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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8일 09시 06분 등록

신화와 인생

조셉 켐벨 지음 / 다이엔 K. 오스본 엮음 /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1. 저자에 대하여

켐벨은 미국의 유명한 신화종교학자이자 비교신화학자로서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그의 일생은 그야말로 '신화에 대한 연구'로 요약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뉴욕 자연사 박물관을 찾았던 경험이 어린 그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을 하였다. 그 때 본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물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신화에 대한 그의 열정은 일생을 비교 신학과 비교 종교학의 연구에 몰두하도록 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생물학, 수학, 영문학, 중세문학 등 다방면의 학문을 전공했을 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티어를 배우고 독일어와 불어를 유창하게 할 정도로 그는 타고난 학자였다.

켐벨은 지독할 정도로 연구에만 몰두하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학자이지만, 정규학위과정을 무시하고 홀로 연구를 진행할 정도로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소신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켐벨은 콜롬비아 대학과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1929년 그는 유럽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콜롬비아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와 중세문학에 대한 연구 계획을 거절당하자, 학위과정을 포기하고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이 후 5년 동안 캠벨은 하루 중 16시간의 시간을 4시간씩 네 단위로 구분하여 세 단위를 독서와 연구에, 한 단위를 휴식에 활용하는 생활을 철저하게 유지하며 고된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캔터베리 스쿨을 거쳐,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이 교수가 된 뒤 신화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 연구의 결과로 그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 탄생했다. 이후 모든 문화권의 신화 속에 숨겨진 신화의 원형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끝에 4부작으로 된 <신의 가면 The Mask of God>을 발표하였다. 이 외에도 <신화의 힘>,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애생수거위의 비행>, <신화 이미지> 등의 저서를 통해 왕성한 연구활동을 펴지다 1987년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조셉 캠벨은 이 책에서 그가 말한 바와 같이 '천복'을 따르며 살아간 사람이다.

Ⅱ. 내 맘에 무찔러든 글귀

1. 의식의 첫 번째 단계 : 현세에서의 삶

남자와 여자, 삶과 죽음, 선과 악.

이런 것이 대립자의 문제들이다.

이로부터 시작된 문제가 바로 이원성의 발견이었다. 그것은 바로 타락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이원성에 대한 진정한 인식조차 없었다. p.42

우리의 신학자들은 여전히 ‘아가페’와 ‘에로스’에 대하여, 그리고 그 둘의 근본적인 대립에 대하여, 마치 그 둘이 ‘사랑’이라는 원리의 궁극적인 표현인 것처럼 쓰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가페’는 ‘자비’요 신적이자 영적인 것이고 ‘공동체 내에서 서로를 향한 것’이며 ‘에로스’는 ‘욕정’이요 자연적이자 육적인 것이고, ‘섹스의 충동, 욕구, 기쁨’이라는 것이다. 설교대에 올라서는 어느 누구도 이 두 가지와 대비되는 제3의 선별적이고 차별적인 원리 ‘아모르’에 대해서 들어 보지 못한 것 같다. p.51

‘아모르’는 오른쪽 길(승화시키는 영, 정신, 인간 공동체)도 아니요, 왼쪽 길(자연의 자연발생, 음경과 자궁의 상호자극)도 아니며, 바로 앞에 있는 길, 눈의 길이며 눈이 심장에 보내는 메시지이다.

이렇게 사랑은 눈을 통하여 마음을 얻는다.

눈은 마음의 정찰병으로서

마음이 즐거이 가지고자 하는 것을 찾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눈과 마음이 완전한 조화를 이룰 때,

이 둘이 하나의 결의로 단단하게 뭉칠 때,

그때 눈으로 들어와 마음으로부터 환영받는 것에서

완전한 사랑이 태어난다.

이렇게 마음의 움직임에 의해 태어나거나 시작되지 않으면

사랑은 다른 방법으로는 태어날 수도 시작될 수도 없다. p.52

사랑에 눈을 뜨는 순간, 어떤 것이 명백히 외부로부터 “영원히 그의 영혼 속으로 옮겨 갔고, 그의 영혼은 그 부름을 받고 뛰었다. 살며, 과오를 범하며, 타락해 보고, 승리하고, 삶에서 재창조하는 거다. p.52

"이것이 내가 필요로 하던 것이다.“ 파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기회인 양, 도전인 양 다가가라. 여러분이 그 순간에 사랑을-낙담이 아니라-가져온다면, 여러분은 힘이 거기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여러분이 견뎌 내는 재난은 그 무엇이건 간에 여러분의 성격, 여러분의 됨됨이, 여러분의 삶을 향상시킨다. 이 얼마나 큰 특권인가! 이야말로 여러분 자신의 본성을 자발적으로 샘솟게 할 기회다. p.55

신화학이란 특정한 시대, 특정한 문화에서 인간 영혼의 경험, 행동, 성취에 관한 은유를 간직한 이미지들이 조합된 것이다. p.56

인생의 전반기에 우리는 사회에 봉사한다. 이것은 종속이다. 인생의 후반기에 우리는 내면으로 돌아선다. 이것은 해방이다. p.58

궁정연애에서 미치는 쪽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남자가 이러한 상태라면, 그는 믿을 수 없는 위업을 세울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 좁은 길에 서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열정을 따를 때, 사회의 도움은 사라진다. 여러분은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이제는 완전히 혼자니까. p.63

인생은 그런 크고 작은 행사들 위에서 아름답게 흘러갈 수 있다. p.66

결혼은 연애가 아니라, 시련이다. 그것은 종교적 훈련, 성찬식, 또 다른 삶에 참여하는 은총이다. p.66

이것은 내가 일컫는바 연금술적 결혼이 실패한 경우다. 그들은 비록 생물학적 결혼은 했지만, 그러한 묵종과 관계로부터는 상호 간의 교육과 영혼의 맞물림이 전혀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삶의 후반부에 있어서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해 부부 양측이 아무런 사전 개념도 지니고 있지 못했다는 것은 지극히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일이다. p.66

성공적인 결혼은 혁신적인 삶을 함께 이끄는 것이며, 열려 있는 것이며, 계획표에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자유낙하다. 뭔가 새로운 게 나타날 때마다 그걸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바다에 떨어진 기름 한 방울처럼, 여러분은 이리저리 떠다니겠지만 지혜와 연민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p.67

고결한 마음을 위해서는, 결혼은 우선 반드시 영적이어야 하며, 물리적 완성은 그 다음이어야 한다. p.67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책임이 사라의 구성요소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책임감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건 단지 소유물을 취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러분은 과연 누군가를 소유하려 하는 것인가? 아니면 관계를 구축하려 하는 것인가? p.68

내 생각에 결혼이란 상대방을 책임지고 사랑함으로써 상대방과 진정한 일체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 자신을 누군가에게 헌신하는 것, 즉 여러분 혼자의 운명을 두 사람의 운명으로 전환하는 것은 평생에 걸친 헌신이다. 하지만 그런 헌신을 여러분에게 바친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을 잃는 것, 다시 말해 ‘난 앞으로 이 방향에서 벗어나고, 지금까지 이미 헌신했던 것에 대해선 싹 잊어버려야지’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어떤 일이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을 잃는 것은 결혼생활이 아니다. p.69

결혼은 여자가 주도하고 남자가 따라 가는 것이다. p.72

여자는 삶(생명)의 ‘사크티sakti', 즉 에너지이다. 남자는 그 에너지를 올라타 달리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삶을 향해 직접 지시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를 확신한다. 남자는 여자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그것이 그의 본래 모습이다. 남자가 무너지지 않는 한, 여러분은 진짜 결혼을 한 것이 아니다. p.72

양쪽 모두 정신적 길잡이가 없는 한, 결혼이란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자아가 무너져야만 두 사람은 합쳐질 수 있다.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영혼은 발효되고, 융합되고, 분해되고, 부패되어야 한다. p.73

결혼이란 여러분 자기 자신을 상대방에게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그 관계됨에 희생시키는 것이다. p.73

내 생각에 무조건적인 사랑은 어쩌면 성배가 아닐까 싶다. 성배는 하나님과 악마 사이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방식으로 심판하지 않는다. 그것은 심지어 하나님을 넘어선다. 그보다 훨씬 더 큰 그림자인 것이다. 사랑-결혼생활에 있어서는 무조건적인-은 구체적이다. 그것은 초점이 있다. 그 무조건적인 사랑은 만물에까지 미치며, 그것은 영적인 삶에서도 획기적인 단계다. 하지만 그것을 여러분의 바깥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그것을 찾아야 할 유일한 장소는 여러분 내부다. 만약 내부에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다면, 바깥에는 무엇이 있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p.74

성배로 향하는 열쇠는 공감,

다른 사람의 슬픔을 마치 여러분의 것인 양,

느끼고 또 같이 고통 받는 것이다.

공감의 위력을

깨달은 사람은

성배를 발견한 사람이다. p.75

내 생각에 이것은 성배의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와 뭔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성배왕의 치료에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다름 아닌 상대방의 고통에 관한 질문을 망설임 없이 던지는 자발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종종 여러분은 그런 자발적인 행동이 여러분을 바보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가급적 안 하려고 한다. 즉 내가 그런 짓을 하면 바보 취급을 받을 것 같은 거다. p.75

나 자신의 것도 아니고, 내가 상관할 것도 아닌 고통이 마치 나 자신의 것인 양 내게 즉각적인 영향을 끼치며, 나로 하여금 행동에 돌입하게 만들 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쇼펜하우어 p.76

그는 타인과 별개라는 이차적인 자아의식 때문에 행동한 것이 아니라, 존재의 토대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라는 더 크고 더 참된 진리를 직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힘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능력을 지녔는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것은 의무도 아니고, 계산도 아니다. 그것은 섬광이다. 우리 안에 있는 삶의 진실의 발견이다. 그런 순간에 여러분은 여러분과 다른 사람들이 사실은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야 말로 커다란 깨달음이다. p.77

나는 이제껏 돈에 관해 완전히 무심한 삶을 살아왔다. 대신 나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제법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 결국은 돈이 따라 오게 된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삶에 선사하는 것과 삶이 여러분에게 보답하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p.83

자신이 행복해하는 것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항상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돈이 있건 없건 간에.

돈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돈을 잃을뿐더러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p.83

여러분은 자신이 육성해 온 이득을 잘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그것들을 놓칠 경우, 여러분은 대략 10년쯤 지나서 부정적인 반작용을 경험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이 하나의 문턱에서 또 다른 문턱으로 움직일 때에는 차라리 점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중심으로부터의 잠재력은 다음 모험에 필요한 미래 예측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p.84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면 만사가 여러분에게 자연스레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길이고,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앞서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전례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모든 것이 그야말로 뜻밖이며, 그야말로 적시인 것이다. p.90

궁극적으로, 파르치팔의 경우처럼, 내부의 안내자는 자신의 고귀한 마음뿐일 것이며, 외부의 안내자는 그의 마음에서 아모르를 깨어나게 하는 아름다움의 이미지, 신성의 광채가 될 것이다. p.103

성배가 상징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높은 영적 성취다. 각자의 삶에는 여러 가지 높은 성취들이 있으며, 그 각자의 삶은 성배로부터 은총을 부여받는다. 어떻게 하면 거기 도달할지, 그리고 거기가 어디일지에 관한 단서를 어느 정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공감이라는 테마다. p.102

성배전설에서 말하는 황무지란 뭔가 의례적으로 마땅히 해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또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땅이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과연 무엇이 그런 황무지인가? p.104

고결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황무지를,

즉 “너는 할지니”의 세계를 회피하게 될 것이다. p.105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두렵지 않아. 그것이 설사 큰 잘못이고, 평생에 걸친 잘못, 어쩌면 영원히 계속될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두렵지 않아. p.105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런 느낌이 없을 경우, 여러분은 그저 삶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따라 살아가는 셈이다. p.105

결국 모든 삶은 전체의 실현, 즉 자기의 실현이다. 때문에 그 현실을 ‘개성화’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삶은 그것을 실현하는 각각의 운반자에 매여 있으며, 운반자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운반자는 개별적인 운명과 목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그것을 실현했을 때에야 비로소 삶을 이해할 수 있다. p.107

천국이란 여러분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다. 그것은 영원히 여러분 자신의 근본적인 측면이다. 그것이 바로 환희다. 그 다음 현세의 삶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과 봉사’를, 즉 여러분과 만물 내에 존재하는 삶의 에너지를 생성할 것을 요구한다. p.109

내 경험은 무엇이냐 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는 내가 성배의 성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런 성취가 이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p.109

부름은 곧 어떤 사회적 지위로부터 떠나라는, 즉 여러분 자신의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 보석을 찾으라는, 즉 여러분이 사회적으로 속박되어 있을 때에는 찾기가 불가능한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중심을 잃은 상태라고 느낄 경우, 여러분은 떠날 때를 맞이한 것이다. 영웅이 뭔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걸 찾으러 갈 때, 그게 바로 출발인 것이다. 여러분이 문턱을 넘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위험한 모험이니, 이는 여러분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관한 지식의 영역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p.111

두 세계 , 곧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마치 삶과 죽음, 또는 밤과 낮처럼 서로 다르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영웅은 우리가 아는 세계에서 암흑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 암흑의 세계에서 영웅은 그 모험을 완성할 수도 있고, 거기에 갇힘으로써 우리들 앞에서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엄청난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영웅의 귀환은 그 저승에서의 귀환을 말한다.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 p.116

자녀여, 그대는 이승의 삶이라는 수고로운 시련을 다 치러 내고 승리한 자이니라. 이제 우리 주님이 그를 데려갔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랴? 우리 역시 영원한 이승에 있는 것은 아니요, 잠시 다녀가는 것뿐이라. 우리의 삶이란 햇빛에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느니라. p.143

불교의 중심사상은 집착없는 공감이다. p.151

2. 의식의 두 번째 단계 : 깨달음을 향한 길

요가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다. p.155

낮은 단계에 있는 이 세 개의 차크라들은 소박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양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외적으로는 연인들, 전사들, 건설자들, 성취자들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의 기쁨과 슬픔은 ‘저 바깥’ 세상에서 성취한 것, 즉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 작용한다. p.159

궁정연애의 전통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멀리함으로써 시험해야만 하는데, 그 멀리함은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오는 것이 욕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 즉 고결한 마음에 의해서임을 여자가 확신하게 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것이 궁정연애의 올바른 의미이다. 이와 똑같은 테마가 훗날 단테의 신곡에서도 표현되는데, 이 작품에서 시인은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으로 인해 결국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인도된다. p.166

따라서 여러분은 차라리 불완전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감수하면서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p.192

쿠마라스와미가 내린 예술의 정의는 그 기능이나 범주와는 무관하게 모든 예술의 기초가 된다. 예술을 사물을 잘 만드는 것이다. 여러분이 사물을 잘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다면 여러분은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조차 예술가가 아니다. 내 생각에 일본제 기계가 잘 팔리는 까닭은 일본인들이 예술가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매사에 있어 완벽성과 정확성을 위해 분투한다. p.193

예술의 목표는 그 대상에 있어서의 완벽성이다. p.193

위대한 다도의 달인은 천상적인 경이를 체험된 순간으로 만드는 데 힘썼다. 이어서 이 경험은 다실에서 가정으로 확산되고, 가정에서는 국가로 스며들었다. p.195

그렇다면 무엇이 계속해서 여러분을 동산 바깥에 있게 만드는 것일까? 바로 여러분의 두려움과 욕망이다. 붓다는 이 두 가지를 초월했다. 두려움과 욕망에 의해 위협을 당할 때에는 자아를 놓아 버려라. p.205

삶의 목표는 여러분의 심장의 박동을 우주의 박동에 맞추는 것이며, 여러분의 본성을 자연에 맞추는 것이다. p.211

영웅의 여정의 목표는 여러분 자신이다. 즉 여러분 자신을 찾는 것이다. p.219

여정의 목표는 여러분 자신을 의식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p.222

하나님의 진노건, 영원한 저주건,

무슨 대가를 치르건 간에, 나는 이 사랑을 지키리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p.229

그 상징이 도대체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지 못하면, 그것은 단지 명령으로서 거기 있을 뿐이며, 그런 일들은 계속해서 더 많이 지속될 것이다. 이 복잡한 분야에서 여러분이 자신의 정신을 사용할 수 없다면, 나로선 여러분이 과연 어떻게 그걸 잘 해결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p.230

하나님에 관한 모든 관념은 이른바 인간 속에 실재로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특성에 관한, 역사적으로 조건화된 이미지일 뿐이니까. p.236

교회는 어디까지나 은유적인 사건들을 마치 역사적 사실처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p.239

그의 승천은 내부로 향한, 신화적 여정을 표상한다. p.239

여러분이 진정으로 성스러운 공간이라든지, 피난처를 지니려 한다면, 그곳은 우선 황무지가 아니어야 하며, 암브로시아-외부로부터 여러분 안에 불어넣는 기쁨이 아니라, 여러분 내부로부터 나오는 기쁨-의 샘이 있는 어떤 활동 공간, 즉 여러분이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의도와 자신의 소망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됨으로써, 비록 작더라도 하늘나라가 거기 있어야 한다. 내 생각에 모든 사람은-본인이야 알건 모르건 간에-그런 공간을 필요로 한다. p.258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신을 죽여야 한다.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모든 고정관념들을 없애 버려야 한다. p.274

합리적인 정신은 대립자들을 강조한다. 동정과 사랑은 대립자들의 쌍을 넘어선다. p.284

진정한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대립자의 쌍들의 너머까지 반드시 나아가야만 한다. p.288

두려움과 욕망의 장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여러분은 불멸로부터 스스로를 배제시키는 것이다. p.299

귀환은 어디에서나 광휘를 목격하는 것이다. p.300

만약 여러분이 사회적 의무를 수행한다면,

그것은 결코 ‘여러분의’ 행위가 아니다.

다만 사회가 그런 의미를 부과했을 뿐이며,

여러분을 스스로의 삶에서 차단시킨 것이다. p.301

전설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이 고통 받는 세계를 내려다보고는 자비심으로 가득 차서 머리에서 수없이 많은 머리가 솟아났고 몸에서는 도움의 손길이 달린 천 개의 팔이 솟아났는데, 이것은 마치 휘황찬란한 광배와 같았고, 그 각각의 손바닥에는 무한한 시야를 가진 눈들이 나타났다. 관세음보살의 몸에 있는 모든 숨구멍은 수천 명의 부처들과 온갖 성자들과 세계 전체를 담고 내보낸다. 그의 손가락으로부터 암브로시아의 강물이 흐르는데, 그 강은 지옥의 열기를 식혀주고 배고픈 귀신들을 먹인다. 그는 브라흐만들에게는 브라흐만으로 나타나고, 상인들에게는 상인으로 나타나며, 곤충들에게는 곤충으로 나타나는 등 , 각자에게 그것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p.311

사크티 즉 에너지는 ‘위대한 여신’의 본질이자 이름이며, 따라서 그 여신은 그 신비스러운 존재를 신들에게 설명할 수 있고, 신들에게 그 비밀을 설명해 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여신 본인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p.312

힌두교의 여신칼리는 자기 배우자인 남신 시바의 엎드린 몸 위에 서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신은 죽음의 칼을 휘두르고 있는데, 이 칼은 영적 훈련을 의미한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인간의 머리는 그 귀의자에게 “여신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자는 그것을 찾으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영원에 중심을 잡고 선 자의 시각에서 보자면 일시적인 ‘선’과 ‘악’의 환영은 오로지 마음의 반영에 불과함을 가르치고 있다. 마치 여신 자신조차 비록 남신을 짓밟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 모두가 남신의 행복한 꿈에 불과하듯 말이다. p.315

신화체계에서 여성은 위대한 신이며 모든 힘의 원천이다. 예를 들어서 파라오가 왕좌에 앉은 모습을 그린 이집트 그림에서, 그 왕좌는 그에게 권위를 부여한 것이며, 그 왕좌는 여신 이시스다. 이와 똑같은 신화의 이미지는 성모와 그리스도의 도상에서도 나타난다. 즉 아기 그리스도는 성모의 무릎에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은 파라오가 자기 보좌에 앉은 모습과 똑같다. 즉 여성이 남성의 힘인 것이다. 이 각각의 남성은 세계의 지배자로 일컬어지지만, 그 뒤에 항상 있는 것은 바로 여성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대통령의 옛날 사진을 보면, 보통 대통령의 아내는 남편의 뒤에 서 있곤 했다. 거기서도 대통령의 아내는 이시스이며, 대통령은 보좌에 앉은 아이인 것이다. p.316

그녀의 자궁은 공간의 장이며, 그녀의 심장은 시간의 맥박이고, 그녀의 생은 우주적 꿈을 반영하는 우리들 각자의 삶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피안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의 매혹하는 힘이다. 성서로 치자면 그녀는 이브이다. 인류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들, 즉 바위, 나무, 짐승, 새와 물고기, 태양과 달과 별들의 어머니로 확장된 이브라고 할 수 있다. p.317

농사가 생계의 주요 수단일 때 이 세상에는 땅과 여신의 힘이 있다.

사냥이 주요 수단일 때, 짐승을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남성의 주도권이다. p.318

남성의 일은 생명과 관계하는 것이다. 여성의 일은 생명 자체가 되는 것이다. p.319

남성의 주된 기능은 그 안에서 여성이 출산을 할 수 있는 환경적 상황을 수립하는 것이며, 또한 여성이 미래를 가져올 수 있도록 그 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이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전체다. 남성은 보호하는 인자이며, 여성의 힘의 대행자이다. 남편을 잃은 여성은 그 남성의 역할을 대신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그 여성 자신의 에너지에 낯선 무엇인가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니무스의 기능은 물론 모든 여성 안에 있지만, 그것은 보통 다른 누군가에게 위임되게 마련이니까. p.319

신화의 그림 언어에서 여성은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는 것의 전체성을 표상한다. 영웅은 그것을 결국 알게 된 자이다. 영웅이 느린 입문-즉 삶-을 거쳐가는 동안, 여성의 형상은 그를 위해 일련의 변모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여신은 결코 영웅만큼 위대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항상 영웅이 지금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약속한다. 여신은 영웅을 유혹하고, 영웅을 인도하며, 영웅이 차고 있는 차꼬를 부숴 버리도록 명령한다. 영웅이 여신의 취지에 부응할 수 있으면, 두 가지, 그러니까 아는 자와 알려진 것은 모든 한계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여성은 감각의 모험의 숭고한 결정으로 남성을 인도한다. 불완전한 눈으로 인해 여성은 저열한 상태로 축소되어 보인다. 사악한 무지의 눈으로 인해 여성은 진부함과 추악함에 얽매여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해의 눈으로 인해 여성은 구제된다. 그 여성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영웅, 즉 지나친 동요를 지닌 것이 아니라 그녀가 요구하는 친절과 확신을 지닌 영웅은 장차 왕, 육화된 육신, 그 여성이 창조한 세상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p.322

남성의 힘이 지배하는 곳에서 여러분은 분리를 겪는다. 여성의 힘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둘이 아닌, 포용하는 특성이 존재한다. p.334

주요한 여성의 힘과 미덕이 바로 공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곧 이기적 고립의 결여, 다시 말해 참여에의 포용이다. 심지어 섹스에 있어서도 남성은 공격적이지만, 여성은 포용적이다. 우리 모두 존재 기반이기도 한 보편적 공통성에 대한 포용성이 바로 공감이다. 자발적 감정을 인식하고, 포용하고, 나아가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여성의 힘이다. p.339

그 모두가 사랑일 때, 세상 모두는 반드시 사랑이어야만 한다. 무엇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p.342

Ⅲ. 내가 저자라면

『신화와 인생』은 캠벨이 살아 있을 당시 에설런 연구소에서 한 달간 열린 조지프 캠벨의 강의 내용을 담은 생생한 강의록과 그의 주요 저서들과 그가 인용한 다양한 작품들의 발췌 내용을 덧붙인 일종의 캠벨 선집이다. 동시에 이 책은 각종 신화와 종교를 넘나드는 캠벨의 폭넓은 사상이 담긴 캠벨 사상의 개론서이다. 또한 사랑, 결혼, 직업, 예술 등에 관한 그의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 등이 담긴 에세이집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우리 시대 최고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읽어야 할 최고의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책은 캠벨의 목소리와 여러 인용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다. 그가 전하고자 한 깨달음과 성찰의 순간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캠벨의 사상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것들만을 골라 수록함으로써 그의 방대한 사상에 좀 더 쉽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도입의 단계-영웅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의식의 첫 번째 단계-현세에서의 삶」 「의식의 두 번째 단계-깨달음을 향한 길」 「의식의 세 번째 단계-성스러운 삶과의 조우」 등 크게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도입의 단계-영웅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는 책의 내용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앞서, 본문에 나오는 캠벨의 아름다운 메시지들을 시 형식으로 재구성해 놓은 부분이다. 나머지 3개의 장은 엮은이에 의해 이른바 “의식의 세 가지 층위 또는 단계”에 상응해 구성된 부분이다. 2장 「의식의 첫 번째 단계-현세에서의 삶」은 돈, 이성, 노년의 양상, 죽음, 결혼, 전쟁, 출산, 제의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현실의 여러 문제들에 관한 캠벨의 깊고도 진솔한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3장인 「의식의 두 번째 단계-깨달음을 향한 길」은 영적 계발과 체험의 진수를 보여주는 요가를 비롯하여,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심리학, 종교, ‘영웅의 여정’ 등을 말하고 있는 장이다. 개인의 진정한 성장과 깨달음에 대한 문제들, 즉 ‘우리 스스로에 대한 깊은 사랑과 진리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주제들에 관해 탐구하고 있다. 마지막 4장에서는 「의식의 세 번째 단계-성스러운 삶과의 조우」는 음악, 미술, 춤, 글쓰기 등 인간을 ‘환희’의 경험으로 이끄는 예술과 캠벨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신화와 종교의 은유 및 상징성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캠벨은 일찍이 “삶의 목표는 환희다. 예술은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방법”이라 하면서 예술의 중요성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이 예술에 관한 그의 여러 가지 조언들은 상당히 날카롭고 정확해 새겨들을 만한 것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캠벨은 물질과 겉치레에 사로잡혀 가식적인 성공과 명예를 갈구하는 삶, 남의 시선에 기대어 사는 타인이 원하는 가치들을 좇는 삶을 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구현했다. 캠벨의 삶은 바로 “‘나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에 머무르는” 삶이었다. “내부에 있는 시스템이 열망하는 것과 딱 맞아 떨어지는 어떤 것을 외부 세계에서 발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옥죄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안착할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캠벨의 정직한 고백대로, 모두가 잘 아는 바대로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치워 버려야 희열이 온다.” 이 희열을 찾아, 영웅의 여정 속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영웅의 여정을 통해 잃어버린 삶의 희열을 회복하는 것이 인생의 여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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