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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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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3일 08시 49분 등록
I. 저자에 대하여

파블로 네루다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 살고 있는 한 꿈 많은 청년입니다.

얼마 전 선생님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선생님을 알게 되었죠. 저는 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물론 시인도 잘 모르죠. 그저 대학에 가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외웠던 시 몇 편에 대한 기억만을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선생님께 이런 편지를 쓰는 것조차도 괜스레 부끄러워지는군요. 선생님의 일생을 지켜본 후, 선생님과 둘이서 오붓하게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고 싶어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글을 배운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부터 시를 쓰셨다구요?
정말 놀랬습니다. 저를 비롯해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시는 매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나 쓰는 것도 아니고, 읽는다는 표현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나 읽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시인하면, 배고픈 직업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그 어린 시절에 자신의 강렬한 감정을 몇 자 적는 것으로 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셨다고 하니, 그러한 선생님의 인생이 참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타고난 시인이셨나 봅니다. 그러기에 그 어릴 적에 자신의 소명을 특별한 노력도 없이 발견하게 된 것 아닐까요? 그리고, 그 대단한 노벨상도 받으시고요. 아무튼 선생님께서는 부인하실지 몰라도 참 행운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는 내내, 시인으로서 선생님의 인생은 참으로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처음으로 시를 지었을 때의 그 설레임부터 시작해서 한 평생 시와 함께했던 선생님의 삶은 그 어디하나 모난 곳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냥 물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젊은 시절 로메오 무르가와 함께 산 베르나르도에 가서 시낭송 할 때 기억나실 겁니다. 분위기는 썰렁했고, 관객들은 기침을 해 대고, 야유를 하고, 우울한 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희희낙락거렸던 그 날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께 "빌어먹을 시인들아, 당장 집어치워! 어디서 축제를 망치고 있어."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었죠.
첫 시집 "황혼 일기"를 출판할 때는 정말 고생 많으셨죠. 시집 발행 비용을 마련하느라 정말 단맛 쓴맛 다 경험하셨더군요. 얼마 되지도 않는 가구를 팔고, 시계는 전당포에 맞기고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검정색 시인 복장까지도 전당포로 가고 말았죠.
이처럼 크고 작은 봉변도 당하고,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시인으로서 선생님의 삶은 선생님과 참 어울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아마도 선생님께서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다간 분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큰 일을 해낸 분들의 삶 속에서 이런 어려웠던 경험을 발견할 때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인생이 항상 좋을 때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나쁠 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새옹지마란 말을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힘들어도 좋은 때가 올거니까, 그게 세상의 법칙이요 진리니까, 크게 개의치 않고 넘어가려 노력합니다. 이번에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성격이 참 좋아 보이십니다. 사실 뛰어난 업적을 남긴 많은 예술가들이 있지만, 결코 성격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선생님께서는 "나는 누군가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러셨는지 선생님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씹어 대는 사람들에게도 매번 별 반응 없이 잘 넘기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것들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정말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전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친하게 지낼 사람은 친하게 지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저 인정도 거부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죠. 그저 세상에 휩쓸리지도, 저항하지도 않고 세상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어울려 살아간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아마도 세상을 가장 지혜롭게 사는 방법은 아닐까요?

선생님이 시에 대해 하신 말씀 중에 "시와 가장 유사한 것은 빵이요 질그릇이요 서투른 솜씨로나마 정성껏 깎은 목각품이다."라는 말이 참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시는 아직도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시와 가장 유사한 것이 빵이요 질그릇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서투른 솜씨로나마 정성껏 깎은 목각품이라 하셨습니다. 빵과 질 그릇, 그리고 서툰 솜씨로 깎은 목각품. 저는 시에 대한 이 정의가 너무도 마음에 듭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니, 시가 한없이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배가 고파 시장기를 느끼듯 시가 고파집니다. 빵처럼 우리가 항상 먹어야 하는 것이며, 질그릇 처럼 항상 우리 곁에서 투박하게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며, 서툰 솜씨로 깍은 목각품처럼 뛰어난 솜씨가 아닌 사랑과 정성으로 깍아내는 것이 시인가 봅니다. 지금 같아서는 저도 가끔은 시를 써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싹트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또 "대기가 스며들지 않은 시는 죽은 시다.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다"라는 말도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도 숨을 쉬어야 하는 것이었다니, 처음 알았습니다. 시인이 사랑과 자연을 재료로 아름다운 언어와 자신만의 문체로 버무려 이 세상에 내놓은 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숨을 쉴 수 있도록 대기가 스며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말한 그 대기는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단지 산소가 포함된 공기는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정말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정말 여쭤보고 싶습니다. 시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한 답마저도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놓으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야 좀 더 시적이지 않겠습니까? 제 나름대로 생각한 바로는 시를 숨 쉬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 그리고 그들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유독 사람들을 좋아하셨던 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 시인들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단, 우리가 민중과 강고한 유대를 맺고, 민중의 행복을 위해서 투쟁한다는 단서가 붙을 때만.". 이렇게 말씀하셨죠. 시인은 민중의 행복을 위해서 투쟁한다는 단서가 붙을 때만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말. 그리고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라는 말씀도 남기셨죠. 이런 말씀들 속에 바로 선생님이 생각하는 답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읽은 선생님의 자서전 표지에는 선생님이 턱에 손을 괴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모습의 사진이 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기품이 느껴지는 멋진 모습으로 말이죠.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라는 자서전의 제목처럼 선생님은 이 세 가지를 자신의 인생 속에 제대로 녹여내어 인생을 사신 분입니다. 책을 통해 들은 선생님의 인생이 가슴 속 깊이 남았습니다. 조만간 선생님의 시집을 한 권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인연을 또 하나 만든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선생님의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II.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1. 시골소년

24) 첫사랑, 지극히 순수한 사랑은 철물점 딸 블란카 윌슨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25)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29) 신비로운 바다를 향해 산자락을 끼고 미지의 넓은 강을 항해하는 것보다 더 열 다섯 살 소년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었다.

30) 난생처음 바다 앞에 섰을 때 나는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바다는 커다란 일케 언덕과 마울레 언덕 사이에서 한참 격노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파도가 수미터 상공으로 치솟았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심장이 고동치고 우주가 박동하는 듯 울부짖고 있었다.

35) 나는 삶과 책을 통해 조금씩 흥미진진한 신비의 세계로 나아갔다.

36) 아주 오래전, 어릴 적 일이다. 글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강렬한 감정이 북받쳐올라 몇 자 적었다. 운율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일상 언어와는 다른 것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깨끗한 종이에 정서할 때에도 설렘이라고 할까, 아무튼 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깊은 불안, 일종의 고뇌와 슬픔에 사로잡혔다.

36) 내 기억으로 첫 시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무책임한 문학 비평의 쓴맛을 보았다.

37) 파도가 바위에 부서졌다가 다시 몸을 추슬러 일어서는 짬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다.

43) 이 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개인 신상 기록 카드도 보관하고 있었다. 이 카드에는 방문한 날짜와 제공한 메뉴가 적혀 있었다.
"우리가 메뉴를 보관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다시 우리 집에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똑같은 요리를 내놓지 않으려는 거예요."

44) 가장 단순하지만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 있다. 죽음과 망각

2. 도시의 방랑자

49) 매년 12월 수학 시험에서 곤욕을 치르기는 했지만 중등 과정을 무사히 마쳤으니 겉으로는 산티아고 데 칠레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겉으로'라고 말한 이유는 머릿속이 온통 책과 꿈 그리고 벌 떼처럼 윙윙거리는 시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51) 내가 무대에 등장하여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목소리로 자작시를 낭송하자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관객들은 기침을 해 대고, 야유를 하고, 우울한 내 시를 듣고 무척이나 희희낙락거렸다. 나는 이런 야만인들의 반응을 보고 서둘러 시낭송을 끝냈다. (중략)
"빌어먹을 시인들아, 당장 집어치워! 어디서 축제를 망치고 있어."

55) 그처럼 과도한 분량의 사랑은 배를 곯는 사람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 영양실조 현상이 나날이 극심해지고 있었다.

56) 내가 보기에 여자는 아주 신비한 존재였다. 은밀하게 타오르는 저 불길에 타 죽고 싶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우물에 빠져 죽고 싶었으나, 불이든 물이든 간에 나 자신을 던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65) 이 낯선 남자는 친구들의 예상을 뒤엎고 곧바로 관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리고 들어올 때처럼 나갈 때도 말 한마디 없이 비 내리는 밤거리로 총총히 사라졌다. 이처럼 로하스 히메네스의 경이로운 삶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의식으로 막을 내렸다.

66) 광기와 시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69) "이 철학서를 2월 24일 밤 루나 공원에서 나에게 야유를 퍼붓고, 또 나를 눅이라고 고함치던 4만 명의 개자식들에게 바친다." - 오마르 비뇰레의 '소와 나눈 대화' 헌사

72)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 단순하다. 이것이 내 장점이자 약점이다. (중략) 아무튼 나는 누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내 시에서 자양분을 섭취하더니만 이제는 나를 공격하고, 내 눈을 빼먹으려고 패거리로 몰려다니는 분파주의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내 침묵을 받을 만한 가치는 있다.

77) 시집 발행 비용을 마련하느라 매일같이 단맛 쓴맛을 경험했다. 얼마 되지 않는 가구를 팔고 아버지가 엄숙한 표정으로 건네주신 시계, 손수 두 개의 작은 깃발을 엇갈리게 새겨 넣은 시계도 전당포에 맡겨야만 했다. 나중에는 검정색 시인 복장까지 전당포로 갔다.

77) "작가의 작업은, 적어도 시인의 작업은, 신비하거나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작업, 대중을 위한 작업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해왔다. 시와 가장 유사한 것은 빵이요 질그릇이요 서투른 솜씨로나마 정성껏 깎은 목각품이다."

3. 세계의 길

87) 스무 살 남짓한 시인이자 화가인 우리들은 어떻게든 발산시키고 폭발시켜야 할 객기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96) 발파라이소의 계단을 전부 돌아다니면 세계를 한 바퀴 돈 셈이 된다.

118) 어디를 가든 내 꿈은 식물처럼 사는 것이다. 한곳에 눌러앉아 그곳에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 그래야 생각할 수 있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에...

4. 빛나는 고독

139) 매일 저녁 턱시도를 차려입는 영국인들과 내가 범접할 수도 없는 광대한 세계를 형성한 힌두교도 사이에서 나의 선택지는 고독뿐이었기에 그 시절이 일생에서 가장 외로운 때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기억한다. 마치 어마어마하게 밝은 번갯불이 창문 밖에 머물면서 내 운명의 안팎을 속속들이 비춰 주는 것 같았다.

139) 아침이면 방금 세수하고 나타난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압도했다.

141) 독사 입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다르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 순간 몽구스는 펄쩍 뛰더니, 뱀과 관중을 뒷전에 남겨 놓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렷다. 나중에 보니 내 침실에 돌아와 있었다.

141) 젊은 작가는 이런 몸서리 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는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149) 문체가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대기가 스며들지 않는 시는 죽은 시다.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다.

162) 나무 밑에서는 모든 것이 건강하고 시원했으며 생명체는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숨쉬고 있었다. 눈앞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치솟아 있었다. (중략) 높은 나무에서 쏟아지는 신선한 기운이 코로 스며들었다. 이 황제 같은 나무가 나를 가엾게 여긴 모양이다. 그렇기에 신선한 기운을 내려 보내 내 원기를 회복시켜 준 것이리라.

5. 가슴속의 스페인

171) 그분의 업적이 망각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까지 그 이름을 부르고자 힙니다.

185) "초록색 말도 있나? 붉은 말이라고 해야지"
나는 색깔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문제로 알베르타와 말다툼을 벌이지는 않았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지 알베르티와 언쟁을 한 적은 없었다. 세상은 무지개 색깔처럼 다양한 말(馬)과 시인을 받아들이고도 남으니까.

188) 시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숙년에게 나이를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란 정태적인 물건이 아니라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시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로 형성됩니다.

6.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

209) 이념적 혼란과 무분별한 파괴를 목격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9)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길이든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가 한 일은 바로 이러한 선택이었으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극적인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210) 시는 언제나 평화적인 행위이다. 밀가루가 있어야 빵을 만들 수 있듯이, 평화가 있어야 시인도 있다.

214) 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시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왔다. 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223) "가르피아스, 그 사람이 어떤 얘기를 했다고 생각해?' 나는 여러 차례 이렇게 물어보았다. "글쎄,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어. 하지만 그 사람 얘기를 듣고 있으면 다 이해가 되겠지. 아니, 그런 느낌이었어. 그 사람도 내 이야기를 틀림없이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다네."

227) 암울한 그 시절 나는 혁명과 같은 지각 변동은 두려워하면서도 전쟁이라는 치명적인 독소가 숨쉬는 공기와 먹는 빵에 스며들어도 수수방관하는 유럽인들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익숙해졌다.

228)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을 제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직 내 손으로 공들여 만들어 놓은 공허뿐.

7. 멕시코, 꽃과 가시의 땅

244) 이 세상의 소금 같은 사람들이 멕시코에 있었다.

244)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문학을 못 하게 막았다. 당신 아들이 시인이 되는 게 너무나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시를 발표할 때 아버지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필명을 사용했다.

251) 인간 종족이라는 나무에 지성이라는 수액이 타고 올라감으로써 다양한 색깔의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란 것이다.

254) 멕시코는 지금도 내 몸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마치 길 잃은 작은 독수리처럼 핏줄을 타고 온몸을 순환한다. 이 독수리는 내가 죽은 다음에야 심장 위에서 날개를 접을 것이다.

8. 암담한 조국

257) 이처럼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신발도 없는 사람들이 1945년 3월 4일 나를 상원의원으로 선출했다.

259) 강가에 펼쳐진 숲속에 들어가면 주변 풍경이 말을 걸어 온다. 그러나 사막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나는 사막의 언어, 다시 말해서 침묵을 이해할 수 없었다.

262) 내 시와 삶은 아메리카 대륙의 강처럼 흘러갔다. 남반구의 깊은 산속에서 발원하여 쉼 없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칠레의 거친 물살처럼. 내 시는 그 물살에 떠내려가는 어느 것 하나도 배쳑하지 않았다. 열정을 흡수하고 신비한 세계를 천착하며 민중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었다.
고통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263) 지금까지 수많은 상(償)을 받았는데, 이런 상이란 나비 날개에 묻은 꽃가루처럼 덧없는 것이다. 내가 받은 제일 큰 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받기 어려운 그런 상이다.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이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여러 나라 말로 번연된 내 글이나 시집도 아니고, 시어를 해석하고나 해부한 비평서도 아니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지,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271) 산비탈에서 실개천이 물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이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272) 무성한 숲과 호수와 화산과 밤을 손아귀에 집어넣은 빗줄기는 이 인간의 은신처가 다른 법을 따르고 또 자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격노한 나머지 계속 공격해 댔다.

273) 땅이 북을 울리며 거목이라는 산을 받아들인 직후, 원시의 바이올린처럼 날카로운 금속성을 뽑아 내는 톱질 소리는 신화적인 분위기, 신비의 분위기, 우주적 공포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원시림이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원시림의 통곡에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마지막 절규를 내뱉는 원시림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여기에 온 것 같았다.

276) 나는 지금도 그 사람 편이다. 그 사람을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로드리게스는 자유를 찾아가는 한 시인을 위해서 원시림에 6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뚫으라고 명령한 작은 황제이다.

286) 문든 머릿속에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논쟁이 떠올랐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는 복잡하고도 터무니없는 논쟁에 끼어든 마크 트웨인은 이런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그 희곡을 쓴 사람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다른 영국인입니다. 다만 우연히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시각에 죽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 이름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였습니다."
"기자 양반, 이렇게 쓰세요. 나는 파블로 네루다가 아니라 다른 칠레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시를 쓰고, 자유를 위해 싸우며, 이름 또한 파블로 네루다라고요."

9. 망명의 시작과 끝

300) 작가의 작업도 저 얼음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명을 파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싯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리를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 내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300) 한번은 작가 대회에 초청을 받았다. 단상에는 소련의 위대한 어부들. 즉 위대한 작가들이 앉아 있었다.

303) 내 삶은 항상 이런 식이다. 한쪽에서는 몽둥이로 패고, 다른 쪽에서는 진정하라며 꽃다발을 건네준다.

313) 나는 꿈의 궁전에서 살듯이 아름다운 지명에서 살았다. 싱가포르, 사마르칸드에 살 때는 지명의 발음을 음미하면서 살았다. 내 죽거들랑 바다 근처 지명이 아름다운 곳에 묻어 주기 바란다. 지면을 말할 때마다 아름다운 소리가 내 유골 위에서 되울렸으면.

10. 여행과 귀환

340) 나처럼 자기를 감시하던 교도관으로부터 시를 헌정받은 시인은 얼마 없을 것이다.

341) 사람은 사람일 뿐, 그 외의 어떤 규칙이나 호칭이나 딱지를 붙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누구나 성당에 들어갈 수 있고, 인쇄소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341)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 나는 지금까지 오로지 한 길을 추구해 왔는데, 그 이유는 이 길이 우리 모두를 영원한 사랑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덕목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고갈되지 않도록 투쟁한다.

344) 고뇌와 고통으로 가득 찬 시를 창작하던 옛 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문짝은 벌레가 갉아먹고, 벽은 열대의 습기로 허물어졌지만, 그래도 나와의 마지막 작별을 기다리며 버티고 서 있었다.

345) 우리 뒤에 앉은 승려를 보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는 그 와중에서도 우산을 펼쳐 들고 태연자약하게 경전을 읽고 있었다.

361) 정밀한 기계가 항성의 맥동 현상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마치 우주의 심전도 같았다. 이러한 그래픽을 통해 항성은, 비록 지상의 시인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제각기 황홀하게 떨리는 글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1. 시는 직업이다.

375) 전쟁과 혁명 그리고 대규모 사회 변동을 경험한 우리 시대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땅에 시를 경작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378) 이처럼 냉대와 열광을 한꺼번에 경험한 뒤에 달라지지 않을 시인은 없을 것이다.

384) 나는 천천히 방을 나왔다. 건달은 좀 전의 그 자세로 여전히 시를 외우고 있었다. "그 아이의 핏속에서 불타오른 생명으로 우리 삶을 묶어야만 할 것이다." 건달은 시에서 패배한 것이다.

391) 우리 시인들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단, 우리가 민중과 강고한 유대를 맺고, 민중의 행복을 위해서 투쟁한다는 단서가 붙을 때만.

391) 진실을 말하면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

392) 당연한 일이나, 내 시는 수준 높은 비평의 대상이다, 어떻게든 폄하하고 싶은 질시의 대상이기도 하다.

394)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비합리죽의적인 시인은 자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오로지 합리주의만을 추구하는 시인은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한심한 일이다. 이런 방정식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느님이나 악마가 제사한 해법도 없다.

396)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시는 감정보다 한층 본질적인 영역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통제된 자발성을 믿는다. 이를 위해 시인은, 이를테면 긴급 상황에 대비한 비상 용품처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품목은 단어, 음성, 비유에 대한 형식적, 실제적 정보이다. 이런 것들은 벌처럼 귓가를 휙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에 재빨리 낚아채서 주머니 속에 갈무리해 두어야 한다. (중략) 그리고 감정이라는 품목도 있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갈무리한다는 말인가?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러면 종이 앞에서 그 의식을 기억해 낼 수 있는데, 감정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

397) 술을 마시면 빈곤마저도 다음 날 아침까지는 황금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399) 그러나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집도 장난감처럼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아침까지 저녁까지 논다.

406) 나는 여전히 사랑의 가능성을 믿는다. 또한 사람들이 고통을 딛고 일어나, 피와 부서진 유지를 딛고 일어나 서로를 이해하리라고 확신한다.

407) 삶과 땅이 우리를 만나게 했다.

407) 내가 쓴 것, 내가 가진 것은 모두 아내에게 바친 것이다. 많지는 않으나 아내는 행복해한다.

411) 웰뤼아르는 종종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이란 동반자가 필요해. 자질구레한 인생사까지도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 말이야.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내 숨통을 조르는 것 같아."

420) 나는 지금 인간과 작품을 이어 주는 실마리, 안내자, 혹은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찾으려는 시도로 내 주변 사람들 얘기를 하고 있다.

429) 그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광고해 주고 있었다. 마치 내 이름 광고만을 전담하는 회사를 차린 것처럼.

434) 나를 초현실주의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리얼리즘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시인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들 반쯤은 옳고 반쯤은 틀렸다.

435) 리얼리즘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나에게는 리얼리즘이 맞지 않으며, 적어도 시를 논할 경우에는 리얼리즘을 혐오한다. 그리고 시가 리얼리즘 이상이거나 리얼리즘 이하일 필요도 없으나 반리얼리즘에 될 수는 있다. 내가 말하는 반리얼리즘이란 모든 합리성과 모든 비합리성, 다시 말해서 모든 시를 내포한다.

435) 학파나 유파라는 딱지는 싫다. 학파나 유파에 따라 분류하지 않은 책 자체가 좋다. 삶도 마찬가지다.

435) 사회주의 사회는 재촉하는 시대의 신화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는 재화보다는 광고 포스터를 더 가치 있게 여기고, 본질을 곁가지로 치부한다.

435) 창조의 영역을 이처럼 반반으로 나누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심장은 반 토막 나 버려 더 이상 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436) 나는 내가 가진 것 모두를 바쳤다. 내 시를 링 위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종종 시와 더불어 나 자신도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을 경험하고 영광을 찬양했다.

450) 매년 아무런 실속도 없이 내 이름을 거론하는 것도 지겨웠다. 또 무슨 경주마처럼 매년 출전 명단에 오르는 것 같아 불쾌하기도 했다.

465) 13만 청중 앞에서 자기 시를 낭송한 경험이 있는 시인은 이미 예전의 시인이 아니며, 이전과 똑같은 생각으로 시를 쓸 수도 없다.

474) 겸손에서 배울 점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회의주의에 안주하여 인류의 고통을 외면하는 자만심에서는 배운 게 아무 것도 없다.

12. 희망과 고난의 조국

495) 월트 휘트먼은 "외부적인 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기 바란다." 라고 말했다.

496)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499) 게다가 칠레는 매몰찬 나라다. 대통령은 취임 첫달 동안 칭송받다가 그후 5년 11개월 동안 때로는 정당하고 때로는 부당한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516) 나는 지금 이 회고록의 몇 줄을 위대한 동지 아옌데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 후에 서둘러 쓰고 있다.


III. 내가 저자라면

내가 저자라면? 내가 파블로 네루다라면?

"이 책에 수록된 회고랄까 추억은 듬성듬성하다. 간혹 잊어버린 일도 있다. 바로 그런 게 인생이다. 우리는 듬성듬성 꿈을 꾸기 때문에 힘든 삶을 견뎌 낸다. 그런데 기억해 내는 순간 희미해지고 먼지처럼 흩날리는 추억이 너무 많다. 마치 산산조각 나 버린 유리 같다."

자서전으로서 이 책의 일부분은 시간적 순서에 얽매이지 않는다. 물론 전체적인 구성은 시간적 흐름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하지만 중간중간 시간보다는 작가의 기억을 쫓아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네루다 자신도 자신의 기억을 시간적 순서에 맞게 정확히 끄집어내기 힘들다는 것을 고백했다. 시간적 구성이라기보다는 네루다 자신의 기억에 의존한 기억적 구성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하다. 본인 스스로 시인의 회상은 자기 시대의 불꽃과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환영들을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읽기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시인이면서 정치인 역할을 했던 그에게 시간적 배경은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네루다와 그의 시 역시 어쩌면 그 시간 속에서, 그가 있었던 공간 속에서, 그리고 그가 함께한 사람들 속에서 그 가치를 더욱더 제대로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아쉬움으로 남는다기보다는 그랬으면 어땠을까라는 단순한 가정에 불과하다. 시간적 흐름에 딱딱 들어맞는 과거의 상세한 재현, 상상해 보면 그와 그의 삶을 표현하는데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러한 부분에 대한 부족함은 부록으로 제공한 꽤나 상세한 연보를 통해 대신하고 있다.

시와 네루다

"가장 단순하지만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 있다. 죽음과 망각"

그래, 가장 단순하지만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 죽음과 망각.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망각하고, 자신이 죽음을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한다. 사람들에게서 망각이란 것은 죽은 존재로 여겨지는 것인가 보다.

온전한 그의 시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서전을 통해 알게 된 그의 모습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의 시는 매우 편안할 것 같았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 본 그의 시 몇 편은 나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시의 근원을 사랑과 자연이라고 했다. 사랑과 자연, 그것들은 가장 시적인 주제이면서도 우리 인간에게 가장 편안한 것들이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시는 감동을 안겨 주었나보다.

네루다는 식물처럼 살기를 원했다. 한 곳에 뿌리는 내린 삶을 살기 원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다. 내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세상 모든 곳을 돌아다니고, 그 곳에서 살았던 것 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는 식물이기 보다는 새처럼 돌아다녔다. 그가 굳이 식물이기를 고집한다면, 하나의 홀씨가 되어 바람에 몸을 싣고 지구 곳곳을 떠돌았다고 해야 할까? 동물이었건 식물이었건 그는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시를 통해 자신의 향기와 자취를 그곳에 남겼다. 그리고 또 그 세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그의 시로 다시 태어났고, 그 시는 다시 세상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그들의 입을 통해 노래 불려졌다. 그가 정녕 뿌리내리고 싶었던 곳은 세상사람 모두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록색 말

"초록색 말도 있나? 붉은 말이라고 해야지"

세상은 무지개 색깔처럼 다양한 말(馬)과 시인을 받아들이고도 남는다. 세상은 그리 속이 좁지 않다. 초록색 말이라고 해도, 붉은색 말이라고 해도. 세상은 뭐라하지 않다. 그저 그렇게 발아들일 뿐이지. 문제는 우리 사람들에게 있는 듯하다. 우리는 그리 속이 넓지 않은듯하다. 초록색 말이라고 말했을 때, 아무런 대꾸 없이 받아들일 사람은 불행히도 내 주위엔 그리 많지 않은듯하다. 세상엔 붉은 말만 있는 줄 아는 사람들, 붉은 말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래서 초록색 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내보일 때마다 아주 조심스러워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가락질을 받으며 호된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니까. 네루다는 좋은 친구를 두었다. 초록색 말이라고 해도 딱 한마디의 군소리만 했을 뿐, 다른 불평 없이 받아들이는 알베르티가 있었으니.

그가 주는 교훈 하나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집도 장난감처럼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아침까지 저녁까지 논다."

자기 속에 살고 있는 아이. 내 안에 아이를 잃지 않는 것이 정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깊이깊이 깨닫고 있다. 내 안의 아이를 찾는 것, 그것은 내 안에 근본적인 행복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시대의 위대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 마저도 그 아이를 앓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내 안에 아이. 그것은 무엇일까? 순수함? 호기심? 창조성? 그 무엇이 되었건 간에 아직 사회에 덜 길들여진 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삶의 작은, 아니 어쩌면 아주 커다란 열쇠가 될 수 있다.

창조성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하워드 가드너도 자신의 저서 '열정과 기질 Creating Minds'에서 세상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창조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내 안의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는 것'이라 한다. 결코 어려운 방법이 아니었다. 그저 신나게 마음 놓고 몸과 마음을 다해 노는 것이다. 그래서 사부님께서도 노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나 보다. 먹고살 걱정에 신나게 노는 법을 잃어버린 우리들이다. 기껏해야 비싼 돈주고 별로 재미없게 노는 흉내만 내는 것이 고작일 경우가 많다. 이제는 신나게 노는 방법조차도 잃어버린 것일까? 정말 놀아보고 싶다. 아직 어딘가에서 풀이죽어 심심해하고 있을 내 안의 그 녀석과 함께 신나게 놀아보고 싶다.

역시 그는 시인이다.

시인의 자서전답게 책 속에는 특별히 멋진 표현들이 많다. 시인은 세상 만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인가보다. 우리들 대부분이 생명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들의 모습을 너무나도 절묘한 단어와 문장으로 그려낸다. 이들의 세상을 보는 눈, 그것은 얼마나 큰 능력이고 재산인가? 네루다가 지닌 이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구절들을 몇 개 뽑아보았다.

파도가 바위에 부서졌다가 다시 몸을 추슬러 일어서는 짬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다. (37p)

멕시코는 지금도 내 몸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마치 길 잃은 작은 독수리처럼 핏줄을 타고 온몸을 순환한다. 이 독수리는 내가 죽은 다음에야 심장 위에서 날개를 접을 것이다. (254p)

강가에 펼쳐진 숲속에 들어가면 주변 풍경이 말을 걸어 온다. 그러나 사막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나는 사막의 언어, 다시 말해서 침묵을 이해할 수 없었다. (259p)

산비탈에서 실개천이 물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이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271p)

무성한 숲과 호수와 화산과 밤을 손아귀에 집어넣은 빗줄기는 이 인간의 은신처가 다른 법을 따르고 또 자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격노한 나머지 계속 공격해 댔다. (272p)

땅이 북을 울리며 거목이라는 산을 받아들인 직후, 원시의 바이올린처럼 날카로운 금속성을 뽑아 내는 톱질 소리는 신화적인 분위기, 신비의 분위기, 우주적 공포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원시림이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원시림의 통곡에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마지막 절규를 내뱉는 원시림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여기에 온 것 같았다. (273p)

* 그는 웃기기도 한다.

그처럼 과도한 분량의 사랑은 배를 곯는 사람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 영양실조 현상이 나날이 극심해지고 있었다. (55p)
그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광고해 주고 있었다. 마치 내 이름 광고만을 전담하는 회사를 차린 것처럼. (429p)

펄떡이는 세상

그는 시는 빵과 같은 것이라 한다. 질그릇과 같은 것이라 한다. 서투른 솜씨로 조각한 목각품이라 한다. 그에게 시는 그저 언제나 곁에 있는 삶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시를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에 대한 이 같은 그의 생각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시에 대해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게 만드는 힘인 듯하다. 네루다는 시는 살아 숨쉬는 것이라 했다. 살아있는 시. 시인 뿐 만이 아니라, 무릇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찌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겠는가? 뭐든지 제대로 잘하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 직장에서 서류뭉치를 가지고 씨름을 하든, 컴퓨터를 가지고 씨름을 하든, 운전을 하든, 운동을 하든 누구든 예술을 할 수 있고,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 세상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나라고 생각하면 내 인생도 좀 더 생명력 있게 되지 않을까?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내가 만드는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 넣도록 노력해봐야겠다. 무엇을 하든 예술가적 마인드를 갖고 살아봐야겠다. 그럼 세상은 좀 더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세상이 될 테니까. 세상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세상. 세상 만물이 생명력에 펄떡이며 살아가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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