 가지 양식으로 나뉜다. 하나의 양식에 따르면 조물주의 능력은 스스로 기능해 나간다. 다른 한 양식에 따르면, 조물주는 주도권을 포기하고 우주 순환의 다음 단계에서 등을 돌려버립니다.
365P 신하에는, 창조된 세계가 우리의 짐작과 다른 예가 얼마든지 등장한다.
366P 미개한 종족의 신화들 가운데 단순한 기원 설화는 우주 발생적 순환을 깊이 암시하는 신화와 대조를 이룬다.
368P 그것 보아라, 네 운명을 네가 골랐다. 인간에겐 끝이 있을 것이다. / 세계의 정돈, 인간의 창조, 운명의 결정은 모든 원시 창조자 이야기의 전형적인 주제들이다.
369P 기원 설화라는 범주 아래 모인 많은 이야기들은 창세기보다 더 인기 있는 동화들이다. 이러한 익살스러운 신화 체계화는 고급이든 저급이든 모든 문화권에 공통되어 있다.
370P 호의적인 창조자와는 사사건건 반대 입장에 서는 광대도 신화와 민담에는 자주 등장한다. 긍정적 측면에서 존재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나서는 것이다.
373P 민간 신화들은 초자연적 발산물이 공간적 형식을 취해 돌입해 들어오는 순간에만 창조 설화를 흡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신화들은 인간의 상황을 평가한다는 본질적인 점에 있어서 위대한 신화들과 차이가 없다.
389P 주도권은 아이들의 사회로 넘어가다 .상징적이고, 몽상적이었던 부모의 모습은 원초의 심연으로 함몰했다. 풍요한 대지에는 오직 인간만 남았다. 순환은 계속 진행되었다.
393P 처녀 잉태의 이미지는 민담이나 신화에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3. 영웅의 변모>
396P 우주 발생적 순환은, 보이지 않게 된 신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갖춘 영웅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세계의 숙명은 바로 이 영웅들을 통해 실현된다.
400P 영웅이란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운명 지워진다는 관점과 일치한다. / 예수는 엄격한 고행과 명상으로 지혜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하면, 인간의 모습을 취한 하강한 신이라고 믿어질 수도 있다. / 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방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내재적인 신성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

<2. 처녀 잉태>
380P 우주적 여신은, 여러 가지 가면을 쓴 모습으로 인간에게 나타난다. / 생명의 어머니는 동시에 죽음의 어머니다.이 어머니는 기근과 질병이라는 추악한 마귀의 가면을 쓴다.
402P 영웅의 첫번째 과업은, 우주 발생적 순환의 그 전 단계를 의식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404P 전설적인 전기들은 유형화한 유아기의 도피와 귀환의 주제를 상당히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422P 신화적인 영웅은 <이루어진>사상의 옹호자가 아니라 <이루어지는> 사상의 옹호자다.
423P 순환 주기의 초기 단계에 속하는 임무가 인간인 영웅에게 맡겨지거나, 초기의 영웅이 인간화하여 후일에까지 이르는 예는 흔하나, 그러한 혼효와 변화가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428P 영웅이 세계의 군주라면, 처녀는 세계이며, 영웅이 전사라면 처녀는 명예다. 처녀는 영웅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영웅 자신의 운명의 이미지다. 그러나 영웅이 자기 운명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사상에 현혹될 때, 영웅은 아무리 노력해도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다.
431P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것에 대한 감상에 현혹되지 않고, 과감하게 자기 본성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자 앞으로는 어려움이 비켜나고 뜻밖의 탄탄대로나 나타나는 법이다.
432P 첫 번째 영웅의 특징적인 모험이 신부를 얻는 것이라면, 두 번째 영웅의 특징적 모험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434P 지금까지 우리는 영웅의 모험에서 아버지의 시험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아왔다.
437P 첫 번째 단계에서 아들은 사자가 되어 귀환하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나와 아버지는 결국 하나>라는 통찰과 함께 귀환한다. 이 두 번째의 보다 높은 자각에 이른 영웅은 구세주, 한 차원 높은 의미에서의 이른바 지고한 존재의 화신이다.
440P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부터가 틀린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아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생과 사의 끝없는 순환일 뿐이다. / 우주 발생 주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당한 판단과 오류의 규칙 바른 갈마듦은 시간적인 사고 방식의 특징이다.
441P 처음에는 창조주였던 신도 종국에는 파괴자가 된다. / 무섭고 잔인한 폭군은 그가 폐위시킨 예전의 세게 군주나 그를 제거할 영리한 영웅뿐 아니라 아버지까지도 표상한다. / 이 괴룡과 압제자는 그 전세대, 즉 구세주를 맞던 그 이전 세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 영웅의 임무는, 아버지의 부정적인 측면을 살해하고, 우주의 자양이 될 생명의 에너지를 그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 신이, 그에게 스스로 자식을 위한 제물이 되라는 의지를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442P 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를 십자가에 달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된다. / 신화는 단계적인 교훈의 형태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 아들은 아버지를 시해하지만,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은 원초적인 혼돈 속으로 해소된다. 이것이 바로 세계 종말 그리고 재개의 비밀이다.
444P 신화는 부차적인 언어이며, 침묵이 궁극적인 언어가 된다. 정신이 신비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남는 것은 오직 침묵뿐이다.

<4.소멸>
458P 놀랄 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 육체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에 내재하는 왕으로서다.
460P 부처의 죽음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심령에 의한 조형의기간을 거쳐 되돌아 나오는 능력은, 살아생전 어떤 종류의 인간이었는가에 달려 있다.
463P 이것은 죽음과 재상을 동일시하는 관념의 선언이다.
466P 영혼과 우주는 결국 하나임이 드러난다.
468P 개인이라는 창조된 형상이 결국은 소멸되고 말듯이 우주 역시 소멸된다. / 십만년이 지나면, 우주의 순환 주기는 다시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필로그
478P 신화 체계는 현대의 석학들에 의해 여러가지로 정의되었다. 프레이저는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이라고 했고, 뮐러는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이라고 했으며, 뒤르켐은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라고 했고, 융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이라고 했으며, 쿠마라스와미는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이라고 했고, 교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라고 정의했다. /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과거에 어떻게 인간에 봉사해 왔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검토해 보면,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종족,시대의 강박 관념과 요구에 대해 부응하듯이,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479P 출생,세례,결혼,장례,취임 등의 종족적인 제의는, 개인의 삶의 위기 및 행위를 표준적이고 비개인적 형식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이러한 제의는 개인의 정체를 그 자신에게 보여준다. 인격체로서의 개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사로서, 신부로서,과부로서,성직자로서,추장으로서의 개인을 보여주는 것이다. / 개인이 속하는 사회는 원형적 무대에서 옛 현인의 가르침을 시연할 수 있다.
480P 계절적인 축제가 통상, 자연을 통제하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되어 왔다. 이것은 어림없는 해석이다. / 제의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피할 길 없는 운명에 순종한다는 것이었다.
481P 계속성의 상징 체계는, 신화 체계적인 전승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는 사회면 어느 곳에서든, 얼마든지 발견된다. / 성별,연령별,직업별 차이는, 우리 인간의 특질상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어느 단계에서 우리가 한동안 입고 있는 옷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부에 있는 인간의 이미지는 의상과 아무 상관도 없다.
482P 목표는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즉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483P 사회적 참여가 결국에는 개인의 내부에 있는 전체를 깨닫게 하듯이 추방으로 인한 유랑이 영웅을 전체에 내재하는 자아에 이르게 한 것이다.
485P 오늘날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세계적 종교도 일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
486P 그것보다 필요한 것은 전체 사회 질서의 진화다. 그래야 세속적인 삶의 의무와 행위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실제로 내재하고 또 그만큼 효과적인, 보편적인 신인의 이미지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이를 의식화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한 민족 특유의 생활 환경, 인종, 그리고 전통이 유효한 형식으로 화해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갖가지 상징을 통해 동일한 구원이 계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고, 또 알아야 한다.
488P 인간은 아득한 존재와 더불어 끝나야 하고, 이 아득한 존재를 통해 자아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해야 하며, 이 사회의 이미지 전체가 개선되어야 한다. / 감히 소명에 응하여, 우리의 운명을 화해시켜야 하는 존재의 거처를 찾아내는 현대적 인간인 현대의 영웅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만심과 공포와 자기 합리화 된 탐욕과, 신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오해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 던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 된다. /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Ⅲ.내가 저자라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캠벨은 제1부를 통해 영웅의 모험을 통해 영웅의 일대기를 하나의 원형으로 축약, 정리하고 증명한다. 제 2부에서는 우주와 인간의 발생에 관한 창조 신화부터 인용해 우주의 재생원리까지 아우르고 있다. 여기에서는 주로 남성이라는 세계 위에서 여성을 통해 인간과 창조물들이 잉태되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그는 각종 신화와 민간 이야기, 동화 등 영웅이 나오는 모든 다양하고도 다채로운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동원해 1부에서 영웅에 대한 중심적인 패턴 및 2부에서의 우주 발생의 이야기를 증명해 내고 있다.

그는 신화도 꿈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고 말한다. 신화와 꿈은 비슷하게 인간 무의식이 투사된 하나의 진리라고 이야기 한다. 이는 인간 스스로가 이미 내재한 진리들을 몸에 코드화 해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캠벨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각종 종교 및 신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하나의 신이라는 존재가 다양한 상황에, 다양한 종족에 맞게 변형되었을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신은 각기 다른 신도,시대,국가에 맞추느라 서로 다른 종교를 만든다. 전심 전력으로 어느 길이든 따라가면 누구든 신에 이를 수 있다. 얼음 과자를 가로로 먹든 모로 먹든, 무슨 상관인가! 어떻게 먹든 달콤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208P)’ ‘한 민족 특유의 생활 환경, 인종, 그리고 전통이 유효한 형식으로 화해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갖가지 상징을 통해 동일한 구원이 계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고, 또 알아야 한다.(486P)’
신화 이야기를 접하게 된 후로는 어떤 이야기도 새로운 것은 없다고 보여질 정도로 신화는 다양하고 창조적이며 기상천외한 내러티브로 이미 가득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사실 영웅에게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고 펼쳐 놓는 그의 이야기들이 사실 어쩌면 공통이 아닐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패하는 영웅의 이야기들 또한 나름의 이야기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캠벨은 굳이 이야기의 변용이라고 설명해 나가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결국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어찌 보면 같은 듯 같지 않은 나름의 개성을 가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를 ‘영웅’이라는 단어로 묶어 실패한 영웅까지 이야기로 포함시키는 것은 의미의 혼돈과 사고의 제약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웅’이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인간사’라고 하는 게 어땠을까. ‘천의 얼굴을 한 인간사’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인간은 성공적인 인간사가 되는 것이고 (캠벨이 얘기한 대로 자만한다거나)하는 구조를 보이는 인간사는 실패한 인간사가 되는 것이다. 영웅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서 살아 나가면서 성공적인 인간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을 철저히 깨닫고, 넘어서며, 새로운 세계를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2부에서 이야기되는 우주 발생적 순환과 맞물려 다양한 창조 신화와 그 속에서 영웅의 이야기들을 접하기도 한다. 이때에는 영웅은 구세주로서의 영웅이다. 창조 신화들을 읽던 도중에 맞닥뜨리는 자연스러운 근친 상간 및 일부다처 이야기들은 놀랍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계의 선과 악의 개념을 넘어서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런걸 보면 캠벨의 말처럼 과연 이러한 잣대 또한 인간 사회에서만 통하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준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윤리, 도덕의 개념을 벗어난 이야기들, 공개념의 그것. 그것만이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조셉캠벨은 ‘신화는, 고도로 세련된 형상화 작업을 통하여 마음과 가슴을, 모든 존재를 채우고 둘러싸고 있는 궁극적 신비로 향하게 하는 풍향계다. (340P)’라고 이야기 한다.

새삼, 다시 한번 신화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궁금해 진다. 서로 만날 일도 없는 세계 각 지역의 원주민들은 비슷한 모티프의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꿈과 신화는 그 구조가 같다는 사실들. 그렇다면 그 이야기들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들일까? 조셉캠벨은 이는 누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신화학의 상징은 꾸며낸 것도 아니고 누가 있으라고 해서 있을 수도,발명될 수도, 억압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14P)’ 하지만 고대 인간들이 지어난 상상력이 아닐까라는 나의 의구심은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다. 무지(무식이 아니다!) 할수록 상상력은 극대화될 수 있지 않을까? 현재와 같은 안정된 어떠한 기준과 가치가 없던 시절이기에 더욱 한계가 없었던 상상력의 소산이지 않을까? 본능이 느끼고 있는 진리이기에 그것의 시대를 넘나드는 진실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또한 현대 세계의 더 이상은 신화가 새로이 나오지 않는 이유들은 무엇일까? 이는 과거와 달리 어느 정도 문명을 이루고 어느 정도 비밀이 벗겨진 ‘과학적’ 이라고 이야기하는 현 시점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만들어 낼 기회와 이유가 필요 없지 않을까?

사실 캠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신화뿐 아니라 다양한 의례 의식에 더욱 관심이 간다. 겪어보지 않고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것만큼 두리뭉실, 뜬 구름 잡는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례 의식의 경우는 적극적인 유추 작용을 통해 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에 나에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본인의 참여 및 적극적인 의지가 발현될 수 있고 또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에. 지금 나에겐 신화 외에 의례의식에 관한 캠벨의 이야기가 더욱 듣고 싶기도 하다.

어쨌든, 조셉 캠벨이라는 한 명의 ‘신화의 장인’이 있기에 숨어있는 그렇게 수많은 암시와 상징을 우주의 원리, 진리로서 수긍할 수 있는 명료한 풀이로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로 인해 신화 이야기가 단순히 지나쳐가는 이야기로서가 아닌 우리에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신화 하나만 놓고 보면 내가 거기에서 취할 수 있는 진리는 미처 깨닫지 못할 것이다. 조셉캠벨이라는 학자가 들려주는 ‘비교 신화학’이라는 형태를 통한 대의적인 이야기이기에 나에게는 더욱 와 닿는 진리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속초 워크숍에서 가진 ‘장례 스피치’는 캠벨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를 버리고 깨버리고 다시 재생하기 위한 영웅으로서의 큰 첫걸음이 아니었나 싶다. 일종의 제의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를 통해 재생을 했어야 했는데 충실하게 참석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보완점>

먼저 인용 책 페이지까지 섬세하게 주석을 달아내는 캠벨은 과연 세심한 부분까지 믿을만한 학자답다. 천재들의 사고방식 중하나인 패턴화 능력처럼 캠벨 또한 신화에서 뽑아내 보여주는 공통적인 이야기 원형들은 가히 무릎을 칠만하다. 또한 그 많은 이야기들의 세세한 부분을 정리하고 갈무리 해 그의 이론 밑바탕으로 만드는 그의 능력은 과히 본받을 만 하다. 하지만 못지 않게 구성에서 아쉬운 부분이 몇몇 눈에 띈다.

숲보다 나무
이 책에서는 영웅 이야기의 원형을 설명하기 위해 각종 신화와 이야기들의 중간중간 잘린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하기도 하고 페이지를 서로 건너뛰고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전반적인 관점으로 이야기를 훑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아 답답하거나 한번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영웅 이야기의 구조라는 게 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체를 아우르고 각 단계에 맞게 나누어 보는 즐거움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무를 보다 보니 숲을 보는 것을 잊는 경우라고 해야 할까.

어떤 것이 인용이고 어떤 것이 그의 생각이야!
또 어떤 게 인용이고 어떤 게 그의 이야기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는 좀 더 진실하고 정확한 증명을 그대로 내보이기 위한 장치이겠지만 단순히 다양한 견해를 이야기 하는 것인지 본인이 동조하는 바인지에 대한 적절한 코멘트가 없는 경우가 있어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또한 한 명의 학자의 해석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 또한 종종 독자로서 설득력이 약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에 동의하는 그의 정확한 생각과 설명이 부족한 까닭이다. 너무 친절하기를 바랬나.(가령 프로이트가 이야기하는 부모에 대한 성적 도착)

중간중간에 난무하는 이미지들
사실 책을 읽는 도중 맞닥뜨리게 되는 이미지들은 거슬린다. 본문을 읽는 도중에 나오는 이미지는 읽던 이야기와 연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이미지를 읽고 설명을 음미하다 보면 자꾸만 읽던 이야기의 흐름을 잃게 된다. 좀 더 본문에 적합한 이미지를 중간 중간에 심던가 책의 앞편, 혹은 뒷편으로 한꺼번에 넣어서 보여주었다면 독자로서 책을 몰입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는 한국판에서만 발생하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문장 내 ‘조사’의 어색함
덧붙여, 해석된 문장의 조사가 어색한 경우가 많이 눈에 띄었다. 해석상의 오류인지 편집상의 오류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사의 잘못된 사용으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문장도 공연히 한참 생각해야 할 만큼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IP *.34.17.31

프로필 이미지
거암
2008.04.14 09:27:09 *.244.220.254
골육상잔과 용(龍)과의 싸움판 속에서도 할건 다하네요~ ^^
저자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에 대한 자료 도움 많이 되었어요.
프로필 이미지
손지혜
2008.04.14 11:05:23 *.110.86.80
하하하! 거암님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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