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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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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1일 11시 59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이순신

1545년 서울 건천동에서 가난한 선비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이순신의 할아버지는 조선시대 4대 사화중의 세 번째인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역적’의 자식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아예 벼슬할 생각을 접고 독서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평생의 후원자 유성룡과는 건천동 시절 죽마고우로 알려져 있다.

가세가 기울어 십대중반에 충청 아산으로 이사한다. 여기에서 21세에 결혼을 하고 22세에 무인으로서의 길을 정하고 28세에 무과에 도전했으나 낙마로 낙방하고 32세에에 급제한다. 관직에 올라서도 47세에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될때까지 15년동안 파직과 복직을 거듭한다. 수군 절도사가 되어서는 왜의 침략징후를 간파하고 이에 대비 병기를 정비하고 거북선을 제작한다. 이듬해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여서는 옥포․합포․전진포 해전 등에서 승리하여 이듬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군공을 세우지만 1957년 원균의 모함으로 투옥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권율의 수하에서 백의종군하게 된다.

1957년 이순신을 대신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사망하자 삼도수군통제사에 재 임명된다. 그리고 곧이어 치른 명량해전에서 열세척의 배로 백삼십여척의 왜선과 싸워 섬멸하는 대승을 거둔다. 그리고 1598년 퇴각하는 왜군과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을 벌이다 적탄에 맞아 전사한다.

사후에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 1등, 덕풍부원군에 추봉된 데 이어 좌의정, 1613년(광해군 5) 영의정에 봉해진다.

충무공에 관해서는 컬럼에 자세히 언급했으므로 이쯤에서 마친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역자 서문

국난 극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가며 항상 必死則生의 각오로 임했으니, 진정한 구국의 명장이었다(6)_이것이야말로 ‘파우스트적 거래’

부득이 출전한 날은 쓰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날짜마다 간지 및 날씨를 빠뜨리지 않고 틈나는 대로 적었다(6)

■ 해제

왜군의 來侵 징후가 그 전년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이미 백성들의 움직임에서 실제 확인되었다(11)_봐! 보려고 하는 사람에겐 다 보이는 움직임이었음이 틀림없다.

이순신 자신의 별호인 ‘一心’을 연습한 낙서(13)

모친의 喪事로 매우 애통하여 다 적지 못하고 뒤에 대강 추록한다(15)_어떻게 처신하였을까?

상관과 동료에 대한 불만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한 내용들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이순신의 새로운 면모(20)_인간적인 면모

왕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을까 하는 편집자들의 과잉된 충성심과, 각 문중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28)_예나 지금이나..쩝..

일본인이 <난중일기> 전편을 활자로 간행하고 번역했다는 점은 일본인들이 아직도 이순신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39)

■ 임진년(1592)_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자기 한 몸 살찌울 일만 하과 이와 같이 돌보지 않으니 앞일도 알 만하다(51)

둘째 형님 요신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51)_제삿날이 휴일이나 마찬가지 개념이었나? 나라제삿날은 공휴일이라 치고..개인적인 제사는 휴가였던 걸까? @@

공무를 본 뒤 활을 쏘았다(52)_주요 일과..ㅎㅎ

애쓴 정성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56)

공무를 본 뒤 주인이 자리를 베풀고 활을 쏘았다. 조방장(助防將) 정걸(丁傑)도 와서 인사를 하고 황숙도(黃叔度·능성 현감)도 와서 함께 취했다. 배수립(裵秀立)도 나와서 함께 술잔을 나누니 매우 즐거웠다.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신홍헌(申弘憲)을 시켜 술을 걸러 전날의 심부름하던 삼반하인(三班下人·지방 관아에 딸린 군노(軍奴), 사령(使令), 급창(及唱) 등을 말한다)들에게 나누어 먹이도록 했다(57)

말을 그와 같이 꾸며 대니, 그 간사함을 헤아리기가 어렵다(61)

모두 격분하여 제 한 몸을 생각지 않으니 실로 의사들이라 할만하다(66)

여도 수군 황옥천이 왜적의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도망갔는데, 잡아다가 목을 베어 군중 앞에 내다 걸었다(67)

한 모퉁이의 외로운 신하가 북쪽을 바라보며 길이 애통해하니, 간담이 찢어지는 듯 합니다(72)_임금을 향한 思慕歌

백성을 곤경에서 해방시키는 일은 무엇보다도 급한 일입니다(73)

오래전부터 있는 병폐라고만 여겨 방어하는 것을 줄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74)_대립제의 폐해를 말하는 것인가 부다.

대저 변방의 중진을 한번 잃으면 그 해독은 심장부에까지 미치게 되니, 이것은 실로 이미 경험한 일입니다(75)

■ 계사년(1593)_만 번 죽어도 한 삶을 돌아보지 않을 계책을 내고 보니 발분한 마음 그지없네.

이렇게 큰 적을 맞아 토벌을 약속하는 때에 술을 함부로 마셔 이 지경에 이르니, 그 사람됨을 더욱 말로 나타낼 수가 없다. 통분함을 이길 길이 없다(80)_관리들의 80%이상이 알콜중독자들이었던 듯 하다..--;;

원 수사는 그 흉악하고 음험함을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84)

한산도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나니, 광양 현감, 낙안 군수, 방답 첨사 등이 왔다. 방답 첨사와 광양 현감은 술과 안주를 넉넉히 준비해 왔고, 우수사도 왔다. 어란포 만호도 소고기로 만든 음식 몇 가지를 보내왔다. 저녁에 비가 왔다(87)_ 장군의 생일(음3월8일)날 일기

우선 군사를 출전시킬 기한을 늦추고 한 번이라도 휴가를 얻게 해 준다면 민심이 필시 이러한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93)

요행과 만일이란 실로 兵家의 장구한 계책이 아닙니다(97)

오늘이 곧 어머니의 생신이었으나 이 토벌하는 일 때문에 가서 축수의 잔을 올리지 못하니 평생의 한이 되겠다(105)

영남 우수사 원평중이 와서 술주정이 심하기가 차마 말할 수 없으니 배 안의 모든 장병들이 놀라고 분개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의 거짓된 짓을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다. 영산령이 취하여 쓰러져서 정신을 못 차리니 우습다(108)

“명나라 장수가 중도에서 오래 체류하는 것은 반드시 교묘한 계책을 내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라를 위한 걱정이 많던 차에 일마다 이와 같으니, 더욱더 탄식이 일고 눈물에 잠겼다(109)

어찌 세상사가 이렇게 가혹한가(109)_역시 예나 지금이나..그에게나 나에게나..

간절한 심정으로 보낸 것을 의리상 되돌려 보낼 수 없으므로 군관들에게 주었다(110)

원수사가 송 경락이 보낸 화전을 혼자만 쓰려고 꾀하기에 병사의 공문을 통해서 나누어 보내라고 하니, 그는 공문도 내는 것을 심히 못마땅해하고 무리한 말만 많이 했다. 가소롭다(115)_아무래도 나는 공직을 통해 이상을 실현하는 건 못할 것 같다. 도저히 견뎌낼 자신이 없다..

가소롭다. 이처럼 나라가 위급한 때를 당해서도 예쁜 여인을 태우기까지 하니 그 마음씀이는 무어라 형용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대장이라는 원 수사 또한 이와 같으니, 어지하겠는가?(115)_도대체 나라에 기강이라는 것이 없었나부다..하여간..이노무 나라는..쩝..건 그렇고 동료 <이순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다들 이렇게 정신이 반쯤 나갔는데..맨 정신인 그가 얼마나 껄끄러웠을까? 흠..

오늘은 사형에 처하여 효시했다. 거센 바람이 그치지 않고 마음이 괴롭고 어지러웠다(118)

사경에 경상 원 수사의 공문이 왔는데, “내일 새벽에 나아가 싸우자.”는 것이었다. 그 흉악하고 음험하과 시기하는 마음은 이루 말로 못하겠다(119)

아침에 흰 머리카락 여남은 올을 뽑았다. 그런데 흰 머리카락이 난 것을 어찌 꺼리랴만 다만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119)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고 홀로 뜸에 앉아 있으나,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125)

이날 밤은 바다의 달이 밝고 티끌 하나 일지 않고 물과 하늘이 일색을 이루었다(128)

실은 왜적이 아니고, 영남의 피란민들이 왜군 차림을 가장하고 광양으로 마구 들어가서 여염집을 분탕질하였다(128)

새벽에 꿈에 큰 대궐에 이르렀는데, 그 모습이 서울과 같고 기이한 일이 많았다. 영상이 와서 인사를 하기에 나도 답례를 하였다. 임금님의 파천하신 일을 이야기하다가 눈물을 뿌리며 탄식하는데, 적의 형세는 이미 종식되었다고 말했다. 서로 일을 논의할 즈음 좌우의 사람들이 무수히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아침에 우후가 와서 만나고 돌아갔다(134)

아들 염의 아픈 데가 종기가 생겨 침으로 쨌더니 고름이 흘러나오는데, 며칠만 더 늦었어도 치료하기 어려울 뻔 했다고 한다. 매우 놀랍고 한탄스러운 심정을 이기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생기가 났다고 하니 다행임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134)

꿈에 적의 형상이 보였다. 그래서 새벽에 각 도의 대장에게 알려서 바깥바다로 나가 진을 치게 하였다. 해질 무렵에 한산도 안쪽 바다로 돌아왔다(139)_전략구상은 어떤 식으로 했던 걸까? 왜 일기에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을까? 내가 못 찾는 걸까? 안타깝다.

원 수사가 왔다. 음흉하고 속이는 말을 많이 했다. 몹시 해괴하다(139)

또 다시 동과 서로 다투겠는가(144)

여러 장수들이 명령을 내리는 데 마음을 다했는지의 여부를 기회와 사정에 따라 자세히 살펴보면, 혹은 먼저 진격을 외쳐 서로 다투어 돌진하여 싸우게 되는 때가 되면, 사랑하는 처자를 돌아보고 살기를 탐하여 중도에 빠지는 자가 있었고, 혹은 공로와 이익을 탐하여 승패를 헤아리지 않고 돌진하다가 적의 손에 걸려들어 마침 나라를 욕되게 하고 몸을 죽게 하는 재앙을 만든 자가 있었다(144)★★★★★_가정적인 이는 집안에서는 사랑 받을 것이나 나라의 입장에선 비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고, 스스로 사리를 판단하는 힘이 없이 겉으로만 충성스러운 자는 당장은 부리기 좋을지 모르나 결국은 상사에게도, 나라에도 해가 되는 99해1익(당장은 흡족할 것이므로)한 자이므로 경계해야할 것이다.

■ 갑오년(1594)

숨을 가쁘게 쉬시어 살아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듯 하니 감춰진 눈물이 흘러내릴 뿐이다(148)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라고 분부하여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심정으로 탄식하지 않으셨다(149)_자식을 품에 끼고 싶다면 다른 사람이 그를 찾지 않음을 아쉬워 말 것이고, 자식으로 인해 부모의 이름을 높이는 명예를 누렸으면 품안에 끼고 누리는 기쁨을 아쉬워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순신의 어머님은 이를 아는 지혜로운 분이셨구나. 결국은 모두 선택의 문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느 줄에 서도 불안하고 만족이 없을 것이다.

원 수사, 공연수, 이극성이 서로 눈독 들인 여자들을 모두 다 관계했다고 한다(150)_권력은 얼마나 무서운지..이들이 분에 넘치는 권력을 갖지 않았더라면 이런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어떤 미인이 홀로 앉아서 손짓을 하는데, 나는 소매를 뿌리치고 응하지 않았다(156)

맑음. 병세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기운이 더욱 축이 나서 종일 고통스러웠다(166)_갑오년(1594) 일기는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병중인지라 왠지 생일날 모습이 쓸쓸하기 그지없다.

아내의 언문 편지에는 아들 면이 더위 먹은 증세로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마음이 애타고 답답하다(183)

빗발이 삼대 같아서 새지 않는 곳이 없었다.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았으니,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밀었다(187)

유성룡이 죽었다는 부음이 순변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는 유정승을 질투하는 자들이 말을 지어내 훼방하려는 것이리라. 통분함을 이길 수 없다. 이날 저녁에 마음이 몹시도 어지러웠다. 홀로 빈집에 앉았으니, 심회를 스스로 가눌 수 없었다. 걱정에 더욱 번민하니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했다. 유 상이 만약 내 생각과 맞지 않다면 나랏일을 어찌할 것인가(189)_조력자

홀로 앉아 아들 면의 병세가 어떠한지 염려되어 글자를 짚어 점을 쳐 보니, “군왕을 만나 보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아주 좋았다. 다시 짚어 보니, “밤에 등불을 얻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두 괘가 모두 길하여 마음이 조금 놓였다. 또 유상의 점을 쳐 보니, “바다에서 배를 얻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또다시 점치니,“의심하다가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매우 길한 것이다(189)★_글자점이 그에겐 상담자같은 역할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을 때, 글자점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다. 물론 현명한 재해석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내의 병세가 매우 위중하다고 했다. 이미 생사가 결정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일에 생각이 미칠 수는 없으나 아들 셋, 딸 하나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201)_자신이 아프거나, 어머니가 아프거나, 자식이 아프거나..사는 게 다 이런 건가 보다.

김양간이 서울에서 영의정의 편지와 심충겸의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분개하는 뜻이 많이 담겨 있었다. 원수사의 일은 매우 해괴하다. 내가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했다니, 이는 천년을 두고 한탄할 일이다(201)★★_이 순신이 만일 조정에서의 정치에 뛰어들어 반대세력을 꺽고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는 데 힘을 썼더라면, 그러면서도 왜적에 맞설 전략과 대비를 할 수 있었을까? 비록 이순신이라도 둘을 다 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나라안의 政敵과 싸울 것인지 왜적과 싸울지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인데..나라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자신의 전공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부의 적들도 더 많아지는 상황. 개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음이 분명한 이 상황에서 이순신이 역사속의 선택을 할 수 있었던 확신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었을까?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나 하나만 걸린 문제라면 모르지만 나의 안위와 가족의 안위와 직결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라와 백성을 선택할 수 있을까?

몹시 취해서 헤어졌다(204)_이순신도 술을 아주 안 마시지는 않았구나..때로는 취하고 싶기도 했었구나..

따뜻하기가 봄날 같았다. 음양이 질서를 잃은 것 같으니 그야말로 재난이라고 할 만하다(216)_400년전에도 온난화현상이 있었나? @@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 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고 안으로는 계책을 세울 기둥같은 인재가 없으니 더욱더 배를 만들고 무기를 다스리어 적들을 불리하게 하고 나는 그 편안함을 취하리라(219)

왜놈이 두려워하는 바는 수군이지만 수군으로서 싸움에 나서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220)★_身良役賤이었으니..어디서나 고된일은 사람들이 피하니 결국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

■ 을미년(1595)_장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공로는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못했고, 입으로 교서를 외우고 있으나 군사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삼경에 꿈을 꾸니 선군께서...완전히 평소 때와 같은 모습이어서 이를 생각하며 홀로 앉았으니, 그리움에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다(229)_아빠가 보고 싶다..보고 싶다..대전에 다녀와야 하는데..다음주엔 꼭 다녀와야겠다.

순변사 이일의 처사가 지극히 형편없고 나를 해치려고 몹시 애쓴다고 한다. 참으로 가소롭다(230)

식사 후에 대청으로 나갔다. 우수사, 경상 수사(배설), 두 조방장(박종남, 신호), 우후(이몽구),가리포 첨사, 낙안 군수, 보성 군수, 광양 현감, 녹도 만호가 함께 모여 이야기했다. (237)_을미년(1595) 일기는 다행히도 쓸쓸하지 않다. 오히려 축하의 모습을 담아 시끌벅적한 느낌이 든다. 행간에 그것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원수가 근거 없이 망녕되게 고한 일들이 매우 많았다. 반드시 실수에 대한 문책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데도 원수의 지위에 눌러 앉을 수 있는 것인가. 괴이하다(245)_괴이하나 비일비재하다.

그는 백성을 위해서 고통을 덜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호남 순찰사는 헐뜯어 말하는 기색이 많으니, 한탄스럽다(266)

김희번이 서울에서 내려와서 영의정의 편지와 조보 및 원흉의 답서를 가져와 바치니, 지극히 흉악하고 거짓되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 기망하는 말들은 무엇으로도 형상하기 어려우니 천지 사이에는 이 원흉처럼 흉패하고 망령된 이가 없을 것이다(277)

■ 병신년(1596)_만일 서쪽의 적이 급한데 남쪽의 적까지 동원된다면 임금이 어디로 가시겠는가

이른 아침에 이영남과 좋아지내는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권숙이 치근거리기에 피해 왔는데, 바로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287)_쯧..

항복한 왜인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290)

이 왜적들이 어찌 물건을 팔고자 하겠는가. 우리의 허실을 엿보기 위한 것이 틀림없다(294)

늦게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불러모아 위로하는 음식을 먹이고, 겸하여 활도 쏘고 풍악도 울려서 취한 뒤에 자리를 파하였다(295)

강진 현감이 기일 어긴 죄를 처벌했다. 가리포 첨사는 논하고 보고한 것이 약속보다 늦었기에 타일러서 내보냈다(297)

저녁에 물을 부엌가로 끌어들여 물긷는 일을 편리하게 해 주었다(297)

이날 밤 바다의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 빛은 비단결 같았다. 혼자서 높은 수루에 기대어 있노라니 마음이 몹시 어지러워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297)

이날 밤 달빛은 대낮과 같고 물빛은 비단결 같아서 자려 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랫사람들은 밤새도록 술에 취하며 노래했다(298)_정유재란 직전이라 기강이 헤이해서였을까?

항복한 왜인들을 이곳에 있는 왜인 난여문 등에게 시켜 묶어 와서 목을 베게 했다(299)

조정에서 계책이 이럴 수가 있는가. 체찰사가 계책을 내놓은 것이 이렇게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단 말인가. 나라의 일이 이러하니 어찌할 것인가(302)

아침에 안골포 만호가 큰 사슴을 한 마리 보내오고 가리포 첨사도 보내왔다. 식후에 나가 앉아 있으니, 우수사, 경상 수사, 좌수사, 가리포 첨사, 방답 첨사, 평산포 만호, 여도 만호, 우 우후, 경상 우후, 강진 현감 등이 와서 함께 하였고 종일 술에 몹시 취하고서 헤어졌다. 저녁에 비가 잠시 왔다(305)_병신년(1596) 장군의 생일은 또 어떠한가. 그것은 장군의 생일 중에 가장 잔치로서 돋보인다.

작별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여자종)과 함께 잤다(305)_쯧..

동남풍이 세게 불어 지붕이 걷힌 곳이 많았고 창문의 종이가 떨어져 비가 방 안으로 흩뿌려서 괴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307)

식은땀이 등을 적셔서 옷 두겹이 다 젖고 이부자리까지 다 젖었다. 몸이 불편했다(307)

논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것 같아서 매우 한스럽다. 이날은 뮤료함이 너무 심해 군관 송희립, 김대복, 오철 등을 불러서 종정도를 겨루었다(308)

명나라 사실이 달아났다고 하니 어떤 일인지 모르겠다(311)

풍신수길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기쁘기 그지 없었지만 아직 믿을 수 없었다. 이 말은 벌써부터 퍼졌었지만, 아직은 확실한 기별이 오지 않았다(314)

목욕탕에 들어갔다(315)_목욕탕 시설을 새로 하셨나?

가뭄이 너무 심했다. 근심과 고민을 어찌 다 말하랴(316)

밤이 깊도록 이들을 즐겁게 뛰놀게 한 것은 굳이 즐겁게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랫동안 고생하는 장병들에게 노고를 풀어 주고자 한 계획이었다(317)

제때에 진에 도착하지 않은 까닭을 문책하라 때에, 날짜를 정해주지 않았기에 오십여 일을 물러나 있었다고 답하였다. 해괴하기 짝이 없어서 곤장 서른 대를 쳤다(324)

새 정자로 올라가 앉았다. 편을 갈라 활을 쏘았는데, 경상 순찰사 편이 백예순두 점이나 졌다. 종일토록 매우 즐겁게 보내고 촛불을 켜 들고 돌아왔다(327)_즐거운 때도 있었구나..다행이다..

새벽꿈에 어떤 사람이 멀리 화살을 쏘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갓을 발로 차서 부수는 것이었다. 스스로 이것을 점쳐보니, ‘화살을 멀리 쏜 것’은 적들이 멀리 도망하는 것이요. 또 ‘삿갓을 발로 차서 부순 것’은 삿갓이 머리에 써야 할 것이나 발로 걷어채인 것이니, 이는 적의 괴수에 대한 것으로서 왜적을 모조리 무찌를 징조라 하겠다(328)_장군의 마인드컨트롤법. 긍정적 재해석으로 스스로를 독려하기!

어두울 무렵 항복해 온 왜인들이 광대놀이를 많이 벌였다. 장수된 자로서 좌시할 일은 아니었지만, 귀순하여 따르는 왜인들이 마당놀이를 간절히 바라기에 금하지 않았다(329)

충청도 혼산에서 큰 도둑들이 도발하여 홍산 현감 윤영현이 붙잡히고, 서천 군수 박진국도 끌려갔다고 한다. 바깥 도둑도 아직 없애지 못했는데, 안의 도둑들이 이러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330)

“충청도 도둑들이 홍산에서 일어났다가 처형되었고, 홍주 등 세 고을이 포위되었다가 간신히 면했다.”고 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331)_안 팎으로 세상사가 참 마음같이 아니 되는 구나..

꿈에서도 땀을 흘렸다(332)_대체 무슨 병이셨던 걸까?

어두울 무렵 비 올 징후가 많았기에 비 오기 전에 준비할 일들을 지시했다(333)_본 받자!

아이들이 말달리고 활 쏘는 것을 구경했다(339)_흐뭇한 풍경.. ^^

종일 노를 바삐 저어 이경에 어머님께 이르렀다. 백발이 성성한 채 나를 보고 놀라 일어나시는데, 숨이 곧 끊어지려 하시는 모습이 아침저녁을 보전하시기 어렵겠다.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붙들고 앉아 밤새도록 위안하며 기쁘게 해 드려 마음을 풀어드렸다(341)

원공의 흉악한 행동은 여기에 적지 않겠다(343)_이 일기는 독자가 누구였던 걸까? 개인적인 일기는 아니었던 듯하다. 독자를 의식한 걸까?

이중익이 군색하고 급하다는 말을 많이 하므로 내 옷을 벗어 주었다(346)

새벽에 배를 돌려 어머니를 모시고 일행과 함께 배에 올라 본영으로 돌아와서 종일토록 즐겁게 모시니 이 역시 다행한 일이었다(349)

■ 정유년(1957) Ⅰ

옥문을 나왔다...더하는 슬픈 마음을 이길 길이 없었다...정으로 권하며 위로하기에 사양할 수 없어 억지로 마시고 몹시 취하였다(353)

조상의 사당에 곡하며 절했다...멀고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와서 모였다. 오랫동안 못 본 회포를 풀고 갔다...동네 사람들이 각기 술병을 갖고 와서 멀리가는 이의 심정을 위로해 주기에 거절하지 못하고 몹시 취하도록 마시고 헤어졌다...나는 창을 들어도 즐겁지 않았다. 금부 도사는 술을 잘 마시나 흐트러짐이 없었다(356)

새벽꿈이 매우 심란하여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덕이를 불러서 대강 이야기하고 또 아들 울에게도 말했다. 마음이 몹시 언짢아서 취한 듯 미친 듯 마음을 가눌 수 없으니, 이것이 무슨 징조인가. 병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356)_마음이 많이 약해지셨구나..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달려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357)_하필 이런 때 돌아가셨을까? 아들일로 수심이 깊어 털고 일어나지를 못하신 걸까?

어머님 영전에 하직을 고하고 울부짖으며 곡하였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 사이에 어찌 나와 같은 사정이 있겠는가.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358)_가슴이 찢어진다..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원균에 대한 일을 많이 말했다(361)_호칭이 바뀌었다. 원한이 묻어 나온다.

아침에 둘째아들 울의 이름을 열로 고쳤다. 열의 음은 열이다. 싹이 처음트거나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니 글자의 뜻이 매우 아름답다(361)_마음이 약해지셨다..

천리 되는 천애의 땅에 멀리 와서 종군하여 어머님 장례도 못 모시고 곡하고 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니, 무슨 죄로 이런 앙갚음을 받는 것인가. 나와 같은 사정은 고금에도 같은 것이 없을 터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다만 때를 못 만나나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362)_내 가슴도 찢어진다.

흉악한 자..흉악한 공..(363)

음흉한 원균이 편지를 보내어 조문하니, 이는 곧 원수의 명령이었다(364)

원이 온갖 계략을 꾸며 나를 모함하려 하니 이 또한 운수로다. 뇌물로 실어 보내는 짐이 서울 길을 연잇고 나를 헐뜯는 것이 날로 심하니, 스스로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364)_진짜 가슴 찢어진다.

내 행색은 엉망이라 민망스럽다(366)

음흉한 자의 일은 기만함이 극심하건만 임금이 살피지 못하니 나랏일을 어찌할꼬(368)

안팎이 모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경중을 결정한다니, 아직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다. 이것이 이른바 “白錢의 돈으로 죽은 혼을 살게 한다.”는 것이리라(368)

체찰사가 사람을 보내 부르기에 가서 뵙고 조용히 의논하는데, 시국의 일이 이미 잘못된 것에 대해 많이 분개해하며 다만 죽을 날만을 기다린다고 했다(369)

혼자 시골집에 기대어 낮아 있으니 떠오르는 생각이 만가지다. 슬픔과 그리움이 어떠하겠는가(369)

악양 이정란의 집에 당도했는데, 문을 닫고 거절하는 것이었다..이정란의 집은 김덕령의 아우 덕린이 빌려 입주하고 있다. 나는 아들 열을 시켜 억지로 청하게 하여 들어가 잤다. 행장이 다 젖었다(370)_인심이란...

주인이 반갑게 대하기는 하나 잠자는 방이 좋지 못하여 간신히 밤을 지냈다(371)_세상 인심이..

아침에 고을 사람들의 밥을 얻어먹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종들을 매질하고 밥한 쌀을 돌려주었다(371)

개연으로 걸어오는데 기암절벽이 천 길이나 되고 강물은 굽어 흐르고 깊었으며, 길에는 또한 건너 지른 다리가 높았다. 만일 이 험요한 곳을 눌러 지킨다면, 만명의 군사도 지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곳이 모여곡이다(372)_전술은 이러한 평소관찰력에서 나오는 것이었나보다.

이날은 여필(아우)의 생일인데 혼자 변방에 앉아 있으니 품은 생각이 어떠하겠는가(373)

오늘은 보름인데 몸이 군중에 있어서 영위를 베풀고 곡하지 못하니, 그리운 마음을 어찌하랴(376)

종일 혼자 앉아 있었는데 와서 묻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376)

그리운 생각이 간절하니 비통함을 어찌 말로 다하랴(381)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생신인데, 멀리 천리 밖에 와서 군영에서 복무하고 있으니 인간사가 어찌 이러한 것인가(383)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385)

그 꼴이 형편없어 어리석고 용렬해 보였다. 궁벽한 촌에 사는 사람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을 지켜서 형세상 그렇게 된 것이리라. 이 역시 소박하고 순후한 모습이다(387)_세상을 보는 이순신의 눈길..

우리나라에서 믿는 바는 오직 수군에 있었는데, 수군이 이와 같으니 또다시 가망이 없을 것이다. 거듭 생각할수록 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또 선장 이엽이 왜적에게 붙잡혔다니 더욱 분통하다(388)

"16일 새벽에 수군이 기습을 받아 통제사 원균과 전라 우수사 이억기, 충청 수사 및 여러 장수들이 다수의 피해를 입고 수군이 크게 패했다."는 것이었다. 듣자 하니 통곡함을 참지 못했다. 얼마 뒤 원수가 와서 말하되, “일이 이미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사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직접 해안 지방으로 가서 듣고 본 뒤에 방책을 정하겠다.”고 말했더니, 원수가 기뻐하기를 마지않았다(389)_칠천량 해전, 원균 사망. 비록 원수같은 이라고 하나 그의 죽음이 이순신에게 후련함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듯 하다. 원균역시 비운의 역사에서 제 할 역할을 하느라 고단한 인물이었음을 그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대장 원균이 적을 보고 먼저 뭍으로 달아나고 여러 장수들도 모두 그를 따라 뭍으로 올라가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390)_쯧..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이었다(393)_조정은 끝까지 뒷북이다. 이런 염치없는 것들!!

...이 창고 바닥에 숨어있다가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가 배경남과 함께 구치에 이르렀다. 내가 말에서 내려 명령을 내렸더니, 한꺼번에 와서 인사하였다. 내가 피해다니는 것을 들추어 꾸짖었더니, 모두 그 죄를 병사 이복남에게로 돌렸다(394)

‘왜적이 왔다’고 헛소문을 퍼트리며 도적질을 하는 자가 있어, 나는 이미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헛소문을 낸 두 사람을 잡아다가 곧 목을 베어 효시하게 하니, 군중의 인심이 크게 안정되었다(397)

아, 슬프도다. 그때가 어느 때인데, 강은 떠나고자 했는가. 떠나면 또 어디로 가려했던가. 人臣이 임금을 섬김에는 죽음만 있을 뿐이오, 다른 길은 없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종사의 위태함은 마치 머리털 하나에 천균을 매단 것과 같아서, 한창 人臣이 몸을 던져 나라의 은혜를 갚은 때에 떠난다는 말은 진실로 마음에 싹트게 해서는 안 될 것이거늘, 하물며 이를 입 밖에 낼 수 있겠는가. 그러한즉 강을 위한 계책을 세운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체면을 깎고 피눈물을 흘리며 충심을 드러내어 일의 형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나 화친할 수 없는 이치를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말한 것을 따라 주지 않을지라도 죽음으로써 그것을 이어 가야 할 것이다. 이 역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우선 그들의 계책(화친책)을 따르고 자신이 그 사이에 간여하여 이를 위해 일을 낱낱이 꾸며 맞추어 가서 죽음 속에서 살 길을 구한다면, 만에 하나라도 혹 나라를 건질 수 있는 이치가 있을 것이다. 강의 계책은 여기에서 나오지 않고 떠나가기만을 구하고자 했으니, 어찌 인신의 몸으로서 몸을 맡기고 임금을 섬겨야 하는 도리를 버려 둘 수 있는 것인가(404)★★★★★★★★★★★_이런 요지경 속에서도 끝까지 벼슬을 버리지 않고 임무를 수행한 스스로의 명분이었을까..T.T

■ 정유년(1597) Ⅱ

길가에 노인들이 늘어서서 다투어 술병을 바치는데, 받지 않으면 울면서 억지로 권했다(409)

권세있는 집안에 아첨이나 하여 감당치 못할 지위에까지 올라가서 국가의 일을 크게 그르쳤건만, 조정에서는 살피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하겠는가(410)

수사 배설이 내가 탈 배를 보내지 않았다...배설이 약속을 어긴 것이 서운하였다(411)_왜 가만히 두었을까? 완전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분수가 있지..

병세가 매우 위중해져 배에 머무르기가 불편하였다(411)

늦게 배설은 적이 많이 몰려올 것을 근심하고 도망가려고 하여 그 관하의 여러 장수들을 불러 거느렸다. 그 속뜻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먼저 발설하는 것은 장수로서 취할 계책이 아니므로, 그런 생각을 숨기고 있을 즈음에 배설이 종을 시켜 소지를 올렸는데, “병세가 몹시 위중하여 조리를 하겠다.”고 하였다. 육지로 올라가서 조리하도록 결재해서 보냈더니, 배설은 우수영에서 육지로 올라갔다(413)

우수사 김억추는 겨우 만호에만 적합하고 장수를 맡길 수는 없는데, 좌의정 김응남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러고서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뿐이다(415)_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다.

천지 사이에 어찌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겠는가(415)

꿈이 예사롭지 않으니 임진년 대첩할 때의 꿈과 거의 같았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 없었다(415)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이날 밤 꿈에 神人이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하였다(416)★★★_머릿속이 온통 적을 토벌할 생각으로 가득하니..꿈엔들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있었겠는가? 꿈속의 神人이란 이순신 자신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부드럽게 타이르기를,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하지는 못할 것이니 조금도 마음 흔들리지 말고 더욱 심력을 다해서 적을 쏘아라.”라고 하였다(417)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부르며 말하기를,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나?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고 말하였다. 그러자 안위도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도 김응함을 불러 말하기를, “너는 중군장이 되어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형세가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해주마.”라고 하였다(418)

바로 시체를 토막내라고 명령하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418)

아산 고향집이 이미 적에게 분탕질을 당해 잿더미가 되고 남은 것이 없다고 전하였다(241)_이즈음 이순신 마음을 굳히지 않았을까? 무엇을 바라 살기를 택한단 말이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조급하고 어지러웠다(424)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찍어지는 듯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겠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고 갔느냐. 영특한 기질이 남달라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내가 세상에 살아 있은들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너를 따라 죽어 지하에서 함께 지내고 함께 울고 싶건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미가 의지할 곳이 없어 아직은 참고 연명한다마는 내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은 채 부르짖어 통곡할 따름이다(425)★★★

해남 현감도 와서 적에게 붙었던 자들이 한 짓을 전했다(429)_얄팍하게 똑똑한 자들이란..

이날 밤 삼경 꿈에 면이 죽었던 모습이 보여 울부짖으며 곡을 했다(431)

“통제사 이순신이 아직도 권도를 쫓지 않아서 여러 장수들이 민망히 여긴다고 한다. 사사로운 정이야 비록 간절하지만 나라 일이 한창 바쁘고, 옛사람의 말에도 ‘전진에서 용맹이 없으면 효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전진에서 용감함은 소찬이나 먹어서 기력이 노곤한 자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법에도 經(원칙)과 權(방편)이 있으니, 꼭 고정된 법만을 고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은 내 뜻을 깊이 개달아서 소찬 먹기를 그만두고 권도를 따르도록 하라.”고 하였다. 유지와 함께 고기반찬을 하사하셨는데, 마음은 더욱 비통하였다(436)

■ 무술년(1598)_나의 임무는 철수하라고 호령함인데, 앞에 있는 배들의 함성이 하늘에까지 울리고 대포 소리는 우레와 같아서 호령을 듣지 못하였다.

1598.8.18 토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1598.11.19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사망.

3. ‘내가 저자라면’ 

41세의 이순신 전문가, 노승석은 충남 보령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초서를 연구했다고 한다. 노승석 박사와 이순신 장군과의 인연은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에서 시작되었었는데, 그는 “충무공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 인품에 매료된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전쟁 중 초서체로 급하게 썼다는 난중일기 첫 권인 임진일기 영인본을 번역해 내어 최초의 완역본을 출간한 그의 얼굴엔 고생스러웠던 세월만큼이나 보람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이런 그의 고생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독자로서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불만을 지울 수가 없었다.

1. 이 책만가지고는 역사적 사건과 그의 일상, 또는 감정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추론하기가 너무 어렵다. 
“저자가 쓴 원뜻을 알기 위한 거지요. 그게 바로 역사입니다. 역사의 기록엔 한치의 거짓도 들어가선 안되지요.” 라는 노교수의 의도를 이해한다치더라도 적어도 중요한 전투나 개인적인 사건정도는 표시해주어도 좋지 않았을까?

2. 또한 이 책만 읽어서는 이순신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자서전도 아니고 위인전도 아니고 50년 넘는 인생중 단 7년에 불과한 시절에 쓴 일기라는 문헌의 성격을 생각하면 무리한 욕심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독자는 기대하는 것이다. '난중일기'를 읽고 나면 충무공을 이해하게 되겠지. 임진왜란을 이해하게 되겠지?

3. 앞의 두가지 '오해'는 편집방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주석이 미주로 책의 뒤편에 몰려 있어서 참고해서 읽기가 너무 어려웠다. 물론 각주로 처리했더라면 본문이 절반을 차지하는 편집으로 처음 책을 선택하려는 독자들을 상당수 잃어야했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 했다.

4. 타겟 독자는 일반인이 아닌게 분명하다.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무의미한 한자들의 나열. 개인적으로 그의 노고에 대한 대가로 35,000원을 아깝다 생각치 않는다. 두권으로 나눠서 편집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두꺼운 볼륨이 가지고 다니면서 읽고 싶은 나의 욕망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살테니까..분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배려를 해주었음 훨씬 고마웠을 것 같다. 

물론 나는 또한 안다. 나는 이런 불만을 노교수에게 할 권리가 없음을.. "충무공의 유년시절이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게 없습니다. 사실 위인전 내용은 흥미를 위해 쓰여졌을 뿐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요. 또 이순신 장군의 개인문집이라고 할 수 있는 저술이 없다는 점도 의문입니다. 이를 찾아내는 게 앞으로의 연구과제이지요” 이순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노교수의 그에 대한 애정이 앞으로도 계속되어, 또는 다른 이들의 열정을 자극하여 앞으로의 후속연구도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IP *.53.8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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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5.31 13:02:23 *.53.82.120
완전 스릴넘치는..시간과의 전쟁이야말로..이제는 그만두고 싶다.--;;
오늘 막판 리뷰를 쓰는 중에 아프신 엄마에게 두번이나 소리를 질렀다.
'제발 12시까지만 말시키지 말아 달라고!!'
너무 많은 것들에게 나를 내어주느라 정작 지켜야할 것들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
다시한번 전열을 정비해야겠다.
프로필 이미지
2010.05.31 13:28:42 *.106.7.10
묙아, 너의 탁월한 능력을 감안하면 이번 책은 주말까지 끌고갈 책은 아니지 않았을까?
-내가 넘 과대평가했나? ㅎㅎ, 아님 무슨 일 있었니? -

너랑 나랑 좀더 화이팅 해야겠다. 
회사라는 이름의 피바다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도 살아남은 우리가 아니냐 ^^
나도 6월부터 새벽기상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우리 새벽에 다시 만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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