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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2일 12시 0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역사란 무엇인가. / Edward Hallet Carr/ 역자 길현모

지난해 6월에 (그들이 스스로 본 그들) 과제를 하면서 역사에 대한 안경의 빛깔이 살짝 바뀌었다. 기말고사 때문에 의욕껏 하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그런 관심사에서 시작된 것이다.

E. H. Carr의 이력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런던의 머천트 테일러 학교(Merchant Taylors’ School)에서 공부했으며, 캠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진학하여 고전학을 공부한다. 1916년부터 1936년까지 외무부에서 근무를 시작해 1919년 파리 평화 회담에 영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베르사이유 협정 일부의 초안을 작성하는데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20년대에 라이가와 라트비아 공화국의 영국대사관으로 파견되기 전까지 국제연맹과 관련된 영국외무부 지사에서 일했다. 라이가에 있는 동안 카는 러시아 문학과 문화에 관심을 갖고 러시아 생활을 다룬 몇 편의 작품을 썼다.1936년, 에버리스트위쓰(Aberystwyth), 웨일스 대학의 국제 정치학 교수가 되었으며, 국제 관계 이론 분야에 대한 공로로 이름이 알려진다. 그 후 1941년부터 1946년까지 타임지의 부주필 겸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그후, 옥스포드 대학(Balliol college, Oxford)에서 정치학 교수로 근무하다가 캠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Cambridge)의 특별 연구원이 되었다.

♣그의 작품

국제관계에 대한 중요한 논문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14권, 1950~1978)'

도스토예프스키 전기(1931),

칼 마르크스 전기(1934)

미하일 바쿠닌 전기(1937) 등

20년의 위기(The Twenty Years' Crisis) (1939)

♣. 저자에 대한 생각

역사란 그것을 저술하는 이가 어떤 안경을 쓰고 집필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부님이 굳이 길현모 역작을 명기 하신 것도 같은 이유 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저자의 오랜 외국 생활도  통찰을 높여주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 생활을 하면서 칼 마르크스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기회를 가지고 세계관을 넓혀 간 그가 한편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국제 관계에서의 활약이 그 시대를 지나는 그의 역사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여러 권의 책으로 남게 되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등도 저자의 그런 관심에서 출발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저서들이다. 무엇에 어떻게 주목하며 살아야 하는가 나의 해결되지 않은 숙제이기도 하다.

p.7.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 할 때에 우리들의 답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라는 보다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답의 일부를 이루게도 되는 것입니다.

♣역자: 길현모

사부님의 은사이신 길현모 선생은 사부님의 은사이시다. 사부님의 책속에서 만났던 그분의 책을 도서관에서 만났다. 이미 작고하신 세월만큼 누렇게 변한 재질이며, 세로쓰기, 1966년도에 출판된 소 책자였다. 지난번에 난중일기를 서고에서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 책은 욕심이 과해져 어쨌거나 내 책장에 있다. 후일에 꼭 도서관에 다시 돌려주리라 생각만 하고 있다) 문득,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한 문장조차도 진정 나의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역자 역시 그 당시 철옹성 같던 군부 독재를 겪으며, 이 책을 번역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은 길현모 선생에 대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삶의 한 모퉁이를 돌 때마다 그분은 거기 서 있었고,

인생의 갈림길마다 나는 그분에게 갈 길을 물어보곤 했다.

물론 직접 찾아가 물어본 것은 아니다.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요즘의 내가 사부님을 향한 마음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그렇게 물어 보며, 한편 사부님을 빛나게 해 드리지는 못할지언정 누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현재 나의 마음이고, 앞으로의 마음이다.

♣길현모 선생 소개

1923년 평북 희천에서 훗날 제물포고 초대교장이 되는 길영희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서울대 사학과 출신 고 민석홍, 고 양병우, 노명식 전 서울대 교수와 함께 광복 이후 국내 서양사학계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1963년 서강대 교수로 부임한다. 군부독재를 비판해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한 차례씩 해직의 아픔을 겪었지만 꼿꼿함을 꺾지 않았다. 1983년 한림대 교수로 복직한 이후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66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한 것으로도 유명한 고인은 실증사학의 대명사인 랑케 사학을 비판하는 논문과 자본주의 이행논쟁 등에 대한 논문을 남겼다. 길현모 교수는 광복 이후 국내 서양사학계의 초석을 놓은 학자로 평가된다.

1923년 평북 희천에서 훗날 제물포고 초대교장이 되는 길영희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서울대 사학과 출신 고 민석홍, 고 양병우, 노명식 전 서울대 교수와 함께 광복 이후 국내 서양사학계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1963년 서강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전해종(동양사), 고 이기백(한국사), 이보형·차하순(서양사) 교수와 함께 역사학계에서 ‘서강학파’의 전성시대를 연 주역이었다. (신제 박사와 구제 박사의 변화기에 서울대에서 서강대로 옮긴 주역)

군부독재를 비판해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한 차례씩 해직의 아픔을 겪었지만 꼿꼿함을 꺾지 않았다. 1983년 한림대 교수로 복직한 이후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66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한 것으로도 유명한 고인은 실증사학의 대명사인 랑케 사학을 비판하는 논문과 자본주의 이행논쟁 등에 대한 논문을 남겼다. 길현모 교수는 광복 이후 국내 서양사학계의 초석을 놓은 학자로 평가된다.

2. 마음에 남는 구절

p.7.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 할 때에 우리들의 답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라는 보다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답의 일부를 이루게도 되는 것입니다. -중략- 19세기는 사실을 존중한 대단한 시대였습니다.

p.8. 주문이라는 것은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것 역시 자력으로 생각한다는 거추장스러운 부담을 덮어주는 성질을 내포한 말이었습니다.

p.9. 액튼의 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죠지 클라크 경조차도 역사에 있어서의「사실이라는 굳은 핵」과 「이를 감싸고 있는 이론의 여지가 많은 해석이라는 과육」과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만 아마도 그는 과실의 알맹이는 딱딱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육의 부분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먼저 사실을 틀림없이 입수하라, 그리고 나서 해석이라는 유동하는 모래 속으로 위험을 걸고 뛰어들어라 - 이것이 역사에 대한 경험적인 상식학파의 궁극적인 지혜입니다.

p.11. 나는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라는 하우스만의 말을 상기하게 됩니다. 역사가를 정확하다고 해서 칭찬한다는 것은, 잘 말린 목재를 썼다거나 잘 혼합된 콘크리이트를 썼다고 해서 건축가를 칭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그의 일의 필요조건이지 본질적인 기능은 아닌 것입니다.

p.12. 사실이란 역사가들이 그것을 찾아줄 때에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고, 어떠한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그리고 어떠한 순서와 전후 관련 속에서 이야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역사가인 것입니다. -중략- 「사실은 자루와 같은 것이다. 그 속에 무엇인가를 집어넣어 주기 전에는 절대로 설 수 없다.」

p.13. 시이저가 루비콘이라는 작은 강을 건넜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역사가들이 자기들의 이유에 따라 결정한 것이지, 그 전에나 그 후에 수백만의 딴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중략- 역사가란 불가피하게 선택적이게 마련입니다. 역사가의 해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립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굳은 핵을 믿는다는 것은 전후가 전도된 오류입니다.

p.15. 역사적 사실로서는 그 지위는 결국 해석의 문제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이라는 요소는 역사의 모든 사실 속에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p.16. 그것은 우연적 계기에 의해서보다도 오히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어떤 특수한 견해의 감화 밑에서 그런 견해를 밑받침해주는 사실이어야만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입니다.

p.17.「우리들이 책으로 읽는 역사는 사실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결코 사실 그것은 아니고 오히려 인정된 판단의 체계에 불과하다.」

p.25. 사실과 문서 자체만으로서 역사가 이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자체속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귀찮은 문제에 대한 기성답변이 미리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p.26. 19세기란 서구의 인텔리들에게는 자신과 낙관의 분위기에 찬 안쾌한 시기였습니다. 사실들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에 관한 거추장 러운 의문을 제기한다거나 답한다거나 하는 경향도 자연 미약했던 것입니다. 랑케는 자시가 보살피기만 하면 역사의 의미에 대해서 신의 섭리가 보살펴 줄 것이라고 경견하게 믿고 있었고, 부르크하르트도 시니시즘이라는 좀더 근대적인 격조를 가지고서 「우리들은 영원한 지혜를 탐구하는 목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p.27. 영국의 역사가들이 역사철학의 문제에 몰입하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그들이 역사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의미란 논의의 여지가 없는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p.28.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이다」라고 크로체는 언명했습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 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사가가 가치의 재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기록될 만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입니다.

p.29. 콜링우드의 관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역사철학이 취급하는 것은 ?사실 그 자체?나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상?의 그 어느 하나만이 아니고 ?상호관계 하에있는 그 양자입니다.?

p.30. 「역사는 역사가의 경험이다. 그것은 역사가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고 역사를 쓴다는 것만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중략-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복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인 것입니다.

p.31. 우리들이 역사 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속에서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 라는 문제보다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인 것

입니다.

p.32. 만일 콜링우드의 말과 같이 역사가는 자기 극중 인물의 마음의 움직임을 사상 속에 재연해야만 한다면 다음 차례로서는 독자가 역사가의 마음의 움직임을 재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독서에 대한 지혜도 얻을 수 있다. 사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하등 심원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런 일쯤은 대학생들도 일상 실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만일 어떤 머리 좋은 학생이 성쥬드(St. Jude) 대학의 대학자 죤스(Jones)의 책을 읽어보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에 그는 성쥬드 대학의 친구를 만나서, 죤스 신부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가 항상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라고 물어볼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역사책을 읽을 때에는 항상 역사가의 머리속에서 오고가는 사색의 음을 잡아내야 합니다. 만일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다면 여러분이 음치이거나, 역사가 쪽이 둔재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p.33.여러분이 역사책을 읽을 때에는 항상 역사가의 머릿속에서 오고가는 사색의 음을 잡아내야 합니다. 만일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다면 여러분이 음치이거나 역사가 쪽이 둔재이거나 둘중의 하나의 일일 것입니다. -중략- 역사가는 자기가 취급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p.34.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들은 비로소 과거를 볼 수도 있고 과거에 대한 이해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p.36.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써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p.37. 콜링우드는? 가위와 풀의 역사?에 반대하고 또한 역사를 단지 사실의 편찬이라고 보는 견해에 반대한 나머지 역사를 인간이 머릿속에서 짜내는 것으로 본다는 위험성에 접근하고 말았습니다.

p.40. 가끔 나에게 역사가들이 역사를 서술할 때에 어떻게 진행시켜 나가는가를 물어봅니다. 내 경우에는 우선 기본 史料라고 생각되는 것을 조금만 읽기 시작하면 근질증을 참을 수 없어서 그대로 쓰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부분이 처음 부분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어디거나 상관없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동시에 병행되어 나갑니다. 한편으로는 읽어가며 한편으로는 써 붙이고, 깎아내고 다시 쓰고, 지워버리고 하는 것입니다. 읽는 것은 씀으로 해서 인도되고 방향이 제시되고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즉, 쓰면 쓸수록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알게 되고, 내가 찾아낸 것의 의미와 관련성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p.41.즉 쓰면 쓸수록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알게 되고 내가 찾아낸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알게 되고, 내가 찾아낸 것의 의미와 관련성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역사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경제학자들이 인풋트와 아우트풋트라고 부르는 이 두 개의 과정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단일 과정의 두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p.42. 역사가는 사실의 천한 노예도 아니요, 억압적인 주인도 아닙니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과는 평등의 관계에 있는 것이며, 말하자면 기브 앤드 테이크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중략- 역사가란 자기의 해석에 맞추어서 사실을 형성하고, 자기의 사실에 맞추어서 해석을 형성하고 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자 중의 어느 한 쪽만을 우위에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p.43. 사실을 못가진 역사가는 뿌리를 박지 못한 무능한 존재입니다. -중략-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가 아울러 내포되는 것입니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p.47. 단순한 사회는 복잡하고 발달한 사회보다도 획일적입니다. 그 의미는 그러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다양한 기능이나 직업의 다양성을 요구하거나 그러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일이 훨씬 적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개별화의 증대라는 것은 발달된 근대사회의 불가피한 산물이며 이와 같은 경향은 사회활동 전체를 위에서 밑바닥까지 물들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략-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가 필요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p.48. 개인숭배라는 것은 르네상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때까지는 「민족, 민중, 당파, 가족, 단체 등의 일원으로서의 자각밖에 없었던」인간이 이 때에 와서 마침내는「정신적인 개인이 되고 그러한 존재로서의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p.49. 그때까지는 ?민족, 민중, 당파, 가족, 단체 등의 일원으로서의 자각밖에 없었던 ?인간이 이때에 와서 마침내는 ?정신적인 개인이 디고, 그러한 존재로서의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략- 근대 세계의 발전에 수반되었던 개인화의 증대라는 것도 전진하는 문명의 통상적인 한 과정에 불과했었다는 점입니다.

p.50. 그것은 개인 그 자체와 사회 그 자체와의 투쟁이 아니라 사회속에 있는 개인집단 상호간의 투쟁인 것이며, 각 집단은 자기편에 유리한 사회정책을 추진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사회정책을 저지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p.51. 지금 나는 방정식의 양쪽에 있는 개인과 사회적 요소와의 비중을 물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역사가는 어느 정도까지가 단독의 개인이고 어느 정도까지가 자신의 사회 및 시대의 산물이겠습니까.

p.52. 역사가도 하나의 개인입니다. 딴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하나의 사회현상이며,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사회의 대변인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격하에서 역사가는 역사적 과거의 제 사실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역사과정은 「행진하는 행렬」과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는 대단히 훌륭한 것입니다. 물론 역사가들이 홀로 솟은 암벽 위에서 아래 경치를 내려다보는 독수리나 사열대에 선 중요인물과 같은 위치에 자신을 놓고 생각한다는 위험성이 없는 한에 있어서 말입니다. 이것은 당치도 않은 이야깁니다. 역사가도 행렬의 한구석에 끼어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보잘것없는 인물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행렬이 굴곡하여 혹은 우로 돌고 혹은 좌로 돌고 때로는 거꾸로 되돌아오고 함에 따라 행렬 각 부분간의 상대적인 위치도 항상 변해가게 마련입니다. (중략) 행렬 - 그와 더불어 역사가도 - 이 움직여 나감에 따라서 새로운 전망과 새로운 시각은 부단히 나타나게 됩니다. 역사가는 역사의 일부분입니다. 그가 처해 있는 행렬의 지점에 따라 과거에 대한 자신의 시각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p.54. 위대한 역사란 분명히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비전이 현재의 제문제에 대한 통찰에 의하여 빛을 받을 때에만 씌어지는 것입니다.

p.58. 지금의 나의 목적은 두 개의 중요한 진실을 밝히는 데에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첫째로는 역사가가 문제에 접근하는 입장부터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 입장 자체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p.59. 첫째로는 역사가가 문제에 접근하는 입장부터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는것이고, 둘째로는 그 입장 자체는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략- 격동기의 역사가들 중에는 그 저작 속에 하나의 사회와 하나의 사회질서가 반영되지 않고 여러 질서의 계기가 반영되고 있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p.63. 나의 목적은 역사가의 연구가 자기가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인가를 분명히 하자는 데에 있을 뿐입니다. 흐름 속에 잇는 것은 사건만이 아닙니다. 역사가 자신도 역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책을 집어들 때에는 표지에 적혀 있는 저자명을 찾아본다는 것 만으로서는 충분치 못합니다. 출판시일이나 집필시일도 아울러 유의하셔야 합니다. 만일 똑 같은 강물 속에 사람은 두 번 다시는 들어설 수 없다는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두 책을 쓸 수 없다는 말도 똑같은 이치에서 진실일 것입니다.

p.65. 그러나 자기는 어디까지나 한 개인이지 사회현상은 아니다 라고 소리쳐 항의하는 역사가보다는 자기위치를 주도하게 의식하는 역사가일수록 그러한 위치를 초월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또한 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달라짐에 따라서 사회와 관점이 자기들과 어떻게 달라 지는가 라는 차이점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보다 유능하다는 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중략- 한 사회가 어떤 종류의 역사를 쓰고, 어떤 종류의 역사를 쓰지 못하는가 하는 것처럼 그 사회의 성격을 뜻 깊게 암시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p.66. 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달라짐에 따라서 사회와 관점이 자기들과 어떻게 달라지는가 라는 차이점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보다 유능하다는 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입장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란 자기가 그러한 조건 속에 얼마나 깊이 사로 잡혀 있는가를 자각할 수 있는 감수성 여하에 달렸다고 봅니다. -중략-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서 우선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십시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러한 이중의 시점 하에서 역사를 보는 눈을 길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중략- 인물 개개인에게서 촉발된 관심처럼 역사를 보는 눈에 오류와 불공평을 초래하는 것은 없다.

p.67. 역사에 있어서의 창조력을 개인적인 천재에게 돌리고 싶어하는 욕망은 역사적 의식의 원시적 단계의 특징입니다.

p.70. 인간을 개인으로 보는 견해가 인간을 집단의 일원으로 보는 견해보다 덜 잘못되었다던가, 많이 잘못 되었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고 있는 것은 이미 양자를 명확히 구분하려는 태도에 있는 것입니다.

p.74. 역사는 상당한 정도까지 수에 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카알라일은 ?역사란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다?라는 불행한 주장에 대해서 책임져야 할 사람입니다.

p.77. 역사적 사건에는 무엇인가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역사 코스를 잡아 비틀어 놓는 성질이 있다.

p.78. 역사상의 사실은 확실히 여러 개인에 관한 사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이 고립해서 행한 행동에 관한 사실도 아니요, 또한 진실한 것이건 상상적인 것이건 개인들이 자기 행동의 동기였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동기에 관한 사실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 있는 개인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이며 또한 개인행동으로 하여금 왕왕 행위자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의 아니 때로는 반대의 결과까지를 초래하게 하는 사회적인 힘에 관한 사실인 것입니다.

p.79. 사회속에 있는 개인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이며 또한 개인행동으로 하여금 와왕 행위자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의 아니 때로는 반대의 결과까지를 초래하게 하는 사회적인 힘에 관한 사실인 것입니다.

p.82.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시대의 의지를 전해주고,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p.83. 위대한 인물은 항상 현존하는 세력의 대표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존권위에 도전하는 방법을 통하여 그가 그 창조를 돕는 세력의 대표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와 같이 기존 세력에 업혀서 위대하게 된 인물들보다는 크롬웰이나 레닌과 같이 자기를 위대하게 만들어준 세력 그 자체의 형성을 조력한 위인들의 창조력이 보다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자기 시대보다도 너무 앞섰기 때문에 그 위대성이 후대에 가서야 겨우 인정받게 된 위인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사역인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 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중략- 역사가와 그의 사실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상호과정은 나는 그것을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만 추상적인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금일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와의 대화인 것입니다.

p.84.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의 지배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인 것입니다.

p.85. 과학은 사회에 대한 인간지식도 증진시킬 수 잇을 것인가 라는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당시의 일입니다. 그 후로 사회과학의 개념, 그리고 사회과학의 일부인 역사의 개념은 19세기를 통하여 점차로 발전해 나갔고, 자연계의 연구에 적용된 과학의 방법은 인간문제를 연구하는 데에도 적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p.86. 과학은 이미 정적인 것, 무시간적인 것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 과정을 취급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p.90. 우리들은 경험적 자료, 즉「사실」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것의 힘을 빌려서 원리에 대한 증거를 얻고, 다음으로는 이 원리를 토대로 하여 경험적 자료를 선택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중략- 「순환적」이라는 말보다도 「상호적」이라는 말이 보다 적절했을 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다시 동일한 장소에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리와 사실, 이론과 실제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발견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91. 역사가들이 연구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의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p.93. 죠르쥬 소렐(1847~1922)은 40대에 이르러서 사회문제에 관한 저작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기술자로서 일해 온 사람입니다만, 그는 어떤 상황 하에서는 과도한 단순화라는 모험을 무릅쓰고라도 특정한 요소를 분리해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중략- 우리들은 자기의 길을 의식하면서 걸어 나가야만 한다. 우리들은 타당해 보이는 부분적인 가설들을 시험해봐야 하며, 발전적인 수정의 여지가 항상 남아 있도록 잠정적인 근사치를 가지고 만족해야만 한다.

p.94. 즉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로부터 또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을 찾아서 점진적으로 전진하며, 해석을 매개로 하여 사실을 추출하고 다음으로는 추출된 사실을 가지고 해석을 테스트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p.96. 우선 언어를 사용한다는 그 자체부터가 역사가로 하여금 과학자나 마찬가지로 일반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p.97.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중략- 역사가란 언제나 자신의 증거를 시험하기 위해서는 일반화를 이용하는 법입니다.

p.99. 역사는 일반화 위에서만 생장할 수 있습니다. -중략- 놀랍게도 비슷한 사건도 상이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일어나면 전연 틀린 결과를 낳게 된다. 이와 같은 사건의 진행을 각각 따로 연구한 다음에 이를 서로 비교해본다면 이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쉽사리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초월한다는 것을 최대의 덕으로 삼는 역사철학의 이론이 제공하는 열쇠를 가지고서는 결코 이상과 같은 이해에는 도달할 수 없다.

p.100.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가인 이상 사실과 해석과를 분리시킬 수 없듯이 이 양자도 서로 때놓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양자 중의 하나만을 우위에 올려놓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p.102. 결국 내가 할 말은 역사학이 사회학적인 것으로 되면 될 수록, 사회학이 역사적인 것으로 되면 될 수록 쌍방을 위해서 더욱 이롭다는 것뿐입니다. 양자간의 경계선을 넓게 개방하여 상호간의 교류를 크게 펴 놓읍시다. -중략-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한 경우의 사건에서 얻어낸 교훈을 딴 대목의 사건에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일반화를 할 때에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러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화를 거부하고 역사는 특수만을 취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란 논리적으로 봐서 분명히 역사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p.104.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은 아닙니다.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의 빛에 비추어서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양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북돋아 주는데 있습니다.

p.105. 역사가에게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은 아닐지라도 미래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가는 특정된 사건에 대한 예언은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특정된 것이란 단일한 것이고, 거기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p.107.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인간이란 어떤 점으로 보나 가장 복잡한 자연적 존재이고 따라서 인간 행동에 대한 연구는 자연 과학자들이 직면하는 곤란과는 성질을 달리한다는 제 곤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내가 밝혀 놓고 싶은 것은 역사가와 자연과학자들은 그 목적과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뿐입니다.

p.108. 역사가의 모든 관찰 속에는 불가피하게 역사가의 관점이라는 것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역사에는 어디까지나 상대성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칼·만하임의 말에 의하면 경험을 가다듬고 수집하고 정리하는 유별조차도 관찰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 다는 것입니다. 관찰과 정자체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 역시 진리인 것입니다.

p.109. 관찰자와 그 대상과의 사회 과학자와 그 자료와의 역사가와 그 사실과의 상호관계는 연속적인 것이고 부단히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점이야말로 역사와 사회과학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p.114. 그것은 신의 섭리였다 라는 말을 가지고 역사의 모든 문제에 답한다는 것은 연구하는 사람들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우리들은 세속자나 인간세계의 드라마에 대해서 그것을 완전히 처리한 다음이 아니고서는 보다 넓은 사고를 끌어들인 자격이 없는 것이다

p.115. 나는 역사가란 자기 문제를 신의 조화력 같은 것에 의지하지 않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역사란 말하자면 죠카없이 노는 트럼프 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p.116. 역사가들은 자기 책속에 나타나는 개인들의 사생활에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옆길로 비켜 나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따로 할일이 있는 것입니다.

p.118. 우리들의 법정(법률적인 것이건 도덕적인 것이건) 은 살아서 활동하는 위험 인물들을 재판하기 위한 현재의 법정이기 때문에 그 밖의 사람들은 이미 자기 시대의 법정에 출두하여 두 번 다시는 유죄나 무죄의 판결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런 큰 차이를 잊고 그들을 고발한다. (중략) 역사를 쓴다는 구실하에 마치 재판관이나 된 것처럼 역서는 유죄판결을 내리고 저기서는 무죄판결을 내린다는 식으로 법석을 떨면서,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직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p.121. 이미 본 바와 같이 역사적 사실이란 어느 정도까지는 해석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역사적 해석은 언제나 도덕적 판단 - 만일 여러분이 보다 중립적인 어감의 용어를 좋아하면 - 가차판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p.122. 결국은 지는 편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역사에는 재난이 따라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역사시기에는 승리와 더불어 희생이 있는 법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한 쪽의 증대된 행복을 지방의 희생 앞에 놓고 결산할 수 있는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p.128. 추상적인 초역사적인 기준을 세워놓고서 그것에 의하여 역사적 행동을 판가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편 모두가 이러한 기준 속에 자기들의 역사조건과 원망에 알맞은 특수한 내용을 담아 넣고 보게 마련인 것입니다.

p.131.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요구를보다 엄격히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p.132. 사학이란 고전보다도 훨씬 어렵고 어떠한 과학에도 못지 않을 만큼 딱딱한 학과라는 점입니다. 하여간 이상의 구제책은 역사가들 자신부터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보다 강한 신념을 가져야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133. 연구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즉 자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과 지배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p.133. 역사가도 그 밖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왜냐’ 라는 의문을 부단히 추궁하는 동물입니다.

p.135.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입니다. 역사가는 내가 첫 번 강연의 마지막 대목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왜냐’라는 물음을 부단히 추궁하는 것이며, 해명의 희망이 있는 한 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역사가 - 아니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위대한 사상가 - 란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혹은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왜냐’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p.137. 역사란 과거의 여러 사건을 원인과 결과라는 정연한 질서 하에 정돈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만은 공인된 학설이었습니다.

p.138. 경제학자 마샬은 언젠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느 한 원인의 작용만을 중시하고 이 원인과 껴묻혀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 밖의 제 원인을 무시해 버린다는 일만은 여하한 일이 있어도 삼가야만 한다.”

p.140. 과학은 ‘다양성을 향하여’ 그리고 ‘통합성과 단일성을 향하여’ 동시적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고, 이 이중적인 그리고 명백히 모순되는 과정이야말로 지식에 대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p.141. 역사가에게는 과거를 이해하겠다는 충동이 있기 때문에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해답을 단순화하고 어떤 해답을 따 해답에 종속시키고, 제사건의 혼돈과 특정된 제원인의 혼돈속에 질서와 통합성을 도입한다는 일을 동시에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중략- 역사가가 원인을 다양화하는 동시에 원인을 단순화해 나가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p.142. 두 개의 매력적인 함정에 대해서 논해야만 하겠습니다. 그 하나는 「역사에 있어서의 필연」이라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헤겔의 간계」라는 표딱지가 붙어있고, 다른 하나는 「역사에 있어서는 우연」이라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는 표딱지가 붙어 있습니다.

p.145. 결정론이란 모든 일에는 하나 혹은 몇 개의 원인이 있고, 원인들 중 하나 혹은 몇 개에 변화가 없는 한 그 일에도 변화가 있을 수 없는 신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결정론이란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행위에 관한 문제입니다. 행동에 원인이 없고, 따라서 행동이 결정지어져 있지 않은 인간이란 지난 강연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사회밖에 존재하는 개인처럼 하나의 추상에 불과합니다.

p.148. 사실은 모든 인간 행동이 그것을 보는 견지에 따라서 자유롭기도 하고 결정되어 있기도 한 것입니다.

p.149.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가 자유의지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의에 의한 행동에는 원인이 없다고 하는 당치도 않은 가설을 거부한다는 것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가피성이라는 문제도 역사가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p.153. 현대사의 두통거리는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모두 남아 있었던 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여지가 기정사실에 의하여 모두 끝나버렸다고 보는 역사가들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곤란하다고 여긴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감정적이고 비역사적인 반동입니다.

p.155. 그것은 우리가 다루는 인과연쇄가 자신의 견해로서는 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딴 인과연쇄에 의해서 언제든지 단절될 수도 있고 빗나갈 수도 있는 것이라면 역사에 있어서의 원인과 결과의 일관된 연속성은 어떻게 발견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그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겠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p.158. 역사적 사건이 융성과정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라 퇴락과정을 거듭하고 있는 집단이나 국민에게 있어서는 역사의 기회나 우연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이 우세한 법입니다. 시험의 결과란 결국 제비 뽑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 라는 생각은 열등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p.159.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은 기막힌 비유를 들어서 우연이 상쇄되고 말소된다는 이론을 재강조 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전 과정이란 역사법칙이 우연을 통해서 굴절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용어를 빌린다면 역사법칙은 우연의 자연도태를 통해서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p.160. 어떤 일을 운이 나빴다고 기술해버리는 것은 그 원인을 캐낸다는 귀찮은 의무를 면하려고 할 때 즐겨 쓰는 방법입니다.

p.161. 제대로 된 역사가라면, 지금까지 우연사로서 취급되어 오던 사건도 그것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는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도 있고 적절한 의의를 부여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는 경우를 흔히 체험하는 것입니다. -중략-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의 구분은 엄격한 것도 아니요, 불변한 것도 아닙니다. 즉, 어떤 사실이건 일단 그 적합성과 중요성이 인정되기만 하면 역사적 사실의 지위로 승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역사가들이 원인을 취급하는 마당에 있어서도 다분히 유사한 절차가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가의 원인에 대한 관계는 역사가의 사실에 대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상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원인은 역사 과정에 대한 그의 해석을 결정하는 동시에 그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정리를 결정합니다. 제원인의 상하관계, 하나 혹은 한 묶음의 원인이 그 밖의 원인에 대해서 지니는 상대적 의의, 이러한 것이 역사가의 해석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라는 문제를 푸는 단서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p.162. 제 원인의 상하관계, 하나 혹은 한 묶음의 원인이 그 밖의 원인에 대해서 지니는 상대적 의의, 이러한 것이 역사가의 해석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라는 문제를 푸는 단서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p.163. 인간정신은 관찰된 사실을 모아놓은 잡물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져서 그 중에서 「부적절한」것은 버리고 「적절한」것만을 골라내 가지고 이어붙이고 모양을 만들어서, 마침내는 지식이라고 하는 논리적이고도 합리적인 바느질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p.165. 역사란 역사적 의의라는 견지 하에서 선택과정인 것입니다. 역사는 현실에 대한 인식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인과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략- 역사적 의의에 대한 규준이 되는 것은 자신의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의 원형 속에 인과 연쇄를 맞추어 넣는 역사가의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p.168. 역사에 있어서 인과의 문제를 다루어 나가는데 열쇠의 역할을 다해주는 것은 틀림없이 목적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 목적개념은 불가피하게 가치판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전번 강연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역사에 있어서의 해석은 언제나 가치판단과 떼놓을 수 없는 것이고 인과관계는 해석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p.170. 역사는 전총의 계승과 더불어 시작되며, 전통이란 과거의 관습과 교훈을 미래에 전달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한 것도 미래 세대의 복지를 위해서였습니다. -중략- 훌륭한 역사가들 역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건 말건,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역사가는 ‘왜냐’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라고 묻는 법입니다.

p.178.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는 다윈의 혁명이 일어나 가지고서야 이러한 모든 난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결국 자연도 역사와 마찬가지로 진보한다는 결과가 나온 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보의 근원인 생물학적 유전과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의 근원인 사회적 획득과를 혼동함으로써 보다 중대한 오해를 터놓게 된 것입니다.

역사는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에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p.181. 변화만 빨랐고 진보는 늦었던 과거 4백년간에 걸쳐서, 자유가 보존되고 지켜지고 넓혀지고 마침내는 이해되기에 이르렀던 것은 폭력과 끊임없는 악의 지배에 항거하기 위하여 하는 수없이 취해졌던 약자들의 집단적 노력에 의한 것이다.

p.183. 사실 내가 만일 역사의 법칙이란 것을 만들어 내겠다고 애써 본다면, 어떤 시기에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집단 - 계급, 국가, 대륙, 문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만 - 은 다음 시기에는 같은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취지의 것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집단에는 전시기의 전통과 이해와 이데올로기가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다음 시기의 요구 조건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당연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집단에게는 몰락의 시대로 보이는 것이 딴 집단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전진의 시작이라고 보인다는 일이 극히 흔하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보란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p.184. 인간은 조상들의 경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란 자연계에 있어서의 진화와는 달리 습득된 자산을 토대로 한다는 것, 이것은 역사의 한 전제입니다.

p.185.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진화는 기술의 발달에 비해서 결정적으로 뒤늦어지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요. -중략- 역사에는 전환점이 있습니다. 지도적 역할이나 주도권이 그럴 때마다 한 집단이나 지역으로부터 타집단, 타 지역으로 넘어갔습니다. 근대 국가가 일어나고 중심세력이 지중해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던 시기나 프랑스혁명의 시기 등은 근대에 있어서의 그 현저한 예였습니다.

[187] 진보라는 것은 추상적인 말입니다.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 목적은 역사진행의 과정 속에서 그때그때마다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의 외부에 어떤 출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략- 문명사회라는 것은 모두가 미래 세대를 위한 희생을 현존 세대에게 강조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희생을 미래의 보다 나은 세계라는 명목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이를 신의라는 명목 하에 합리화하는 태도와 대조되는 세속적인 합리화라고 하겠습니다. 뷰리의 말에 「후세를 위한 의무라는 원리는 진보의 관념의 직접적인 소산이다.」

p.188. 사회과학 - 역사를 포함한 - 은 주체와 객관을 따로 떼어놓고 관찰자와 관찰 대상고의 사이에 엄격한 분리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지식이론과는 조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양자간의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의 복잡한 과정을 정당하게 다루어 나갈 새로운 모델이 필요합니다. 역사 사실은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가가 인정하는 의의 여하에 의해서만 역사상의 사실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있어서의 객관성 - 만일 우리들이 이 편의적인 말을 계속 사용하기로 한다면 - 이란 사실의 객관성일 수는 없는 것이고, 단지 관계의 객관성, 즉 사실과 해석과의 사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의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에 불과한 것입니다.

p.190. 역사가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절대자는 변화이다.

p.193.우리가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할 때에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그것은 역사가가 자신의 사회적·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략) 즉 말하자면 완전한 객관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에 달린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 역사가는 자신의 비전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그 안목이 전적으로 목전의 자기 위치에만 국한되어 있는 역사가들보다는 과거에 대한 더욱 깊고 더욱 영속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194.나는 지난 강연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오히려 역사는 과거의 제사건과 점차적으로 우리들 앞에 출현하게 될 미래의 제 목적과의 대화라고 말씀드려야 했을 것입니다.

p.195. 역사 서술을 진보하는 과학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발전해 나가는 제사건의 진전에 대해서 부단히 넓혀지고 깊어지는 통찰을 마련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거에 대한 건설적인 견지」를 가져야 한다는 말에 대한 나의 해석인 것입니다.

p.196. 과거 200년간에 걸쳐서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역사가 일정한 방향을 따라서 진행된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방향이 전체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는 것, 즉 인류는 나쁜 상태로부터 좋은 상태로, 저급한 상태로부터 고등한 상태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p.204.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1920년대의 역사가가 1880년대의 역사가보다도 객관적 판단에 가깝다는 것, 오늘날의 역사가가 1920년대의 역사가보다도 더 가깝다는 것, 아마도 기원 2000년의 역사가는 더욱더 객관적 판단에 접근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역사에 있어서의 객관성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목전에 놓인 어떠한 고정 불변의 판단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놓여있는, 그리고 역사 코스의 진전과 더불어 발전하는 그러한 기준에만 의존하고 생존할 수 있다는 나의 주장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것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에만 의미와 객관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p.206.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과정을 가장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객관적인 역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과 가치에 관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단서는 보통 우리들이 「진리」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의 양쪽에 걸쳐 있는 말로서 양쪽의 요소에 의하여 성립되고 있습니다.

p.207. 역사적 진리의 영역은 이러한 양극 - 가치를 떠난 사실이라는 북극과, 사실이 되고자 애쓰는 가치 판단이라는 남극 - 의 중간지대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란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의 양자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p.208. 역사는 본질상 변화요, 운동이요 - 만일 여러분이 낡아빠진 말이라고 탓하시지 않는다면 - 진보입니다. 이리하여 나의 결론은 진보를 가리켜서 「역사 서술의 토대가 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 가설」이라고 말한 액튼의 말에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

p.211.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하여 자기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작용해온 긴 투쟁 과정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근대는 이러한 투쟁을 혁명적으로 넓혀놓은 시기입니다.

p.214. 애담 스미드와 헤겔의 제자인 마르크스는 세계가 합리적인 자연법칙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사고방식 하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중략- 마르크스의 결론적인 견해를 종합해보면 역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삼자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 하에서 일관된 합리적인 전체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즉 그 하나는 객관적인, 주로 경제적인 법칙을 따라서 전개되는 사건의 진전이며, 그 둘은 이에 대응하며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이룩되는 사상의 발전이며, 그 셋은 이에 따른 계급투쟁의 형태하의 실천이라는 것이며, 이것이 혁명의 이론과 실천에 조합과 통합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p.218. 프로이드는 특히 역사가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만, 그것은 두가지 의미에서입니다. 첫째로는 인간행위는 사람들이 그러한 행위의 동기는 이런 것이었다고 주장하건, 믿거나 하는 등기를 가지고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이러한 오랜 환상에 최후의 못을 박은 사람이 프로이드였다는 점입니다. 다름으로 프로이드는 마르크스의 업적을 보완하면서 역사가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을 권했던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과 역사에 있어서의 자신의 위치를 문제나 시기의 신택을 이끌어준 동기들, 그리고 자신의 시각을 결정해준 국가적·사회적 배경을, 과거관을 형성해 주는 미래관을 음미하라는 것입니다.

p.221. 자유방임으로부터 계획에로의, 무의식으로부터 자기 의식에로의, 객관적인 경제법칙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의하여 자기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신념에로의 전환이 이룩된 것입니다.

p.222. 인간세계에 대한 이성의 적용의 전진을, 그리고 자신과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할 인간능력의 증대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만일 필요하다면 낡은 표현을 빌려서 이것을 진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고 봅니다. -중략- 오늘날에 와서는 과학조차도 객관적인 자연법칙을 탐구하고 확립한다는 것보다도 자연을 자기 목적에 이용하고 자기 환경의 변형을 가능케 할 유용한 가설을 짜내는 데에 더욱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이성의 의식적인 활용을 통해서 환경을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을 변조한다는 일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p.224. 이성의 확대라는 이러한 현상은 내가 지난 강연에서 개별화라고 부른 과정 - 문명의 발전에 수반된 개인의 기능과 직업과 기회의 다양화 - 의 한 국면에 불과합니다. -중략- 만일 개별화 과정에 대한 학문적인 실례를 원하신다면 과거 50~60년 동안에 나타난 역사나 과학이나 그 밖의 모든 개개 학문 분야에 있어서의 무한한 분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결과로 얼마나 엄청난 수의 다양한 개별적인 전문화가 초래되었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p.226. 교육은 개인의 능력과 기회를 넓히고 따라서 개별화의 증대를 촉진함에 있어서 불가결한 강력한 수단입니다만 그 반면에 이익집단의 수중에 있어서는 사회의 획일성을 촉진시키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p.233. 내가 말한 20세기 혁명에 있어서의 이성의 확대라는 요인은 역사가에게는 특별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성의 확대란 본질상 이때까지는 역사의 외부에 머물고 있었던 집단과 계급, 국민과 대륙이 역사의 내부에 출현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234.완전한 의미에 있어서 역사에 등장한 민족들, 즉 이미 식민지 통치자나 인류학자들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가들의 대상이 된 민족들, 이러한 민족들로 구성된 전체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조차도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해진 것입니다.

p.239. 액튼의 세대는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즉, 그것은 변화를 역사에 있어서의 발전적 요인으로 본다는 감각과 이성은 변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라는 믿음입니다.

p.243.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실은, 영어사용세계의 인텔리나 정치 사상가들이 이성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보다도, 부단히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주도한 감각이 감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략- 중요한 일은 지금에 와서 이 변화라는 것이 성취, 기회, 진보 등으로서 생각되지 않고 공포의 대상으로서 생각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p.244.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위대한 과학자의 낡은 말귀를 가지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래도 역시 그것은 움직인다.

p.247. E.H.카의 사관이 일견 미온적이고 유동적인 것 같으면서도 그 핵심에 믿을 수 있는 확고한 신념과 낙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이상과 같은 상대성에 냉철한 사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격동하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사안과 달관을 몸소 구현하고 있는 선각자를 목도할 때에 학문에 대한 우리들의 신뢰와 용기는 다시 한번 새로워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역사가의 관점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역사가의 책무를 논하고 있다. 역사는 퇴보할 수도 있다. 정치가들이 어떤 사고를 하느냐에 따라서 필요이상의 아부를 하느라 쓰레게 같은 위인전을 쓰는 작가에 의해서도 충분히 왜곡될만한 소지를 갖고 있는 것이 역사이다. 또한 실제로 역사는 도약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위정자의 행태를 종종 목격해 왔다.

저자는 자신이 역사를 보는 관점을 논하는 그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다.

p.66. 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달라짐에 따라서 사회와 관점이 자기들과 어떻게 달라지는가 라는 차이점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보다 유능하다는 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입장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란 자기가 그러한 조건 속에 얼마나 깊이 사로 잡혀 있는가를 자각할 수 있는 감수성 여하에 달렸다고 봅니다. -중략-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서 우선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십시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러한 이중의 시점 하에서 역사를 보는 눈을 길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중략- 인물 개개인에게서 촉발된 관심처럼 역사를 보는 눈에 오류와 불공평을 초래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역사는 종종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수’에 문제에 직면해 왜곡되고 만다,

p.74. 역사는 상당한 정도까지 수에 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카알라일은 ?역사란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다?라는 불행한 주장에 대해서 책임져야 할 사람입니다.

p.122. 결국은 지는 편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역사에는 재난이 따라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역사시기에는 승리와 더불어 희생이 있는 법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한 쪽의 증대된 행복을 지방의 희생 앞에 놓고 결산할 수 있는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사건의 여러 정황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깊이 천착하여 제대로 쓸 수 있는 역사가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p.135.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입니다. 역사가는 내가 첫 번 강연의 마지막 대목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왜냐’라는 물음을 부단히 추궁하는 것이며, 해명의 희망이 있는 한 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역사가 - 아니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위대한 사상가 - 란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혹은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왜냐’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p.161. 제대로 된 역사가라면, 지금까지 우연사로서 취급되어 오던 사건도 그것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는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도 있고 적절한 의의를 부여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는 경우를 흔히 체험하는 것입니다.

p.163. 인간정신은 관찰된 사실을 모아놓은 잡물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져서 그 중에서 「부적절한」것은 버리고 「적절한」것만을 골라내 가지고 이어붙이고 모양을 만들어서, 마침내는 지식이라고 하는 논리적이고도 합리적인 바느질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p.170. 역사는 전총의 계승과 더불어 시작되며, 전통이란 과거의 관습과 교훈을 미래에 전달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한 것도 미래 세대의 복지를 위해서였습니다. -중략- 훌륭한 역사가들 역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건 말건,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역사가는 ‘왜냐’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라고 묻는 법입니다.

또한 그 짜집기의 주머니에서 왜뿐만 아니라 어디로라고 물을수 있어야 한다고 쓰고 있는 이 대목은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느꼈을 심정 중압감을 말해 주고 있다.

p.190. 역사가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절대자는 변화이다.

변화를 변화로 바로 보는 혜안이 역사가에게 얼마나 큰 덕목인지를 주장하고 있는 이대목은 깊이 공감되었다.

p.208. 역사는 본질상 변화요, 운동이요 - 만일 여러분이 낡아빠진 말이라고 탓하시지 않는다면 - 진보입니다. 이리하여 나의 결론은 진보를 가리켜서 「역사 서술의 토대가 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 가설」이라고 말한 액튼의 말에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

격동하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사안과 달관을 몸소 구현하고 있는 선각자를 목도할 때에 학문에 대한 우리들의 신뢰와 용기는 다시 한 번 새로워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마치는 말.

저자가 운명하기 얼마 전에 <역사는 무엇인가>의 개정판을 위한 수정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만약 저자에 의해 책이 다시 출간되었다면 책의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까?
 변화를 중시하고, 경제학자들의 이론까지도 유념하며 그가 읽어 내려간 역사에 대한 관점이 대폭 수정되었을 것이다. 60년대와 80년대의 세계의 흐름은 여러분야에서 놀랄만한 변화를 가져온 기록이 차곡차곡 쌓였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간 오늘을 저자만큼, 예리하게 또한 따듯하게 살핀 역사가가 기록하고 있기를 바란다.
과거의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고 ‘수’가 우세한 자들의 기록이었다 해도 현재와 내일의 역사는 바로 보존되어  전해 질 것을 희망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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