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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6일 10시 11분 등록

피터 드러커 자서전/피터 드러커 지음


1 저자에 대하여 - 피터 드러커의 생애

예측과 예언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미래학자

20세기 초엽부터 말엽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드러커는 20세기를 (제1차 세계대전,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일본의 부흥,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락사태, 인종분쟁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드러커가 접촉한 (이 글에서 일부 언급한) 인물들은 20세기의 여러 측면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며 20세기의 의미를 체험했던 인물들이므로 그들을 통해서 드러커는 20세기를 관찰해 온 셈이다.

드러커 박사는 1989년 《새로운 현실》에서 소련방의 해체를 예언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이후, 사실은 그전부터 여러 매스콤에서는 그를 마치 [미래학자]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드러커 자신은 예측(forecast)이나 예언(predict)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드러커는 "단지, 이미 일어난 현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남보다 앞서 갈 수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지금 결정해 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쨌던 드러커 박사야 말로 다가올 미래사회에 대한 책들(《단절의 시대》(1969)?《새로운 현실》(1989)?《자본주의 이후의 사회》(1993)?《미래의 결단》(1995)?《21세기 지식경영》(1999) 등)을 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Built to Last》의 저자 짐 콜린스(Jim Collins)는 "피터 드러커의 수많은 논문들과 심원한 통찰력은 1930년대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기원에 관한 선견력 있는 논문부터 시작하는데, 그는 현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것에 대해 가장 의미심장하고도 일관성 있는 관점을 제공하는 기고가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스며든 [효과적인 경영]은 자유세계를 지탱케 하고, 독재자와 전체주의가 다시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단 하나의 대안인데, [효과적인 경영]의 확산이라는 점에서 피터 드러커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고 평하고 있다. 

비록 예언이라는 단어를 싫어하지만 드러커는, 미래의 세계의 모습에 대해 범세계주의(globalism)?지역주의(regionalism)?종족주의(tribalism)는 급속하게 새로운 국제정치체제, 즉 새롭고도 복잡하고 그리고 전례가 없는 정치구조와 정치체제를 창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일명 [지식사회], [피고용자사회], [연금기금 사회주의], [노동자 없는 공산주의], [개인자본가가 없는 자본주의] 등)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세 가지 벡터(vector)를 갖는다.

세 가지 벡터를 갖는 벡터 방정식은 불안정하며 예측할 수 없으며 그리고 하나의 해답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클레어몬트대학

드러커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경영학 교수로서 장기간 뛰어난 경력을 쌓았는데, 처음에는 뉴욕 대학의 경영대학원(New York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Business, 1950∼1970)에서, 1971년부터는 지금까지 캘리포니아 클레어몬트 대학원(Claremont Graduate School)에 계속 봉직하고 있다. 1987년 클레어몬트 대학은 경영대학원의 명칭에 드러커의 이름을 붙여 경영대학원의 명칭을 Peter F. Drucker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로 바꾸었다.

드러커는 최고경영자들에 대한 컨설턴트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지난 50여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최우수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드러커에게 조언을 구하고 또한 받아들이고 있다. 그 점은 정부의 정책입안가들이나 비영리부문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드러커는 미국, 벨지움, 체코, 일본, 스페인, 스위스, 그리고 영국의 많은 대학들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1992년말 필자가 드러커를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정치학자?경제학자?철학자?사회학자?경영학자?저널리스트?경영컨설턴트?소설가?미술평론가?미래학자 등 다양한 호칭 가운데 박사님께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드러커는 "그야 물론 사회과학자 겸 경영학 교수이지" 라고 답했다.

최후의 경영르네상스인

190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드러커는 정치, 사회, 예술, 그리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남녀 명사들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예술과 고전문학 그리고 법학교육을 받았지만, 사실상 그의 학문적 수업은 그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가 수행한 업무들로 이루어졌다. 처음에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신문기자와 편집인으로 일했고, 그후에는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상업은행의 행원으로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미국에 정착한 뒤에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드러커는 195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 "경영자는 경영을 해야 한다"(Management Must Manage)를 기고한 이래 오늘날까지도 계속 좋은 논문을 게제하고 있다. 지금 그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클레어먼트대학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있으며,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 케네드 볼딩(Kenneth Boulding)은 드러커를 평하여 [미국 사회의 제1급의 철학자]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대로 드러커는 철학자로서의 평가도 대단하다. 또 드러커 비영리재단의 최고경영자 겸 이사회장인 프랜시스 헤셀바인(Frances Hesselbein)은 "피터 드러커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명쾌한 감각, 경제학자로서의 예리한 분석능력, 그리고 폭넓은 역사적 안목을 지닌 할아버지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유용하고도 통찰력 있는 그의 논문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드러커가 우리 사회에 끼친 공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20세기는 혁명과 전쟁 그리고 데땅뜨의 세기였고, 이데올로기와 냉전,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과 탈냉전의 세기였으며, 또한 산업화와 과학화 그리고 공해와 환경파괴의 1백년이었다. 20세기를 [파란만장과 질풍노도의 세기]라고 규정한다면, 1909년에 태어나 지금도 활동 중인 드러커는 이 한세기를 경험한 현자(賢者)이다.

드러커 박사의 관심의 영역은 이미 논의한 것처럼 경제학?경영학?정치학?사회학?철학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대상을 학문이라는 차원에서 논할 때는 그러하지만, 드러커의 지적 영역은 체르니(Karl Czerny, 1791∼1857)의 음악기법에서부터 에도(江戶)시대의 일본화(日本畵)까지, 마크 트웨인의 소설에서부터 유럽의 교육제도와 사회보장제도에까지 이른다. 그의 학문적 업적 즉 논문이나 저서는 그 깊이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수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1999년 8월 현재) 35회나 기고하였고, 경영학?경제학 관련 저서 또한 30여권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일본화에 대한 평론집과 소설을 두권이나 썼다. 따라서 드러커를 20세기의 마지막 경영르네상스적 인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출처 : 이재규교수, http://www.jklee.com/


2 내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

역자서문

드러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사회에서 조직들을 관리하는 전문경영자들은 반드시 공공복리를 위한 책임을 져야한다. 특히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전문 경영자밖에 없다고 드러커는 주장했다. p8

드러커는 항상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다고 한다. p9

개정판을 내며

그가 자신의 일이나 지식, 흥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매력적인 존재로 돌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결국 개별적인 존재다. p11

이 책에 기술한 인물들은 내게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선택됐다. 그들이 내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내게 반사하거나 굴절시켜 보여주었던 방식 때문이었다. p19

프롤로그

이것은 구경꾼이 언제나 듣게 되는 충고다. 그들은 언제나 사물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충고는 적절하게 받아들였지만 나는 그 충고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 책도 마찬가지다. p31

1부.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

오래된 라틴 경구에서 말했듯이, 하느님도 바보와 싸워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p62

나는 항상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고, 관념이란 철학자들이 범주화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내게 흥미롭고 다양성을 가진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관념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발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변화를 일으키면서 무엇인가로 바뀐다. p72

젊은 시절에 나는 본능적으로 ‘전쟁 이전’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가능한 빨리 빈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유럽의 다른 지역들조차도 ‘전쟁 이전’ 이라는 유독성 스모그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으며 거의 질식 할 정도의 수준이기는 마찬가지였다.1937년에 미국으로 이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유독성 스모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p154

'그리고 너는 네 장점 가운데 하나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아니?‘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너는 작문에도 능해. 하지만 별로 연습을 하지 않는 것 같더구나, 너도 동의하니?‘ 이때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럼 그것을 목표로 삼자. 일주일에 두 개씩 작문을 해서 제출하렴. 하나는 네가 쓰고 싶은 내용을 마음대로 쓰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주제를 정해 주마. p160

거짓말이 계속되면 결국 미스 엘자의 호출을 받게 되고 심한 질책을 당했는데, 그것은 마치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p166

미스 엘자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일주일에 한 번씩 면담했다. 그 시간을 통해 그녀는 지난주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주의 계획을 작성했는데, 아이들에게 문제가 될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그 시간에 다루었다. p171

결국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가 가르친 것은, 교육과 학습이 대단히 수준 높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교훈이다. 그 두 노처녀는 표준을
설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였던 것이다. p183

'신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저지르게끔 만드셨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배우려고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이 뭔가를 올바로 했을 때 그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 p187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깨달은 사실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은 언제나 좋은 선생을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p187

'선생 관찰‘을 통해 처음에 도달했던 결론에 따르면, 선생들은 어떤 유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르치는 능력은 재능이고, 좋은 선생은 그 재능을 타고났다. 그것은 베토벤이나 루벤스, 아인슈타인이 자신만의 재능을 타고났던 것이나 다를 게 없다. 가르치는 능력은 일종의 개성이지 기술이나 숙련이 아니다. p193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나는 다른 종류의 선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학습을 하게 만드는 선생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선생’이 됨으로써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들은 학생들을 학습하도록 이끄는 방법을 사용해 가르침을 전수한다.

그들은 개개의 학생이 가진 장점을 찾아내고 그들의 장점을 개발하기 위한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설정한다. 이 작업을 끝낸 뒤에 비로소 그들은 학생들의 단점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p193

이런 선생들은 비난보다는 칭찬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매우 드물게 칭찬하기 때문에 칭찬이 학생의 동기를 유발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거나 학생이 스스로 느껴야만 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들은 효과적 학습을 계획할 뿐, ‘가르치지’않는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학생을 만나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비록 그들이 많은 학생들을 맡더라도 결국은 학생 개개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방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p194

선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신의 재능 가운데 가르치는 재능이 포함돼 있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학생에게 학습을 프로그램해서 넣는 방법을 알고 있는 교육자가 있다. 선생은 타고 난다. 그리고 타고난 선생은 자신을 향상시키고 더 좋은 선생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자는 가르치는 방법을 갖고 있고, 그것은 학습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이든 그 방법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p198

전통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선생으로 간주되지만 소크라테스 본인은 이런 평가를 일종의 모욕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선생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는 ‘교육자’ 즉 학습을 위한 안내자였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가르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학습’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획된 학습이다. p199

교사가 학습을 가르치면 학생은 과목을 학습한다. 학습은 효과적이지만,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과장이며 일종의 사기다. 하지만 소피스트들이 거의 2000년 동안을 지배했고, 바로 그들이 가르치는 일을 가르치는 게 가능하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들의 궁극적인 승리의 결과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등교육에 대한 맹목적 신앙이다. 이 신앙에서는 박사학위나 특정한 주제에 대한 고등지식이 가르침에 적절한(실제로는 유일한)요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피스트들이 지배한 것은 서구뿐이었다. 다른 문명은 서구문명과 소피스트, 즉 가르침이란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선생에 해당하는 인도어는 ‘구루guru'이며 구루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는 대학의 학위가 부여하는 권위가 아니라 영혼이 부여하는 권위를 갖고 있다. 비슷한 예로 일본의 센세sensei는 선생이라기보다는 ’명인‘에 가깝다.
하지만 서양 전통에서는 기술로서의 가르침에 집중한 나머지 소크라테스의 교훈을 까맣게 잊어 버렸다. 가르침은 재능이고 학습이 기술이다. p199

선생의 열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교육자는 학생들의 깨달음에 같이 도취됨으로써 열정을 얻는다. 학생의 얼굴에 떠오르는 깨달음의 미소는 어떤 마약이나 약물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교실에 만연된 무시무시하고 학생을 고사시키는 전염병인 교사의 권태감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이 열정이다(교사의 권태감은 가르침과 학습을 완벽하게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다.) p200

선생의 열정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교육자의 열정은 학생들의 내면에 존재한다. 하지만 가르침과 학습은 언제나 열정이고, 그 열정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열정에 자신이 중독되는 것이다. 선생과 교육자가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 또 하나 있다. 그들은 학생의 실패를 언제나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p201

프로이트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무자비할 정도로 솔직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반성할 때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넘길 만한 약간의 방종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p207

토마스 만은 프로이트의 여든 살 생일축하 자리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신분석은 소설이라는 예술에 그 누구보다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 p219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적인 합리성과 비합리적인 내면의 경험이라는 두 세계를 하나의 종합이론에 담으려는 거대한 시도였다. 그것은 계몽시대가 낳은 극단적으로 합리적인 프로이트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꿈꾸는 몽상가이자 시인인 프로이트를 한 개체에 담으려는 거대한 시도였던 것이다. 이런 통합으로 정신분석학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지만, 동시에 그만큼 허약해지기도 했다. 이 시도는 정신분석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정신분석학은 시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서구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19세기의 체계(마르크스, 프로이트, 케인스)는 모두 과학과 마법을 통합시켰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모순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로 이어지는 논리와 경험적 연구를 모두 강조했다. p231

현실의 프로이트는 전통적인 허상에 등장하는 프로이트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인 것 같다. 허상보다는 현실에서 더욱 위대한 사람인 것 같다. 허상보다는 현실에서 더욱 위대한 그는 비극적 영웅이기도 하다. 불편한 모든 질문을 무시해 버림으로써만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세계와 영혼의 암흑세계 사이의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프로이트의 이론은 종국에는 무너져버리고 말 약한 이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좀 더 매혹적인 이론인 동시에 인간적 감동을 주는 이론이기도 하다. p233

진정으로 전쟁을 원했던 사람은 바로 위대한 사회주의 대중이었어. 그들은 사회주의를 완전히 때려치웠지. 그리고 조레스가 이미 경고한 유럽의 ‘완전한 침몰’을 초래한 거야. 그것으로 사회주의도 종말을 고했고, 물론 넌 요즘은 유권자들이 1914년 당시보다 더 많은 표를 사회주의에 던진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당시 사회주의는 인간의 머릿수가 아니라 희망에 기반을 두었단다. 지금의 사회주의는 시기심에 기반을 두고 있지. 저 밑에 로마의 말도 안 되는 무속리니는 그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거야. p264

사회주의적 이상과 권력의 실체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결국은 권력이 승리를 거두었고, 사회주의의 약속과 민족주의의 열정 사이의 투쟁에서 언제나 민족주의가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 사회주의의 실제는 진실한 믿음이 필요하고 비통한 왜곡에 시달리고 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p268

2부. 명멸하는 시대의 사람들

그들은 19세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자유를 추구하되 부르주아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번영을 이루되 경제에 종속되지 않는, 공동체를 지향하되 마르크스주의의 집산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추구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다섯 형제는(어머니까지도)각자 독자적인 길을 갔지만 결국 똑같은 목표를 추구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똑같은 성배를 찾아 각기 다른 방향으로 길을 나선 원탁의 기사를 떠올렸다.
그들은 각자 하나의 ‘답’을 찾았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폴라니 가는 세상의 기중으로 평가하면 가장 성공한, 그러나 자신들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가장 실패한 가족이었다. 그들은 또 가장 생기 있고 호기심과 활력이 충만한 가족이었다. 적어도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네댓 명의 폴라니는 그랬다. p286

무솔리니를 사회주의로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 협동조합국가를 바탕으로 하는 계습결속이라는 새로운 비전으로 전환하게 만든, 그래서 치명적인 타격에서 회복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오토 폴이었다. 협동조합국가란 나라를 위해 공통적으로 헌신하는 여러 계급이 결속하고, 그 때문에 묶은 나뭇가지, 즉 영광스러운 로마 공정화의 유물인 속간(다발로 묶은 막대에 도끼를 끼운 것으로, 고대 로마에서 집정관의 권위를 표시한 것, 후에는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상징이 된다)처럼 부저지지 않는 강력한 국가를 의미한다. p290

마이클 폴라니에게 인간의 존재는 고립된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개인은 논리와 이성보다는 가치와 윤리에 입각해서 행동한다. (허무주의를 넘어서)는 마이클 폴라니가 쓴 논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그의 관심사가 내린 답이 요약돼 있다. 마이클 폴라니는 근대 스토아파 철학자가 됐다. p295

카를에게(위대한 변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경제와 그가 개발한 사회의 이론적인 통합 모델이었다. 시장만이 유일한 경제 시스템이 아니다, 또한 가장 진보적인 것도 아니다, 경제와 공동체를 조화시키면서 경제적 성장과 개인적 자유를 허용하는 대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위대한 변환)이 주장하는 것은 좋은 사회는 시장을 사회 밖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원거리 대외무역에만 옳은 통합의 원칙이므로 공동체와 그 안의 인간관계는 분열을 조장하는 시장의 힘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  p304

이와 같은 카를의 해석을 수용하든 안 하든(대체로 사회학자들은 수용하고 경제학자들은 수용하지 않는다) 그는 마르크스 이루로 생계, 즉 경제와 생활 또는 공동체 간의 관계에 의문을 제가한 몇 안 되는 사람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 즉 반자본주의적이자 반마르크스주의적인 방식으로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었다. 경제학의 구조이론에 접할 기회가 있다면 재분배, 호혜, 시장교환 등 폴라니가 밝혀놓은 사회적인 경제통합의 원칙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분류는 (위대한 변환)이 이룩한 가장 중대한 공헌이지만, 그 당시에는 일부의 관심밖에 받지 못했다. p305

그가 경제사에서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해답이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수수께끼 같은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 선사시대로, 원시경제로, 고전고대와 고전기 이전의 고대로 파고들면 들수록 시장이 없는 좋은 사회는 더욱더 찾기 어려워졌다. p305

그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삶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품었던 이상과 실패 때문이었다. 폴라나 가의 사람들은 각자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목표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사회에 의한 구원을 믿었다. 하지만 그 후에 사회에 대해 단념하고 절망했다. p309

그들의 실패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 혁명 100년 전인 홉스와 로크 이후, 아니면 프랑스 혁명 이후 지난 200년 동안 줄곧 서양인의 관심을 끌어왔던 절대적인 하나의 시민종교에 대한 탐구, 완전한 또는 좋은 사회에 대한 탐구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실패가 나타내기 때문이다. p310

완전한 사회 대신 적당하고 견딜 만한, 그러나 자유로운 사회를 받아들이자는 것이(산업인의 미래)에 녹아 있는 내 의도였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시장의 혼란과 불화하는 대가를 치르면서 자유를 지키게 될 것이다(이것이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최대한도가 될 수도 있다). 개인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갈등,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 불일치라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더 큰 선에는 관심을 덜 갖고, 적은 악에는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 그 자체가 부수적인 것이 될 수 있으며, 쇠퇴해 가는 사회의 시대에 절대적으로 옳은 종교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종국에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처럼, 사회의 조직도 그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를 편협함과 자유의 박탈, 자멸적인 전쟁으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을 정도로 절대적으로 옳은 사회에 대한 탐구가 여전히 우세한 지금, 이런 일은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구교와 신교의 교리를 통합한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명석한 사상가들의 실패가 50년 후에 절대적으로 옳은 종교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을 예고했던 것처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초월하는 대안을 찾으려 했던 명석한 폴라니 집안의 실패 역시 절대적으로 옳은 사회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에 대한 예고일 수도 있다. p311

크레머의 주장은 딱 세 가지로 요약
첫째는 외교정책이 국내정책을 우선한다는 것이다. 외교정책은 한 국가의 존립을 결정한다. 국가의 존립이 보장되고 나서야 비로소 국가는 헌법과 법률, 사회정의, 그리고 경제를 생각할 수 있다. p332

크레머의 두 번째 주장은 대외문제에서는 힘이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힘이란 정치적인 힘, 궁극적으로는 군사적인 힘을 의미했다. 대외문제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또 다른 유일한 요소는 위대한 초국가적 사상이다. p333

사탄을 ‘어둠의 왕자’리 부르는 관용어구가 아렌트의 표현보다 훨씬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주기도문은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약한 존재인지를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고 악해서 구해 달라고 신에게 청하는 것이다.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인간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 된다. 그 조건은 언제나 악의 조건이지 인간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헨슈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셰퍼처럼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을 때 인간은 또한 악의 도구가 된다. p364

가장 커다란 죄는 아마도 이 두 가지 고전적인 죄가 아닐 것이다. 가장 커다란 죄는 20세기에 해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오래된 찬송가 구절처럼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한 저명한 생화학자의죄가 아닐까? p364

새뮤엘 존슨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때 가장 순수하다.’현대인의 귀에는 아주 의아하게 들릴 말이지만 그 ‘영감님’이 인간의 행동에 대해 얘기한 것은 절대로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는 가장 지혜로운 판단을 내렸다. 구시대의 종교적 도덕주의자인 그가 돈을 버는 일, 즉 수익이 생기는 일을 좋지 않게 생각하리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존슨 박사는 수익이 생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해가 되는 일을 가장 적게 한다는 말이었다. 수익사업을 하는 사람은 권력을 추구하지 않으며, 사람을 지배하거나 힘들게 하지도 않는다. 또한 축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상징에 만족하고 현실을 흘러가는 대로 놔둔다. p448

3부. 순수의 절정기

좋은 편집자는 관대하지 않다. 그들은 동료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들은 ‘신문이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든다. 위대한 편집자는 말할 것도 없고 좋은 편집자는 인정사정없는 지독한 독재자다. 그는 모든 기사가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할 때까지 쓰고 또 쓰고 다듬고 또 다듬는다. p471

맥루안에게 기술이란 인간의 자기완성이며, 인간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완성해 가는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동물이 자연적인 진화를 통해 특정 기관을 새롭게 발달시켜 다른 동물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새로운 도구를 개발해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다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p509

그 시절 내가 깨닫기 시작했던 것처럼 조립 라인은 본질적으로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일의 본질에 대한 이론적이고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 시절에 조립 라인은 특징적인 새로운 현실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지만, 실제로는 생산의 아주 작은 부분이어서 극히 일부의 노동력이 ‘조립 라인 작업’을 하고 있었고, 하게 될 것이었다. 다시 말해 기술은 인문주의자와 과학기술자 모두가 작고 있던 전통적인 생각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기술은 생산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의 정체성을 정의하거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정의했다. p520

맥루안의 가장 중요한 통찰력은 ‘미디어는 메시지다’가 아니라, 기술은 ‘인간의 주인’이 아니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킨 바로 그만큼 인간과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을 변화시켰다. p521

기술은 계획적, 인위적, 비유기적 진화를 다루며, 그런 진화를 통해 인간은 특별하고 독특한 인간활동인 노동을 수행한다. 인간이 뭔가를 행하고 만드는 방식, 즉 일하는 방식은 인간이 사는 방식,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방식,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나아가 궁극적으로 자신이 무엇이며 누구인지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 p525

풀러도 맥루안도 노동은 주목하지 않았다. p525

나를 포함해 나머지 사람들은 좀 더 다양한 재미를 즐기기는 하겠지만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다. 하지만 풀러나 맥루안 같은 사람은 ‘사명’을 수행한다. 어떤 일이 달성될 때마다 나는 그것이 사명감을 갖고 한 가지에 정진하는 사람들이 해난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p526

한 가지에만 전념하는 사람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은 길도 없는 황무지에 자신의 하얀 뼈만 남기기 십상이다. 그러나 하나의 사명 대신 다양한 관심을 지닌 나머지 우리는 분명히 실패하고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p526

그보다 더 나쁜 일은 예언자는 자신의 시대가 왔을 때 모든 권력을 잃어버린다는 데 있다. 예언자는 사제가 되고 비전은 예배의식으로 바뀌어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명사가 되어 심야 토크쇼나 신문의 사교란에 등장한다. 자기 시대를 맞이한 예언자는 더 이상 충격이 아니다. 그래서 탤런트의 신세로 전략하는 것이다. p527

고용인들은 자기 직업과 업무에 만족감을 느끼기를 원하고, 그 일이 무엇이든 자기가 보수를 받고 있는 일에서 배제되는 것만큼 모욕적인 일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근무하는 회사와 그 회사의 경영진, 그리고 상사를 존경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들은(윌슨이 내 주장 가운데 가장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조합에 대한 충성과 회사에 대한 충성이 서로 배타적인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양쪽 모두에 속하고 싶어 하고 양족 모두 필요하다고 인식하며(오직 다른 목적에 있어서만), 양쪽 모두를 존중하기를 원한다. p572

연금은 이미 미국의 근로자들을 자본가로 탈바꿈 시켜 놨다. p576

당신은 내가 모든 사람들을 정확히 판단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오직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옳을 뿐인데, 그것은 결론을 천천히 내린다는 의미예요.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옳지 않으면 뒤늦게 후회하게 되죠. 우리가 실수를 적게 하는 것은 사람들을 잘 판단해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절대로 자기의 후계자를 직접 임명하지마라, 그건 결국 자신의 복사판이 될 것이며, 그런 사람들은 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예부터 내려오는 첫 번째 규칙입니다.‘ p582

슬론
권위와 책임은 반드시 일치해야 하고, 서로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권위를 원하지도, 그것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다면, 책임에 대해서는 말하지 맙시다. 또한 당신이 책임을 원하지도 않고 책임질 이유가 없다면 권위에 대해서 논하지 맙시다.‘ p605

대공황은 많은 중년층 남성에게는 대재앙이었고, 대부분은 그 충격에서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또한 대공황의 충격에 휩쓸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도 심각한 정신적 충격이었으며, 영구적인 상처를 남겼다. 그런 가정에서 가장인 아버지는 오랜 불안과 실업으로 고통을 당했고, 그 결과 경제적 안전성은 물론 남성적 자신감도 잃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 즉 아직도 한참 성장할 수 있는 젊음과 자립심, 건강을 가진 세대에게 공황은 오히려 활력을 주고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시기였다. 누구나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주 확실했으니 말이다. p612

 


3. 내가 저자라면

피터 드러커는 세기가 낳은 불세출의 경영자로 기록되고 있다. 경영학이 학문적 분야에서 일정이상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 그의 공헌과 기여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물론 그는 경영학에만 국한되는 학자는 아니다. 미래학자라는 말을 지독히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미래학자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를 어떻게 정의내리든,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문호라는 평가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세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피터 드러커로부터 흥미와 영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왜 일까? 혹자는 그가 ‘인간’(人間)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따뜻한 경영학자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가 이윤과 효율이라는 절대 명제 안에 갇혀 있는 경영학 세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은 내게 그에 대해 조금 더 애정을 갖을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물론 그의 자서전을 읽는 내내 약간의 지루함(?)과 인내심(?)이 필요했음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의 지적 깊이와 넓이가 생각 이상으로 무한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한 영역에 국한된 경계를 가지고 있는 학자가 아니었다. 폭넓은 지식과 방대한 연구를 통한 혜안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폴라니 가문에 대한 설명과 묘사를 보면서, 그가 단순한 경영학자를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역사적 흐름을 주의깊게 고찰했으며, 시대의 대안을 고민했던 인물이다. 특히 그는 폴라니 가문을 설명하면서 특별한 애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폴라니 가문은 자본주의의 비인간성과 착취성에 반대하는 인물들이었다. 사회주의에 경도되는 측면도 강했지만, 결국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길이 아닌 ‘제3의 길’을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평가에 따라서 그들은 생시몽과 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생산자 협동조합과 같은 공동체는 이미 역사적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는 따뜻한 시선으로 폴라니 가문의 열정과 헌신 그리고 실패를 그리고 있다.

과거 과거 드러커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대단히 불편했던 점은 사회주의적 이상 및 이론 그리고 역사에 대해 부정적 시각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자본주의에 반(反)하는 흐름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을 수는 있다. 다만 드러커의 반대 논리를 살펴 보면, 그 논리의 정합성과 특별함을 찾아볼 수 없는 점은 항상 아쉽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를 부정했다기 보다는 이상적 사회가 실현될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는 것이 올바를 것 같다. 다음은 그가 폴라니 가문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안타까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가 경제사에서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해답이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수수께끼 같은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 선사시대로, 원시경제로, 고전고대와 고전기 이전의 고대로 파고들면 들수록 시장이 없는 좋은 사회는 더욱더 찾기 어려워졌다.” p305

“그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삶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품었던 이상과 실패 때문이었다. 폴라니 가의 사람들은 각자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목표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사회에 의한 구원을 믿었다. 하지만 그 후에 사회에 대해 단념하고 절망했다.” p309

폴라니 가문 사람들은 세상을 구원하고 싶었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회의 변환을 통해 개인의 구원을 성취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최종적 이상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상주의자들의 꿈은 절망으로 끝을 맺었다. 폴라니 가 사람들의 절망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이상주의자와 낙관주의자들이 꿈꾸는 몽상들로 조금씩 변화되고, 성장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피터 드러커는 ‘완전한 사회 대신 적당하고 견딜 만한 사회를 받아들이자’고 한다. 적당한 사회적 불평등과 적당한 시장의 이기심 속에서 절적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 그가 원하는 사회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그가 즐겨 사용하고 있는 ‘개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을 느낀다. 예를들어 ‘지식 근로자’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지식(knowledge), 그 자체가 생산수단이기에 이미 지식 근로자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자서전 초반에서 정의 내리고 있다. 또한 “연금은 이미 미국의 근로자들을 자본가로 탈바꿈 시켜 놨다.”(자서전, p576)라는 견해도 표명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생산수단과 자본가의 정의와 개념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다. 생산수단이 단순히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본이라는 소유관계를 나타내는 종이조각(주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번 수업을 통해 드러커에 대한 깊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게으른 변명이지만 자세한 논의는 차후로 미루도록 하자. 다만 이 수업과정을 통해 거대한 바다와 같은 넓이와 심해와 같은 깊이를 가진 인간 ‘피터 드러커’에 대한 사상과 혜안을 작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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