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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7일 11시 52분 등록
 코끼리와 벼룩/ 찰스 핸디/ 이종인 옮김/ 생각의 나무


1. 저자에 대하여

“1981년 7월 25일. 마흔 아홉 번째 생일 아침에 나는 일찍 깨어났다. 평상시 같았더라면 특별하달 것도 없는 날이었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그날은 바로 자발적으로 실업 상태가 된 내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첫날이었기 때문이다.”[11]

찰스 핸디는 마흔 아홉의 적지 않은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벼룩이 되는 삶을 선택했다. 자신이 입으로 가르쳐온 것을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결심했고 생각대로 뛰쳐나왔다.

그는 대처 수상 시대의 초창기에 2000년이 되면 full-time 으로 직장에 근무하는 영국 노동자가 전체 노동력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21세기 초가 되면 ‘집안일을 하는 남편(house-husbands)'이 유행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의 주장에 코웃음을 쳤다. 한가한 사람의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진리가 3단계를 거친다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로 자신을 위로했다고 한다.“진리는 첫째 조롱을 받고, 둘째 반대를 받다가, 셋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2000년에 이르러 full-time 직장에 근무하는 영국 노동력은 40퍼센트로 떨어졌다. 또 여성들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약진하고 있다. 그의 예언이 맞은 것이다.

역자는 저자를 ‘유부남’이라고 말한다. 유난히 (읽기에) 부담이 없는 남자란 뜻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3가지 특징으로 설명한다.

첫째, 핸디의 글은 읽기가 쉽다. 저자가 리듬감이 넘치는 문장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한 가지는 그가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째, 핸디의 글은 재미있다. 저자는 책을 쓸 때 남보다 더 좋은 책을 쓰기보다는 남들과 다른 책을 쓰겠다는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남들이 다 써먹은 그런 얘기는 쓰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집필 철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책은 구체적, 현실적, 실용적인 에피소드 위주로 전개된다. 이것이 재미난 이유다.

셋째, 핸디의 책은 유익하다. 이 책에는 코끼리와 벼룩으로 구분되는 직장인 생활과 프리랜서 생활, 다양한 자본주의, 인생의 사이클에 따른 결혼 생활 패턴 등 통찰력 깊은 내용과 주장들이 나타난다. 1981년에 내놓았던 20년 후를 예측한 내용을 2001년 시점에서 비교검토한 대목도 아주 유익하다. 이런 점들이 그의 매력이다.

읽기 쉽고, 재미나며 독자들에게 유익한 책.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책이고, 글을 쓸 때도 그렇게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기준이다. 찰스 핸디는 바로 그런 작가다.


< 출판사 소개 >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인 찰스 핸디는 다국적 석유 회사 셸의 간부를 거쳐 런던 경영대학원 교수, BBC 방송의 경제 프로그램 <투데이>를 진행한 방송인이다.
또한 윈저궁에 있는 세인트조지 하우스 소장, 왕립예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대의 경제 현상과 인간성 상실 등의 문제를 쉽고도 깊이 있게 전달하는 경제평론가아지 사회철학자로 유명하며 현재 프리랜서 작가이다.
저서로는 <텅 빈 레인코트> <비이성의 시대> <확실성을 넘어서> <헝그리 정신>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등이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포트폴리오 생활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고용된 사람이다. 이것은 아주 자랑스러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대타(代打)를 내세우지 못한다는 뜻도 된다. 어떤 게임을 하든 당신이 직접 뛰어야 한다. 늘 준비하면서 곧장 게임에 뛰어들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5]


들어가는 글 : 인생의 중간에서 새로 시작하기


나는 자유를 얻기 위해 안정을 내팽개치고 바로 그 새롭고 무모한 모험의 세계를 선택한 것이다.[11]


20세기의 고용 문화의 큰 기둥이었던 대기업, 그 코끼리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벼룩처럼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여기서 벼룩은 프리랜서를 가리키는 말이다.[15, 16]


모든 비유가 그렇듯이, 비유의 효과를 너무 과장하면 안 된다. 비유는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에는 좋지만 그것 자체가 처방전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16]


그게 모두 20년 전의 일이었다. 이 책은, 부분적으로, 그 20년 세월 동안에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더듬어본 개인적 회고록이다. 또한 앞으로의 여러 해 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를 예측하는 예언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지금 이 책을 쓰는 현재에는 획기적인 돌파구로 여겨지는 것들도 정작 책이 출판되었을 때에는 진부한 것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19]


기술과 생산성이 발달되었으면 여유 있는 시간이 그만큼 더 많아져야 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는 전보다 더 일에 찌들어 있다. 일은 이제 생활의 수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일중독자로 몰아가고 있다. 과연 일이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도록 해줄 것인가, 아니면 성공적인 자본주의는 결국 커다란 환멸로 끝나버리고 말 것인가?[22]


1981년에 이르자 사정이 달라졌다. 은퇴에서 사망까지 (아버지 시대처럼) 18개월이 아니라 18년의 세월이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또 그 기간 동안의 생활비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정말 난감한 것이다.[23]


나는 교과서보다는 화랑, 극장, 영화관, 연주회장 등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여행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한동안 살아본 경험은 자신의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렌즈를 마련해 주었고, 너무 익숙하여 아무런 의문도 들지 않았던 사물을 새롭게 돌아보게 했다.[29]


이 책은 이런 일과 생활의 문제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솔직히 털어놓고 말해서 이 책은 기억과 편견의 뒤범벅이다. 하지만 나는 내심 그것을 아이디어와 사상의 집합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것들은 내 인생의 교훈들이다. 사실 인생의 교훈은 직접 살아나가면서 배우는 것이고 또 사후(事後)에는 그 삶을 반성하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 교훈이 모두 타당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교훈들을 모두 모아놓으면 나의 신념이 되는 것이고, 내가 뒤섞여 살았던 세상에 대한 인식이 되는 것이고, 미래에 대한 나의 희망, 기대, 공포가 되는 것이고, 총체적으로 나의 인생철학이 되는 것이다.[33]


나는 지금 글쓰기와 연설을 병행하는 포트폴리오 생활을 하고 있는데, 누구도 이런 생활을 크게 부러워할 것 같지는 않다. 이 생활은 때때로 외로우면서도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너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말기 바란다. 다만 독자 여러분이 21세기의 전혀 다른 세상을 잘 헤쳐나가는 데 이 책이 하나의 지침이 되기를 바란다.[34]


제1부 포트폴리오 인생의 시작


1장 시작으로 되돌아가서


나는 이제 확실히 안다. 시작은 언제나 중요하다. 우리의 과거는 불가피하게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일부분이다. 생애의 후반기에 접어들어 벼룩의 생활을 영위하려면 먼저 나 자신에게 충실해져야 한다.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염원하거나 가장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가?[38]


인생의 여러 가지 풍상을 겪다보니 사람들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내 면전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중략) 개인에 대한 존경, 진리에 대한 외경이 좋은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고 하나의 장애로 생각된다면 그건 정말 곤란한 일이다. 내 유년 시절의 이런 유산과 타협하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만약 내가 그것을 바꿀 수 없다면 또 특별히 바꾸기를 원하지도 않는다면 그런 미덕이 장애가 되지 않는 생활방식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남들을 움직여야 할 책임이 없는 벼룩이 되었고, 내가 본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는 작가가 되었다.[42]


나는 보트 타기, 스키, 축구, 사냥, 천렵 등을 배우지 못했다. 이런 취미는 어릴 적에 익혀야 배우기도 쉽고 또 그 후에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평생의 생활 패턴을 구축하는 것이다.[53]


우리의 유년 시절은 부모님의 책임이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그 당시 인생 경험이 아직 짧아서 그들(부모) 자신의 시작(유년)이 그들의 끝(성년)을 결정한다는 것을 잘 모른다.... 부모가 조성하는 분위기, 부모의 가치관, 부모의 우선순위, 이런 것들이 자녀의 세계관 형성에 일차적인 기여를 한다. 가정은 인간의 첫 번째 학교이다.[53]


나는 이 ‘조용한’ 사람(목사였던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과연 내 장례식에 눈물을 흘리면서 찾아줄 사람이 있을까? 성공이란 무엇이며 나와 내 아버지 중 누가 더 성공한 사람인가? 인생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우리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주 새로운 질문도 아니었다. 나는 철학을 공부했고 이런저런 이론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적용해 본 적이 없었다.[58]


자기 자신을 알려면 먼저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나는 사십대 중반에 이르러 여러 가지 역할과 직장을 거치고 난 다음에야 ‘내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59]


이제 인생은 길어졌다. 일생 동안 세 가지 형태의 삶(학생, 코끼리, 벼룩?)을 살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런 형태 중 하나가 바로 벼룩의 삶이다. 나는 지금까지 겪어온 여러 형태의 삶 중 그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는 것을 발견했다.[62]


2장 나는 무엇을 배웠나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중요한 것 한 가지만 알고 있다네.”<그리스 시인 아리킬로쿠스>[71]


아주 어린 나이에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황금의 씨앗(golden seed)'을 물려받는 것이 인생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당신에 대한 칭찬 혹은 기대감의 표현으로서 당신의 자신감을 크게 강화시킨다. 슬레이버는 나에게 그런 씨앗을 주었다. 그것은 선생이 제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그분은 정말 내가 만난 평생의 스승이었다. 그 선생님은 아주 뚜렷한 목적 아래 내 인생을 뒤바꾸어 놓았다. 나에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다닌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가지 말고 옥스퍼드에 장학금을 받아 입학하라고 권유했던 분도 그분이었다.[79]


나는 학과 내용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실 나는 그 내용 따위는 오래 전에 이미 잊어버렸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과정이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사물을 분류하여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었다.[80, 81]


옥스퍼드는 남의 책을 그대로 베끼는 일을 극도로 경멸했다. 또 남의 책을 인용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전개할 수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었다.[81]


경영대학원(MIT 슬론)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나는 그 동안 경험으로 그런 것을 다 체득했던 것이다. 단지 그런 체험에 그럴듯한 용어를 붙이지 않은 것뿐이었다.[88]


나는 학교가 인생을 미리 실험하는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재능-우리 모두는 시험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재능을 갖고 있다-을 발견하는 곳, 자기의 과제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곳,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언제 필요한지를 깨닫는 곳, 인생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가치와 신념을 탐구하는 곳, 이런 곳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내가 볼 때 그런 것들이 지식 위주의 교육과정보다 더욱 매력적인 교과과정이라고 생각한다.[91, 92]


우리는 학생들 모두에게 황금의 씨앗을 주어야 한다. 음악가, 기업가, 사회사업가인 어니스트 홀 경은 한때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고 말했다.

왜 우리는 학교의 학생들에게 그들의 본질을 가르치지 않는가?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넌 네가 누구인지 아니? 넌 하나의 경이야. 넌 독특한 아니야. 이 세상 어디에도 너하고 똑같이 생긴 아이는 없어. 네 몸을 한번 살펴봐. 너의 다리, 팔, 귀여운 손가락, 그것들이 움직이는 모양 등은 모두 하나의 경이야. 넌 셰익스피어, 미켈란젤로, 베토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넌 그 어떤 것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넌 정말로 하나의 경이야.”[92]


제2부 인터넷 시대의 기업 문화


3장 새로운 경제와 그리 새롭지 않은 경제


나는 거기서 하나의 비유를 바탕으로 회사의 성격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의 신들은 그 비유를 제공해 주었고 나는 그런 개념을 바탕으로 『경영의 신들 The Gods of Management』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는 네 명의 신이 등장한다. 카리스마적 리더를 상징하는 제우스, 논리와 질서를 상징하는 아폴로, 팀워크를 상징하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 창조적 개인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 이렇게 넷이다. 각각의 신은 저마다 장점을 가지고 있다. 회사는 늘 이 네 유형의 혼합인데, 문제는 혼합의 정도인 것이다.[105]


아폴로 회사들은 새로운 조직을 관리하기 위하여 조직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을 선호한다. 그들은 이 격동하는 시대를 헤쳐나가는 데 있어서 어떤 연속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네모 상자 안에 들어가 있으면 상자 바깥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109]


가장 큰 코끼리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잭 웰치의 지휘 아래 지난 15년 동안 1,700개의 회사를 합병했고, 그도 모자라 또 다른 거대 코끼리인 하니웰(Honeywell)을 인수하여 업계 최대의 합병작업을 완료했다. 하지만 잭 웰치는 자신이 인수한 회사의 직원과 조직을 사정없이 감축하여 중성자(파괴분자) 잭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112]


나기키는 주요 버추얼 회사의 대표적 사례이다.

“나이키는 개념을 판매한다.” 이것은 미국의 사회비평가 제레미 리프킨이 미국 내의 아웃소싱 현상을 지적하면서 한 말이다. 나이키가 세계 최대의 신발 제조업체이기는 하지만 이렇다 할 공장도 기계도 장비도 부동산도 없는 것이다. 이 회사가 꽉 잡고 있는 것은 회사 전체를 단단히 결속시켜 주는 정보 시스템 뿐이다.[114]


개념적으로 볼 때 주유소에서 인터넷까지는 한 걸음에 불과하다. 이제 회사들은 고객들에게 자사 웹사이트를 이용하여 주문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GE는 전화 부문을 처리하려면 건당 5달러가 드는데 온라인 주문은 20센트밖에 들지 않는다고 견적을 뽑았다.[115]


프렌차이즈(대리점)는 분산기업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일 것이다. 리프킨의 설명에 의하면, 프렌차이즈는 현대 기업의 도래 이후 가장 중요한 새로운 비즈니스 조직의 형태라고 한다. 이제 미국 소매업의 35퍼센트 이상을 프렌차이즈가 차지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116]


나는 최근에 알게 된 수피(Sufi, 무슬림교의 범신론적 신비주의-옮긴이)의 가르침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그 가르침은 이렇다.

당신은 하나를 이해하기 때문에 둘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둘은 하나 ‘그리고’ 하나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그리고’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다.[120]


아마존과 기타 유사한 닷컴  업체들은 소비자의 과거 매입 실적을 기준으로 그의 기호에 맞춘 제안을 계속 해오고 있다.

이러한 개인화는 고객 유인책 이상의 것이다. 자, 우리를 있는 그대로의 개인으로 한번 파악해보라. 사실 우리는 80년 동안의 잠재적인 현금 축적처(蓄積處)이고, 회사는 그 축적된 돈의 일부를 원하는 것이다. LTV(Life-Time Value, 평생 가치)는 새로운 마케팅의 표어가 되었다.[121]


새로운 코끼리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1. 기업의 규모를 계속 키우면서도 소기업적, 개인적 분위기를 간직하는 것.(연방주의)

2. 창조성과 효율성을 잘 종합하는 것.(연금술)

3. 번영을 이루면서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사회적 책임)

4. 회사의 사주는 물론이고 아이디어의 소유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아이디어를 가진 개인)


연방주의는 중앙주의이면서 동시에 탈중앙주의이다. 중앙에서 할 수 있는 기능과 결정은 중앙에 남겨두고 나머지 기능은 현지에서 모두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기능과 결정을 중앙에서 해야 할 것인지 여부를 잘 가려내는 것이다.[126]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21가지 경우의 실패한 문명을 검토한 끝에 그 패망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중앙집중화된 소유권’과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부적응’이 그 문명의 붕괴를 가져왔다.”[130]


연금술사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그들은 열정적이다. 내가 만난 모든 연금술사들은 열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둘째, 그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꿈에 강하게 매달리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설혹 현실이 그런 꿈과는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도 그들은 그 꿈을 놓지 않았다. 이들의 이런 능력은 낭만파 시인 키츠(Keats)가 말한 ‘부정적 능력(negative capability)' 과도 통하는 것이다. 키츠는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능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그런 능력을 부정적 능력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사실이나 이성에 연연해하지 않으면서 불확실성, 신비, 회의 속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하지.”

셋째, 연금술사는 제3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남들과는 다른 눈으로 사물을 보았다.[132]


영화산업은 연금술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다. 이 산업의 핵심은 무(無)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고 또 그것을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139]


회사들이 약간의 자선 행위로 명성을 살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사람들은 이제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가에만 관심두지 않고 ‘어떻게’ 그 돈을 버는가에 집중한다. 국가 예산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면서 그 돈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145]


4장 달라지는 기업 문화 그리고 개인


오늘날의 충성심은 첫째가 자기 자신과 자기의 미래에 대한 것이고 둘째가 자기 팀과 프로젝트에 대한 것이고 마지막이 회사에 대한 것이다.[155]


이제 당신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카펫까지도 임대하라는 권유를 받고 있다. 에어컨을 사지 말고 에어컨 기능을 해주는 서비스를 사라. 소유는 따분한 것. 접속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라고 제레미 리프킨은 『접속의 시대 The Age of Access』에서 말한다.[168]


우리는 정치가들에게 우리의 느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실제로 권력이 민중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마침내 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이다. 자신의 손가락 끝에다 세상을 올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것은 놀라운 생각이고, 사람을 해방시키고, 마음을 넓혀주고, 정신을 흥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런 흥분이 지나가고 난 다음, 우리는 그런 기회에 뒤따르는 책임과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까?[172]


B2B(기업 대 기업) 거래는 인터넷의 진정한 미래이고 기업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심지어 오라클이나 GE 같은 회사들은 앞으로 2년 동안 인터넷을 이용하여 회사 비용을 10퍼센트 정도 절감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앞에서 언급된 수피 격언의 ‘그리고’의 비용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저 입찰가가 반드시 최고 파트너는 아니기 때문이다.[173]


앞으로는 소유보다 접속이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또 어떻게 보면 비소유적(非所有的) 재산의 세계가 경제를 활성화시킬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렇다 할 재산이 없는 사람도 끼워주기 때문이다.[178]


(프랑스에서) 정규 직장은 대부분 54세에서 끝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후 30년간의 은퇴 생활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개인 연금이든 국가 연금이든 그 어느 것도 이런 긴 세월 동안 안락한 생활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이제 엄연한(어쩌면 좋은 것일지도 모르는) 진실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정규 직장에서의 생활이 끝난 뒤에도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정규 직장의 연속이 아니라 이런 일, 저런 일을 그러모아 만든 ‘포트폴리오’ 일이 될 것이다. 일은 우리를 건강하고 유익한 사람으로 만들고 또 우리의 은퇴 생활을 지원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후손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어쩌면, 장래의 어느 시점에 은퇴라는 말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194]


5장 새로운 자본주의와 그 딜레마


좀 덜 피곤한 형태의 자본주의는 어디 없을까? 나는 그런 것을 찾아보고 싶다.[201]


“하지만 저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는데요. 대학에서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자네는 학위가 있지?”  “예.” “그래. 그러면 됐어.”(중략)

나는 시내로 들어가 『경제학 독학서』라는 자그마한 노란 책을 한 권 사서 읽기 시작했다. 나는 학위가 자격이 아니라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허가증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204]


“자네가 회사의 경제전문가 아닌가. 그러니 자네가 세미나에 참석하도록 하게.”

지사에서 내게 일방적으로 지시했다.  나는 그때 또 한 가지 사항을 알았다. 뭔가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선생에게서 배워야 하는 학생들은 괴롭겠지만 나는 그때 이래 가르침이야말로 내 생각을 발전시키는 탁월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다.[205]


친도구(Chindogu, 珍道具 : 1995년 『친도구의 세계 The Art of Chindogu』라는 책에서 소개되어 일본은 물론 영미권에까지 퍼진 용어로, 살아가면서 한 번쯤 ‘이런 것이 있으면 어떨까’ 싶은 물건들을 지칭하기도 한다-옮긴이)는 우리가 사들이는 불필요한 것을 일컫는 일본어이다..... 친도구는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과잉의 문제를 보여주는 첫 번째 징조이다.(중략) 나는 친도구가 고용을 창출하고 사람들이 쓸 돈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안다. 적어도 그 정도의 경제적 안목은 있다. 하지만 그런 불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노력과 시간 그리고 물자의 낭비 등은 걱정이 된다.(중략) 나는 또한 부자들만 성장과 풍요의 나선형에 올라타서 위로 올라가는 동안 그 나머지 가난한 나라들의 40억 인구는 빈곤 속에 허덕이는 것도 걱정이 된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불균형을 시정할 능력이 없는 듯하고 그래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208, 210]


“참 이상한 일입니다.” 싱가포르의 한 젊은 중국계 은행가가 내게 말했다.

“내 수입은 나의 아버지가 벌어들인 것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많습니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정원 딸리 단독주택, 가정부, 그리고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정원 딸린 주택은 아주 희귀하고 또 무척 비쌉니다. 나는 가정부 없이 5층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차도 없어요. 차를 사려면 그 가격에 맞먹는 허가증을 먼저 취득해야 하니까요. 나의 아버지는 매일 저녁 여섯 시면 퇴근해서 집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거의 매일 아홉 시나 되어야 퇴근합니다. 나와 내 아버지 중 누가 더 부자인지 잘 모르겠어요.”

바로 그것이 성공적인 자본주의의 또 다른 문제이다. 동일한 장소에 머무르려면 전보다 두 배나 더 빨리 헤엄쳐야 하는 것이다. 부모 세대는 아버지 한 사람의 수입으로도 잘살았는데, 오늘날의 부부는 아버지 대(代)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잘살려면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대적으로’라는 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부모들이 살았던 바로 그 생활 조건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느긋하고 천천히 돌아가는 세계에 대한 향수가 비록 강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를 할 뿐 우리의 과거나 부모와 비교하지는 않는다. 풍요의 강(江)은 우리를 그 위에 태우고 아주 빠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우리가 둑을 쳐다보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만 바라본다면 우리가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210, 211]


경제 성장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강물에 뛰어들면 강은 점점 더 비좁아지고 조건은 점점 더 열악하고 또 경쟁적이 되어간다. 그러니 그 스트레스인들 오죽하겠는가. 그러면 나를 포함하여 어떤 사람들은 그 강을 떠나서 둑 위에 앉아 남들이 허우적거리는 것을 지켜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빠져나가고 나면 경제는 폭삭 주저앉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로에 구멍이 패여 있다. 보건 상태가 엉망이다. 학교 교육이 제대로 안 된다 하고 불평을 터트리게 될 것이다. 둑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강물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부가 가져온 경제 인프라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것이다.[211]


나는 새로운 싱가포르의 깨끗하고 안전한 길을 걸어가면서 내게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문제들은 현지인들을 별로 괴롭히는 문제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지금처럼 돈을 벌고 또 쓰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아버지의 세대와 자기 세대를 비교한 그 중국계 은행가도 분노나 동경보다는 담담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와 또 그들이 이룩한 업적을 자랑스럽게 여겼다.[212]


싱가포르에서는 일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마약과 폭력은 보기 드물다. 치안은 아주 엄격하다. 하층 계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싱가포르의 연금 계획은 자급자족의 표본이다. 소득의 30퍼센트를 의무적으로 떼어내어 비상기금에 적립하고 주택 할부금 등 큰돈이 필요할 때에는 이 기금에서 빌릴 수가 있다. 대부분의 외국 주재원들이 인정하듯이, 싱가포르는 비즈니스를 하기에 좋은 곳이고 또 젊은 부부들이 와서 살기에는 그만인 곳이다.[212, 213]


리콴유는 특정 상황과 문화 속에서는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가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것을 교도 자본주의(guided capitalism)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기업 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라고 생각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마치 코끼리 기업의 운영방식처럼 운영되고 있는데, 그 전제조건은 기업에 좋은 것은 기업에 소속된 사람에게도 좋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주의적 전통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독립심이 강한 벼룩들 혹은 연금술사들에게는 맞지 않는 장소이다.[213]


돈이 유익할 뿐만 아니라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라는 사상은 미국 문화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었고 또 그런 사상은 기이하게도 영국인 중의 일부 금욕적인 사람들이 물려준 것이었다.[217]


만약 미국 정부가 언젠가 사회보장기금을 부분적으로 민영화한다면, 약 1천억 달러 규모의 세수(세수)가 증권시장으로 흘러들어와 시장 규모를 더욱 확대시킬 것이다. 하지만 일반 개미 투자자들이 시장의 앞날을 어둡게 보고 매도에 주력한다면 그 반대의 현상(주식시장 규모의 하락)도 벌어질 수 있다.[223]


통계수치에 의하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미국의 호황기에 실질 소득이 증가하지 않았다. 1990년대의 주식시장 소득 중 86퍼센트가 미국 인구 10퍼센트에게 돌아갔고 따라서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런 실익도 얻지 못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1995년과 98년 사이에 가정의 평균 가치는 17.6퍼센트 상승했지만, 가정의 부는 1989년 수준보다 “훨씬 밑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54세 이하의 소득 그룹 모두에게 해당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예전에 부모가 누렸던 상대적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부부)이 같이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225]


통계적으로 볼 때, 미국은 나이지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제일 불공평한 나라 2위를 차지한다. 미국은 경제가 발전할수록 빈부격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는 이론의 구체적 사례이다. 육체적 완력보다는 지식과 기술을 더 쳐주는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225]


미국 초기 퓨리턴들은 아주 독특한 종류의 크리스천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책임이며 우리가 처한 조건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인간의 의무는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226]


미래가 과거보다 더 나아질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사상은 미국 문화의 아주 활기 넘치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이런 미래지향적 정신에 ‘새 땅에서 새 생활을!’이라는 이민자 문화가 보태졌다. 이런 정신이 있기 때문에 비록 지금 가난하게 살아도 미래의 언젠가 현재의 부자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한다. 다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파괴적 요소가 되는 질투심도 미국에서는 야망과 희망을 부추기는 연료가 된다. 이러한 야망과 희망은 사회의 사다리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유동성(流動性)에 의해서 강화된다. 1년 단위로 직업 사다리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한두 계단 위로 올라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내려가는 것이다.[227]


나는 최근의 미국 방문에서 로버트 포겔이 지적한 목적의식의 상실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딜레마이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더 이상 손에 들어온 그것을 원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공의 역설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사회 구성원에게 그들이 얻고 싶어하는 것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얻게 해주는 사회는, 나중에 그 사회의 활동가들 사이에 번지는 권태의 파도에 일찍 노출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은 많은 것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을 주지만, 그런 물질적 욕구가 충족된 이후의 삶의 목적마저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물론 구매를 유혹하는 ‘친도구’가 더 많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 시들해진다. 그러니 보람 있는 인생을 영위하려면 자기 자신의 범위를 뛰어넘는 목적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기적 자본주의는 이런 목적을 홀대하여 중요도 리스트의 맨 밑바닥에다 놓고 있는 것이다.[232]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미국에서 그런대로 통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엄청난 규모의 부를 창출했고 지금도 계속 창출하고 있다. 그중에서 비교적 잘 안 돌아가는 것은 분배의 문제 정도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늘 평등보다는 자유를 강조했고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지 결과의 평등은 아니라고 믿었다.[233]


대처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회라는 것은 없다. 오로지 개인과 가족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에 대해서는 우리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한 대처의 주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은 영국의 사회적 단결에 일격을 가한 대처의 조치가 너무 뼈아프다는 표시였다. 불공평과 불안정이 만연되었고, ‘하층 계급(underclass)'이라는 단어가 생활용어의 필수어가 되었고, 우리가 예전에 알았던 직장이라는 개념은 증발해 버렸다. 국영기업이 매각되고 세금이 인하되면서 이익과 재정적 보상이 성공의 주요 지표가 되었다.

사태는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지만 새롭고 흉물스런 이기심이 탄생했다. 곧 사람들은 부드러운(희석된) 형태의 자본주의에 찬성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직도 그것을 희망하고 있다. 개인주의적 자본주의라는 귀신이 병 속에서 일단 빠져나오면 그것을 다시 병 속으로 집어넣기는 아주 어렵다.[235]


글로벌 자본주의는 많은 사람을 전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부가 행복을 가져온다고 믿는 사람은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다. 전세계를 상대로 한 일련의 조사 연구에 따르면 1인당 연간 국민소득 1만 달러가 효용체감의 시작점이라고 한다. 그 수준 이하(대략 오늘날의 그리스와 포르트갈)에서는 더 많은 돈이 더 많은 기본적 생활 편의를 보장하고 또 만족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 수준을 넘어서면 몇 달러 더 벌었다고 해서 우리를 더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제 극심한 경쟁 사회로 들어서서 우리의 이웃과 자꾸 비교하게 되고, 우리의 과거보다는 미래를 더 신경 쓰기 때문이다.[251]


현대 자본주의의 변화 속도가 개인은 물론 기업의 불안정성을 높여놓았다. 그러니 작년에 통하던 것이 금년에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작년의 예상 수치는 금년의 낡은 문서가 되어버리고, 권위자로 여겨졌던 사람은 어느새 한물간 인물로 퇴락해 버린다. 그러니 멀리 앞을 내다보며 계획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람들은 어떤 것에 혹은 어떤 인물에 의존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253]


경제적 성장은 우리가 더 많이 더 빨리 여행해야 하고, 더 적게 머물러야 하고, 조용히 서서 풍경을 바라볼 시간이 점점 더 적어지고, 이웃의 관심사를 돌볼 시간이 점점 없어져간다는 뜻이다.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지구의 회전 속도를 늦추어다오. 지구에서 잠시 내리고 싶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그걸 원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도 있다.[253]


하지만 자본주의는 현재 시장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게임이다. 설혹 그것을 멈추고 싶더라도 우리에게는 방법이 없다. 단지 그것을 어느 정도 길들일 수 있을 뿐이다. 만약 2021년의 시점에서 진보의 20년을 되돌아본다면, 우리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관용과 개방의 새로운 정치, 소수가 아니라 다수를 위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자발적 의지가 정말 필요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자면 상상력 넘치는 리더십과 강인한 극기정신이 필요하다. 이런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면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가 에드워드 러트워크(Edward Luttwalk)가 우려한 것처럼 터보 자본주의(turbo capitalism :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부자 위주의 자본주의)가 또 다른 형태의 파시즘을 야기시킬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단결하여 들고 일어나면 히틀러 같은 인물을 집권시킨 포퓰리즘(대중주의 혹은 인기영합주의)이 언제라도 다시 고개를 쳐들 수 있다.

자본주의가 잘 돌아가고 또 제 발등을 찍지 않으려면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자본주의를 운영해야 한다. 우리의 우려 사항은 이런 것이다. 자본주의의 혜택이 전세계 중산층에만 집중되어 21세기 말의 100억 인구 중 20억 정도만이 그 혜택을 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나머지 80억에게는 용돈 혹은 송금만 보내주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진정한 돈을 벌어들일 기회를 주어야 한다.[254, 255]


경영학의 귀재인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놓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쟁하지 말라. 일을 남들과 다르게 처리하고 승리의 개념을 재규정하라. 적어도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그렇게 할 가능성을 준다.[255]


만약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미국인의 정력과 자신감, 케랄라 사람의 매력과 다정함, 싱가포르 사람의 극기심과 결단력을 종합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가장 좋은 형태의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교차문화적(cross-cultural) 기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좀더 실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자본주의의 진짜 문제는 목적과 수단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이다.[256]


부의 창출을 무작정 극대화하면 왜 우리가 그런 부를 원하는지 그 이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반면 이데올로기에만 너무 집착하면 수단을 소홀히 하게 된다. 공산주의는 원대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모두를 위한 더 좋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참여시키자”).

하지만 그들은 그런 목적을 수행하는 효과적인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부를 창출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목적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그래서 그 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또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잘 모르는 것이다. 만약 이런 현상이 심화된다면 바로 그때가 자본주의의 몰락 시점이 되는 것이다.[257]


제3부 독립된 생활 : 인생 스크립트 새로 쓰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창조하고 싶은 것에 대한 꿈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부자가 되고 싶다.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 등의 막연한 꿈이라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는 희망에 가깝다. 열정은 막연한 희망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267]


자신의 열정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조언하고 있다.

“실험을 해보라. 마음에 드는 것은 뭐든지 해보라.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열정으로 성숙하게 될 때까지 그것을 당신 인생의 중심으로 여기지 말라. 그것은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270]


작가는 과거의 아이디어를 여전히 다루지만 새로운 현실에 비추어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통찰, 새로운 관점, 새로운 경험을 나눠줄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271]


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그 어떤 경영서보다도 회사 속의 개인이 처한 시련과 고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 내 책이 그런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톨스토이 덕분이었다. 내 책은 다른 경영서보다 우수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확실히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했다.[273]


‘남보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남들과 다르게 하라’

이 화두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새로운 통찰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사물을 새롭게 보기 위해 혹은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때때로 낯선 세계를 거닐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우리 자신에게 그것을 강요해야 한다.[273]


아무튼 쓰기, 강연하기, 방송하기는 내 학습의 뼈와 살이 되었고 또 그것을 지탱해주는 철골이 되었다. 나는 강연에서 새로운 개념이나 비유를 시험해본다. 만약 좋은 반응을 얻는다면 그것을 나중에 내 책 속에다 편입시킨다. 당신의 학습 내용을 가지고 당신 고객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일이 된다. 나의 제품은 나의 책이다. 하지만 뭔가를 남보다 더 잘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하려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가서 보고 듣고 살펴라. 그런 다음 그런 견문을 당신의 세계를 새롭게 조망하는 수단으로 삼고 또 그 새로운 개념을 부지런히 사용하여 당신의 의식(意識)의 일부분으로 만들라. 만약 그 개념이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재빨리 내다버리고 다른 곳에서 다시 찾도록 하라.[278]


프리랜서 생활의 자유는 정말로 매력적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올린다는 것은 약간의 오만을 필요로 한다.[280]


7장 일 구획짓기


나는 일이 인생의 기본적인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일 없이는 살 수가 없다. 포트폴리오 인생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처럼 일 없는 생활은 의미 없는 생활이었다.[288]


집안일의 보상은 감사와 사랑(하지만 겉으로 표현되지는 않는), 가정의 창조와 유지, 소속감을 주는 곳, 혼란스러운 세계 속의 아늑한 섬 등의 형태로 다가온다. 이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상이지만,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집안일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균형 잡힌 생활은 남녀 불문하고 집안일을 포트폴리오에 편입시켜야 한다. 포트폴리오 인생(자유로운 벼룩 생활)은 우리에게 그렇게 할 기회를 제공한다.[290]


사람들은 자원봉사 일을 가장 만족스럽게 여긴다. 금전적인 이유나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좋아서 하기 때문이다.[291]


내가 잘하지도 못하는 것을 통해 기여하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내가 가장 잘하는 몇 가지를 무상으로 지원해 주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쓰기, 연설하기, 청강하기 등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자원봉사 활동 범위를 제한했다.[292]


자기 분야의 최신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가용(可用) 시간의 20퍼센트를 소비하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요구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 10퍼센트, 즉 연간 25일을 이런 저런 형태의 공부에 투입할 것을 회사의 관리자들에게 권한다.[293]


독립적인 벼룩은 기댈 곳이 자기 자신밖에 없다. 돈 버는 일의 미래를 확보하려면 공부하는 일이 본질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내 경우, 공부의 핵심은 나의 글쓰기이다. 소설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작가들은 실제 글쓰는 시간보다 3배나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데 투입한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시골로 내려가 글쓰기에 전념했다.[293]


포트폴리오 일은 그것이 일종의 윤작이라는 데에 매력이 있다. 공부하는 일도 쉬는 시간이 충분해야 비로소 윤택해진다. 너무 많이 너무 빨리 쓰면 그 다음날은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어느 날 저녁에 어떤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그 다음 날 그 책을 다시 읽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날은 글을 읽거나 쓰고, 어떤 날은 앉아서 생각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앉아만 있다. 바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활을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렵다.[294]


우리는 내가 공부하는 일에 연간 1백 일을 배당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공부하는 일은 글을 쓰고 글쓰기를 준비하고 독서하는 것을 모두 포함했다. 그것이 나의 돈 버는 일의 기반이 될 것이었다. 그러니 그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296]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책들은 출간 후 2년에 걸쳐서 5천 부 정도 팔리는 게 고작이다. 또 출판사를 잘 만났다고 하더라도 원고 집필을 완료한 후 2년 뒤에나 책이 나오는 것이다. 내가 회사 생활을 그만두려고 한다는 말을 하자, 당시 나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출판 대리인이 이렇게 충고했다. “착각하지 마세요. 글을 써서는 일 년에 만 파운드도 벌기 어려워요.”[296]


“정말 중요한 점은 이거야. 돈을 버느라고 많은 시간을 투입하게 되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할 시간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거야.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내 경우엔 글쓰기이고 아내의 경우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지. 우린 논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아. 우리가 충분한 돈의 액수를 낮추면 낮출수록 다른 일을 할 자유는 그만큼 더 많아지는 거야. 돈을 너무 강조하면 돈은 너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돈 버는 일에 꽁꽁 묵어둘 수 있어.”[302]


나를 하나의 브랜드로 보다니 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이 맞았다. 포트폴리오 인생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될 수는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특별한 광고나 홍보도 하지 않고서 복잡한 시장에서 우뚝 솟으려면 자기 나름대로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프리랜서의 생명은 명성, 명성, 명성인 것이다.[305]


어떤 방식으로 홍보를 한 결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이태 정도가 걸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입소문, 만족해하는 고객, 성공적인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래를 위해 씨앗을 뿌리고 기다리는 것과 같다.[306]


권력을 내주고 영향력을 받아온 사람이 가장 기쁘게 생각하는 순간은, 자신이 세상에 유포시킨 아이디어가 생전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에 의해서 채택되고 또 사용된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이다.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반신 주소도 없이 날아온 편지(그래서 답장을 쓸 수 없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짤막했다. “당신의 책들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 책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고 내 생활을 바꾸어 놓았습니다.”[311]


지난 1천 년 동안의 최고 영웅으로 영국 사람들이 뽑은 인물은, 말(言)이외에는 아무런 재산도 없었던 윌리엄 셰익스피어였다.[311]


엄연한 사실은 이런 것이다. 자신의 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은 칭찬과 함께 부상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프리랜서(프리랜스 freelance 는 원래 용병을 뜻하는 전쟁 용어이다) 생활은 노출된 생활이다. 그것은 자기 신념을 필요로 한다. 비평 혹은 혹평의 형태로 다가오는 피드백으로부터라도 배우려는 의욕이 있어야 한다. 고객의 필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능력은 동시에 혹평에 상처받기 쉽다. 그리고 그런 상처는 좀처럼 쉽게 잘 아물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라 붙는다.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포트폴리오 일에서 오는 자유는 그런 대가를 지불하고도 남는 바가 있다.[313]


이제 포트폴리오 생활에서는 은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포트폴리오 생활자에게는 일을 그만두는 정해진 시기가 없고 단지 포트폴리오 일의 재편성(가령 돈 버는 일을 적게 하고 나머지 일들을 많이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315]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생활에 뛰어들어 인내하면서 나름대로의 공식과 포트폴리오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자기가 아닌 어떤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능력을 발견하고 또 자신의 영향력과 그 특별한 즐거움에 만족을 느껴보기 바란다. 그리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 바란다.[316]


8장 생활 구획짓기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

정말로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성공은 사람을 망쳐놓는다.[320]


우리는 B 그룹을 ‘추진(Thrusting)'이라고 명명했다. A 그룹의 사람들은 성취와 배려가 혼합된 그룹으로서 ’관여(Involved)', D 그룹은 ‘배려(Caring)', C 그룹은 ’단독(Loners)' 이라고 명칭을 부여했다.

부부의 압도적인 결혼 생활 패턴은 BD였다. 이것은 남편이 자율을 중시하는 높은 성취형인 반면 아내는 배려를 중시하는 D 그룹에 속하는 ‘전형적 결혼 생활’이었다.

‘경쟁적 결혼 생활(BB)'의 경우도 한 건 있었다. 이것은 두 추진자의 결합으로서 모두 높은 성취에 높은 자율을 강조하는 형이었다.

‘격리된 결혼 생활(CC)'도 있었다. 이 경우는 자율 부분에서는 점수가 높지만 그 나머지 부분에서는 점수가 아주 낮은 두 단독자의 결합이다. 그들은 함께 살면서 아이를 키우기는 하지만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나 공간이 없었다.

또 다른 주된 결혼 패턴은 ‘공유된 결혼 생활(AA)' 이었다. 이것은 부부가 모든 역할을 공유하는 결혼 생활이다. 부부는 성취와 배려 부분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얻었다.[323, 324]


“우리 부부는 공유된 결혼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내가 승진을 하고 아이가 둘 태어나면서 전통적 결혼 패턴으로 바뀌었어요. 아내는 자기 직장을 포기했지요. 아이들이 다 크자 아내는 다시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당신이 말하는 그 경쟁적 결혼 패턴으로 가게 된 거지요. 하지만 곧 격리된 패턴으로 추락하여 지난 해 우리는 결국 이혼을 했습니다.” 부부들은 실제로 그런 패턴들을 옮겨다닌다.[326]


성공적인 결혼 생활의 비결은 인생의 사이클이 바뀜에 따라 결혼 패턴을 적절히 바꾸어주는 것이다. 많은 친구와 동료들은 그들의 전통적 결혼 패턴이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끝났는데도 그런 상황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키워야 할 아이들이 없고 또 모셔야 할 부모가 돌아가셨거나 양로원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부부는 공통의 유대가 없어진 것이다. 부부의 격리된 생활은 별도의 세계에서 따로따로 운영되었고, 친구들과 관심사도 제 각각이었다. 이런 부부는 아이들 때문에 혹은 흘러온 관성 때문에 격리된 패턴 속에서 한동안 괴로운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부부 중 한 사람이 다른 파트너를 찾아서 다른 패턴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혼에 도달한다.[327]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공유된 결혼 패턴을 우리집 사정에 맞게 수정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내 우리는 1년을 반으로 나누는 또 다른 모델을 우리의 일 분배 모델에다 적용했다.[329]


지금까지 설명한 것이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공유된 결혼 패턴이다. 하지만 낮 동안에는 격리된 패턴을 유지한다. 우리는 별도의 방에서 별도로 일하고 또 별도의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는 다른 습성을 가진 다른 인격체이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작업 공간을 본다면 우리가 같은 방에서 일할 수 없고 또 같은 주방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 것이다.[332]


구획지어진 일정한 시간에 함께 있는 것은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보상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자신의 일에 보다 자유롭게 집중한다.[334]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현상은 포트폴리오 사고방식이 전 기업에 널리 전파되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일과 생활의 균형을 점점 더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런 현상의 징조를 읽을 수가 있다. 그리하여 남녀 모두에게 더 많은 날짜의 육아 휴가를 부여하는 쪽으로 법이 개정되고 있고, 기업들도 놓치기 아까운 인재들에게 더 많은 안식년 휴가를 주고 있다. 또한 회사원들도 자신이 과거에 보너스와 주식 옵션 때문에 자유시간을 많이 빼앗긴 것에 대하여 반성하고 있다.[337]


포트폴리오 생활, 유연근무시간제, 일거리 공유(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품앗이) 등이 생산성을 높이고 직업 만족도를 좋게 한다는 연구 조사들이 이미 나와 있다.[338]


맺는 글 : 마지막 생각들 ===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


자유라는 동전의 다른 면이 고독이라면 독립성의 이면은 이기심인 것이다. 자기 자신 속의 가능성에만 맞추어 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가능성은 무시하기 쉽기 때문이다.[343]


1999년 교황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순전히 인간의 경제적인 측면에만 바탕을 둔 이 시스템은 이익과 시장법칙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인정하고 있고, 그리하여 개인과 사람들이 누려야 할 위엄과 존경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344]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들 중 한 사람인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인류의 취약함이 좋은 정부를 위한 최선의 기반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는 우리 자신의 약점, 우리 자신과 이웃을 돌보지 못하는 약점을 시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344]


독립된 생활은 이기심에의 초대장이고 아주 개인화된 사회에의 처방전이다.[347]


벼룩과 소기업들로만 이루어진 세계는 부도덕한 세계가 될 수 있다. 그런 세계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팽배한다.

‘법에 걸리지 않고, 좀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잡히지만 않는다면 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너의 이점을 극대화하라. 그렇게 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문제는, 만약 우리가 그런 논리 위에서 행동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세계에서 상호신뢰는 바보들이나 하는 게임이 된다..... 영국의 뛰어난 사회 트랜드 분석가인 봅 티렐(Bob Tyrrell)은 이런 세계를 가리켜 ‘경쟁적 개인주의’라고 했다.[347, 348]


이러한 세계, 성공적인 벼룩들이 살기 좋은 세계,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세계의 징조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349]


경쟁적 개인주의 대신에 다양한 개인주의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우리는 남들보다 뛰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은 승자독식의 형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승자가 되는 그런 방식이다.[350]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우리는 경쟁적 개인주의와 다양한 개인주의가 혼합된 시나리오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경쟁적 개인주의는 젊고 야심만만한 사람들에게 알맞다. 그것은 혁신과 창조를 추진하는 연료이고 기업을 육성하는 힘이면서 동시에 제도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변화하도록 밀어붙이는 기관차이다. 이런 에너지가 없는 국가나 기업은 시들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개인주의에서 비롯되는 치열한 경쟁을 누구나 다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나이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힘든 것이다.[352]


그들은 다른 연령 집단에 비해 투표자 수가 더 많다. 그들은 그런 투표의 힘을 이기적인 목적에 사용할까? 더 높은 연금과 보조금(결국에는 후손의 부담으로 돌아갈 돈)을 제시하는 정당을 지지할까, 아니면 지역 문제에 대한 지역의 통제권을 더 요구하여 조용한 거리와 소음 없는 비행기, 깨끗한 공기, 환경지향적인 회사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할까? 과연 새로운 중년 그룹은 20년 전 킹맨 브루스터 대사가 말했던 것처럼 ‘미래의 수탁자’가 될까? 아무튼 국민 전체를 위해 그런 투표권을 행사하든가 혹은 자기 그룹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하든, 그들은 결국 그런 도전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352]


슬프게도 이런 낙관적인 미래의 모습이 전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만약 우리끼리만 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로 구성된, 선택의 공동체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아무리 그 의도가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만약 이런 식으로 공동체가 구성된다면 우리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을 하나로 묶을 국가적 공감대가 점점 사라져 사회는 조각조각 분열되고 말 것이다. 그 결과 사회를 단단하게 엮어주는 저 애매모호한 개념인 사회적 자본이 파탄 나고 말 것이다. 공포, 의심, 불관용이 잡초처럼 무성해질 것이다. 인종주의, 노인 차별, 편파주의가 판칠 것이다. 그러면 ‘나도 살고 너도 살고’의 정신은 붕괴하고 만다.[355]


우리 사회는 과연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여러 가지 징조들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지난 1981년에 내가 내렸던 낙관적인 사회 전망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사회가 부유해질수록 더욱 조용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조용해지기는커녕 오늘의 사회는 더욱 소란스러워 보인다. 나는 사람들이 부유해지면 더 자상하고 더 관용적이 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이 많을수록 더욱 경쟁적이 되고 또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려고 더 애를 썼다. 또 어떤 사람은 일이 너무 많아 여가가 없고, 어떤 사람은 여가만 많고 일은 하지 않는 극심한 편차가 점차적으로 평준화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우리의 부모는 평생 10만 시간 정도를 일했는데, 우리의 아이들은 늘어난 생산성 대문에 그 절반 정도만 일해도 될 것으로 예측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순진한 판단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은 여가보다는 더 많은 돈을 원했고 필요하다면 10만 시간이라도 일하겠다는 기세였다.[355, 356]


1981년 당시 나는 두 가지의 정의(正義)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받을 자격이 있는 만큼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필요한 만큼 주는 것이라고. 일단 후자가 충족되어야만 전자가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오로지 정부만이 할 수가 있다. 영미권은 너무 오랫동안 전자의 정의(그들이 받을 자격이 있는 만큼 주는 것)에만 집중해 왔다.[356]


오늘날 더 중요하게 된 것은 권력의 신, 자부심의 신, 일의 신, 부(富)의 신이다. 이런 신들은 인간을 합치시키기보다는 분열시킨다. 그 외에 명예의 신과 패션의 신도 있다.[359]


우리는 이제 고대 그리스인과 비슷하게 되었다. 모든 변덕과 계절을 관장하는 신, 서로 싸우는 신, 사람들을 합치시키기보다는 분열시키는 신 등등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 종교는 아무것도 제시할 것이 없다는 말인가?

사실대로 말해 보자면 종교는 사랑이 아니라 공포를 통해 사회를 결속시킨다. 종교는 계율울 정하고 기준을 내리고 징벌을 고안한다..... 모든 종교에는 권장사항과 금기 사항과 징벌 사항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전제조건을 믿어주는 한, 종교는 돌아가고 또 사회는 그에 순응한다. 그러나 현대의 세속 사회에서는 그런 전제조건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종교는 분파의 문제가 되었고 상당히 우상 숭배에 접근해 있다. 그 종교들은 열렬한 추종자들을 갖고 있지만, 카를로스 에퍼슨이 지적한 것처럼, 더 이상 사회에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그리하여 정부가 그 빈자리에 들어서서, 좋은 인생의 본질, 가정의 구성 요소, 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 흡연 가능 여부, 섹스를 할 수 있는 연령, 다른 인종, 종교, 젠더의 사람들에게 처신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간섭하는 정부의 등장을 거부하지만 그 자리에 대신 갖다놓을 대체물은 없는 상태이며 일련의 규범과 기준을 마련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현대를 위한 종교를 다시 발명해야 할까?[359, 360]


 “철학자들은 오직 세상을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칼 마르크스(Karl Marx)의 묘비명>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의욕만 갖고 있다면 세상은 변화하는 것이다.[364]


중국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행복은 할 일이 있는 것, 바라볼 희망이 있는 것, 사랑할 사람이 있는 것, 이 세 가지이다.”

나는 그 행복을 계획하고 있다.[365]


옮긴이의 말 : 인생과 사업의 지혜로운 이야기


어떻게 하여 찰스 핸디는 유난히 (읽기에) 부담이 없는 남자가 되었을까. 역자는 그것을 다음 3가지의 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핸디의 글은 읽기가 쉽다.

일반적으로 읽기 쉬운 것은 유치한 것으로 생각되는 경행이 있는데, 핸디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핸디의 글이 읽기 쉬운 것은 좋은 리듬감이 넘치는 문장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리듬간의 원천은 성서와 셰익스피어이다.(중략) 그러나 리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솔직함이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로렌스 페린은 읽기 쉬운 글을 쓰는 요체로 정직, 용기, 겸손의 3덕목을 들면서 그중에서도 특히 정직을 강조했는데, 자신의 병역 기피나 권력에 쉽게 굴복하려는 경향 등을 숨김없이 고백하고 있는 핸디의 글에는 결벽에 가까운 정직함이 깃들어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의 글은 읽기가 쉬운 것이다. 감출 것이 없으니까 글을 복잡하게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둘째, 핸디의 글은 재미가 있다.

그것은 핸디 자신이 책을 쓰는 데 있어서 남보다 더 좋은 책을 쓰기보다는 남들과 다른 책을 쓰겠다는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남들이 다 써먹은 그런 얘기는 쓰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집필 철학이다. 그리하여 그의 책은 구체적, 현실적, 실용적인 에피소드를 위주로 하여 전개되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셋째, 핸디의 글은 유익하다.

앞의 두 가지 특징은 핸디 문장의 스타일을 말한 것이지만, 이 세 번째 매력은 책의 내용과 관련된다.


마지막으로 유부남 핸디의 도 다른 특징을 하나만 더 든다면 그가 굉장히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367, 368]


경제, 경영서를 읽는다기보다는 장편 수필을 읽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쉽고,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369]

☞ 내가 써보고 싶은 유형의, 형식의 책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찰스 핸디. 읽기 쉽고 재미나며 유익한 글을 쓰는 작가다. 어떤 작가가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겠냐만,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글쓰기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됐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읽기 쉽고, 재미나고 유익한 글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첫째, 읽기 쉬운 글. 미국의 문학 평론가 로렌스 페린은 읽기 쉬운 글을 쓰는 요체로 정직, 용기, 겸손의 3덕목을 들면서 그중에서도 특히 정직을 강조했다고 한다. 감출 것이 없으니까 글을 복잡하게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감 가는 말이다. 그럼 나는 정직에 대해서 얼마나 자신이 있는가?..... 내 생각을 쾌히 발표할 수 있을 만큼 내 주장에 대해 용기가 있나?..... 나의 생각을 표현면서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독자를 가르치려고 들려는 건 아닌가?..... 세 가지 덕목 모두 내게 부족한 것 같다. 글을 쓰면서 계속 자문해봐야 할 내용들이다.

재미난 글은 또 어떤가. 일반인들이 어떤 전문분야(나의 경우 국민연금에 관한 내용)를 설명하는 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그 내용을 바라보는 시각의 새로움과 그에서 얻는 공감 때문인 것 같다. 핸디는 남보다 더 좋은 책을 쓰기 보다는 남들과 다른 책을 쓰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남들이 다 써먹은 그런 얘기는 쓰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집필 철학이었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구체적, 현실적, 실용적인 에피소드들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것이 재미난 이유다. 이런 것들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조사 탐구와 사색에 의해서 가능할 것 같다. 찰스 핸디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작가는 과거의 아이디어를 여전히 다루지만 새로운 현실에 비추어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통찰, 새로운 관점, 새로운 경험을 나눠줄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271]

"‘남보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남들과 다르게 하라’
이 화두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새로운 통찰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사물을 새롭게 보기 위해 혹은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때때로 낯선 세계를 거닐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우리 자신에게 그것을 강요해야 한다."[273]

셋째, 유익한 글. 이것은 그야말로 깊은 사색과 통찰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예는 이런 것들이 있다. 회사의 유형을 제우스, 아폴로, 아테네, 디오니소스 4명의 신에 비유한다.(나도 이 부분을 읽다가 국민연금 가입자의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면 재미날 것 같다는 착상을 하게 됐다.)  리콴유가 교도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싱가포르의 자본주의 형태를 저자는 기업자본주의라고 정의한다. 직장인과 프리랜서의 생활을 코끼리와 벼룩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인생 사이클에 따른 결혼 생활을 전형적 결혼 생활, 경쟁적 결혼 생활, 격리된 결혼 생활, 공유된 결혼 생활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 결혼한 사람이 읽다보면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명쾌한 분석이고, 신선한 내용이다. 누가 전에 결혼 생활을 이런 방식으로 구분한 사람이 있었겠는가? 아니 혹시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결혼 생활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의 책에서라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경영 혹은 자기계발 관련 책에서 이런 내용을 접하리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까? 예기치 않은 곳에서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 드는 게 당연하다.

1981년에 내놓았던 20년 후의 예측을 2001년 시점에서 비교하는 것도 그렇다. 그는 자신이 틀리게 했던 예측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관한 그 예측들은 지금 내가 예측하더라도 비슷하게 할 것 같은 그럴듯한 예측이다. 그런데 그 예측들이 모두 틀린 예측들이다. 독자들의 공감을 이렇게도 끌어 낼 수가 있는 거다.


이 책을 읽고 생각한 나의 가장 부족한 점은 공부와 사색이다. 내게도 핸디가 했던 방식의 공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공부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톨스토이와 도프토예프스키에서 경영을 배우는 방식의 공부가 필요하고, 이렇게 공부한 내용들을 내 관심분야(국민연금)에 접목시키는 폭넓은 사색(실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국민연금에 관한 지식은 딱딱하고 판에 박힌 고철덩어리 같은 지식들이다. 내가 항상 업무적으로 접하는 천편 일률적인 내용들이다. 이것을 핸디 식으로 풀어내지 않고서는 재미있고 유익한 책을 쓸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게 글쓰기에 관한 구체적인 노력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들어준 책이다. 앞으로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한 두 번쯤 더 들춰보고 싶은 좋은 책이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기술과 생산성이 발달되었으면 여유 있는 시간이 그만큼 더 많아져야 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는 전보다 더 일에 찌들어 있다. 일은 이제 생활의 수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일중독자로 몰아가고 있다. 과연 일이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도록 해줄 것인가, 아니면 성공적인 자본주의는 결국 커다란 환멸로 끝나버리고 말 것인가?[22]

나는 이 ‘조용한’ 사람(목사였던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과연 내 장례식에 눈물을 흘리면서 찾아줄 사람이 있을까? 성공이란 무엇이며 나와 내 아버지 중 누가 더 성공한 사람인가? 인생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우리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주 새로운 질문도 아니었다. 나는 철학을 공부했고 이런저런 이론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적용해 본 적이 없었다.[58]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중요한 것 한 가지만 알고 있다네.”<그리스 시인 아리킬로쿠스>[71]

나는 학과 내용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실 나는 그 내용 따위는 오래 전에 이미 잊어버렸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과정이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사물을 분류하여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었다.[80, 81]

나는 학교가 인생을 미리 실험하는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재능-우리 모두는 시험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재능을 갖고 있다-을 발견하는 곳, 자기의 과제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곳,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언제 필요한지를 깨닫는 곳, 인생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가치와 신념을 탐구하는 곳, 이런 곳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내가 볼 때 그런 것들이 지식 위주의 교육과정보다 더욱 매력적인 교과과정이라고 생각한다.[91, 92]

나는 최근에 알게 된 수피(Sufi, 무슬림교의 범신론적 신비주의-옮긴이)의 가르침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그 가르침은 이렇다.

당신은 하나를 이해하기 때문에 둘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둘은 하나 ‘그리고’ 하나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그리고’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다.[120]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21가지 경우의 실패한 문명을 검토한 끝에 그 패망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중앙집중화된 소유권’과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부적응’이 그 문명의 붕괴를 가져왔다.”[130]

(프랑스에서) 정규 직장은 대부분 54세에서 끝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후 30년간의 은퇴 생활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개인 연금이든 국가 연금이든 그 어느 것도 이런 긴 세월 동안 안락한 생활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이제 엄연한(어쩌면 좋은 것일지도 모르는) 진실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정규 직장에서의 생활이 끝난 뒤에도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정규 직장의 연속이 아니라 이런 일, 저런 일을 그러모아 만든 ‘포트폴리오’ 일이 될 것이다. 일은 우리를 건강하고 유익한 사람으로 만들고 또 우리의 은퇴 생활을 지원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후손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어쩌면, 장래의 어느 시점에 은퇴라는 말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194]

“참 이상한 일입니다.” 싱가포르의 한 젊은 중국계 은행가가 내게 말했다.
“내 수입은 나의 아버지가 벌어들인 것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많습니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정원 딸리 단독주택, 가정부, 그리고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정원 딸린 주택은 아주 희귀하고 또 무척 비쌉니다. 나는 가정부 없이 5층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차도 없어요. 차를 사려면 그 가격에 맞먹는 허가증을 먼저 취득해야 하니까요. 나의 아버지는 매일 저녁 여섯 시면 퇴근해서 집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거의 매일 아홉 시나 되어야 퇴근합니다. 나와 내 아버지 중 누가 더 부자인지 잘 모르겠어요.”

바로 그것이 성공적인 자본주의의 또 다른 문제이다. 동일한 장소에 머무르려면 전보다 두 배나 더 빨리 헤엄쳐야 하는 것이다. 부모 세대는 아버지 한 사람의 수입으로도 잘살았는데, 오늘날의 부부는 아버지 대(代)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잘살려면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대적으로’라는 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부모들이 살았던 바로 그 생활 조건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느긋하고 천천히 돌아가는 세계에 대한 향수가 비록 강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를 할 뿐 우리의 과거나 부모와 비교하지는 않는다. 풍요의 강(江)은 우리를 그 위에 태우고 아주 빠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우리가 둑을 쳐다보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만 바라본다면 우리가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210, 211]

통계적으로 볼 때, 미국은 나이지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제일 불공평한 나라 2위를 차지한다. 미국은 경제가 발전할수록 빈부격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는 이론의 구체적 사례이다. 육체적 완력보다는 지식과 기술을 더 쳐주는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225]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미국에서 그런대로 통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엄청난 규모의 부를 창출했고 지금도 계속 창출하고 있다. 그중에서 비교적 잘 안 돌아가는 것은 분배의 문제 정도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늘 평등보다는 자유를 강조했고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지 결과의 평등은 아니라고 믿었다.[233]

글로벌 자본주의는 많은 사람을 전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부가 행복을 가져온다고 믿는 사람은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다. 전세계를 상대로 한 일련의 조사 연구에 따르면 1인당 연간 국민소득 1만 달러가 효용체감의 시작점이라고 한다. 그 수준 이하(대략 오늘날의 그리스와 포르트갈)에서는 더 많은 돈이 더 많은 기본적 생활 편의를 보장하고 또 만족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 수준을 넘어서면 몇 달러 더 벌었다고 해서 우리를 더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제 극심한 경쟁 사회로 들어서서 우리의 이웃과 자꾸 비교하게 되고, 우리의 과거보다는 미래를 더 신경 쓰기 때문이다.[251]

자본주의가 잘 돌아가고 또 제 발등을 찍지 않으려면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자본주의를 운영해야 한다. 우리의 우려 사항은 이런 것이다. 자본주의의 혜택이 전세계 중산층에만 집중되어 21세기 말의 100억 인구 중 20억 정도만이 그 혜택을 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나머지 80억에게는 용돈 혹은 송금만 보내주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진정한 돈을 벌어들일 기회를 주어야 한다.[254, 255]

경영학의 귀재인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놓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쟁하지 말라. 일을 남들과 다르게 처리하고 승리의 개념을 재규정하라. 적어도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그렇게 할 가능성을 준다.[255]

부의 창출을 무작정 극대화하면 왜 우리가 그런 부를 원하는지 그 이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반면 이데올로기에만 너무 집착하면 수단을 소홀히 하게 된다. 공산주의는 원대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모두를 위한 더 좋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참여시키자”).

하지만 그들은 그런 목적을 수행하는 효과적인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부를 창출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목적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그래서 그 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또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잘 모르는 것이다. 만약 이런 현상이 심화된다면 바로 그때가 자본주의의 몰락 시점이 되는 것이다.[257]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창조하고 싶은 것에 대한 꿈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부자가 되고 싶다.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 등의 막연한 꿈이라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는 희망에 가깝다. 열정은 막연한 희망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267]

자신의 열정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조언하고 있다.
“실험을 해보라. 마음에 드는 것은 뭐든지 해보라.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열정으로 성숙하게 될 때까지 그것을 당신 인생의 중심으로 여기지 말라. 그것은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270]

작가는 과거의 아이디어를 여전히 다루지만 새로운 현실에 비추어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통찰, 새로운 관점, 새로운 경험을 나눠줄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271]

‘남보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남들과 다르게 하라’
이 화두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새로운 통찰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사물을 새롭게 보기 위해 혹은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때때로 낯선 세계를 거닐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우리 자신에게 그것을 강요해야 한다.[273]

독립적인 벼룩은 기댈 곳이 자기 자신밖에 없다. 돈 버는 일의 미래를 확보하려면 공부하는 일이 본질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내 경우, 공부의 핵심은 나의 글쓰기이다. 소설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작가들은 실제 글쓰는 시간보다 3배나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데 투입한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시골로 내려가 글쓰기에 전념했다.[293]

포트폴리오 일은 그것이 일종의 윤작이라는 데에 매력이 있다. 공부하는 일도 쉬는 시간이 충분해야 비로소 윤택해진다. 너무 많이 너무 빨리 쓰면 그 다음날은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어느 날 저녁에 어떤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그 다음 날 그 책을 다시 읽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날은 글을 읽거나 쓰고, 어떤 날은 앉아서 생각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앉아만 있다. 바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활을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렵다.[294]

“정말 중요한 점은 이거야. 돈을 버느라고 많은 시간을 투입하게 되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할 시간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거야.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내 경우엔 글쓰기이고 아내의 경우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지. 우린 논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아. 우리가 충분한 돈의 액수를 낮추면 낮출수록 다른 일을 할 자유는 그만큼 더 많아지는 거야. 돈을 너무 강조하면 돈은 너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돈 버는 일에 꽁꽁 묵어둘 수 있어.”[302]

나를 하나의 브랜드로 보다니 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이 맞았다. 포트폴리오 인생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될 수는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특별한 광고나 홍보도 하지 않고서 복잡한 시장에서 우뚝 솟으려면 자기 나름대로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프리랜서의 생명은 명성, 명성, 명성인 것이다.[305]

권력을 내주고 영향력을 받아온 사람이 가장 기쁘게 생각하는 순간은, 자신이 세상에 유포시킨 아이디어가 생전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에 의해서 채택되고 또 사용된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이다.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반신 주소도 없이 날아온 편지(그래서 답장을 쓸 수 없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짤막했다. “당신의 책들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 책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고 내 생활을 바꾸어 놓았습니다.”[311]

엄연한 사실은 이런 것이다. 자신의 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은 칭찬과 함께 부상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프리랜서(프리랜스 freelance 는 원래 용병을 뜻하는 전쟁 용어이다) 생활은 노출된 생활이다. 그것은 자기 신념을 필요로 한다. 비평 혹은 혹평의 형태로 다가오는 피드백으로부터라도 배우려는 의욕이 있어야 한다. 고객의 필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능력은 동시에 혹평에 상처받기 쉽다. 그리고 그런 상처는 좀처럼 쉽게 잘 아물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라 붙는다.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포트폴리오 일에서 오는 자유는 그런 대가를 지불하고도 남는 바가 있다.[313]

이제 포트폴리오 생활에서는 은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포트폴리오 생활자에게는 일을 그만두는 정해진 시기가 없고 단지 포트폴리오 일의 재편성(가령 돈 버는 일을 적게 하고 나머지 일들을 많이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315]

“우리 부부는 공유된 결혼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내가 승진을 하고 아이가 둘 태어나면서 전통적 결혼 패턴으로 바뀌었어요. 아내는 자기 직장을 포기했지요. 아이들이 다 크자 아내는 다시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당신이 말하는 그 경쟁적 결혼 패턴으로 가게 된 거지요. 하지만 곧 격리된 패턴으로 추락하여 지난 해 우리는 결국 이혼을 했습니다.” 부부들은 실제로 그런 패턴들을 옮겨다닌다.[326]

우리 사회는 과연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여러 가지 징조들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지난 1981년에 내가 내렸던 낙관적인 사회 전망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사회가 부유해질수록 더욱 조용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조용해지기는커녕 오늘의 사회는 더욱 소란스러워 보인다. 나는 사람들이 부유해지면 더 자상하고 더 관용적이 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이 많을수록 더욱 경쟁적이 되고 또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려고 더 애를 썼다. 또 어떤 사람은 일이 너무 많아 여가가 없고, 어떤 사람은 여가만 많고 일은 하지 않는 극심한 편차가 점차적으로 평준화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우리의 부모는 평생 10만 시간 정도를 일했는데, 우리의 아이들은 늘어난 생산성 대문에 그 절반 정도만 일해도 될 것으로 예측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순진한 판단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은 여가보다는 더 많은 돈을 원했고 필요하다면 10만 시간이라도 일하겠다는 기세였다.[355, 356]

 “철학자들은 오직 세상을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칼 마르크스(Karl Marx)의 묘비명>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의욕만 갖고 있다면 세상은 변화하는 것이다.[364]

중국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행복은 할 일이 있는 것, 바라볼 희망이 있는 것, 사랑할 사람이 있는 것, 이 세 가지이다.”
나는 그 행복을 계획하고 있다.[365]


첫째, 핸디의 글은 읽기가 쉽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로렌스 페린은 읽기 쉬운 글을 쓰는 요체로 정직, 용기, 겸손의 3덕목을 들면서 그중에서도 특히 정직을 강조했는데, 자신의 병역 기피나 권력에 쉽게 굴복하려는 경향 등을 숨김없이 고백하고 있는 핸디의 글에는 결벽에 가까운 정직함이 깃들어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의 글은 읽기가 쉬운 것이다. 감출 것이 없으니까 글을 복잡하게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367]

둘째, 핸디의 글은 재미가 있다.

그것은 핸디 자신이 책을 쓰는 데 있어서 남보다 더 좋은 책을 쓰기보다는 남들과 다른 책을 쓰겠다는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남들이 다 써먹은 그런 얘기는 쓰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집필 철학이다. 그리하여 그의 책은 구체적, 현실적, 실용적인 에피소드를 위주로 하여 전개되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367]

셋째, 핸디의 글은 유익하다.

앞의 두 가지 특징은 핸디 문장의 스타일을 말한 것이지만, 이 세 번째 매력은 책의 내용과 관련된다.[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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