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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5일 11시 59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의 출발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삶이다. 그가 하는 사랑이야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그는 클로이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운명적 인연에서 권태로움으로 변하는 과정을 여실히 그려내고 있다. 또한 여행이야기, <여행의 기술>에서는 일상에서 떠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늘 개인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다 보면, 책 속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나임을 발견할 수 있다.

 

언젠가 사부님은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작가란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단 한줄의 글귀나 문장으로 해소시켜주는 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작가는 사람들의 내면의 갈증을 외부로 표출해주는 통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말을 하고 의사를 표현하지만 내부의 그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언어로 표현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에 능숙한 이는 타고난 글쟁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마련이다.

 

내가 아는 한 알랭 드 보통은 타고난 글쟁이이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내면의 욕구 결핍을 느끼기도 하고, 그 해법에 공감하기도 한다. 사랑을 겪고 그의 사랑이야기를 읽으면,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난 후 그의 여행이야기를 읽으면 나는 또 다른 한 명의 주인공이 되어 그의 글 속에서 배회하고 다닌다.

 

<불안>은 그의 일상적인 소재 개인의 일상적 삶과는 다소 분리되어 있는 소재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되는 불안감이 바로 이 책의 주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이라는 것 역시 개인의 내면적 형상의 일부로서 표출되는 점에서 이번 이야기에서 역시 공통 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일상이란 진부하고 뻔한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뛰어난 글쟁이가 제공해주는 사색의 망원경 또는 현미경을 통해 그 일상을 바라보면 그것은 낯설고 새로우며 가슴 뛰는 것이 되어 있다. 알랭 드 보통이라는 사색의 통로를 만나게 된 점이 무척이나 반가우며 고맙다.

 

 

2. 내가 저자라면

 

- 구성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자.

 

정의

 

원인

- 사랑결핍

- 속물근성

- 기대

- 능력주의

- 불확실성

 

해법

- 철학

- 예술

- 정치

- 기독교

- 보헤미아

 

정의 원인 해법 이라는 3개의 큰 구성은 마치 과학 교과서에서 어떤 개념을 설명할 때 쓰이는 구조의 틀과 비슷해 보인다. 근래에 읽었던 그 어느 책과 비교해보더라도 <불안>의 목차는 단순하고 (얼핏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이 보인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어찌 보면 단순하고 간결한 이런 논리적 흐름이 알랭 드 보통이 이끄는 불안이라는 주제로의 사색의 여정을 도와주지 않았나 한다. 지난 주에 읽었던 <편집자란 무엇인가>의 목차가 20첩 진수성찬이었다면 <불안>의 목차는 밥과 국, 짠지로만 이루어진 단촐한 상이다. 그러나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상차림이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불안을 없애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단순한 목차는 독자로 하여금 이 두 가지 질문에 늘 집중하도록 만들어준다.

 

- 불안에 대한 전방위적 탐색의 글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연구과정이 꽤나 치열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불안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말하기 위해 그는 철학, 종교, 역사, 경제, 정치, 예술에 이르기 까지 전방위적인 탐색 작업을 벌였다.

 

시의 적절하게 제공되는 인용되는 사상가의 이야기는 그의 논리에 힘을 실어준다. 그는 토마스 홉스, 루소, 아담 스미스, 마르크스를 비롯한 수많은 지적 선구자들을 책에 초대해 서로가 토론을 하게 만들고 논쟁을 하게 만들었다. 불안이라는 심리상태라는 것이 단순히 하나의 단편적인 원인에 의해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에 의해 비롯되는 것이기에 이러한 시도는 필수적인 것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불안에 대한 책이지만, 결국 불안을 해소하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불안을 이야기 하기 위해 알랭 드 보통은 진정한 부란 무엇인지, ‘속물근성과 사랑 사이의 방정식은 어떻게 작용하는지,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 자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그의 논리의 끝에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자아상이 존재한다. 스스로의 자아상이 명확하다면 준거집단과 나를 비교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내가 정의한 부와 행복의 요건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

 

“(품위는) 다른 사람의 증언에 좌우되지 않는다. 칭찬을 받으면 더 나아지는가?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진다더냐? , 상아, 작은 꽃 한 송이는 어떤가?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좋은 책은 독자의 생각의 구조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독자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한 지도 또는 나침반을 제공해준다. 그것을 가지고 문제 해결의 여행을 떠나는 적극적인 독자도 있을 것이고, 마음 속에만 머물어 놓는 게으른 독자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어쩌면 자신의 메시지로 인해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을 떼게 해주는 게 행복일 수도 있겠다. 아니, 글 쓰는 이의 소명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3. 내 마음의 글귀

 

정의

[8] 지위로 인한 불안

-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독성이 너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9]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사람들(소크라테스나 예수)은 다르겠지만,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원인

 

사랑결핍

 

<높은 지위를 바라는 마음>

[15] 어떤 동기 때문에 높은 지위를 구하려고 드는가? .. ,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 보다는 사랑의 상징으로서 그리고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더 중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7] 낮은 지위가 끼치는 영향은 물질적인 맥락에서만 볼 수 없다. 불편은 모욕을 동반하지만 않으면 오랜 기간이라도 불평 없이 지낼 수 있다. 병사나 탐험가들이 그런 예다. 그들은 사회의 극빈층이 겪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궁핍을 기꺼이 견디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버텨낸다. 마찬가지로 높은 지위가 주는 유익은 물질적 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 그들은 돈 만큼이나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존경을 추구한다.

 

[18] 부자가 자신의 부를 즐거워하는 것은 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부끄러워한다. 가난 때문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가장 열렬한 욕구의 충족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19]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은 두 가지 커다란 사랑의 이야기로 규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즉 성적인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고, 지도도 잘 그려져 있으며, 거기서 나오는 기발한 행동은 음악과 문학의 주재료를 이룬다. 이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기념된다. 두 번째 이야기, 즉 세상이 주는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보다 더 은밀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다. 그런 사랑은 질투심이 많거나 결함이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로 여긴다. 이 두번째 사랑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만큼이나 강렬하며, 또 첫 번째 이야기만큼이나 복잡하고, 중요하고, 보편적이다. 그리고 이 사랑을 이루지 못할 때도 첫 번째 사랑을 이루지 못할 때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여기에도 가슴 아픈 상처가 있으니, 그것은 세상이 이름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체념에 젖은 멍한 표정이 증언하고 있다.

 

<사랑의 중요성>
[20] “
사회에서 밀려나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완전한 무시를 당하는 것 이런 일이 물리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보다 더 잔인한 벌은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이다.”

 

[21]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 농담에 즐거워하면, 우리는 나에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갖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 눈길을 피하거나, 직업을 밝혔을 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21]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이런 식으로 남들의 반응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시를 당하든 주목을 받든, 칭찬을 받든 조롱을 당하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똑똑하다는 증거를 댈 수도 있고 바보라는 증거를 댈 수 있으며, 익살맞다는 증거를 댈 수도 있고 따분하다는 증거를 댈 수 있다. 이렇게 흔들린다면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무시를 당하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쳐들며, 미소나 칭찬과 마주친다면 어느새 역전이 이루어진다. 혹시 남의 애정 덕분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 … 동료 한 사람이 인사를 건성으로 하기만 해도, 연락을 했는데 아무런 답이 없기만 해도 우리 기분은 시커멓게 멍들어버린다. 누가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과일 바구니라도 보내주면 갑자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환희에 젖는다

 

속물근성

 

[27]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우리가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속물들의 매우 조건적인 관심이다.

 

[29] 속물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이며, 권력 구조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속물의 존경 대상도 바뀌기 때문이다.

 

[35] 이 문제를 이해하려다 보면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36] 눈에 두드러지는 집단의 속물 근성은 모든 사람을 사회적 야심의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런 야심을 못마땅해하다가도, 어느새 그것이 사랑과 인정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수단인 양 쫓아다니게 된다.

 

[38]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역사는 남들의 경멸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에게도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텅 빈 선반에 엄청난 것들을 전시하려 했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38]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기대

<물질적 진보>

[47] 백화점은 예전에는 왕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물자를 보통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수많은 과학기술 발명품이 일상 생활을 바꾸었으며, 이에 따라 정신적 지평에도 변화가 왔따. 내년도 작년과 똑같을 것 (똑같이 나쁠 것)이라고 예상했던 순환론적 낡은 세계관은 사라지고, 인류는 매년 완벽한 상태를 향해 진보한다는 세계관이 자리를 잡았다.

 

[52]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사회의 장점을 소비에트에 가르쳐주려면 무슨 책을 주는 것이 좋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시어스 백화점의 카탈로그를 가리켰다.

 

<평등, 기대, 선망>

[56]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57] 부나 존중의 적절한 수준은 결코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준거집단, 즉 우리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58] 키 작은 사람이라 해도 고만고만한 사람들 사이에 살면, 키 때문에 쓸데없이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집단의 다른 사람들의 키가 약간이라도 더 자라면, 갑자기 불안에 빠지고 불만족과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키가 1 밀리미터라도 줄어든 것이 아닌데 말이다.

 

[58]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수많은 불평등을 고려할 때 질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우리가 모두를 질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우리의 준거집단에 속한 사람들만 선망한다는 것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

 

[59] 데이비드 흄은 <인성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커다란 불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근접 상태다. 일반 병사는 상사나 상병에게 느끼는 것과 비교하면 장군에게는 질투심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불균형이 심하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며, 그 결과 우리에게서 먼 것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지 않게 되거나 그런 비교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

 

[60]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겨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질투할 사람도 늘어난다.

18세기와 19세기의 위대한 정치 혁명과 소비자 혁명은 인류의 물질적 운명을 크게 개선시키는 동시에 심리적 고뇌도 안겨주었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특별하고 새로운 이상, 즉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누구나 무엇이든 이를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사실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에는 그 반대되는 가정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불평등과 낮은 기대 수준이 정상적이고 지혜로운 것이었다.

 

[62] 인간은 신 앞에서는 평등할지 몰라도, 이것이 현실에서 평등을 추구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67]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68] “귀족 계급의 지원을 받는 왕이 나라를 다스렸을 때 사회는 그 참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맛보기 어려운 몇 가지 행복을 누렸다. 민중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신분 외에 다른 가능성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지도자와 동등해지기를 기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엄혹한 환경에서 살아갔지만 반감을 품지도 모욕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신이 정해준 불가피한 고난이라고 생각했다. 농노는 자신의 열등한 위치가 불변의 자연 질서의 결과라고 여겼다. 그 결과 운을 불평등하게 타고난 여러 계급 사이에는 일종의 친선 관계가 확립되었다. 사회는 불평등했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지는 않았다.

-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1835) “왜 미국인은 번영 속에서도 그렇게 불안을 느끼는가

 

[69] 민주사회에서는 언론과 여론이 하인들과 사회의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고, 그들 역시 산업가나 판사나 과학자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무자비하게 부추겼다. 이러한 무제한의 기회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 처음에는 특히 젊은 하인들 사이에 명랑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들 가운데 가장 재능이 뛰어나거나 운이 좋은 사람은 목표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 다수는 상승에 실패한다. 토크빌은 그들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울화 때문에 생기를 잃고, 자신과 주인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갔다.

-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1835) “왜 미국인은 번영 속에서도 그렇게 불안을 느끼는가

 

[70]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성공을 거두어야만 우리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어떤 일에서 실패한다고 해서 반드시 수모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가치관을 걸고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에만 수모를 느낀다. 무엇을 승리로 해석하느냐, 무엇을 실패로 간주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다.

 

[71]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자존심 = 이룬 것 / 내세운 것

 

제임스의 방정식은 우리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 수모를 당할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엇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결정된다. 이 방정식은 우리가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암시한다. 하나는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제임스는 두 번째 방법의 장점을 지적한다.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 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지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젊거나 늘씬해지려고 애쓰기를 포기하는 날은 얼마나 즐거운가. 자아에 더해지는 모든 것은 자랑거리일 뿐만 아니라 부담이기도 하다.”

 

[72] 기대의 좌절에 따르는 위험은 내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더 심각해졌다. 내세에 대한 믿음이 과학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유치한 아편에 불과하다고 해석해버리면, 성공하고 자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압박은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이고, 그것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지상의 성취는 다른 세계에서 실현해야 하는 일의 서곡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의 총합이 된다.

 

[80] 루소의 주장은 부에 대한 명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81] 더 큰 물고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대신, 옆에 있어도 우리 자신의 크기를 의식하며 괴로울 일이 없는 작은 벗들을 주위에 모으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면 도니다.

 

발전된 사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전보다 높아진 소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부유하게 해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볼 때 우리를 더 궁핍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무제한의 기대를 갖게 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우리의 현재의 모습과 달라졌을 수도 있는 모습 사이에는 늘 간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원시의 야만인보다 더 심한 궁핍을 느낄 수도 있다.

 

[82] 우리가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능력주의

<실패에 관한 유용한 옛이야기 세 가지>

첫 번째 이야기.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두 번째 이야기.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세 번째 이야기.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

 

[95]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서기 30년부터 1989년까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이 이야기들은 좋은 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는 세 가지 메시지를 전달했다. 첫째, 그들은 사회에서 진정으로 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둘째, 세상의 지위는 신이 보기에 아무런 도덕적 가치가 없다는 것. 셋째, 부자는 파렴치하며 정당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면 서글픈 종말을 맞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차피 존중할 가치가 없다는 것.

 

<불안을 일으키는 새로운 성공이야기 세 가지>

첫 번째 이야기. 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쓸모 있다.

두 번째 이야기. 지위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105] 19세기의 많은 개혁가들과 마찬가지로 칼라일이 원하던 것은 모두가 경제적으로 평등한 세상이 아니라 엘리트와 가난한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불평등한 세상이었다. 칼라일은 말한다.

유럽은 진정한 귀족제를 원한다. 다만 이것은 재능의 귀족제가 되어야 한다. 가짝 귀족제는 지탱될 수 없다.”

 

[113] 경제적인 능력주의 사회에서 상속이나 다른 유리한 조건 없이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개인은 과거 아버지에게서 돈과 저택을 물려받았던 귀족은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개인의 정당성의 요소를 확보했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적 실패는 과거에 삶의 모든 기회를 박탈당했던 농민은 다행스럽게도 겪을 필요가 없었던 수치감과 연결되었다.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새로운 능력주의 시대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하는 더 모질고 괴로운 문제가 되었다.

 

세 번째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은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113] 경제적 능력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어떤 영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제 불운하다고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자라고 묘사되었다.

 

[119]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의 등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무리 비천하다 해도 자신에게 모든 기회가 열려 있음을 안다. 만일 되풀이하여 바보라는 낙인이 찍히면 허세를 부릴 수 없다 이제는 자신이 열등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와는 달리 기회를 박탈당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열등하기 때문이다.

 

[119]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

 

불확실성

<불확실한 요인들>

[123] 전통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지만, 그 지위를 잃는 것 또한 어려워 행복할 지경이었다. 중요한 것은 살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성취하는 것보다도 태어날 때 얻는 신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고 내가 누구냐는 것이다.

 

[124]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생계를 유지하고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적어도 다섯 가지 예측 불가능한 요인이 뜻대로 따라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위계 내에서 자신이 바라는 자리를 얻거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다섯 가지 이유가 되기도 한다.

 

1.       변덕스러운 재은

2.      

3.       고용주

4.       고용주의 이익

5.       세계 경제

 

[140] 마르크스는 칸트를 참조하여 부르주아지가 그들의 새로운 과학인 경제학이 대규모로 부도덕을 자행한다고 비난했다.

경제학은 노동자를 오직 일하는 동물로만 본다. 가장 기본적인 신체적 요구만 남은 짐승으로 여기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피고용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바퀴가 계속 굴러가게 하기 위해 치는 기름과 같다. 노동의 진정한 목적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돈이다.”

 

[142] 상업적 조직의 근본적 원리 방정식

투입 (원료 + 노동 + 기계) = 산출 (제품 + 이윤)

 

노동과 다른 요소들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재래 경제학에는 이 점을 표현할 또는 중시할 수단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세상에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차이다. 즉 노동자는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생산라인 가동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지면 가동을 중단하기도 하는데, 이 때 기계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 석탄 사용을 중단하고 천연가스를 사용해도 도태된 에너지 자원은 절벽을 뛰어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는 자신의 가격이나 존재를 줄이려는 시도에 감정으로 대응하는 습관이 있다. 노동자는 화장실에 들어가 흐느끼기도 하고, 실적 미달에 대한 두려움을 술로 달래기도 하며, 해고를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142] 이런 감정적인 반응을 보면 지위를 부여하는 격투장 내에 공존하는 두 가지 요구가 드러난다. 하나는 사업의 일차적 목적은 이윤의 실현이라고 규정하는 경제적 요구다. 또 하나는 피고용자가 경제적 안정, 존경, 종신직을 갈망하도록 이끄는 인간 적 요구다.

이 두가지 요구가 오랜 기간 이렇다 할 마찰 없이 공존할 수도 있지만, 이 둘 사이에서 진지하게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상업적 체제의 논리 때문에 임금에 의존하는 모든 노동자의 삶에서는 불안이 떠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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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2.17 17:01:53 *.94.31.26

 읽다보니 나는 심리공부 다시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
얼마나 해야 되는지...  멀기만 하네..
그래도  알아는 들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네.

가끔씩 이럴땐,  세상의 바다에서 쪼각배타고 허우적거리는 것 같아 
무너져 내리기가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 
이젠  
그래도 스승의 등대가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용감해졌네
포기하지 않는 한 ' 언젠가는 내 꽃도 피리라' 는 생각에 ^^

심리에 관련된 책이어서 좋고 배울게 많고 많아서 좋고
캄사한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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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2.19 00:01:53 *.131.127.100
마무리 되는 것 꼭 올려쥬~ 
나 도 책 삿시유.
지금 보는 것 정리하는 대로 볼려고...  ^^
그 사이 쎄이가 올린 것 보고 상상 좀 해 볼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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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12:32:53 *.244.197.254
알랭 드 보통이 참 사람심리 묘사를 잘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인지하지 못했던 심리상태를 설명할 때는 깜짝 놀랄때도 있어요

글구.. 고백하자믄, 아직 내 마음의 글귀를 모두 다 타이핑을 못했어요 ㅠㅠ
일이 폭풍우처럼 몰아치네요 ㅎ 다행히 오늘이믄 거의 마무리될 것 같아요
이번 주 북리뷰할 때 내용을 마저 추가해서 올릴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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