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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9일 11시 20분 등록
 

북 리뷰 13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마르틴 그레이 저. 김양희 역. 21세기북스. 2009

원제: For Those I Loved . Martin Gray. 2006


***저자에 대하여


 마르틴 그레이는 1922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후 숱한 고초를 겪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유대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그의 노력은 초인적이었다.

아버지가 그에게 해준 말“너는 정말 남자답다”, “살아 남아야한다”는 말은 그의 내면의 힘을 끌어당겨 숱한 어려움들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되었다.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에서 담을 넘어 다니며 식량 밀수로 가족들을 부양했으며 조직적 투쟁을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14살의 어린나이로 어머니와 어림 두 동생을 부양한다. 게토 안팎을 넘나들며 생필품을 사들여 다시 재분배하는 밀수로부터 시작해서 운반책과 경호책 까지 거느리는 사업의 경험을 일찍이 게토에서 쌓았고 폴란드인 친구들을 많이 알고 지냈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면서 결국 어머니와 동생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며 그도 스스로 거기에 합류하여 트레블린카로 간다. 트레블린카 유대인 수용소에서 어머니와 두 동생이 가스실로 가는 것을 보았고, 생과 사의 고비를 무수히 넘나들며 남에 의해 지배받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탈출하고 또 탈출한다. 그 고충은 이루 다 말할수 없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여 먼저 죽어간 사람들의 제단에 바친다.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 그 사람들의 인생을 다시 살아야하는 자기 마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절대절명의 위기들을 극복해나간다.


결국, 트레블린카에서 처음 실려 왔던 그런 가축운반용 기차에 폐기물 옷더미와 함께 숨어있다가 탈출한다.  위기가 다가오는 유대인 공동체에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설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곧이 듣지 않고 믿지 않는다. 고독한 에언자 처럼 배척받고 박해받는다.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며 바르샤바로 되돌아갔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났고 감동의 재회와 부자간의 애틋한 사랑을 나누지만 1943년 바르샤바 게토 대봉기의 와중에 아버지가 처형되는 것을 본다.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그가 보고들은 가족의 역사와 동족의 운명을 전하겠다고 맹세한다. 그 후 파르티잔이 되어서 살육자들에게 대항하다가 소련의 붉은 군대에 입대한다.  소련군 장교가 되어서 그에게 주어진 일이 살육자를 검거하는 비밀경찰의 업무였지만 입장이 다르고 이념이 다른 군대에서의 삶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1947년  결국 군대를 떠낫고 점령구역의 경계를 넘어  미군 점령지로 걸어서 ,또 지하철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뉴욕의 외할머니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다. 한곳에 매어있는 직업을 원하지 않아서 외삼촌이 권하는 직장을 마다하고 스카프와 옷 외판을 시작한다. 그의 특유의 부지런함과 성실성으로 하는 일마다 업적이 두드러지고 발전을해서 결국 골동품에도 손을 대게된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를 오가며 속도와 박리다매로 승부를 건 그는 눈부신 성장을 하여 독일에 도자기 공장까지 운영한다.


이런 모든 사업의 성공과 화려한 생활 뒤에 있는 지워지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로 고통을 받았다. 여자들은 많이 만났지만 대부분 하루 의 만남으로 끝이 났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생명의 손을 가진 디나라는 네델란드 여인이 나타났다. 처음 만나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반했고 결혼한다. 이 두사람의 만남과 아이를 넷 낳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사실은 이 책의 주제이지만  마르틴 그레이에게는 단 11년만 허용된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을 뒷산에서 불어닥친 화재로 산불을 피해가던 디나와 아이들이 모두 죽게된다. 마르틴도 따라 죽구 싶었지만 친구들이 그를 끝내 지켜주었고, 그는 그가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남김으로써 다시 살아났다.


1971년 초판의 인세 모두를 다나 그레이 재단에 기부했다.

2006년의 증보판의 인세는 미국의 자연적 건강, 웰빙, 대체약물을 공부하는 교육자들과 학생들을 위해 쓰여진다.



장면 #1 아버지와의 대화

장면 #2 옷장 뒤의 어머니와 동생들

     #3 트레블렌까

     #4 바르샤바 게토 봉기

     #5 베를린

     #6 뉴욕

     #6 프랑스

     #7 사회 활동들



***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제 1부 생존


21.나는 전쟁에서 태어났다.

나는 전쟁에서 다시 태어났다.

1939년 9월은 내가 진정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난 때이다.


22. 내게는 키가 크고 등이 꼿꼿하며 손이 아주 단단한 아버지가 이세상의 기원인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한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나는 세나토르스카 가에 도착하기전 마지막으로 거치는 공원인 사스키 공원에서 꾸물거리곤 했다. 집에 도착하면 아버지가 문을 열었다. 집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와 함성을 지르는 남동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23. 갑작스레 전쟁이 일어난다. 아버지는 장교복을 입고 있다. 아버지가 내 어깨를 꽉 잡는다. 그 때 나는 내 키가 아버지와 거의 같아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5. “오늘 아침부터 물이 떨어졌어.” 어머니의 말이었다.

그런 후 식량마저 떨어졌다. 우리는 살아야했다. 먹고 마시기 위해 짐승처럼 싸우는 법을 익혀야했다. 거리는 이미 짐승으로 변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34. 아버지는 침착하게 아버지로서 꼭 들려주어야할 중요한 조언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 절대로 잡히지 마라. 하지만 만일 그들에게 잡혔을 때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해라. 탈출하는 것. 네가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겁을 먹었다고 해도 탈출해라. 그들에게 잡혀있으면 기회가 없다. 탈출하고 나면 늘 희망이란 게 있는 법이다. 절대로 기다리지 마라. 첫 번째 기회가 언제나, 예외 없이 최고의 기회다.”


42. 살다보면 주먹으로 벽을 치고 싶은 순간들이 오는데 그때가 바로 그랬다. 왜 우리는 아무 짓도 못했던가? 왜 그들은 그렇게 강했을까? 왜 그들은 주인처럼 군림하고 우리는 노예처럼 순종해야 했던 걸까? 왜 모두가 순순히 받아들였던 걸까?


46. 우리는 돌이었고 물건이었으며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48. 나는 한 남자가 내면에 지니고 있는 힘을 발견하였다. 그가 원한다면 그는 승리할 수 있었다. 그가 원한다면 그는 아무 불평 없이 죽을 수 있었다.


50. 인생이란 장애물 경기다. 처음 장애물을 뛰어 넘었더라도 그 너머에는 더 높은 장애물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더 가깝고 더 어려운 장애물이 또 다가온다. 숨을 돌릴 짬도 없다. 우리는 나쁜 소식들로 의기소침해졌다.


55. “너는 정말 남자답다. 그들에게 잡혀놓고도 도망치다니, 그런데도 내가 있는 곳을 불지 않았다지.” 나는 사는데 애착이 생겼다. 아버지 말을 들으니 힘이 솟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말 한마디로 나를 이렇게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나도 다른사람에게 그런 힘을 줄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낳아 기를 아이들에게?


57. 사람들마다 바르샤바 거리,거리에서 일어났던 대학살을 화제에 올렸다. 유대인 수백명이 죽었으며 숲속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었다.


66. 확성기를 단 트럭이 정기적으로 나타나 유대인 구역인 게토의 경게와 금지령, 예정된 이주 마감일 등을 발표했다. 게토 이주 1차 마감일은 10월 31일, 2차 마감일은 11월 15일 이었다.


77. 별것 아니었지만 내가 자유롭게, 사는 듯이 살기로 결심했으니 다른 사람들의 삶도 조금은 도와주어야 했다. 자기만을 위해 산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78. 아버지는 나와 비슷했다. 살아남고 싶어했고, 싸우고 돕고 싶어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설명해야만 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는 모든 것이 투명해야 했다.


“그런데 너는 그 일을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지? 열다섯 살된 아이가?”


79. 나는 그때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반항했다. 속으로는 괴로웠다.


“난 누가 내 목을 조르게 내버려두지 않을거예요. 아버지, 난 빵을 가져올 거예요. 우리는 그냥 앉아서 굶어죽진 않을 거예요.”

“그들이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라는 걸 너는 알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들 다수를 멸종시키려고 해. 굶겨 죽이고, 죽도록 노동을 시키려고 한다. 그걸 제발 알아라. 마르틴.”


80. “하지만 아버지, 살아남으려면 먼저 우리는 먹어야 해요. 저는 그 일에 신경을 쓰려고 해요.” 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너 용기가 대단하구나.” 아버지가 나를 계단 위로 밀었다.

“그럼, 잘 해봐라, 이 밀수꾼아.”


87. 비가 내렸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공터에 신발도 없이, 가진 걸 모두 빼앗긴 채 앉아서 분노와 모욕감으로 울었다. 살육자들이 설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듯했다. 냄새를 맡고 쫓아오는 악당들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 불량배들은 나를 잊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의 불운을 먹고 번성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이었기에 나는 언제나 졌다.


95. 나는 문제를 정리하고 성공시켜야 했다. 혼자 하던 수공업에서 여럿이 하는 사업으로 바꾸어야 했고,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전환하는 중이었다. 이제는 돈을 주어야하는 직원이 생겼고, 그들을 계속 거느리고 싶으면 그들에게 계속 임금을 주어야 했으니 거래량도 늘려가야했다. 톱니들이 서로 맞물리기 시작했다. 나는 성장해야했고 그러지 못하면 죽을 터였다.


98. 나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가능했다. 한 시간에 열 살을 먹을 수도 있었다. 한 순간만 방심해도 죽음의 신에게 먹히는 시대, 운명이 자기 앞 길에 예비한 나치 친위대원의 변덕에 따라 발에 차여 죽을 수도 있는 시대였다.


100. 나는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게 나의 힘이었다.


107.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바꾸고 이름을 바꾸고 언어까지 바꾸었지만, 국외 거주 독일인이나 불량배 노릇을 할때면 스스로를 관찰하며 언제나 조심해야했다. 그리고 적이 행동을 취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정하기 위해 적들을 지켜보아야 했다.


116. 행운. 행운이 나를 버리고 배신하더니 후회가 됐는지 다시 돌아왔다.


121. 그러다가 조피아를 보자 근육이 풀어진 듯 웃음이 쉽게, 저절로 나왔다. 마치 지친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그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커지는 것 같았고 충분히 쉬고 깨끗해져 새로워지는 듯 했다.


124.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내게 한줄기 안식을 주던 조피아를 그들이 빼앗아 갔다. 그녀의 웃음, 부드러움, 그녀가 내개 보여주었던 모든 것, 늑대같은 잔인함을 벗어버린 진짜 삶을 그들이 내게서 뺏어갔다.


126. 그가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 왼쪽 눈을 쳤다. 머리가 터질 듯했지만 내가 그의 목을 계속 죄고 있자 그는 마침내 무릎을 꿇고 주저앉으면서 총을 떨어뜨리고 내 손을 풀어 내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계속 그의 목을 죄고 있었지만 눈에서 나는 피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다.


127. 나는 앞으로 희미하게는 볼 수 있겠지만 사물을 보는 데는 실질적으로 한쪽 눈밖에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137. 그들이 둥글게 둘러서서 나를 던지며 이사람 저사람이 서로 주고 받았다. 그리고 나를 탁자 위에 눕혀놓고 두 명이 한꺼번에 막대기와 곤봉으로 나를 때렸다. 그리고는 가죽 끈으로 후려치고 사타구니를 찼다. 다음 날 아침 파비아크 감옥에서 나는 피오줌을 쌌다.


138. 그곳에 끌려갈 때마다 나는 무덤 모코토프와 거인 미에테크가 트럭을 습격하기를 바랐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외로움이 실은 가장 마음 아팠다.


142. ‘마르틴 첫 번째 기회를 잡아야 해. 항상 첫 기회를 잡아야한다. 두 번째 기회란 결코 없어.’ 아버지의 말이 기억났다.


144. 1942년 7월 22일 수요일, 살육자들이 말했다. 그들은 매일 유대인 수천 명씩을 ‘동부로 이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바르샤바 게토의 모든 주민을 이주시키려 한다고 했다.


150. 나는 잡혔다. 그러고는 탈출했다. 하루에 두 번이나 탈출한 적도 있었다.

잡히고, 뇌물을 먹이고, 도망가고, 또 잡히고, 하는 일이 매일 계속됐다. 그게 내 생활이었다.


155. 아버지는 무기를 손에 넣고 폴란드 레지스탕스와 접촉하려고 노력중이었다. 하지만 무기는 비쌌고 비밀군대의 지도자들 중에는 유대인을 배척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망설이며 서로 설전만 벌이고 있었다.

나는 유대인 경찰 한명이 손에 도끼를 들고 아파트 문들을 부수고 거주자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모습을 보았다. 다른 경찰들이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을 끌어내는 것도 보았다. 우크라이나인들과 리투아니아인들은 강간과 살인을 일삼았다.


158. 매번 탈출할 때마다 나는 힘을 얻었고 내가 살아남을 것이며, 그 의지가 굳건하다면 운명을 내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167.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해서 내일까지 견디는게 중요했다. 뒤돌아보면 죽는다. 어제를 생각하는 것 , 인간이 인간이었을 때를 생각하는 것 , 조피아를 생각하는 일 혹은 세나토르스카 가를 드로쉬카를 타고 달리던 일을 생각하는건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어머니는 그 병에 걸렸다. 지쳐서 두 손을 무릎에 얹고 두 눈이 텅 빈 채 어머니는 ‘지난 날’을 추억했다.


174. 나는 그들이 모르는 온갖 풍상을 겪은 탓에 늙어버렸다. 아버지가 ‘이주의 광장’으로 끌려갔고 그 길 끝에는 트레블린카가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힘을 주었다. 내 곧 아버지의 뜻이었다.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반쪽이었으므로 우리 중 하나가 살아 있다면 다른 한쪽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살게 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거기 몸을  웅크리고 손가락을 깨물며 견딜 수 없이 비통한 추억을 되씹었다. 마음이 아팠다. 나는 울었다.


179. 화물차는 트레블린카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밤새도록 계속 달려갔다.

거의 150명 정도가 빽빽이 타고 있는 가축용 화물칸에 갇힌 우리는 그 끝없는 폴란드의 여름더위 속에서 옴짝도 못하며 공포에 질린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180. 트레블린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 목소리, 다른 단어들이 필요하다. 단어 하나 하나마다 사라진 수천 명의 삶을 추모해야 하며, 그 삶과 함께 사라진 기쁨과 인생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기려야 한다.


181. 확성기에서는 냉정한 목소리가 “남자는 오른쪽, 여자와 아이들은 왼쪽으로 가시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안녕, 내 식구들. 그들은 이미 무리지어 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회색머리, 리브가의 금발, 동생들의 곱슬머리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식구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며, 더 이상 내가 식구들을 죽음에서 벗어나게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목이 메어왔다. 죽음이 그들을 데려 갈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도 이곳에 왔는지도 몰랐다.


182. 나는 “나아가라, 마르틴, 계속 가라. 미에테크. 그곳에 삶이 있다. 나아가라.”라고 내안에서 말하는 어떤 힘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184. 나는 생명을 스스로 끊지 말고, 비겁하게 죽음을 받아들이지는 말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그건 우리 목숨이 보석처럼 값지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들의 삶까지 짊어지고 있다. 그들은 과거와, 그들의 미래, 그리고 그들이 알던 기쁨과 슬픔을 나에게 물려 주었다.


185. 나는 ‘클렙수드라’, 즉 얼굴을 얻어맞아 상처가 생긴 사람들을 보았다. 그 매질 자국은 죽음의 낙인이었다. 그들은 줄에서 끌려 나가 병원이라 불리던 격리병동으로 옮겨졌다.

나는 왜 고개를 숙이며 걸어야 하는지, 왜 항상 뛰어야 하는지, 더 잘하고, 더 빨리 가야하는지 알았다. 나치 친위대와 우크라이나인들은 우리를 재촉하기 위해서 살인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수는 항상 넘쳐났다. 가축운반용 화물차는 한 번에 스무 칸씩 달고 왔다.


194. 이 이야기를 하려면 나는 아직도 다른 목소리, 다른 단어들이 필요하다.

시체들은 벌거벗겨진 채 서로 얽혀 있었다. 그 시체들은 누런빛을 띠었고 코에서 나온 피가 얼굴에 묻어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시체들을 들것에 싣고 달렸다. 우리는 집게를 든 사람 앞에서 멈추었다. 그는 시체들의 입을 조사하고는 금니를 뽑았다. 그러면 우리는 들것을 들고 달려가 누런 모래땅에 파놓은 무덤 구덩이에 시체를 던졌다.


195. 나는 유대인 시체처리반이 된 것이다. 이곳이 밑바닥이었다. 인생의 밑바닥이었다. 그 살육자들이 인간의 탈을 쓰고 있었기에 인간됨의 밑바닥이기도 했다.

그들이 이 살인공장, 가스실을 만들었다. 그 새로 만든 가스실들은 분사구들,, 흰 타일이 발린 벽, 좁은 입구 등으로 잘 설계돼 있었다. 열려있던 그 커다란 문 안쪽은 바닥이 경사져 있어 시체들이 뒤엉킨 채 문 가까이 미끄러져 내려와 있었다. 그 시체들은 우리 자신의 시체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유대인 시체 처리반이었으며 역시 죽은 목숨이었다. 우리를 감시하는 보초병들 말고는 살아있는 사람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196. 수감자들이 지옥같은 구덩이 바닥에 정렬해 놓았던 그 시체들로 인해 내 복수심은 커져갈 것이다. 시체들이 2중, 3중으로 쌓이면 굴착기가 그 위로 모래를 밀어 부었다. 죽어간 내 민족을 위해 내 삶은 달라져야 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붙잡고 들것에 실어가 던졌던 그 수천구의 시체들을 위해.


그들은 매맞아가며 두려움에 떨며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그림자 인간들이었다.


198. 온기가 남아있는 시체들 가운데서 살아있는 아이들을 발견할 때도 더러 있었다. 어머니의 시체에 달라붙어 있는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어린 아이들. 우리는 구덩이로 던지기 전에 우리 손으로 그 아이들의 목을 졸랐다. 그럼으로써 시간을 낭비했기에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199. 내게 가득한 수치심, 구역질, 아직도 살아잇다는 부끄러움, 그리고 나를 홀리게 했던 살고자 하는 충동, 살아서 내가 본 것, 그들이 한 짓, 그들이 우리에게 강제로 시킨 일들을 표현하려면 나는 다른 목소리, 다른 단어들이 필요하다.


205. 구덩이 안에서 일하던 수감자들 중에서는 미쳐버리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게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내 생명이 끝나가고 있었다. 살육자들은 이미 나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나는 수감자치고는 너무 오래 남아 있었다.


 206. 이 계획은 미친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어차피 미친 세상에 살고 있는 터였다. 성공하든가, 죽든가, 둘중 하나였다.

나는 기다렸다. 매시간 살아있다는 것만이 내가 가진 패였고 뚜렷한 목표가 있다는 사실이 힘을 주었다.


216. “난 가축 운반용 화물차를 타야돼. 처음 짐을 실을 때.”

“이봐, 움직여!” 그가 다른 카포들을 따라가며 나를 하적작업 부대로 떼밀었다.


고맙다, 친구, 고마워, 사람다운 사람이여.

그 계획은 내가 오래, 오래 전에 세워놓았던 것이다. 나는 그저 사람들 속에 섞인 부지런한 개미처럼 눈에 듸지 않은 채 화물칸 구석에 옷 꾸러미들을 쌓았다.


232. “잠브로프로 가려면 어느쪽으로 가야 하나요?”

“죽 바로가면 된다네. 8킬로미터 곧장 가게.”


나는 그들을 외면했다. 분노와 비통함이 목까지 치밀어 올랐다. 재앙이 꼭 눈앞에 닥쳐야 안단 말인가? 그곳을 목격한 사람의 말을 들어본 적이 한번도 없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나간 게 다 허사란 말인가? 나는 좌절감에 울며 석양을 향해 걸었다.


250. 그들 대부분에게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보다 더 큰 공포가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잠브로프, 롬자, 스니아도프, 치제프의 유대인 수용소는 트레블린카 수용소에 무덤이 준비될때까지 기다리는 일종의 경유지였다.


261. 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짐승들도 많이 만났지만 자기들이 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내게 빵을 주고 잠을 재워주고 눈비를 피하게 해준 사람들도 만났다. 그 사람들 덕분에 나는 희망을 계속 간직할 수 있었다.


262. 바르샤바에서 돌아온 농부들이 바르샤바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나치 친위대와 전투가 벌어졌다고 전해주었다. 그게 그들이 아는 전부였다. 그럼, 아버지는 거기 있었던 모양이다.


265. “폴란드 국내군 사람들은 독일군만큼이나 유대인들을 증오해요. 하지만 독일군과 싸우려면 유대인들이 필요하죠.”


267. “가라 미에테크. 가거라. 네 말이 맞다. 네 색깔을 결코 숨겨서는 안된다. 네 정체도.”

우리는 서로 껴안았다. 이틀 후, 나는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274. “1월에 시작됐어. 유대인들은 끓는 물, 끓는 기름, 그리고 돌과 병, 무기들을 가지고 독일군들을 공격했어. 무기가 너무 적었지.”


279. “동지들, 이 엄폐호들은 우리의 심장, 우리의 생명과도 같소. 단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한 것이라는 걸 그들도 알아야하오. 이 엄폐호들이 있으니 일주일동안 버텨서 우리의 목소리가 수세기 동안 전해지도록 하는 일이 우리에게 달렸소.”


우리는 마치 한 몸처럼 팔을 서로에게 두르고 가슴과 가슴을 맞닿은 채 서 있었다. 옛날 세나토르스카 가에서처럼 그의 턱수염이 내 뺨을 간질였다. 나는 그의 짠 눈물을 들이켰고 내 눈물은 내 뺨을 부여잡은 그의 손으로 흘렀다. 왜 그런가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 무덤들은 왜 생겼고 아이들은 왜 죽어갔을까요?

 우리는 서로 교감을 껴안은 채 조용히 교감을 나누며 울었다. 아버지와 함께 온 사람은 내 친척인 율레크 펠트였다. 폴란드 노동자당(PPR)에서 파견된 율레크 펠트가 말을 멈추었다.


281. 아버지는 ‘이주의 광장’에서 노동수용소로 가도록 손을 썼다고 했다.

아버지는 노동수용소를 탈출해서 바르샤바로 돌아왔다고 했다.

“너는 여기에 없더구나. 아무도 없었어. 하지만 마르틴, 네가 포기하지 않으리란건 알았다. 알고말고. 나는 믿음이 있었지.”


“ 마르틴 너는 투쟁해야 한다.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지.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우리 대부분은 죽을거야. 너는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 남아라. 마르틴. 우리 모드를 위해 살아남아.”


282. 우리에겐 돈도, 무기도, 사람도 부족했다. 겁쟁이들의 입을 단속해야 했고, 심약한 사람들을 설득해야했고 배신자들을 처벌해야 했다.


285. 아버지는 자기가 배우고 생각한 모든 것을 내게 전수해주고 싶은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전쟁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사람들이 빈곤과 불평등 같은 악에서 벗어나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 했다.


286. 사람들이 이기심이라는 저주에서 자유로워져서 다fms 사람들과의 관계나 자신의 문제에 관심을 쏟을 그런 사회였다.


생명은 신성하단다. 마르틴, 우리가 지금은 사람을 죽여야 하지만 부디 생명을 기억해라, 마르틴, 생명을. 너는 생명을 탄생시켜야 한다. 아버지가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네가 어딴 결정을 할 때는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 쪽을 선택해라. 살아남아라, 마르틴. 나는 네가 나중에 전쟁이 끝나면, 우리 쪽 사람들이 이기게 되면,  아이들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 후에 그 아이들에게 네자신을 통째로 내주어라. 그 생명들은 신성하단다.”


287. "율레크는 무슨 일이든 끝까지 버텨냈지. 남자란 끝까지 버텨야 하는 법이다, 마르틴.”

달빛이 방을 밝힌 덕분에 나는 아버지의 뺨에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보았다.
“내가 왜 이 말을 네게 하는지 모르겠구나. 너는 이미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데 말이야. 몇 번 이나 버텨냈지. 너는 남자다., 진짜 남자지.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어.”


4월 17일 토요일, 유대인투쟁조직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거리를 달리고 포스터를 붙이고 우리의 슬로건이 적힌 전단을 나누어 주었다. “면예롭게 죽자! 남자는 무기를 들고 여자와 아이들은 은신처로!” 라는 슬로건이었다.


290. 4월 19일 정오경이었다. 나는 그날의 하늘과 태양, 상쾌한 공기, 탱크엔진의 진동음, 길을 깔아뭉개는 소리가 기억난다.


300. 아버지는 고개를 든채 두 손을 이마 높이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다시 회벽에 머리를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죽음의 장면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마주 보아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사랑한 모든 이를 위하여 나중에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아버지는 게토의 돌 사이에 또 하나의 돌이 되어 누워 있었다. 잘 가세요, 아버지. 내 뺨을 간질이던 아버지의 무성한 회색 턱수염 과도, 단호하면서도 부드럽던 아버지의 목소리와도 이제는 헤어져야 하는군요. 내 어깨를 잡던 아버지의 손이여, 안녕, 아버지의 이야기도 안녕, 안녕. 나를 남자로 만들어 주신 아버지, 안녕히 가십시오. 안녕. 아버지.


304. “ 매일 밤 네가 오길 기다렸어.”그가 말했다.“

“그들은 나를 잡지 못했어, 모코토프 .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싸워야 하거든. 내 가족들의 복수를 하고 싶고. 내 민족들의 복수 말이야.”

“알아, 미에테크. 너는 고집쟁이지.”

나는 그의 두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란 좋은 것이었다. 훌륭한 것이었다.


제 2부  복수


309. 5월 16일 모코토프가 폴란드 인민군에 잇는 동료들을 만나게 해주려고 나를 구시가지로 데려갔다.

“우리는 새로운 폴란드를 만들 것이다.” 그 그룹의 지도자인 비톨트가 말했다.


314. “미에테크, 우리는 차별을 하지 않는다네. 모두 폴란드 인이고, 모두 파르티잔들이지. 모두 동지들이라네.”

그레고르 코르친스키는 자기 막사안에 앉아 겁먹은 동물을 달래듯이 천천히 말했다. 그는 400명도 넘는 파르티잔들이 모여 있는 타데우스 코스치우슈코 그룹의 대장이었다.


315. 우리는 복수심으로 똘똘 뭉친 또 하나의 폴란드였다.


321. 며칠 후, 야누시의 시체가 발견됐다. 사지가 잘려 있었고 귀도 잘려나갔다. 다른편 폴란드를 위해 우리 ‘산적’들에 맞서 싸우는 민병들인 NSZ에 희생됐던 것이다. 그들은 독일인들에게서 두당 설탕 4,5 킬로그램 정도를 대가로 받고 유대인을 넘겨 주었다. 그들은 무자비했고 광적이었다.

“NSZ에 잠입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모차르가 말했다.


323. 어느날 밤, 나는 마을을 빠져나와 숲으로 갔다. 파르티잔 동지 한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NSZ 대원들의 명단을 넘겨주었다. NSZ에 충성하는 마을들과 그들을 돕는 농부들도 알려주었다. 나중에는 두 세 번 정도 NSZ가 벌이는 작전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기도 했다.


324. “정탐꾼이 있어. 폴란드 인민군 도당들이 사방에 정탐꾼들을 깔아놓고 있다네. 그들의 귀를 잘라 내버려!”

나는 살아남고 승리하고 싶었지, 그 폴란드의 허름한 농가에서 술 취한 악당들의 칼에 찔려 죽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우리민족에게 빚을 졌으니 승리하고 살아남는 걸로 갚아야했다. 나는 술을 한잔 더 청하는척하고 일어서서 문으로 급히 달려가 몸을 돌리고는 수류탄을 방안으로 던져버리고 숲으로 도망쳤다.


326. 살육자들을 죽인다고 죽은 가족들이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니엇다. 복수란 언제나 쓰디썼다.


329. “ 파르티잔 동지들, 승리가.....”

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앗다. 한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탈출했던 러시아인들은 그들의 군대에 다시 합류할 것이고, 폴란드인들은 가족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터였다. 나는 거기 그냥 서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나도 불려 나왔다. 중위 계급장이 수여됐다.


330. 며칠 후 담요를 돌돌 말아 가슴에 매달고 행진하는 러시아군의 긴 행렬이 우리 눈에 띄었다.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우리는 소비에트 군대와 함께 전진했다. 7월 21일 우리는 헤임에 도착했고 22일에는 루블린에 당도했다.


333. 나는 이름을 또 바꾸었다. 나는 마르틴도, 미에테크도 아닌 미샤였다. 그런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 자신은 언제나 변치 않고 그대로 있었다.


334. 아미 모든일이 끝나면 내게도 아이들이 생길 것이다. 게토에 있을 때 아버지는 남자란 가족을 거느리려고 마음 먹을 때에야 진정한 남자가 된다고 말했다.


335. “자, 우리는 일종의 경찰병력이라네. 자네, NKVD(* 내무 인민 위원회. 소련 비밀경찰)가 뭔지 아나?”

“저는 다른 방법으로 싸우고 싶습니다. 베를린으로 가고 싶습니다.”

“나중에 베를린으로 보내 주겠네. 먼저 우리 뒤에 남은 것들을 깨끗이 청소해야 하네, 여기서 말일세. 어떤가?”


347. 나는 고문 받고 목을 매달렷던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공포를 배워갔다. 나는 그들의 죄를 찾아내려 햇지만 복수라는 행위 역시 하나의 광기임을 어렴풋이 깨닫게 됐다.


351. 우리는 조심해야 해, 유레크. 이제는 우리가 더 강한쪽이기 때문이야. 우리는 두 배 더 인간답게 처신해야 한다고.


354. 게다가 다른 소련군들처럼 그에게도 유대인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취급되지 않는, 한 수 아래로 보이는 민족이었다. 나는 그 점을 알고 있었다. 나는 소련군들이 눈짓을 하며 나누는 농담에서 그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탐욕스러운 유대인들은 모든 것을 이익의 잣대에 맞춰 판단한다는 유의 농담이었다. 


356. 1945년 4월 27일, 금요일,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열아홉살에 나는 베를린에 입성했다. 여기는 폐허가 된 베를린입니다. 역시 형태만 남은 베를린, 뻥 뚫린 안구와 헐벗은 뼈다귀들로 흩어진 죽은 살육자의 도시 베를린입니다.


360. 우리가 벌이고 있는 전쟁은 거의 파르티잔들의 전쟁과 같았다. 나는 몽골 인들과 코사크 기병들, 모피를 쓴 군인들과도 마주쳤다. 병사들과 탱크들를 몰고 다니는 붉은 군대 또한 유럽 전역에서 건너와서 여기 베를린에서 집결한 잡다한 이질적인 집단으로 이루어진 군대였다. 게토에서 온 피난민이며 폴란드의 숲에서 싸우던 나도 여기로 와서 탱크뒤에서 드넓은 운터 덴 린덴을 달리고 있었다.


*Unter den Linden : 브란덴부르크 문으로부터 슈프레 강까지 이어진 가로수길.

1647~1675에 양쪽 길로 보리수가 심어졌으며 1734년 “보리수나무 아래”란 뜻의 운터 덴 린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2차 대전때 파괴되었다가 1950년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363. 그러한 장면들은 이미 오래전에 그곳 게토에서 본 것들과 똑 같았다. 이번에는 승자로서 그 광경을 본다는 게 달랐을 뿐이다.

내 복수는 쓰디 썼다. 내 주위 사람들의 공포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눈길을 내리깐 채 나를 흘끔 거렸고, 물을 조금 얻으려고 줄을 지어 기다리던 사람들은 내가 지나가자 갑자기 말문을 닫고 얼어붙었다.


367. “나는 러시아를 잘 알아. 러시아 사람들도 잘 알지, 미샤.그들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우리를 구해준 게 누군데? 누가 날 구해줬는데?”

그들은 알렉시스 표도로비치 표도로프 장군 휘하의 파르티잔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베를린의 국회의사당에 붉은 깃발을 올렸다.


368. “ 하지만, 미샤, 전쟁은 끝났어. 나는 살고 싶어. 나는 군복이 싫다. 러시아에는 군복들로 가득 차 있어.”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 빚을 지기 싫었고, 게다가 나를 베를린으로 데려와 준 나라와 군대에 갚아야할 빚이 있는 터였다. 빚은 모두 청산해야 했다. 남자란 끝까지 가야하는 법이다. 그러나 모니에크가 자취를 감춘 후 블라데크도 사라져 버렸다.

377. 유레크가 다른 쪽으로 가고 난 후 나는 밤새 어둠 속에서 비를 맞으며 시골 길을 걸어 다녔다. 추위와 쏟아지는 비, 피곤함을 이겨가며 힘들게 걸으니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무덤 속에 있기를 거부하며 한걸음, 한걸음 무덤에서 서서히 기어 나왔다.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씩.

검은 리무진을 타고 왔던 3거두가 운영하는 시스템이 내게 맞지 않는다면 나는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 터였다. 나의 조직, 내 가족, 아내와 아이들이 내 주위에서 피와 사랑으로 결속된 요새 안에서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되는거였다. 나는 그들을 위해 나만의 요새, 나만의 성채를 만들리라.


379. 나믐 불굴의 미에테크, 관행을 따르지 않는 미에테크였다.


382. “ 소련군이 슐츠를 풀어줬어. 석방해 버렸다고. 그들은 그를 이용하려고 까지 하고 있어. 슐츠가 끊임없이 자기가 그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었거든.” 

그는 자기 공장에서 일할 권리를 주거나 거절하는 방법으로 유대인들의 생사를 결정하던 자였다. 슐츠 왕, 바르샤바 게토 노예들의 주인, 굶주린 남녀의 노동력을 이용해 돈을 벌던 자. 나는 실패했다. 죽은 자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오로지 새로운 생명만이 그 죽음이 잊히게 할 것이다. 새로운 다른 생명들.


384. 나는 간다, 전우들이여.나는 간다. 전우들이여. 복수할 시간은 지나갔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고 있다. 그대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

나는 간다, 전우들이여. 우리의 앞길은 서로 다르다. 그대들과 함께 한다면 내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겠는가? 경찰? 군인? 나는 그런 일을 하려고 지금까지 살아 남은 건 아니다.


내게는 선택할 길이 한가지 밖에 없었다. 유레크와 나는 자주 이곳을 떠나는 방법들을 의논하곤 했다. 베를린에 가서 소련군 점령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방 연합국 점령구역에서 내리기만 하면 됐다.


나는 인적 없는 어느 집 마당으로 들어가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 입은 후 지하철의 인파속으로 섞여 들었다. 어렵사리 지하철을 탄 후 미국 점령구역에 있는 첫 번째 역에서 내렸다.


거기서 나의 요새를 건설하는 일은  내게 달린 일이었다.


제 3 부 신세계


387. 나는 다른 세상에 왔는데도 이곳의 장교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는 친절했지만 지쳐 보였고 다소 지루한 듯했다. 내 앞 뒤에는 새로운 조국을 찾아들고 있는 유대인들, 살레지아인들, 헝거리인들, 체코인들, 폴란드인 등 고통 받은 유럽인들이 전부 모여 잇는 것 같았다. 그들은 공포에서 살아남은 자들이었으며 공포에 질려 지치고, 궁핍한 채로 단 하나의 희망인 미국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388. 그들은 나를 과거에 묶어두려 했지만 나는 새로운 세계에서 자유롭게 다시 태어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뉴욕에 제 외할머니가 계십니다. 기족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알려주었던 펠트라는 이름과 뉴욕 어느 구의 이름이 전부였다.

“알아 봅시다. 기다려야 할거요.”

나는 기다리는데 익숙하지 못했다. 기다림이란 내게는 죽음이란 의미였다.

“저는 홀몸이예요. 외할머니는 제가 살아 잇는지 조차 모르신답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실지도 몰라요. 서둘러야 합니다.”


389. “당신에게 5분을 더 주기로 하죠. 더는 안되요.”

5분, 5분이 주어졌다. 어머니. 5분이 주어졌다. 동생들아, 리브가, 모든이들이여. 그대들의 죽음과 나의 고통, 나의 권리를 말하는데 5분이 주어졌다. 나는 장교를 바라보지 않은채 그들을 위해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이생에서 그들의 대변인 역할을 해야 했고 그들을 위해서라도 미국으로 가야했다. 장교는 내 말을 가로막지 않았다. 내가 말을 끝내자 긴 침묵이 흘렀다.


390. 그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장교는 인간다운 인간이었다. 내가 아직도 고삐에 묶인 장님처럼 머뭇거리게 되는 이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만사를 불문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내게 그 장교가 도움의 손길을 준 것이다.


나는 우리 주위의 소모적이고 맹목적이며 무의미한 생활에 결코 익숙해 질 수 없었다. 삶이란 소중한 것이다.


391. 우리들 중에 가장 뛰어났던 사람들, 아버지, 율레크 펠트, 모르데카이 같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들은 성공을 했으며 그 생명을  고귀하게 희생했다. 그들과 같이 되려면 나도 성공해야 했다.


내가 고통을 받았기에 유대인이라는 존재를 내 뼛속 깊이 느꼈다. 살육자들의 흉포함과 세상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기에 나는 유대인이라는 게 자랑스럽고 기뻤다. 언젠가는 나도 이스라엘로 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다른 약속도 있었다.


“유레크, 나는 계획해 둔게 있지.”

“너는 언제나 계획이 있지.”


391. 불행한 시절이 시작되면서부터 나는 언제나 계획을 짰고, 다른 사람들보다 한 걸음 앞서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럼으로써 일이 되도록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면서 그들을 이용하려고 했다.

내 눈에는 내 어머니의 어머니가 약하고 가느다란 목소리인양, 손으로 쓴 비뚤비뚤한 글자들만 들어왔다. 그 편지는 “ 와라, 마르틴, 와라.” 는 말을 여러 가지 다른 표현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397. 이곳에도 남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자기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선구자들도 있을 터였다.


399. “내가 네 아내에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마. 그러면 나중에도 이 외할머니가 기억날 거야.”

나는 박해받았기에 증오와  비참함에 익숙했다. 외할머니의 집인 워싱턴 하이츠에 있는 부엌에서 나는 비로소 내 공격성과 방어의지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401. 돈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자유를 준다는걸 나는 이미 게토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내 요새를 건설할 작정이었지 구매 대리인의 무뚝뚝한 지시를 들으며 일하려는 건 아니었다.


403. 외삼촌은 나를 가둬놓고 싶어 했지만 나는 탐험하고 배워가고 싶었다.


407. “너는 성공하게 돼 있어. 마르틴. 그럴 자격이 있지.” 외할머니의 말에 나는 입술을 물었다. 바보같이 울고 싶어졌던 탓이다.


411. 나는 단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더 높은 곳으로 매진하는 사람에 불과햇으며 친절한 외할머니는 내 유일한 기쁨이자 내 말을 들어주는 단 한사람이었다.

“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마르틴.” 외할머니가 낭비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가족이 살아 있을 때 해줄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제정신이 아닌 일이었다. 죽음이 가족을 앗아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것이 바로 미친 짓이다.


416. “멘들이 맡는 테이블로.” 손님들은 그런식으로 나를 찾았다.

멘들이란 바로 나였다. 다시 이름을 바꾼 것이다. 마르틴, 미에테크, 미샤에 이어 이제 멘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겠지만 나는 이루어야할 목표를 가지고 매진하는 변함없는 원래의 나였다.


421. 나는 외할머니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외할머니가 내게 자신감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424. 첫 기회를 잡으라고 아버지는 늘 말했었다. 처음으로 다가온 기회는 꼭 잡아야 하는 법이다. 아이디어는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반드시 잡아야 한다.


426.이 나라는 나를 환영해 주었고 나처럼 빈털터리로 이나라에 왔던 베르크나 골드먼 같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었다.

“조셉 골드먼이 골동품상 멘들에게 행운을 빌며 보낸다.”


429. 그러나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도 거리를 두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아버지가 게토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그들의 사랑과 욕망 때문에 나를 품안에 묶어두려 했다.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438. “너는 나치를 찾아다니든 잉크스탠드를 찾아 다니든 언제나 똑 같구나. 미에테크 널 변화시킬 것은 아무것도 없어, 너는 뭐든 죽도록 열심히 하는구나.”


441. 하지만 나는 이틀후 다시 출국했다. 이제 배를 타는 일은 그만두었다. 장벽을 뛰어 넘은 것이다. 비행기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가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베를린으로 갔다.


나는 가격을 가지고 승강이하는 일은 그만 두었다. 내 원칙은 빨리 사고파는 것이었다. 베를린은 그저 뉴욕에서 좀 떨어진 교외처럼 생각되었고 비행기는 전차처럼 여겨졌다. 몇 달동안 두 대륙을 왕복했다.


445. 나는 사장을 만나 협상하면서 뇌물도 주었다. 마침내 어느날 KPM의 거대한 원통형 가마에서 나의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다. 트레블린카에서 탈출한 피난민인 나를 위해서, 그것 역시 일종의 복수였으며 절묘한 솜씨로 이룬 복수였다.


447. 첫 단계를 뛰어 넘으면 그 후에는 모든게 쉬워졌다.


448. 나는 상당한 돈을 모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투자를 하고 주식을 샀다.


449. 나는 부자였고 미국시민이었으며 수입업자인데다 제조업자이기도 했다. 캐나다와 아바나에 지점까지 낸 상태였다. 건물도 여러 채 소유했고 주식과 채권도 사 놓았다. 각국의 수도를 돌아다니면서 파리와 베를린을 그저 뉴욕의 외곽지역쯤으로 여겼다.


나는 이 여자 , 저 여자를 숱하게 사귀었지만 아무도 나를 괴롭히는 과거의 목소리, 이름들, 얼굴들, 장소들을 잠재우지 못했다.


451. “너는 도망치려고 전력 질주하는 말 같아, 미에테크. 언젠가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거다.”

나는 달렸다. 그것도 앞만 바라보며 전력으로 질주했다.


454. 외할머니는 침대에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줄 수 없었다.

가끔 나는 나자신에게서 빠져나와 다른 사람마냥 내 울음소리, 내 절망의 울부짖음을 들었고, 발을 구르며 숨막히게 울며 눈물속에 익사할듯 나, 미에테크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나는 다시 나를 추슬렀다.


455. “죽어 버리고 싶어.”


456. 나는 지쳤다. 미에테크, 썩은 나무처럼 언제나 서있구나. 나무껍질은 튼튼해 보이지만 나무 둥치속은 비어있는 썩은 나무. 나는 너무 외롭고 너무 슬퍼서 토할 지경이었다. 이런 내인생에 여자를 묶어 놓을 이유는 뭔가? 모든 것이 위협받는 삶을 살면서 왜 자식을 가지려는가?


459. “멘들, 당신은 독일 물건을 모방하고 일본인들은 당신 것을 모방하는거죠. 공평한 일이죠. 맨들 공평해요!”


460. 나는 마거릿의 집 바로 바깥에 있는 인도에서 미끄러져 질척하게 녹은 눈에 옷이 엉망이 되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디나를 만났다. 내 앞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미소 짓더니 윙크를 했다.

“볼만 하군요.”

그녀가 생긋 웃었다. 우리는 둘 다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뱃속에서 웃음이 끓어올라 가슴과 목으로 물결치듯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생명과 대면하는 중이었다.


461. 그녀는 활력이었으며 힘과 기쁨이었고 확신이기도 했다. 그녀를 보자 나는다시 생명의 활력을 얻었다. 나는 요란한 웃음을 섰어가며 이야기 했다.


462. 나는 끊임없이 이야기 했다. 디나는 가끔 맞장구를 치거나 적절한 질문을 했다.

내가 말했다. “내가 없을 때, 내가 사는 곳을 가보고 싶을지도 모르겠군요.”

도박이었다. 전부를 얻든가 아니면 전부 다 잃든가.

“ 당신 같은 남자의 아기를 갖고 싶어요.”라고 불쑥 말하고는 한쪽 발로 뛰며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464. “ 저 이사왔어요.”

방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나는 집다운 집을 갖게 된 것이다.


제 4 부 행복


468. 내가 정말로 더는 나를 억제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려하던 그 때, 디니가 내 앞에 나타났다.


넓고 평화로우면서도 당당하고 조용한 강 같은 디나는 내게 진정한 삶을 가르쳐 주엇다. 그녀가 바로 생명이었다. 나는 질리지도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469. 나는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았고 삶은 의미를 되찾았다.

다정하고 쾌활한 그녀가 나의 평화였다. 나는 그녀와 함께 웃었고, 내 몸은 긴장이 풀리고 진정됐다.


470. 나는 남에게 빚지기도 싫었으며 남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싫어했다.

우리는 사업은 물론 모든 일을 함께 했다.

“하지만 왜죠? 마르틴, 우리는 가질 만큼 가졌잖아요? 이유가 뭐에요?”

나는 서서히 계약건수를 줄여나가면서 은퇴계획을 세웠다.

물론 내게는 딴 생각이 있었다. 행복이라는 카드였다.


471. 디나는 바다와 태양을 꿈에도 그리워했다.

475. 디나는 나를 모임에 데리고 갔고, 아침이면 건강식품과 채식에 대한 책들을 큰 소리로 읽곤했다.

“ 자연 말이에요, 마르틴., 자연을 따라 살기로 해요.”


476. 나는 38일동안 단식을 계속했다.

나는 다시 태어낫다. 게토에서 묻은 먼지를 떨어내고, 트레블린카에서의 누런 모래와 땀을 씻어내고, 폴란드 숲에서 묻은 먼지를 떨어내고, 내 손에 배어있던 피를 닦아냈다. 몸무게가 17킬로그램이나 빠졌다. 그렇게 팔팔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도 자주 학대받고 비틀거렸던 내 뼈와 근육들이 새 것처럼 유연해졌다.

1960년 11월 27일 , 딸 니콜이 태어났다.


481. “날이 갈수록 당신을 더 잘 알게 돼요. 그리고 날이 갈수록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요.” 디나가 말했다.

그녀는 생명 그 자체였고 힘 있고 건강했다. 맨발로 봄빛을 흠뻑 받아들이며 한그루 나무처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483. “그럼요. 고기는 죽은 거잖아요. 고기를 먹으려면 짐승을 죽여야죠.”

5월의 그날, 나는 내 두 손으로 직접 생명을 받았다.


485. 마을 사람들은 1964년 10월 10일, 내가 디나를 도와 우리 맏아들인 샤를을 받아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해마다 2주일씩 가족을 두고 미국으로 가서 사업을 하고 전화를 걸어대면서 홀로 외로이 거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나는 번민했다.


488.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다. 행복한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다.


제 5 부  운명


495. 1970년 10월 3일 토요일, 북서풍인 미스트랄이 불어왔다.

그냥 다른 날처럼 바람이 심한 날이었다. 바람이 하늘을 가로질러 몰아치고 해안과 에스테렐 산맥을 질주했다.


496. 갑자기 열린 창문으로 나무 타는 냄새가 실린 뜨뜻한 바람이 불어 닥쳤다. 집 뒤의 언덕에 불이 붙어서 불똥이 섞인 연기 기둥들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누런 불길도 위쪽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소나무에 갑자기 불이 붙고 불길이 벽처럼 집으로 다기오는 게 보였다.


501. “그레이 씨, 그레이 씨....”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502.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먹기는 했었다. 친구들이 나를 감시했다.

식구들이 남긴 생명 없는 물건들만 눈에 띄었다.

503. 나는 이제 말을 한다. 내 인생을 하나하나 상세히 얘기하면서 광기와 기회의 사슬을 이해하고 나를 짓누르는 불행을 이해하려 한다.

나는 디나의 하이힐과 불에 타 색이 바랜 단추 몇 개, 그리고 우리 개 옐로우의 목테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505. 나는 행복함과 잔혹함, 삶과 죽음을 다 경험했다.


507.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몇 달 동안 디나 그레이 재단을 세웠다. 레비롱에서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 가족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누군가가 남아서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그 이야기를 전하고 증인이 되어 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에필로그

내가 사랑한 것들을 위하여


508. 나는 디나 그레이 재단을 설립해서 아이들과  가족들을 산불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고, 그래서 다른 이들이 나처럼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지 않도록 노력했다.

나는 ‘어린이 한명에 나무 한그루’ 라는 강력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나무를 심는 아이는 그 나무에 물을 주고 돌보게 될 것이고 결코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내 안의 에너지는 독자들의 에너지가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오면서 점점 커져갔다. 내가 삶에 기여한 모든 것이 곱절이 되어 돌아온 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이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라는 책이 만들어 낸 기적이다.


515. 2006년에 나온 이 증보판의 인세는 미국의 자연적 건강, 웰빙, 대체 약물을 공부하는 교육자들과 학생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내가 만일 저자라면


휴~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책을 읽었으며 맥이 풀리는 한숨으로 책장을 덮었다.

한사람의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굴곡이 너무 심했고 고난이 너무 많았다.


14세에 시작된 그의 운명이 가족과 동족을 죽음의 사슬로 줄줄이 엮어가 미처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는 숱한 주검들을 처리하는 트레블린카 시체처리반원이 된다.

이 이야기는 그 많은 홀로코스트 문서에서도 증언을 찾을 수 없는 희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아무도 그 이상한 세계에서 살아나온 사람이 없으니까.


트레블린카를 탈출한 후에도 폴란드의 숲과 농가를 떠돌며 빵을 구걸하고 ,매를 맞고 돈을 빼앗기고, 이해받지 못하고...보통사람 같았으면 벌써 포기했을 목숨을 아버지의 말과 가족에 대한 스스로의 맹세를 되풀이하며 죽을 힘을 다해서 살아남았다.


두 번 다시 회상하기도  싫을 것 같은 이 엄청난 비극을 마치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재현해내는 그의 기억력, 또한 놀랍다. 그와 함께 했던 모든사람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이 세상으로 걸어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잠시 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고 , 조피아와 리브가와, 마리와 그의 폴란드 친구들과 악한들과 선한 사람들이 모두 다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별로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있지만, 그의 글 속에는 2차 대전에서의 폴란드의 상황과 전선의 변화와 베를린 입성까지 모두 산 역사의 생생한 증언이라는 점이다.


책의 구성과 장 단점을 논하기에 앞서서 이 이야기에 대한 배경이 되는 역사를 다시 찾아 정리하느라고 긴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냈다. 다소 피상적이던 2차대전사가 생생하게 기록되어있고, 그 사건들 속에 닿아있었던 개인의 역사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반공국가여서 미처 충분한 자료를 제공받지 못한 이차대전에서의 러시아의 역할이 어느 정도 실감이 났다. 러시아를 여행할 때 늘 보게 되는 꺼지지 않는 불은 전체 러시아 인구의 10분의 1이 이 전쟁에서 목숨을 바침으로써 전쟁의 종말을 가져다 준 전몰장병에 대한 무한한 추모의 정을 기리는 것이다.


마르틴이 탈출하여 가는 길에 만난 소련군은 스타린그라드 전투에서 오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몸으로 저항한 이 전쟁을 고비로 히틀러는 힘을 잃었으며 전세는 역전되어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고 마침내 연합군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물론 그 후의 세계 역사는 또다시 패권 싸움으로 들어가 폴란드를 비롯하여 동구권 사람들을 또 다른 폭압으로 내몰았지만 마르틴의 삶을 통해서 그가 살았던 시대를 다시 이해하게 된 것은 독서에서 얻는 감자캐기의 역사이야기이다.


사실 이 책은 여러 각도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사건들을 겪고 난 마르틴의 느낌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극심한  위기의 순간에는 문제해결밖에 다른 생각이 나지 않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나 화상에 잠기는 시간에는 그의 이야기에서 그런 행간에 있는 느낌들을 읽을 수 있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사실 이런 행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처받기 쉬운 속마음은 신뢰관계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혼자 간직할 수 밖에 없는 외로움이기에 나는 이렇게 책을 세상으로 내 보냈지만 저자의 고독은 또 다른 운명적 선택이라고 본다.


결국 이 책을 펴내게된 동기는 그에게 새로운 생명의 느낌을 옮겨다 준 사랑하는 아내 디나와 네 아이들을 추모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전반부 삶이 너무나 참혹하고 너무나 생생해서 그 부분에 전력을 다해 읽고는 기운을 놓게된다.


디나와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저자 마르틴이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하기에는 가슴아픈 사연인 듯하다. 사람에게는 모두 자기만의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데.... 사랑이 깊었던 만큼 애도의 시간도 한없이 길어져서 이생에서는 끝맺지 못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책에 관한 모든 분석에 앞서 책에 대한 느낌들을 말함으로써 저자에게 예를 다하고 싶다.



몇가지 공부를 함께 나눕니다.


* 독일과 소련과의 스타린그라드 전투입니다.

독일은 교착상태에 빠진 서부전선의 연합군과의 전투를 만회하고 후방의 위협을 없앤다는 생각으로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무시하고 소련으로 전격 공격해 들어갔습니다.그러나 전격전은 예상치못한 소련의 대반격으로 2차세계대전의 분수령이된 스타린그라드전투에서 독일이 대패하고 독일 제3제국의 패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

전쟁 기간중 소련의 인명피해는 전체 희생자를 약 5,300만명, 이중 소련인은 약43%인 2,300만명 에 이르고 있으며 군인 전사자가 750만명으로 1,500만명의 불구자 까지 포함 할 경우 당시 소련 인구를 약 2억으로 볼때 전체 인구의 1/3 이 전쟁의 참화를 당했다는 계산이 됩니다.(희생자에 대한 소련 당국의 공식확인은 없습니다. 따라서 스탈린 사후 사실 확인 차원에서 조사가 이루어질 때마다 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를 거듭하여 고르바초프 시절에 2,700만명, 최근 문헌에서는 3,500만명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나치가 승리 하였을 경우 인류의 이성과 문명이 적어도 100년 이상은 후퇴를 면하지 못하였을 사태를 방지 했다는 점에서 소련군의 활약은 독일패망의 커다란 공훈을 세운것 입니다.

원래미국은 소련과 독일의 전쟁에서 제2전선을 형성하고 대공세를 취하기로 소련과 약속했으나 후일차일 미루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결과 소련은 엄청난 피해를 본것이고 독일또한 소련과의 전쟁에서 회복불능의 참패를 겪게됩니다.

그후노르망디상륙작전이니 하는 전투는 전세가 완전히 꺽인독일에게서 얻어낸 전쟁승리일 뿐입니다.2차세계대전사에서는 소련의 대독 전쟁을 2차세계대전의 분수령으로 보고있습니다.

**스타린그라드 전투.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스탈린그라드는 주요 산업의 중심지이며 카프카스 지방의 유전과 소련의 주요 지역을 잇는 석유공급로로서 전략적 요충지였다. 프리드리히 파울루스와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를 선두로 한 33만 명의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기 위하여 기갑부대를 동원하여 수차례 공격하였으나 소련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10월 중순 무렵 가까스로 소련군을 볼가강 가까이로 밀어냈으나 추위와 보급품의 부족으로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었다.

1942년 11월 중순 소련군은 남북 협공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하여 독일측의 루마니아 군대를 격퇴시켰으며, 23일에는 파울루스의 군대와 기갑부대 일부를 포위하였다. 독일군은 이들을 구출하려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파울루스는 항복 의사를 표명하였다. 히틀러는 파울루스를 원수로 승진시키는 등 격려하였으나 이듬해 1월 31일 파울루스는 소련에 항복하였고 2월 2일 살아남은 독일군 9만 1000여 명도 스스로 항복을 선택하였다. 독일군은 이 전투에서 22만여 명의 전사자를 남긴 채 패배함으로써 수세에 몰리고 소련군은 사기가 충천하여 반격함으로써 전국(戰局)이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바르샤바 게토의 봉기


나치가 점령하고 있던 폴란드에서 유대인들이 일으킨 저항운동(1943).

바르샤바를 떠나 트레블링카 집단학살 수용소로 이송되는 것에 대항해 1943년 4월 19일에 일어나 4주 뒤인 5월 16일 진압되었다(→ 나치당). 유럽에서 유대인을 없애기 위한 히틀러의 '마지막 해결책'의 하나로 독일은 점령지역 곳곳에 유대인들을 처형할 때까지 가두어 두는 게토를 세웠다. 처음에는 가시철조망이었으나 나중에는 높이 3m, 길이 18㎞의 벽돌담으로 둘러싸인 바르샤바 게토는 전에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에 세워졌다. 여기에는 주변지역의 모든 유대인이 수용되어 1942년 여름에는 약 50만 명의 유대인들이 3,399㎡의 지역 안에서 살았다. 대부분은 주택이 전혀 없었고, 있다고 해도 한 방에 평균 13명이 빽빽이 채워졌다. 기아와 질병(특히 장티푸스)이 매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942년 7월 22일을 시작으로 하루 평균 5,000구의 시체가 트레블링카의 사망자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1943년 1월 나치는 펴온한 시골에 있는 '노동수용소'로 옮긴다고 유대인을 속여 대부분의 게토를 비웠다. 그러나 소수 유대인은 트레블링카를 탈출했으며 유대인 소송은 사실살 가스실로의 일방통행적인 이동이었다는 말이 바르샤바 게토 지하조직에 전달되었다.1월 18일 독일군은 유대인을 수송하기 위해 게토에 들어갔으나 지하조직인 유대인 전투조직(Zydowska Organizacja Bojowa/ZOB)의 무장 기습공격을 받았다. 시가전이 4일 동안 계속되면서 약 50명의 독일군과 이보다 더 많은 유대인이 죽었으나 이 사건으로 ZOB는 독일군의 무기를 포획할 수 있었다. 독일군은 철수하고 수송작전은 같은 해 4월 19일까지 일시 중단되었으나 나치 친위대(SS) 대장 하인리히 히믈러는 히틀러 생일인 4월 20일을 기념해 무력으로 게토를 소탕하는 특별 '행동'을 시작했다. 또한 4월 19일은 유대인들이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逾越節)의 첫날이었다. 먼동이 트기 전 2,000명의 SS대원과 무장군대가 탱크, 속사포, 탄약 트레일러 등을 앞세우고 게토에 쳐들어왔다. 게토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이 미리 마련한 벙커 속에 숨어 있는 동안 ZOB와 일부 유대인 게릴라 독립부대 약 1,500명은 권총, 소총 몇 개, 기관총 1정, 손으로 만든 폭탄 등으로 사격을 가하면서 많은 탱크를 파괴하고 독일군을 죽이면서 게토로 침입하려는 증강군을 물리쳤다. 독일군은 저녁에 철수했으나 다음날 싸움이 재개되었고 사상자 수도 늘어났다. 독일군들이 유대인을 벙커에서 쫓아내기 위해 가스·경찰견·화염방사기 등을 사용했기 때문에 도시 전체는 며칠 동안 화염에 휩싸였다. 같은 해 5월 8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치는 ZOB 본부 벙커를 제압할 수 있었다. 그곳에 숨어 있던 민간인은 모두 항복했지만 카리스마적인 젊은 지휘관 모르데차이 아니엘레비치를 비롯해 살아 남은 ZOB 전사(戰士) 대부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월 16일까지 일방적인 전투가 계속되다가 유대인의 탄약이 떨어지면서 전투는 점차 산발적으로 되었다. 봉기의 전체 희생자수는 확실하지 않으나 28일 동안의 전투에서 수백 명의 독일군이 죽었고 5만 6,000명이 넘는 유대인이 살해되거나 압송되었다고 한다. SS의 위르겐 스트로프 소장은 바르샤바의 대회당을 폭파해 최후의 일격을 가했으며 뒤에 "바르샤바 게토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독일전범들(1933~1945, 12년 3개월간) 어떻게 처벌됐나



1-1.자살한 사람들


아돌프 히틀러: 총통, 국가사회주의독일근로자당(나치스) 당수, 자살

헤르만 괴링: 대원수, 공군총사령관, 나치스 권력서열 2위, 사형 직전에 자살

하인리히 히믈러: SS 사령관, 게슈타포 총책, 내무장관, 예비군 사령관, 영국군에 잡혀 음독자살

파울 요제프 괴벨스: 선전상, 독일문화회의 의장, 베를린 총통관저 지하호에서 자살

마르틴 보르만: 나치스 부당수, 총무장관, 베를린전투 현장에서 소련군에 의해 사살

로베르토 라이: 독일노동전선 위원장, 뉘른베르크 재판 도중에 자살

칼 홀츠뢰너: 의학박사, 강제수용소 수용자 및 소련군포로 상대로 생체실험, 영국군에 체포되어 자살


1-2.사형선고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외무상, 1946년 10월 16일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빌헬름 프리크: 내무상, 나치당 창당멤버,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한스 프랑크: 나치당 수석 법률고문, 폴란드 총독, 아우슈비츠 건립,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알프레드 로젠베르크: 나치당 외교부장, 나치즘 최고이론가,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나치당 바이마르 지부장, 뉘른베르크 지부장,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에른스트 칼덴브루너: SS 산하 보안경찰 SD 총책, 뉘른베르크에서 서형

빌헬름 자이스잉크발트: 오스트리아 총독, 네덜란드 총독,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프리츠 자우켈: 독일 노동부 노동총감, 750만명의 강제노동인력 지휘,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빌헬름 카이텔: 원수, 독일국방군총사령부(OKW)장관(합참의장 정도),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알프레드 요들: 육군원수, 국방군 산하 육군참모총장,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SS부사령관, SD총책, 체코총독, 1942년 6월 5일 체코인 레지스탕스 공격으로 피살

테오도르 아이케: 다하우 강제수용소 초대소장, 전지역의 강제수용소 최고책임자, 전후 처형

아돌프 아이히만: 게슈타포 유태인문제담당국장, 1944년 헝가리유태인 80만을 강제수용소로 보내고 수십만 처형, 1962년 12월 5일 교수형

한스 루돌프 헤스: SS해골부대장,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장으로서 75만명 살해, 1947년 6월8일, 아우슈비츠에서 교수형

프란츠 칠라이스: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장으로서 6만5천명 살해, 전후 교수형

요제프 크라머: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장, 3만7천명 살해, 영국군에 체포되어 교수형

카를 코흐: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장, 독직과 공금횡령혐의로 1945년 나치친위대에 의해 처형

일제 코흐: 카를 코흐의 아내, 피수용자들 다수를 가학적으로 고문살해, 종신형 선고받고 자살함

유르겐 슈트로프: SS소장, 1943년 4~5월 바르샤바게토 유태인들의 봉기 진압, 그리스정부에 의해 교수형

안톤 도슈틀러: 독일 제75군단장, 1944년 1월 이태리에서 미군특공대원 13인 처형, 1945년 10월 12일 사형

지그문트 라셔: SS소장, 다하우, 오베르부크르 수용소 등에서 피수용자 생체실험 지휘, 히믈러에 의해 사형


서독, 동독 정부에서 실시한 비나치화 재판으로 나치잔당 처벌


1-3.종신형 &징역형


발터 풍크: 나치당 협력 사업가, 독일중앙은행, 라이히스방크총재, 뉘른베르크재판에서 종신형 선고

에리히 레더: 1차대전 당시 해군함장, 1928년 독일해군참모총장, 1943년 수상함대 활용문제를 놓고 히틀러와 의견충돌하여 사임, 뉘른베르크에서 종신형 선고

발두르 폰 쉬라하: 히틀러 유겐트 설립자, 교육장관, 뉘른베르크에서 20년형 선고

알베르트 슈페어: 군수장관, 뉘른베르크재판에서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하고 반성, 20년 복역 후 1966년에 출소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 외무상(~1938.2), 체코 총독(1938.3~1941.9), 징역 15년형,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2년후 사망

빌헬름 샤하트: 바이마르공화국 시절부터 재무상을 지내며 독일경제 재건, 징역 10년형

한스 프리체: 선전상 관료, 무죄 석방되었으나 비나치화 재판에서 유죄, 모든 공민권 박탈

프리츠 티센: 1923~1939년 나치당에 협력하고 거액의 정치자금 제공, 1931년 나치당 입당, 1939년 반나치가 되어 스위스로 탈출, 1941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종전시까지 강제수용소에 구금


거의 모든 독일군 장성들이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공민권이 박탈되었다. 나치에 협력했던 자본가 크루프재벌, 쿠르트 폰 슈레더, 칼 베헤슈타인, 알베르트 페글러 등은 자기 소유기업이 해체되고 지분도 완전히 몰수되어 소시민으로 살았다. 나치당 윗대가리와 중간급 간부들은 사형 내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하급당원도 공민권 박탈됨. 강제수용소 근무자는 일개 사병도 실형을 살았다.


전후 독일은 나치시대에 협력하지 않은 사람들, 반나치 운동가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여 철저한 반나치, 비나치화 시대를 구축하였다.


콘라트 아데나워: 쾰른 시장, 가톨릭중앙당 실력자, 1944년 히틀러암살계획에 가담하여 강제수용소 구금, 전후 서독의 초대 총리, 기독교민주당 당수

쿠르트 키징거: 변호사로서 반나치활동가들 변호, 나치의 위협으로 은둔, 전후 서독 국회의원, 사민당-기민당 연립내각 총리, 기민당 위원장

빌리 브란트: 1933년 나치를 피해 노르웨이로 망명, 1940년 스웨덴으로 망명, 신문기자 겸 반나치스운동가, 1946년 뉘른베르크재판 취재, 서베를린시장과 사회민주당당수 역임, 1969~1974년 서독 총리, 바르샤바 게토를 방문하여 무릎꿇고 참회, 동독 방문하여 국교 재개, 공산당 합법화, 1971년 노벨평화상 수상



-지멘스사 남경지사장이자 나치당 남경 부지부장인 욘 라베는 1937년 12월 남경의 외국인거주지인 '국제안전구'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중국인 25만명을 수용했다. 물론 일본군은 안전구에까지 들어와 중국인 수만을 학살했으나 나치당원 직위를 내세운 라베의 활약으로 수만명의 중국인이 살아났다. 한때 그의 집에 수백명의 중국인들이 살았고 라베는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1940년 일본의 항의에 의해 독일로 소환되어 게슈타포의 조사를 받았다. 1945년 영국군에 의해 체포되어 공민권이 박탈되었으나, 1948년 비나치화 재판에서 "나치를 싫어했고, 중국인 수만명을 살린 공로"가 인정되어 공민권을 회복하고 지멘스사에서 복직되었다. 1950년 병사


-지금도 독일은 작센하우젠 등의 강제수용소를 원형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자신들의 조상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알리고 반성하기 위해



*****노벨 평화상의 작가 엘리 위젤에 관하여

비슷한 시기에 아우슈비츠를 체험하고 이스라엘의 탄생을 돕고 소설로서 시대의 참혹상을 풀어나가는 과정으로 198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엘리 위젤을 소개한다.

이번에 숙제를 하면서 <밤, 새벽 그리고 낮>이란 책을 다시 읽었는데, 엘리 위젤은 신앙과 관련하여 이 유대인 학살을 다루었으므로 , 한때 대표적인 신심서적으로 읽히던 책이었다.

두 책을 나란히 놓고 보면서 각자가 처한 자리가 어떤 운명을 만나는가? 하는데에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그 이야기는 너무 길다.


엘리 위젤의 <밤>에서 한 구절을 옮겨놓는다.


우리는 희생자 앞을 지나갔다. 두 사람은 이미 숨이 끊어졌다.

그들의 혀는 축 늘어진 데다 부풀어 오르고 푸르스레했다.

그러나 세 번째 밧줄은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가벼운 그 아이는 아직도 숨을 쉬고 있었다.

소년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30분 넘게 몸부림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우리는 가까이서 소년을 보아야만 했다.


내가 지나갈때도 소년은 살아 있었다. 혀는 아직도 붉었고,

눈도 여전히 감기지 않았다.

내 뒤에서 아까 그 사람이 다시 묻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그때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여기 교수대에 매달려 있지."


그날 저녁 수프는 시체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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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6.30 16:06:42 *.12.130.121
오호~ 샘의 몇 가지 공부사항 대단해요! 정말 공부했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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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14] 위대한 나의 발견*강점혁명- 청림출판사 범해 좌경숙 2009.07.06 17993
1937 위대한 나의 발견*강점 혁명 書元 이승호 2009.07.06 4991
1936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1] 희산 2009.07.06 1843
1935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 Now, Discover Your Strengths 백산 2009.07.05 1763
1934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숙인 2009.07.05 2219
» [13] 살아야한다. 나는 살아야한다.-21세기 북스 [1] 범해 좌경숙 2009.06.29 2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